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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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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소중 마스크2

등록 2020-03-07 05:09 수정 2020-05-02 19:29

“뭐 하세요, 아버지?” “우체국 앞에 와 있다. 마스크 사려고.” “엊그제 사셨잖아요?”

수화기 너머 아버지는 아침부터 시골집이 아닌 우체국 앞에 계셨다. 추웠던지 시동을 켜놓은 차 안에서 기다렸다. 서둘러 8시20분쯤 우체국에 도착했는데 이미 20명이 와 있다. 오전 11시에 마스크를 판다니 몇 시간 더 기다려야 한다. 이틀 전 어머니와 함께 장당 1천원에 산 마스크 10장은 막내한테 보냈다. 수도권에 사는 막내는 마스크를 구하지 못해 시름 중이다. 전날 아버지는 허탕을 쳤다. 줄이 너무 길어 발길을 돌렸다. 사람 구경하기조차 힘든 시골에서 보기 드문 풍경이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아버지의 분노는 신천지를 향했다. 당뇨, 고혈압 등 기저질환에 뇌경색을 앓은 아버지는 코로나19로 한 달 가까이 문밖출입을 삼갔지만, 마스크를 구하려 며칠 새 이틀이나 외출했다.

“배급제 비슷한 그런 배급제와 시장경제를 함께 조화시키는 방안을 지금 마련하고 있다.” 이날 정세균 국무총리가 한 말이다. 자유시장주의자들이 정색할 ‘배급제’란 단어를 조심스럽게 꺼낸 이유는 “마스크 공적 유통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인정과 판단에서다.

팔순 넘은 아버지에게 총리가 꺼낸 배급제는 흐릿한 기억으로 남았다. 아마 보릿고개 적인 듯하다. 무상으로 나눠주던 밀가루를 나중에 농경지 개간하는 품삯처럼 지급했다고 한다. 겪어보지 않은 우리 세대에게 배급은 ‘궁핍하고 가난한 나라’ ‘사회주의 계획경제’ 등과 짝을 이뤄 열등한 단어로 취급된다. 곧 경제 시스템의 붕괴와 실패를 떠오르게 한다. 교과서에서나 볼 법한 흑백사진 속 빵을 받으러 길게 줄 선 몰락한 동구 사회주의국가들의 모습이랄까. 이렇게 비칠까봐 두려웠던 걸까. 총리는 얼마나 조심스러웠던지 ‘배급제 비슷한 그런 배급제’라고 말했다.

배급의 사전적 의미는 통제경제 아래에서,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기 위해 상품을 일정하게 나누어 소비자에게 파는 일(때론 무상)로 정의될 수 있다. 마스크를 대입하면 이렇다. 배급제 발언이 나온 지 하루 뒤인 3월5일 정부에서 내놓은 것처럼, 앞으로 매주 1인당 2장씩 마스크 구입이 제한된다. 배급제를 들었을 때 든 생각은 ‘늦어도 너무 늦었다’였다. 정부는 수요와 공급의 시장 실패를 너무 늦게 깨닫고 인정했다.

지난주 토요일 약국 4곳에 들렀지만 마스크 한 장 구할 수 없었다. 인터넷에서도 1시간 넘게 검색했지만 ‘역시나’였다. 그나마 회사 동료의 도움으로 마스크 수십 장을 살 수 있었다. 개당 3천원이었다. 매점매석으로 흘러나온 물량이었다. 수요일엔 또 회사 동료가 몇 장을 챙겨줬고 회사에서도 몇 장 나눠줬다. 시장은 고장난 지 오래다.

시장에 내맡기면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해 마스크가 적재적소에 공급될 거라고 생각했을까. 정부가 마스크 배급을 꺼리자, 시장은 순식간에 매점매석꾼들에게 장악됐다. 가격은 치솟고 불안은 커졌다. 바이러스와 전쟁을 치르는 나라에서 마스크는 ‘생존 필수품’이자 사실상 공공재다. 그런데 대형마트 앞에서 그것도 줄을 잘 서야 운 좋게 손에 넣을 수 있는 물품이 됐다. 더는 이래선 안 된다. 의료진과 환자, 노약자, 취약계층 등에게 우선 제공하되 나머지는 시민들에게 공평하게 줘야 한다.

무늬만 사회주의국가인 중국의 마스크 대란을 보면서 시장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란 판단을 좀더 빨리 해 배급을 계획했다면 불안과 분노를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뒤늦게나마 배급제를 한다니 지긋지긋한 마스크 대란도 곧 끝날까.

늦은 오후 초등학교 동창 단체대화방에 알림이 떴다. 세 아이를 둔 그 친구의 톡이었다. “다음주 월요일쯤 KF94 대형 들어올 예정인데 필요하신 분? 가격은 (개당) 2200원.” 지난주 단속으로 꽝인 줄 알았는데… 어리둥절한 틈에 친구 하나가 주문을 넣는다. “나 350개!”

류이근 편집장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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