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8월7~11일)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오간 살벌한 ‘설전’을 보며, 거듭 한숨을 내쉽니다.
북은 8월8일 을 통해 ‘조선인민군 전략군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이를 보면 “괌도에서 출격한 핵전략 폭격기들이 빈번히 남조선 상공에 날아들어 우리의 전략적 거점들을 타격하기 위한 실전 연습과 위력시위 놀음을 노골적으로 감행하고 있다. (중략) 우리는 미국의 대조선 침략의 전초기지, 발진기지인 괌도를 예의주시하며 제압견제를 위한 의미 있는 실제적 행동을 반드시 취할 필요성을 느낀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다음날인 8월9일 조선인민군 전략군사령관 김락겸 대장은 “우리가 (괌을 겨냥해) 발사하는 중장거리전략탄도로케트 ‘화성 12형’은 일본의 시마네현·히로시마현·고치현 상공을 통과하게 되며, 사거리 3356.7km를 1065s(초)간 비행한 뒤 괌도 주변 30~40km 해상수역에 탄착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금처럼 ‘화염과 분노’ 같은 말로 북한에 대한 핵위협을 이어갈 경우 북한도 이에 맞서 실력 행사를 하겠다는 엄포였습니다.
김락겸 대장은 자신들이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화성 12형의 비행경로, 사거리, 비행시간, 탄착지점 등을 정확히 예고했습니다. 북한은 정말 괌을 타격할 수 있는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발사 능력을 확립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북한은 왜 딱 꼬집어 ‘괌’을 언급한 걸까요. 이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괌이 지닌 독특한 전략적 중요성 때문입니다.
70여 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봅시다. 1941년 12월8일(하와이 시간 12월7일) 일본 해군 연합함대가 진주만을 공습하며 태평양전쟁의 막이 오릅니다. 개전 초기 일본군의 전광석화 같은 공세에 밀리던 연합군은 1942년 6월5일 미드웨이 해전을 시작으로 역전의 발판을 마련합니다. 전쟁의 운명을 결정한 것은 1944년 7~8월 이어진 마리아나제도 공방전이었습니다. 이 전투에서 일본은 지금의 괌과 사이판 일대를 내주고 패퇴합니다.
사이판이 함락된 뒤 일본 여론은 둘로 분열합니다. 사이판이 미국 손에 떨어지면 일본 본토가 ‘하늘의 요새’라 불리던 미국 장거리 폭격기 B-29의 사정거리에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실제 미국은 1945년 2~3월 사이판과 일본 본토 사이에 자리한 이오지마를 둘러싼 처절한 공방전에서 승리한 뒤 대대적인 본토 공습에 돌입합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B-29가 이륙한 곳도 북마리아나제도 티니언섬이었습니다.
70년 넘는 세월이 지났지만 괌 등 마리아나제도의 전략적 중요성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 섬은 미국이 앞으로도 아시아·태평양 지역 문제에 관여하겠다는 결의의 상징입니다. 북이 지적했듯, 괌 미 앤더슨 공군기지에는 냉전시기 미국과 소련 간 핵균형의 상징이던 B-52(스트래토포트레스), 강력한 스텔스 기능을 갖춘 전략폭격기 B-2(스피릿), 초음속 전략폭격기 B-1B(랜서) 등 미국의 핵심 전략 자산이 포진해 있습니다.
북한이 정말 괌 주변을 목표로 화성 12형을 쏘아올린다면, 미국은 반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의 보복으로 미국이 북한을 타격한다면 한반도에 사는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을지 모릅니다. 그렇기에 결국 북한과 미국은 대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게 합리적 예측입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괌은 어떻게 될까요. 미국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공격에 노출된 괌의 미군기지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반세기쯤 지나 후세 역사가들은 2017년 8월 국면을 서술하며 ‘시작되는 제국의 몰락’이라는 제목을 붙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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