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소소한 만남이 때론 삶의 진로를 바꾸기도 한다. 그래서 인생이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고 하는 것일까? 내가 처음 그를 만난 날은 추석 연휴와 주말이 결합한, 그해의 달력을 받은 이후로 가슴속 깊이 새겨두고 기다린, 황금연휴에 낀 토요일이었다. 게다가 날씨까지 선선한 그 토요일 저녁, 홍대 앞에는 사람들이 쏟아져나와 인산인해를 이뤘다. 주로 청춘들이었다. 나는 불어 강사를 하는 친구와 만나 치맥을 하다가 그녀의 원어민 동료들을 우연히 만났는데, 그는 그 무리에 구겨진 종잇장처럼 끼어 있었다. 황금연휴가 낀 주말이라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무장해제하고 축제 분위기로 인도하기 때문인지 몇 마디 안부를 주고받던 것이 합석으로 이어졌다. 연이어 2차로 노래방, 3차로 다시 홍대의 어느 구석에서 술을 마시다 파장이 된 것은 새벽 4시쯤이었다.
황금연휴가 금빛이었다면 월요일 아침은 잿빛이다. 토요일에 새벽까지 달렸기 때문인지 황금연휴의 마지막 날인 일요일에는 낮잠을 늘어지게 잤고 결과적으로 일요일 밤엔 늦은 시간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긴 연휴 끝의 월요일 출근길, 기분은 낮은 먹구름처럼 가라앉았다. 사무실에 들어선 나는 동료들에게 간단한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모두들 감정 모드 전환 중인지 각자의 모니터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잿빛 기분과는 상관없이 일상대로 컴퓨터를 켜고 아웃룩을 클릭하자 2초간 멈칫하던 모니터는 갑자기 산더미 같은 이메일을 쏟아낸다. 업무로의 귀환. 그래도 일을 시작하니 기분이 조금씩 올라갔다. 본사와 고객들 사이의 꼬인 업무를 이메일로 일단 입막음하고 출항과 입항을 기다리는 선적 서류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같이 점심 먹을까?
연휴에 만났던 청산유수와 같이 말을 쏟아내던 남자다. 토요일 밤의 떠들썩한 술자리, 한국어와 외국어가 막 오고 가도 술이라는 매개를 통한 원활한 소통, 한껏 고조된 분위기에서 서로의 전화번호를 교환하던 순간들이 건조한 사무실 기운과 대조되며 주섬주섬 떠올랐다.
좋아. 어디서? 우리 회사는 수출입은행이랑 가까운데, 나는 그의 문자에 답했다.
그럼 수출입은행 앞에서 볼까?
좋아. 11시50분
이 남자는 계속 반말을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도는 가운데 업무를 처리하다 보니 11시50분이 되었다. 나는 동료들에게 점심 선약이 있다는 말을 남기고 총알처럼 튀어나갔다. 그런데 이 남자, 12시5분이 되어서야 약속 장소에 나타났다. 환한 대낮에 술자리에서 우연히 한 번 만난 남자를 여의도에서 만나자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으나, 나는 15분이나 늦은 그에게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의도에서는 12시 정각이 되면 식당 앞에 줄 서서 기다려야 하는데. 피 같은 15분이 지나버렸네요.”
“그래요. 그럼 어디 사람 별로 없는 식당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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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미안한 기색이 없던 남자와 빌딩 지하 식당가를 돌다가 12시20분이 되어서야 만두와 칼국수를 하는 집에 자리를 얻었다. 나는 만둣국을, 그는 칼국수를 주문했다. 약간의 어색함을 깨려 나는 그에게 만두를 좋아하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자신을 채식주의자라고 소개했다. 그는 채식의 이유를 비윤리적인 공장식 축산 방식에 반대하기 때문이라고 내가 고기만두를 먹는 내내 장황하게 설명했다. 나는 주로 그의 말을 들으며 먹다가 만두 다섯 개 중 한 개를 남겼는데 그는 그 남은 만두 하나를 먹겠다고 했다. 나는 조금 어이가 없어 채식하는 이유에 대해 막 설명을 마친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는 채식을 하지만 고기가 버려지는 것이야말로 가장 비윤리적이라며 내 만두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본래 그는 고기 맛을 무척 좋아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그와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 돌아오니 정각 1시였다.
그로부터 며칠 후 그는 또 문자를 날렸다. 알고 보니 그는 일주일에 두 번 여의도에서 알바를 뛰고 있었다. 나는 그와의 한 끼 식사를 거절할 이유가 딱히 없었기에 번번이 그와 점심을 같이했다.
그는 보따리 장사였다. 그는 철학 과목을 보따리에 이고 다니며 수업을 파는 장돌뱅이다. 그는 장돌뱅이 생활이 좋다고 한다. 일단 한 군데 매이지 않고 여기저기 다니는 직업이라 좋고, 일주일에 이틀, 단 6시간만 일하는 것이 장돌뱅이의 최대 장점이라고 했다. 그는 이 비인기 과목의 박사 학위를 프랑스에서 땄다고 한다. 때문에 그는 5월까지 설산이 보이는 프랑스 알프스 지방의 어느 도시에서 4년이나 살기도 했다고. 프랑스에서 몇 년이나 유학을 했다면 부모님의 재정적 도움이 컸겠다고 눈을 반짝이며 물어보자 그는 유학 생활 동안 특별히 많은 돈이 들지는 않았다고 답했다. 프랑스란 나라에선 어차피 모든 대학은 국립이어서 학비는 아주 쌌고, 체류 보조금이 나오는 월 15만원짜리 기숙사에서 몇 년간 살았으며, 학교 식당 아니면 직접 밥을 해 먹었으므로 의식주가 검소하게 해결되었다고 덧붙였다.
“오히려 서울에서보다 덜 쓰고 살았어. 특히 프랑스에서 마지막 1년간은 정말 돈 쓰지 않고 살아봤지.” 그는 메롱이라도 할 듯이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나도 과장되게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프랑스 낭트라는 도시 근교에 새로운 공항을 만들려는 공공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별 쓸모가 없을 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지역 주민과 농부들과 생태주의자 등등이 모여 그곳을 점거했어. 꽤 오래전부터. 공공 소유가 된 신공항 부지를 점거한 사람들은 버려진 집을 수리해 살면서 농사도 짓고 뜻을 모아 마을도 만들었지. 모두 불법으로 말이야. 사람이 사는 곳을 무력으로 파괴할 수 없으니 건설을 수주한 업체가 공사를 강행할 수 없었던 거야. 경찰들이 항상 감시하고 있긴 하지만 저항하는 사람들은 경찰이 있든 말든 상관없이 살고 있어. 주말이면 장이 서서 빵도 만들어 팔고, 치즈도 만들어 팔고, 물물교환도 하고, 먹고, 마시며 놀기도 해. 난 거기서 일 년 동안 살았어. 공동으로 점거한 집에서 대여섯 명과 함께 살면서 텃밭에 농사도 짓고, 밥하고, 청소하고, 논문을 쓰며 그렇게 지냈지.”
“그래.”
“돈 안 벌고, 안 쓰며, 즐겁게 살기가 내 인생의 목표야.” 그는 이런 말을 용감하게 덧붙이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돈 안 벌고, 안 쓰며, 즐겁게 살기라. 시나브로 여의도의 짧은 점심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가을이 깊어갔다. 단풍이 붉게 혹은 노랗게 물들어가는 수려한 낮과는 대조적으로 싸늘한 밤이 한 뼘씩 길어졌다. 행운의 숫자 일곱 번쯤 점심을 같이 먹었을까, 나는 그에게 먼저 연락해 저녁을 먹자고 했다. 점점 쌀쌀해지는 공기와 길어지는 밤은 본능적으로 누군가를 그리워하게 했다. 어차피 돈 안 벌고, 안 쓰며, 즐겁게 살겠다는 인생 목표를 밝힌 것이 왠지 스스로를 결혼 부적격자로 커밍아웃한 것 같아 부담 없이 그에게 먼저 연락할 수 있었다.
일곱 시가 되지도 않았는데 어둠이 내려버렸다. 다시 사무실로 들어갈 것도 아니어서 나와 남자는 서강대교를 건너 홍대 쪽으로 향했다. 우리는 싸고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한 후 정처 없이 홍대 주변을 걸어다녔다. 만남은 가벼워서 좋았다. 우리는 걷다가 문득 어느 고깃집 앞에 서서 이글이글 타오르는 숯불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 가을 들어 가장 쌀쌀한 저녁이어서였을까, 고깃집 앞 숯불은 붉은 열기와 광채로 우리를 잡아당겼다. 멍하게 숯불을 들여다보다 그는 살며시 내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온기를 품고 있었다.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숯불처럼 광채를 발하는 그의 동그란 눈동자는 내 눈동자를 끌어당겼다. 그의 눈은 예상치 못한 관계가 시작될 것임을 암시하는 듯했다. 사실 나는 가난한 삶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남자와 우정 정도를 나눌 생각은 있었지만, 그 이상을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다음주에는 회사 동료가 주선하는 소개팅이 있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끌리는 것이 사실이며 쓸쓸한 가을과 연말을 시한부 연인과 보내는 것도 나름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교차했다.
* * *
그의 세계는 기대 이상으로 정교했다. 그는 용산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동거인 두 명과 살고 있다. 집 입구가 옥상으로 나 있는 달동네 그의 집은 아주 독특했다. 3층인 그의 집에 들어가자면 입구에서 한 층 아래로 내려가야 했다. 반지하에 들어가는 기분으로 현관을 지나, 한낮에도 형광등을 켜야 하는 부엌 겸 거실도 지나, 마침내 그의 방에 들어서면 탁 트인 정남향으로 작은 창문이 나 있다. 창문 밖 풍경은 마치 인상파의 화폭처럼 위쪽 반은 하늘이, 아래쪽 반은 빽빽하게 들어선 용산의 다세대주택들로 채워져 있다. 그의 집은 숙대 입구 쪽에서 오르자면 가파른 고개와 계단을 수없이 올라야 하지만 남산 도서관을 지나 약수터라는 버스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오르는 수고 없이 당도할 수 있었다. 남산 쪽에서 내려오는 길은 특히 야경이 끝내줬다. 어둠이 깔린 서울의 야경을 배경 삼아 그의 집으로 내려가는 길은 누추함을 뒤엎는 낭만이 있었다. 가파른 경사의 좁은 길목 언덕바지에 다닥다닥 붙은 집들은 저 멀리 쪽빛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엽서 속 그리스 마을의 풍경을 연상케도 했다.
그의 동거인들은 아주 안 버는 것은 아니지만 적게 벌고, 적게 쓰며, 즐겁게 살자는 생활 철학을 암묵적으로 공유했다. 정종호라는 남자는 오전에는 동네 카페의 바리스타로 일하고 그 외에도 가끔 잡다한 알바를 하며 생계를 꾸렸고, 제롬이라는 미국 애는 주 2회 보습학원 영어 강사 이외에 정확히 무엇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밤이면 자주 이태원으로 마실 나가 새 친구를 만들어 데리고 들어오곤 했다. 이 세 명의 동거인들 외에도 그들의 거미줄같이 뻗은 인맥들로 그의 집에는 매일 밤이 잔치였다. 그와 사귀며 나는 내 집보다는 남산 집으로 퇴근하는 날이 더 잦았다. 나는 정종호가 망친 머핀과 로스팅에 실패한 커피를 마시거나, 제롬이 만든 버터 된장국에 김치 토르티야를 말아 먹기도 했다. 다 같이 기타나 색소폰을 들고 약수터로 나가서 맥주를 홀짝거릴 때도 있었다. 나 외에도 이 집에는 펑크 밴드 가수, 시간 강사, 굴착기 기사, 영화감독 지망생, 전문 시위꾼, 떠돌이 외국인, 이주노동자 등등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예고 없이 드나들었다.
그와의 관계가 지속되자 나는 매일 아침 출근길이 조금 더 힘겨워졌다. 나는 낮과 밤, 출근과 퇴근을 경계로 서로 이질적인 두 세계를 왕복했다. 낮에는 회사라는 조직의 충직한 부속품이었다가, 어둠이 내리면 가난한 보따리 장사 연인의 집으로 퇴근했다.
그를 만난 이후 계절은 조금 빠른 속도로 소리 없이 지났다. 봄비에 벚꽃이 후르르 떨어지는 금요일 저녁, 그는 까만색 장우산을 들고 내 퇴근 시간에 맞춰 여의도에 왔다. 그는 꽃비를 맞으러 가자며 까만 장우산 속으로 나를 초대했다. 한 우산 속에 쏙 들어간 우리는 윤중로를 따라 국회의사당에서 마포대교 방향으로 걸었다. 해가 강 아래로 넘어가자 봄밤의 알싸하게 찬 공기에 입김이 났다. 게다가 배도 고파진 우리는 부리나케 택시를 잡아타고 마포대교 건너의 작은 동굴 같은 내 원룸으로 향했다. 동굴에 들어서자 춥고 배고팠던 연인은 눅눅하게 젖은 옷을 벗다 급기야는 남은 옷가지들까지 다 벗어버리고는 사랑을 나누었다. 창백했던 얼굴과 차가웠던 손발에는 따뜻한 피가 돌았다.
연인에게 가장 연인다운 시간은 육체적 사랑이 끝난 후 이불을 덮고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때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합일의 여운을 즐기며 누워 잡담을 하다 그의 전 애인이 화두에 올랐다. 이름은 줄리. 구불구불한 갈색 머리를 치렁치렁하게 길렀던 프랑스 여자. 무명 화가인 줄리는 낭트의 점거 주택에서 같이 살았던 여자다. 그는 공동주택에 도착한 날부터 발랄하고 도발적이며 때때로 화산처럼 에너지를 발산하던 그녀를 좋아했는데, 그녀에게는 오래된 연인, 클로드가 있었다. 알고 보니 줄리도 그를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에 빠졌다나 뭐라나. 여하튼 자유분방한 세계에서 오래된 연인의 존재는 새로운 연인을 취하는 데 별문제가 되지 않았고, 그와 줄리는 연인이 되었으며, 그와 클로드는 친한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글쎄, 클로드는 새 연인과 행복해하는 줄리를 보니 자신도 행복하다고 했다는 대목에서 나는 코웃음 쳤다. 흥, 너희들은 정말 아량이 넓구나. 왜 이런 말이 뛰어나왔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냥 그를 포함한 그들을 비아냥거리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말이 궁금했음으로 계속 그의 연애담을 경청했는데 결말은 뜨뜻미지근했다. 그는 한국에 돌아갈 때가 되어 프랑스를 떠났고, 줄리는 프랑스를 떠날 이유가 없어 그곳에 남았으며, 몸이 멀어져 마음도 멀어졌지만 줄리와 클로드와의 우정은 영원할 것이며 아직도 가끔은 이메일을 주고받는다고 했다. 나는 겨우 결말까지 듣고는 침대를 박차고 나와 옷을 대충 걸치고 냄비를 요란하게 꺼내서 라면을 끓였다. 거품을 내며 벌겋게 끓어오르는 인스턴트식품을 바라보며 내 안 깊숙이 잠복해 있던 ‘질투’라는 바이러스가 서서히 활동을 재개하고 있음이 감지됐다.
내가 라면을 먹기 시작하자 그도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고 와서는 라면을 먹는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그였다. 밥 있어? 내가 아니, 라고 답하자 다시 침묵이 감돌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가 먼저 세 치 혀에 시동을 건다.
“과거의 연인은 금기 사항이야?”
나는 계속 침묵했다.
“나는 너한테 솔직하고 싶어. 지나간 연인도 내 과거의 일부니까 그냥 너한테 거리낌 없이 말한 거야.”
나는 마침내 침묵을 깨고 나지막하게 그러나 도전적으로 물었다.
“근데, 너 아직도 줄리 생각나니? 프랑스에 갈 일이 생기면 만나서 또 같이 잘 거니?”
“음……” 잠시 생각에 잠기던 그가 말을 이어간다.
“혹시 폴리아모리(polyamory)라고 들어봤어? 다자간 연애라고도 하고, 열린 관계라고도 하고, 다부다처제라고 할 수도 있고……. 여하튼 난 폴리아모리야. 둘만의 닫힌 관계가 아니라 셋이듯, 넷이든 다자간 연애가 가능하다고 생각해. 사실 단둘만이 사랑할 수 있다는 닫힌 관계보다 여러 사람에게 열려 있는 연인 관계가 더 자연스럽잖아. 인류학적 관점에서 봐도 그렇고. 일부일처제는 기존 사회를 지탱하기 위한 제도일 뿐이야.”
“네 말대로라면 그럼 두 명이 아니라 세 명, 네 명, 심지어 다섯 명도 한 팀을 이루고 연애할 수 있는 거야? 넌 어쩜…… 연애까지도 그렇게 반체제적이니?”
“좀더 일찍 말하지 않아서 미안해. 근데 제일 중요한 건 현재 우리의 관계잖아.”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까만 장우산 속에서 꼭 붙어 꽃비를 맞던 몇 시간 전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주말이 지나자 하늘은 파랗게 개었고 벚나무에서는 연초록 잎사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주말 내 문자를 보냈다. 나는 그 문자들을 무참히 씹어버렸다. 사실 내 마음속에는 아직도 라면이 끓고 있는 것 같다. 이 밑도 끝도 없는 질투심의 근원은 무엇이며 배신당하지도 않았는데 드는 이 배신감의 정체는 무엇인지, 나도 내 자신이 우스꽝스러웠다. 그 와중에도 고군분투하던 나의 이성은 감정을 통제하는 데 완전히 실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에 하나의 결실이 있다면 이 골 때리는 남자를 정말 그만 만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어차피 반체제, 반자본주의 인사와 미래를 계획하기에는 좀 그렇다. 사실 처음부터 내가 계획하던 일 아닌가, 시한부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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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친한 동료와 커피를 마시며 금요일의 일을 털어놓았다. 언니 이러다가 ‘남자친구가 결혼했다’ 찍는 거 아니에요!? 그 영화 있잖아요, 손예진이 나왔던. 언니 연봉 팔백 그 남자 처음부터 이상했어요. 요즘 세상에 연봉 팔천도 아니고 팔백이 뭐예요. 이참에 그만두세요. 동료에게 위로를 구하고 싶었던 것이었지만 그녀의 말은 내 가슴에 더욱 비수를 꽂았다.
복잡한 심경의 하루를 마치고 퇴근을 하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일층 로비로 내려오니 그가 로비 한구석 소파에 구겨진 사람처럼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직장 동료의 조언대로 이참에 헤어지려면 그의 면상을 보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나는 빌딩 후문 쪽으로 도망치듯 나와버렸다. 마음속에 팔팔 끓는 감정이 조금 가라앉기도 했고, 통쾌하기도 했고, 청승맞게 앉아 있던 그가 안쓰럽기도 했다. 하이힐을 빠르게 또각거리며 공원을 가로질러 여의도 환승센터로 가서 마포행 버스를 기다리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휴대전화를 꺼버렸다.
다음날 출근을 하자 언제나처럼 컴퓨터를 부팅하고 제일 먼저 아웃룩을 클릭했다. 업무 관련 메일들 중에 그가 보낸 이메일 하나가 이질적으로 끼어 있었다. 그 메일을 클릭하자 그가 저편에서 때려 넣은 문장들이 떨어진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오늘날의 지루하고 제한적이고 기계적이고 원자화된
이 우스꽝스러운 사회에 대한
최종적 혁명 활동
열정적인 사랑은
의미 있는 방법으로 개개인을 연결하고
연대한 개개인들이
각자의 딱딱한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자본주의 체제가 만들어놓은 반복적 일상과
소비라는 수동적 단감을 버리고는
참사랑과 즐거움이 있는 별세계로 빠지는 것
열정적인 사랑은
그러므로 사회를 위협하는 것
당신이 진정으로 인생을 귀하게 여긴다면
사랑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사회적 현상유지를 위한 관계가 아닌
스스로조차 태워버릴 수 있는 열정적 사랑에 빠지길
그럼 이제
합리적 판단을 내려놓고
당신의 감정과 직관을 믿어라
그가 날린 시 형식의 선동 문구의 마지막 행, ‘당신의 감정과 직관을 믿어라’라는 대미(大尾)에 코웃음이 났다. 사랑에도 프로파간다라니. 사랑이란 주저리주저리 설명하지 않아도 마음이 이끄는 데로 가는, 가장 단순하고 원형적인 감정이 아닌가. 뜬금없이 순수하고 순진무구한 이란 의미의 ‘나이브 naive’라는 형용사가 떠올랐고, 그의 메일을 지워버릴까 하다 개인 메일로 옮겨 담았다.
* * *
아침 11시 프랑크푸르트행 루프트한자에 몸을 실었다. 일주일간의 본사 출장이다. 12시간 비행 내내 3호선 버터플라이의 음악을 들었다. ‘달콤쌉싸름’이란 허무하고 몽환적인 분위기의 노래가 내 귀에서 떠나지 않았다.
널 사랑하면 할수록 자꾸만 토할 것 같아. 음음. 그래 그럴수록 너는 더더욱 슬퍼지게 해. 우우. 사랑은 차가운 핏빛 조명 같아. 달콤쌉싸름 달콤쌉싸름한걸. 사랑은 차가운 핏빛 조명. 달콤쌉싸름.
프랑크푸르트에서 두 시간을 기다려 스칸디나비아 항공으로 갈아타고 스톡홀름에 내렸을 때는 이미 자정이 지난 시간이었다. 회사에서 예약해준 공항과 연결된 에어텔에서 밤을 때운 후 아침 7시 기차를 타고 2시간 뒤에 본사에 도착했다. 내 돈이 아닌 회삿돈으로 여행하면 언제나 일정이 빡빡하다. 도착한 날부터 교육 일정에, 시차 적응에, 사람 적응에, 언어 적응까지 나의 지적 능력을 완전 가동한 하루가 지나고 기진맥진해서 호텔 방에 들어왔다.
시간을 알 수 없는 한밤중 로밍해간 휴대전화가 울렸다. 졸음에 취한 나는 가까스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저편에서는 그의 목소리가 울린다. 말도 없이 출장 갔구나. 국제전화라면 빨리 끓을게. 언제 돌아와? 돌아오면 꼭 연락 줘. 헤어지더라도 얼굴은 한번 봐야 하잖아. 공항에 나갈게. 시간이 맞으면.
일요일 아침 나는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내 자다가, 출국 절차를 마치고 나온 세상은 쾌청한 아침이었다. 어린잎들은 싱그럽게 초록을 머금고 있고, 나는 그냥 기분이 좋다. 그는 어디서 구했는지 초록색 점퍼를 입고 등장했다. 어린애 같아 보여 우습기도 하고 신록처럼 화사하기도 했다. 우리는 아무 일 없었던 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출장은 어땠어? 교육에, 세미나에, 회의에 혼이 빠지는 일정에 정신없었지 뭐. 스톡홀름에는 이제야 벚꽃이 피더라. 근데 거기 벚꽃들은 분홍색이었어. 꽃송이도 더 크고.
마포역에 공항리무진 버스가 도착하자 정오 무렵이 되었다. 유럽에서 일주일 만에 돌아온 나는 흰쌀밥에 보글보글 끓는 김치찌개가 먹고 싶었다. 우리는 내 원룸에 들러 슈트케이스를 내려놓고는 마포역 뒷골목의 밥집으로 향했다. 돼지목살과 두부가 푸짐하게 떠 있는 보글보글한 김치찌개를 가운데 두고서야 우리는 서로의 눈을 마주 보게 되었다. 꽃비를 맞은 후 열흘 남짓이 지났을 뿐인데 한 시대가 지난 것처럼 길고 아득했다. 오늘 그는 평소답지 않게 별로 말이 없다. 의도적으로 말을 아끼려는 것 같기도 하다.
“내 회사 메일로 보낸, 제목도 없던 그 생뚱맞은 시는 뭐야?” 침묵을 깨고 내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음, 너랑 못 만나는 동안 연애와 관계에 대해 많이 고민했어. 그 메일을 보낸 날은 사랑에 대해 그렇게 항변하고 싶었어.”
“너란 사람 참. 사랑도 왜 그렇게 정치적이야? 머리 안 아프니?”
그는 웃지 않고 심각하게 말을 이어간다.
“너랑 못 만난 열흘 동안 정말 네 생각 많이 했어. 그리고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난 너랑 계속 만나고 싶어.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한 결코 헤어지고 싶지 않아.”
긴장된 표정으로 조심스레 말을 꺼내는 그를 바라보는데 스톡홀름 도심에 가득하던 분홍빛 왕벚나무꽃들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게다가 맵고 짠 김치찌개를 한술 뜨니 엔도르핀이 분수처럼 솟아나 육중한 열기구가 마침내 파란 하늘로 가볍게 떠오르는 기분이다.
“우선 먹자. 김치찌개 정말 맛있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그에게 먹기를 권했다.
밥을 먹고 우리는 맥주와 새우깡을 사 들고 한강공원으로 향했다. 서로 말없이 강변을 따라 걷다 내가 먼저 어느 벤치에 앉았다. 나른함과 피곤함, 달콤한 기분이 뒤섞인 5월의 일요일 오후였다. 내 옆에 앉아 있던 그가 갑자기 내 허벅지를 베고 누웠다. 고백과 김치찌개를 동시에 해치운 그도 긴장이 풀리는 모양이었다.
나를 베고 모로 누워 강을 바라보고 있는 그에게 “날 사랑하면서 다른 여자들도 동시에 사랑할 수도 있어?”라고 묻자 그는 “지금은 너만 사랑해.”라며 진지하게 웃는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기 직전에 너에게 먼저 알려줄게.”
“뭐라고? 도대체 그게 뭐야?” 짐짓 화난 척 나는 되물었다.
“그거 알아?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데 일부일처제가 필수적이라는 거. 재산 관리와 세금 징수를 위해 사랑도, 사적인 관계도 자본의 논리로 통제되는 거야. 산업화되지 않은 많은 부족 공동체들에서 일부일처제는 드물어. 일부다처제든, 다처일부제든, 다처다부제든 그들 환경에 맞는 결혼 관계들이 존재한다고. 난 그런 의미에서 서구식 산업사회를 지탱하는 일부일처체에 순응하고 싶지 않아. 게다가 사람이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잖아. 이미 결혼했어도, 애인이 있어도 말이야. 난 그냥 너에게 솔직하고 싶어.”
“너의 솔직함에 내가 상처 입어도?”
“너는 일부일처제로 프로그래밍이 된 거야. 네 본성은 그게 아닐 수도 있어. 매트릭스에 나오는 네오처럼 눈을 떠봐.”
“그렇다면 나에게 눈뜰 수 있는 알약을 줘야지.”
“여기.” 그는 주는 시늉을 한다.
“넌 내가 어느 날 갑자기 다른 남자 만나도 큰 충격 받지는 않겠다. 기다려봐. 그런 날이 올지도 몰라. 난 한 사람만이랑 독점적으로 연애하는 게 좋거든. 한 사람하고도 이렇게 힘들고 피곤한데 동시에 둘 이상이랑 연애한다면…… 생각만 해도 머리 아프다.”
“혹시 새 연인이 생기더라도 나를 바로 정리하지는 말아줘. 솔직하게 말하고 계속 나를 만나도 돼. 네가 행복하다면 나도 행복할지 몰라. 그냥 나를 바로 떠나지만은 말아줘.”
“네가 나에게 떠나지 말라고 애원하는 결말을 상상하니 아주 통쾌하다. 근데 내가 그 남자 아이라도 임신하면 넌 어떡하지?”
“당연히 그 애를 다 같이 키워야지. 네가 낳은 아기라면 내 아기야.” 그는 제법 애교스럽게 받아친다.
한동안 이 남자와 헤어지기 힘들겠다. 사랑이란 강력한 화학작용이다. 그를 차버리기엔 이번 화학작용은 너무 치명적이다. 그냥 먼 미래를 계산하지 말고 그를 향한 열정이 식는 날까지 하루하루 살아가는 수밖에. 그러다가 정말 내 가치 체계가 디-프로그래밍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강변에 석양이 진다.
“나 여름이 지나면 이사 갈지도 몰라.” 그가 갑자기 폭탄선언을 했다.
“어디로?”
“산청. 지리산 자락으로. 아는 선배가 산청에서 대안학교 교사를 하는데 나에게 철학과 역사 강의를 맡아달래. 어차피 여기서나 거기서나 보따리 장사인데 산 좋고 물 좋은 데 가서 하면 좋잖아. 이미 머리가 뻣뻣하게 굳은 대학생들보다 아직은 말랑말랑한 어린 학생들이랑 놀면서 공부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고. 그 선배가 텃밭이 딸린 집도 구해놨대. 연세(年貰) 50이래.”
“일 년에 50만원?”
“어. 같이 갈래? 회사 안 다니고 매일 아침 늘어지게 자고 싶다면서. 내가 밥벌이할 테니 넌 유유자적하고 살아봐. 일주일에 한 번은 지리산에도 가자. 텃밭도 가꾸고 돼지도 길러서 네가 좋아하는 고기 매일 먹게 해줄게. 이참에 아기도 하나 낳아 길러볼까?”
황당하고 즉흥적인 제안은 정말 그답다. 돈 안 벌고 유유자적, 연인이 기른 채소와 고기를 먹는 삶. 나와 그 사이에 아기? 당장 직장을 그만두고 서울을 떠나 살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으나 인생이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고들 하지 않나?
당신이 진정으로 인생을 귀하게 여긴다면
사랑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사회적 현상유지를 위한 관계가 아닌
스스로조차 태워버릴 수 있는 열정적 사랑에 빠지길
그럼 이제
합리적 판단을 내려놓고
당신의 감정과 직관을 믿어라
멈추지 않고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보고 있으니 삶의 기저(基底)에는 언제나 사랑이 흐르고 있음이 느껴진다. 도시에서의 삶은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기에 너무 많은 조건이 있어 내면에 흐르는 사랑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그가 어떤 집에 살고, 얼마를 벌고, 정치적 성향은 어떠하고, 결국 미래의 어느 날 우리의 사랑이 싸늘하게 식어버린다고 해도 중요한 것은 오늘과 내일만큼은 너와 내가 서로 사랑한다는 사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라는 유행어도 있었다. 현재는 그와의 연애를 피하기 힘들다. 먼 미래가 아니라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기 위해 어쩌면 나는 지리산 기슭의 산청에서 매일 아침 늦잠을 잘지도 모른다. 내 직관에 따르면 예감이 그리 나쁘지는 않다. 이름도 참 예쁘다. 산청(山淸)이라니.
박호연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 라는 명언은 박근혜 입을 한번 거쳤다는 이유로 거짓스런 사이비 언사로 변질됐다. 최순실도 를 읽었던 것일까? 아주 오래전 그 소설을 읽은 나도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는 문장이 마음에 와닿았다. 문득 이 소설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도 동아시아의 한국이란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포르투갈어를 알았더라면 그에게 이 비보를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하튼 샤머니즘과 초현실적인 것들이 황색 기사와 함께 폄하되는 작금의 현실이 조금은 안타깝지만, 유행은 곧 지나가리라.
‘산청으로 가는 길’의 초고를 써내려갈 무렵, 명상 수행을 하는 스님이 쓴 책을 읽었다. 그 책에서 큰 영감을 받은 나는 이 글의 제목을 ‘삶의 기저(基底)에는 사랑이 흐른다’라고 하려다 여러 이유에서 다른 제목을 택했다. 스님은, 인류의 의식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으며, 그 집단의식이 흐르는 방향으로 인류의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 했다. 현재 인류의 평균적 의식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우리 주변에서 시작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생각해보라.
좀 다른 이야기 같지만 다시 ‘사랑’으로 돌아가서, 모든 사람의 심연에 그 어떤 감정보다 ‘사랑’이 단단히 심겨 있다면, 그리고 ‘사랑’을 원칙으로 살아간다면, 그 세상은 어떨까?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지구란 행성에 한 사람 한 사람의 사랑이 모여 거대한 인류애로 뒤덮이는 상상을 해본다. 서로 사랑하는 한 운명 공동체인 인류의 미래는 장밋빛이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인류의 장밋빛 미래를 위한 이야기들을 쓰고 싶다. 미흡한 글임에도 지면을 열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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