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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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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천여인숙 살인사건

제7회 손바닥문학상 가작 수상작
등록 2015-12-24 19:50 수정 2020-05-03 04:28
제7회 손바닥문학상 심사 결과를 제1091호에 발표했다. 제1091호에 대상 를 실은 데 이어 가작 을 이번호에 싣는다. 또 다른 가작 는 다음호에 싣는다. _편집자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비가 그치면 겨울이 올 것이다. 젖은 나뭇가지가 부르르 떨며 얼마 남지 않은 이파리를 떨군다. 긴 겨울 동안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마른 잎 몇 장도 몸의 물과 양분을 뽑아갈 터. 버리는 것이다. 늙어간다는 것은 한때 찬란했던 제 몸의 일부를 버리는 일이다. 시끄러운 속내도 몰라주고 살비듬이 후두두 떨어져 나가듯 무심한 모양새다. 어떤 죽음에 관해서도 제 명을 다 했다, 호상이다, 그런 말은 성립될 리 없지만 사람들은 종종 그렇게 말하곤 한다.

스물다섯 개 방이 딸린 삼층 건물 림천여인숙에서 무상 늙어가던 그녀도 그렇게 될 것으로 여겨졌지만 막상 그녀의 죽음은 하나의 사건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녀의 죽음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다. 림천여인숙 사람들이 저마다 그녀를 죽였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용의자들

유리문을 열자 가라앉아 있던 공기가 일어선다. 습기에 눌렸던 다른 날들의 오래된 먼지가 뒤섞인다. 비릿한 거리의 냄새다. 텅 빈 카운터 옆 25인용 전기밥솥의 빨간불이 선명하다. 1층에는 방이 아홉. 화장실, 샤워실, 그녀의 방을 뺀 아홉이다. 방 다섯에 사람이 들었다. 사람이 들지 않는 날이 더 많은 나머지 방은 하루 손님 몫이다. 가난하지만, 가난해서 밤을 함께 보내게 된 젊은 남녀 또는 큰맘 먹고 방값을 지불한 집 없는 이의 하룻밤 흔적이 방 어딘가 남아 있을 것이다. 캄캄한 복도 끝 연한 옥빛의 방문을 두드린다.

101호

똑똑

계십니까?

누구요?

선생님께서 주인 할머니를 살해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방문이 빼꼼히 열린다. 훑는 시선 끝에 입이 열린다.

들어오슈.

그는 펼쳐져있던 이불을 개킨다. 벽에 걸린 솜 잠바는 입은 모양 그대로 각이 져 그의 몸을 여전히 품은 듯하다. 어깨끈이 해져 흰 스폰지가 드러난 뚱뚱한 배낭 옆에 검은 비닐 봉다리 몇 개가 놓였다. 봉다리들은 저마다의 냄새를 품고 제각각의 모양을 하고 있다.

여기 언제부터 사셨습니까?

이틀 됐어요 이틀. 갑을쉼터에 있다가 주거 지원 받아서 그저께 온 거요.

왜 죽이셨습니까?

지난달부터 수급이 됐어요. 20일날 돈이 나오는데 벌써 담뱃값이 똑 떨어졌어. 어저께 할머니한테 만원만 빌려 달라는데, 아, 안 된대잖아. 그래서 담배 사 피우게 2천원만 빌려 달라 그랬지. 그랬는데 할머니가 돈을 툭 던지네, 이렇게. 그래서 돈을 왜 던지냐니까 아, 내가 언제 던졌냐네. 그래서 이렇게, 나한테 던지지 않았냐니까 안 던졌다는 거야 죽어도. 교회서 꼬지 줄 때도 그렇게 안 던진다고. 아, 그래갖고 그 돈으로 가게 가서 담배 하나 사 피우는데 영 기분이 나빠. 아, 그래서 한 대 피우고 와서 죽였어.

104호

선생님은 여기 언제 오셨습니까?

한 4년 됐어요.

왜 죽이신 겁니까?

내가 이거 한쪽 다리를 못 써요. 이거 봐, 이쪽이 다 이거 의족이야. 뺑소니 당했어. 이 다리를 수술을 일곱 번을 했어 일곱 번. 가정이고 뭐고 다 풍비박산이 났어요. 아는 형님 사업하는 데서 좀 하다가 그나마 있던 것도 다 날렸지. 그러고선 뭐 일을 할라고 해도 나 같은 놈을 누가 써줘? 안 써주지. 그래 서울역에 있다가 거, 금요일마다 와서 지원해주는 단체 있어요. 거기서 그거, 임시주거지원. 해줘가지고 이리 온 거예요. 내가 몸뚱이가 이렇다고 일층 방도 내주고 그래도 아주머니가 편의를 많이 봐줬어요. 나도 방세 25만원 꼬박꼬박 냈지. 한 번도 안 밀렸어요. 술도 딱 끊고 여기서만 죽어지냈거든. 누구랑 말도 잘 안 하고 그랬으니까. 근데 올 추석엔 그렇게 힘들더라고. 애들 생각이 그렇게 나. 서울역 나가서 사람들이랑 어울리고 맨날 술이나 펐지. 밥도 안 먹고. 며칠 그러다 들어오는데 아주머니가 동사무소에서 반찬 받아뒀으니까 가져가래요. 그래서 그거 들고 가다가 다 엎었네. 김치고 젓갈이고 뭐고 그냥 다. 아주머니가 뛰어나오더니 막 그래. 아이고 줘도 못 먹네. 이래갖고 어떻게 먹고 살아 쯧쯧쯧, 하면서 혀를 차. 그래 내가 치우겠다니까, 몸도 안 성한 양반이. 그냥 들어가요. 어서, 그러네. 내가 안 그래도 이 다리 이렇게 되고 나서 죽을라고 몇 번을 했던 사람이야. 그날도 또 술을 진탕 먹고서는, 정신이 회까닥했나봐. 나 같은 놈 살아서 뭐해, 죽어야지, 하면서 혼자 죽기는 억울하니까 누구 하나 같이 죽었으면 좋겠다 했지. 그래서 가서 죽여버렸어.

108호

할머니는 왜 죽이셨어요?

응?

할머니는 왜.죽.이.셨.냐.고.요.

아 썽 나서 죽였지, 썽 나서.

왜 썽 나셨어요?

응?

왜.썽.나.셨.어.요.

나가 구십이 다 되았어도 아직까장 박스 줏으러 다니요. 그날도 하루죙일 박스 줏으러 댕겼재. 여기 13년을 살았는디 13년 사는 동안 밖에서 밥을 사묵은 적이 몇 번 안 돼요. 이빨도 없응께 대충 밥이나 끓여묵고 말지. 근디 그날이 나 생일이었소. 나가 오락가락해도 나 생일은 아직까장 안 까묵었소. 아, 국밥이 먹고 자파서…, 아이고 그게 그렇게 맛난 거야. 따숩고. 국밥 한 그릇 사묵고 들어옹께 아홉 시가 다 되았어. 근디 여기 여덟 시 넘으면 따순 물을 안 틀어줘. 껄쩍지근허니 좀 씻고 자픈데 아, 찻물로 어떻게 씻어, 응? 따순 물 좀 틀어줏씨오, 했는디 아이고 이 할망구가 글쎄 죽어도 안 된대는 거야. 몇 번을 사정을 했어, 아 나가 쪼까 늦었는디 노인네가 찬물로 워쪄 씻는당가 따순 물 쪼까 틀어줏씨오, 해도 망할 놈의 할망구. 안 된대는 거야. 그냥 들어갔어. 아이고 물이, 아이고 차다, 차. 에이, 그냥 고양이 세수만 허고 말아버렸어. 손발이 그냥 얼음장 같이 땡땡허니 방에 들어앉아 가만 생각을 해봉께 썽이 나 안 나. 이라고 앉았다가 저라고 누웠다가 에라 모르겄다 하고 가서 죽여버렸어.

계단을 오른다. 경사가 급하다. 급히 오르내릴 수 없다. 나무 난간을 붙잡고 무릎에 힘을 주어 디딜 때마다 계단에 박힌 요철이 딱딱, 소리를 낸다. 2층엔 방이 열둘. 모두 사람이 들었다. 연한 옥빛으로 칠이 된 방문이 열리면 방의 주인이 밖으로 나온다. 열둘이라지만 서로 마주치는 일이 드물다. 화장실을 가거나 씻으러 가거나 복도 귀퉁이 짤순이에 빨래를 넣으러 가거나 계단을 내려가기 위해 사람들은 문 밖으로 나온다. 맞대고 주고받는 말이 없어도 옆방 소식은 간간이 듣고 지낸다. 술과 피로에 전 코골이거나 밀린 월급을 달라, 수급비가 깎였다, 하소연하는 전화 통화거나. 사소한 버릇 몇 가지와 난처한 속사정을 누군가는 듣고 있다는 것이 때로 위안이 되므로 새나가는 소리를 애써 막지 않는 것이다.

201호

선생님은 여기 어떻게 들어오셨습니까?

내는요, 2009년 1월달에 여기 들어왔습니다. 그해 겨울에 무지하게 추웠습니다. 갑을쉼터에 있다가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가지고 나오게 됐습니다. 뭐 쫓겨났지예. 처음엔 저기 동사무소에서 3개월치 내주고, 그때는 20만원이었어요. 그 뒤로는 내가 내지예.


저번날 술 묵고 시비가 좀 붙었는데, 이 노인네가 내보고 한심하다꼬, 집세도 몬 내고 술이나 처먹는다꼬 그러잖아. 아, 그래가 그때 확 술김에 죽였어요. 203호 박씨 방에서.

선생님은 왜 죽이셨습니까?

내가요, 일을 통 몬 나갑니다. 혈압이 있어요 혈압이. 그래, 큰 데 가면예, 혈압 다 잰다 아닙니까. 요새는 저기가 강화됐다고 큰 데 가면 다 빠꾸야 빠꾸. 그런데다가 몇 년 전에는 통풍이 또 생겨가, 올여름에 죽다 살았습니다. 8월에 일 딱 두 번 나갔습니다. 그래가, 방세가 두 달이나 밀렸다 아닙니까. 일도 몬하고 그래서 술만 먹었지요. 아파서 잠도 몬 자고 그래 마 더. 그래도 가을부터 좀 나아져갖고 10만원씩, 5만원씩 갚았습니다. 아직 한 달치는 고대로 남은 거지예. 아, 내가 여기 6년을 살았는데 처음으로 방세 밀렸다 아닙니까. 근데 이 노인네가 방세 내라꼬 그렇게 닦달을 해요. 예. 예. 알겠심더. 알겠심더, 그래도 얼굴만 봤다 하면 그 소리예요. 아줌마, 내가요 공장 다니고 노가다 뛰고 넘이 주는 돈만 꼬박꼬박 받았지 넘의 돈 떼묵고 그런 사람 아닙니다, 그래 좋게 얘기해도 들은 체도 안 해. 저번날 술 묵고 시비가 좀 붙었는데, 이 노인네가 내보고 한심하다꼬, 집세도 몬 내고 술이나 처먹는다꼬 그러잖아. 아, 그래가 그때 확 술김에 죽였어요. 203호 박 씨 방에서.

203호

그날 보셨습니까?

아, 그럼요. 같이 죽였는디요.

왜 죽이셨어요?

내가 여기 들어온 게 2년하고 1, 2, 3, 4, 5. 5개월 됐고, 201호 형님이 5년이 넘었고, 그 형님은 또 옛날에 갑을쉼터에서 알던 형님이요. 자주 술 한잔 허지. 그날도 일 없응께 성님, 한잔 합시다, 해서 살살 꼬셔갖고 요 앞에 껍데기집 있어, 껍데기집 가서 한잔 하고 들어왔는디. 아 그날따라 날도 썰렁하니 마음이 쪼까 그렁께, 아 성님, 한잔 더 하십시다 잉? 그래갖고 소주를 사들고 왔어. 한잔 두잔 하는디 누가 똑똑 두들겨. 누구요? 항께, 거 좀 조용히 좀 합시다. 맨날 술이나 처먹고, 아 이러는 거야. 문을 딱 열고 봉께 204호네. 그 사람 들어온 지 며칠 되도 안 했어. 아니, 어떤 놈이 맨날 술을 처먹었다고 그러요? 일주일도 안 된 양반이 뭘 안다고, 그랬더니, 아 밤마다 술 처먹고 떠들고 코 골고 이게 하루이틀이야, 이러면서 야자 허는 거여, 참. 야 너 몇 살이야, 항께, 이 새끼가, 니 애비만큼 처먹었다, 요 지랄을 해. 그래가지고서는 그냥 막 멱살 잡고 밀치고 발길질허고, 아 그라고 있응께 노인네가 쫓아와서 말렸지. 근디 그 4호 새끼가 어딜 껴들어, 이럼서 아 그냥 노인네를 냅다 밀쳐부렀어. 벽에다 어깨를 그냥 꽝 박고는 아이고 아이고, 나 죽네, 허고 떼굴떼굴 구르는디, 아이고. 괜찮으씨오, 하면서 일으켜세웅께 소리소리를 지름써, 아이고 다 똑같은 놈들, 이 지겨운 놈의 새끼들, 이럼서 경찰을 부르네 마네, 쌩 난리인 거야. 아 그래도 우리는 몇 년이나 됐응께 우리 편을 들어줘야재. 어, 들어온 지 일주일도 안 되는 놈허고 똑같이 취급을 항께 확 열이 받아갖고 뭣이라 좀 했어. 그랬더니, 이 할매가 나보고는 후레자식이라 했쌌고, 형님보고는 돈도 못 버는 게 술이나 처먹는다고 그라고, 막 떠들어대는 거야. 긍께 술김에 확 죽여버렸지.

후레자식이라고 해서 죽이신 거예요?

아, 나가 어렸을 때 일찍 집을 나왔어. 엄니가 재혼해서 온 남자가 나를 하도 팼어. 짝대기로 패다가 몽둥이로 패다가 어느 날은 쇠파이프를 들고 와서 사정없이 패는디 아 살려달라고 울고불고 빌고 했지. 아 그라고 온몸에 피멍이 들었는디 엄니가 나 편도 안 들어중께 집에 있는 돈 다 뒤져갖고 나와부렀지. 중학교 1학년 때. 나 고향이 저기 장흥이여. 거서 광주에 갈라 그랬재. 아부지가 광주에 살았응께. 근디 그 해에 통 난리가 나서 못 들어간댜 광주를. 그래서 저기 목포를 갔지. 가서 식당에도 있다가 뭣도 좀 했다가 배를 탔어. 배에서 꽤 살았재. 배 안 타는 날은 선주네 집서 자고. 돈 좀 생기면 여기저기 돌아다님서 다 쓰고 댕기고. 그러다 여자 하나를 만나가지고 정착해 살라고 고향에 한번 갔어. 10년도 넘어서 간 거여. 갔는디 아 엄니가 나보고 자식 아니래. 썩 꺼지라는 거야. 긍게 꺼졌지 뭐. 모아둔 돈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그 여자랑도 잘 안 되았어. 서울 올라와서 여관서 지내다가 돈이 다 떨어져부렀어. 하루는 서울역에 나가서 술 먹고 자는 사람한티 가만 물어봤지. 형씨, 왜 집에 안 가고 여기서 자요? 그랬더니 집이 없어요, 그래. 그래요? 그럼 나도 옆에서 같이 자 봅시다, 하고 누웠지. 그래서 시작한 거야. 노가다 함시로 노숙허고. 근디 3년 전에 새벽에 일 나갔다가 뒷골이 찡 하더니 픽 쓰러졌어. 병원에 실려갔지. 119로. 무슨 혈관림프종이라고 난치병이라는 거여. 그래서 수급자가 되았어. 아퍼서.

그래요?

작년에 연락이 왔어. 느그 엄니 돌아간다고. 아 20년 넘게 넘으로 살고, 나보고 자식도 아니랬는디 나도 내 엄니 아니라고 안 가부렀어. 그래도 마음이 그라지. 안 그라겄어? 저번날 술이 좀 돼갖고 들어옴서, 할매, 엄니가 자꾸 꿈에 나오요, 그라고. 그랬더니 이 할매가 나보고 후레자식이라고, 즈그 어매 장례도 안 치르는 천하의 후레자식이라고 그러잖아. 그때도 막 싸웠어. 내가 씨팔저팔 욕하고 그랬어. 그래도 그때는 다음날 가서 제가 어제 실수했죠, 미안합니다, 그라고 넘어갔는디. 아 갑자기 또 그러니까 이 할매가 나를 여태껏 후레자식으로 봤네 싶은 게….

목격자들209호

할아버지도 죽이셨어요?

아니, 내가 왜 죽여. 저기 301호 그것들이 죽였어. 내가 봤어.

네? 보셨어요?

응, 봤다니까.

누가 어떻게 죽였습니까?

그러니까, 내가 여기 산 지 20년이 다 됐드랬어. 원래는 저기 청량리 전농동에 살았는데, 돈이 없어 이리 왔어. 며칠 요 앞엣집에 있었는데, 고 슈퍼 집에서 들으니까 이 집 주인장도 피란민이래. 아 과부 사정 홀아비가 안다고 마음이 끌려서 이리 왔드랬어. 그래 내가 말동무도 해주고, 손도 보태고 그렇게 지냈어. 호적상으론 갑인데 내가 두 살 아래야. 나는 군인이야. 피란 와서 먹을 게 없으니까 일찍이 군대에 갔어. 월남도 갔다 왔어. 비둘기부대. 내가, 나 여기 한쪽 손이, 못 쓰잖아. 그때 다친 거야. 아, 그래가지고 여기 20년 살았으니 이 집 사정 훤하지. 이 집에 아들이 하나 있는데, 뭐 사업한다고 뭐 해달라 이사 간다고 뭐 해달라 그런 때만 찾아오지, 통 들여다보지도 않아. 여기 방값 받아야 뭐 얼마 돼? 주인장이 힘들어도 자기가 그냥 청소하고 빨래하고 다 하는 거지. 그러니 얼마나 힘들어, 지긋지긋하지. 그리고, 여기 오는 인종들이 아주 개차반이야. 못 써 아주.

301호 사람들이 어떻게 죽였습니까?

거기 301호가 아주 인간 말종들이 드나드는 데야 아주. 지금은 두 명 있는가 세 명 있는가, 어떨 때는 둘만 보였다가 어떨 때는 왁자지껄 많았다가 그래. 걔들이 깡패들이야, 깡패들.

그래요?


거기 301호가 아주 인간 말종들이 드나드는 데야 아주. 지금은 두 명 있는가 세 명 있는가, 어떨 때는 둘만 보였다가 어떨 때는 왁자지껄 많았다가 그래. 걔들이 깡패들이야, 깡패들.

응. 걔들이 들어와서 여태껏 있는 게 아니고 사람이 막 바뀌어. 처음에는 네 명인가 다섯 명이 왔드랬어. 그것도 한 10년 됐어. 내가 가만 들여다보니까 얘들이 뭘 쿵작쿵작해. 입에서 나오는 게 죄다 욕이야, 욕. 내가 여기 계단에서 가깝잖아. 다 들린다고. 만날 동터야 들어와. 어둑할 때 나가고. 저것들 뭐하는 것들인데 안 무섭소,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그래도 꼬박꼬박 머리당 30씩 들어오는데요, 해. 그러니까 평균적으로다가 그 방에서만 90씩 들어오는 거야. 평균적으로다가.

그래서, 그 사람들이 왜 죽였습니까?

얘들이 사채도 했다가 통장 사들이고 뭐 그런 것도 하는 모양이야. 주인장이 아들 때문에 사채를 끌어왔어. 근데 그놈들이 여기 사는 놈들 같드래는 거야. 아 그래서 어떻게 생긴 놈이오, 하니, 이렇게 저렇게 생긴 놈이라는 거야. 아 내가 그놈 봤소, 여기 있는 놈이오, 조심하시오, 그랬지. 제일 덩치 크고 어린 놈.

아, 어르신도 빚 있으십니까?

빗? 머리빗? 그게 뭐야? 아이구 내가 빚 있으면 어떻게 해. 내가 뭐 가족이 있어 뭐가 있어 돈 쓸 일이 뭐 있어. 연금은 나오잖아. 내가 참전용사라니까. 저기 대통령들이 준 훈장이랑 뭐랑 다 있어. 보여줄까?

괜찮습니다. 그래서, 주인 할머니는 사채를 못 갚으신 건가요?

그게 작년 일이야. 아들 사업이 망했다는 거야. 그래 겨우겨우 이자만 갚는데 그게 점점 불어나. 그놈들이 와서 협박하고 그러는 거야. 내가 몇 번 봤드랬어. 저번날 주인장 나가고 내가 대신 거기 유리 안에 들어앉았을 때도 왔었어, 그놈들이.

아, 살해 장면을 직접 보신 건 아니고요?

아냐 아냐. 그놈들이 맞다니까.

211호

죽이셨습니까?

내가요? 아니요. 봤어요, 그놈들이 죽이는 거.

누구요?

301호.

어떻게 죽였나요?

내가 여기 온 지 1년 됐어요. 온 지 얼마 안 돼서 그놈들이랑 마주쳤는데 딱 한 번 그놈들 방에 갔어요. 하룻밤에 네 명 상대했어요. 그놈들, 아주 더러워요. 그 뒤로도 가끔가다 한 놈씩 내 방에 오고 그랬어요.

어떤 사람들인가요?

양아치지 양아치.

돈을 받았나요?

그럼 받았지. 내가 미쳤다고.

여기 다른 방 손님하고도 했어요?

아니, 여기 다른 사람들은 돈 없잖아. 같은 집 사는 사람들인데 돈도 많이 못 받고 뭐할라고 그 짓을 해. 미쳤다고. 301호 놈들은 하도 깡패 같으니까 몇 번 한 거지.

이사 가실 생각은 안 하셨어요?

컥. 컥. 컥. 내가요, 열아홉 살 때 올라와서 여기 서울역 앞에 술집들 있잖아요. 거기 있었어요. 그러다 컥. 컥. 몸이 아파 관두면서, 컥. 컥. 컥. 컥. 같이 살던 놈이 있었어요. 처음엔 잘해줬는데 내가 이렇게 천식이 심해져가지고 맨날 기침하고 그러니까 나를 막 팼어요. 그래서 도망 나왔는데 애가 생겼잖아. 애 데리고 쪽방에 살면서 수급자 신청했어요. 근데 애 다섯 살 되니까 딱 끊겠다는 거야, 일하라고. 아니면 수급자는 해줘도 내가 젊으니까 일했을 거 아니네, 깎겠다는 거야. 그래서 아 됐다, 그러고 일을 하려고 식당 나갔어요. 컥. 컥. 컥. 컥. 컥. 컥. 근데 도저히 안 되겠는 거야. 혼자 일하면서 애를 어떻게 키워. 병원도 못 다니지. 그래서 애를 시설에다 맡겼어요. 우리 사랑이를. 근데 컥. 컥. 컥. 컥. 이렇게 심해서 아휴, 어떤 때는 숨도 못 쉬어요. 그러니 어딜 가도 다 쫓겨나지. 그래서 서울역에서 좀 잤어요. 여기 온 거는 지난겨울에, 저기 선생님들 만나서, 주거 지원 받아서 온 거예요. 그래도 일을 해야 방값을 낼 거 아니야. 그래서 서울역에는 계속 나가긴 나갔지. 사실 그놈들도 그때 봤어요.

서울역에서?

네. 다는 아니고 그중에 어떤 놈은 내가 알아. 저기 옆방 박씨도 한번 당했다 그랬어. 사인하면 돈 100만원 준다 그래갖고. 컥. 컥. 컥. 컥. 그래갖고 차 딱지며 뭐가 맨날 날아왔었어, 그 아저씨. 지금은 해결됐는가 모르겠네.

최근에도 301호와 관계를 하셨어요?

아니, 미쳤다고. 나 지금 5개월이야. 애기 아빠는 저기 옆 동네 쪽방 살아. 그래서 수급 신청 넣어놨어요. 셋째 낳으면 시설에 들어갔다가 애들 다 데리고 나와 살아야지. 컥. 컥. 컥. 컥. 컥. 컥.

예? 애가 더 있어요?

네. 셋이에요, 셋. 사랑이, 우정이, 배 속의 애까지 셋. 사랑이는 1학년 들어갔어요. 우정이는 한 살 밑이고. 이제 셋째 낳으면 다 데리고 와서 같이 살아야지. 컥. 컥. 컥. 컥.

그래서, 그 사람들이 할머니를 왜 죽인 겁니까?

틀림없이 그놈들이야. 악질들이거든.

아, 직접 보셨다면서요. 아니에요?

아, 틀림없다니까요. 컥. 컥. 컥. 컥. 그놈들 맞아, 그놈들. 컥. 컥. 컥. 컥. 우헥, 컥. 컥. 컥.

301호

방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현관에는 신발 세 켤레가 놓였다. 장판이 쭈글쭈글 들떠 있는 방에는 대강 말아놓은 이불과 검은 잠바 몇 벌이 뒹군다. 식탁 위 컵라면 그릇에 반쯤 남은 빨간 국물에 휴지와 나무젓가락이 빠져 있다. 수건들이 널브러진 욕실 벽에 오랫동안 닦지 않은 희뿌연한 거울이 걸렸다. 거울에는 염색약으로 보이는 검은 액체가 길게 흘러내려 굳어 있다. 단서가 될 만한 것은 앉은뱅이 탁자에 펼쳐진 수첩 한 권뿐이다.

윤×× 800527-1××××××

백×× 500820-1××××××

전×× 701113-1××××××

이×× 870705-1××××××

김×× 600411-1××××××

강×× 310813-2××××××

인×× 750409-1××××××

진×× 9704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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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나 아닌디. 1호 형님 야근디. 형님이 당했다드만. -203호

나요? 내도 들은 얘긴데. 그, 저, 명의도용 브로커라고 누가 그카던데. -201호

차 있던 거 잡혀가지고 뭐가 막 날아오고 그랬는데 서울역에 그 선생님들한테 찾아가서 해결 봤어요. 하도 옛날 일이고. 내가 당한 사람들이 누군지 나도 모르지. 301호 사람들은 얼굴도 몰라요. -104호

그 사람들? 잘 오지도 않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요. 가끔 담배나 사러 올까. 나도 그 집 할머니한테 얼핏 들은 건데 그냥. -부안 슈퍼

옥탑방

3층 큰방 둘은 비었다. 세탁실 옆 문을 여니 바로 옥상이다. 그러니까 여기는 2층 반짜리 건물이다. 옥상에 널린 하얀 빨래들이 잦아든 비를 맞고서 흐느낀다. 우산 없는 사람 하나가 내다보이는 골목 안으로 사라진다. 빵! 기차가 울며 지나간다. 얕은 난간이 둘러쳐진 옥상 한 귀퉁이, 젖은 나무색 문. 스물다섯 번째, 마지막 방이다.

여기도 방이 있는지 몰랐네요.

그렇겠죠. 무허가니까.

이 방은 얼맙니까?

18만원이오.

언제부터 여기서 지내십니까?

오래됐습니다, 아주 오래.

성함은 어떻게 되십니까? 무슨 일 하시고.

전 주민등록이 없습니다. 말소자예요. 가끔 노가다 합니다.

신분증이 없으신데 어떻게 일하십니까?

주민등록증 하나 주웠습니다. 여기.

최성우 680616-×××××××

아는 사람입니까?

아니요, 모릅니다.

언제 주우신 겁니까?

5년쯤 됐어요. 그전엔 다른 사람 게 있었고요.

남의 이름으로 사시는 겁니까?

예.

그래도 이름이 있을 것 아닙니까?

모릅니다. 가족도 친구도 없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뭐라고 불렀을 것 아닙니까?

이름으로 불려본 일이 없습니다. 김씨, 이형, 아니면 어이, 이렇게 불렸습니다.

주인 할머니를 죽이셨습니까?

안 죽였습니다.

그럼 누가 죽였다고 생각하십니까?

죽이긴 누가 죽여요. 그럴 사람 없습니다.

그런데 왜 서로 죽였다고 하는 걸까요.

마음속으로 여러 번 죽였겠죠.


주인 할머니를 죽이셨습니까? 안 죽였습니다. 그럼 누가 죽였다고 생각하십니까? 죽이긴 누가 죽여요. 그럴 사람 없습니다. 그런데 왜 서로 죽였다고 하는 걸까요. 마음속으로 여러 번 죽였겠죠. 왜요? 모욕감 때문이겠죠.

왜요?

모욕감 때문이겠죠.

할머니 때문에 모욕감을 느끼나요?

지나가는 사람한테 느끼는 것과 다르겠죠.

선생님은 모욕감을 느끼지 않으셨습니까?

예.

왜죠?

저는 잃을 게 없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 화분들, 선생님이 다 키우시는 겁니까?

예.

많군요. 이 식물들의 이름을 다 아십니까?

모릅니다.

그럼 관리하는 법을 어떻게 아세요?

가만히 지켜보면 압니다. 처음엔 일주일에 한 번씩 물을 주다가 이파리와 흙의 상태를 봅니다. 너무 말라 있거나 잎이 노랗게 변하는 것들은 좀더 자주 물을 주고 다른 것들은 더 뜸하게 줍니다. 볕을 쪼여주고요. 대개는 그렇게 하면 잘 자랍니다.

많이 죽기도 했나요?

조금 죽기는 했습니다.

나무 가꾸는 일을 하신 적이 있습니까?

어릴 때 있던 시설에서 나무 키우는 일을 배웠습니다. 물 주는 것까지만요. 분을 뜨는 것은 못 배웠습니다.

분을 뜬다는 게 뭐죠?

나무를 옮겨 심을 때 나무 주위의 풀과 흙을 그대로 감싸서 옮기는 겁니다. 흙 없이 나무만 파내면 나무가 죽으니까요.

그렇군요. 물 주는 것도 배워야 합니까?

예. 흙 속에 호스를 박아 천천히 물을 넣어요. 그냥 겉에 뿌리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입니다. 물을 주면 흙이 가라앉습니다. 뿌리가 그 안에서 물을 흡수하는 거지요. 축 가라앉은 것처럼 보여도 흙이 숨을 쉬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때 흙을 밟으면 안 됩니다. 절대로요. 흙을 밟으면 숨구멍이 막혀 나무가 죽습니다.

발인

비가 그치지 않는다. 나무는 거의 모든 이파리를 떨궈 겨울맞이를 마쳤다. 겨울을 이겨낸 나무에는 봄이 오면 새잎이 돋고 여름에는 열매가 맺혀 가을에 무르익을 것이다. 대개는 붉은색으로. 나무들은 봄이 올 것을 알고 늦겨울부터 움 틔울 준비를 한다. 하지만 봄이 올 거라 믿지 못하는 사람은 봄은 와야 오는 것이다 하고 그저 웅크리고 있는 것이다. 겨울 겨울 겨울 겨울, 혹독한 계절을 살아내려면 자신을 최소화해야 한다.

림천여인숙 사람들은 겨울나무처럼 맨살이 드러나 있어서 죽은 그녀는 그들의 비밀을 몇 가지쯤은 본 일이 있다. 내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의 죽음에 죄책감을 갖지 않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들은 그녀의 죽음의 이유를 알지 못했다. 원인불상의 죽음은 무한히 반복되는 장례 같아서 애도를 표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여인숙 사람들은 각자의 방에서 추모곡을 읊조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소리는 건물 밖으로 새나오지 않았다.

연락도 없던 아들이 나타났다. 여인숙을 헐고 게스트하우스를 짓는다든가 빌라를 짓는다든가 할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게스트하우스 이름 후보는 IM.Cheon게스트하우스. 빌라를 짓는다면 임천에버빌로 할 거라는 얘기도 들렸다.

망자의 이름은 연옥이었다.

이연옥.

장례 일정이 잡혔다.

이연옥 여사의 죽음이 궁겁다면 빈소를 찾길 바란다.

발인은 내일 아침이다.

최예륜
가작   최예륜  수상  소감


원통한  죽음을  막는  데  보탬이  될까요?


최예륜 제공

최예륜 제공

1년 중 밤이 가장 긴 동짓날, 서울역에서는 ‘거리에서 죽어간 홈리스 추모제’가 열립니다. 한 해 300명이 넘는 사람이 거리에서 생을 마감하는데 대다수가 ‘무연고 사망자’입니다. 무연고 사망자. 말이 안 되지요. 길에 난 풀 한 포기도 해, 달, 흙, 비, 바람, 온 우주와 연을 맺고 삽니다.
막바지 원고 수정을 하던 날 69살 농민 백남기님이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습니다. 그날 밤, 죽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덤벼와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목소리를 글에 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머지’가 되어버린 죽음들에 대해, 그러나 결국은 우리의 미래를 위해 쓰고 싶습니다.
무척 고통스러운 일이겠지요. 원통한 죽음을 막는 데 글쓰기가 보탬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떨칠 수 없어서 가장 신뢰하는 매체 에 의견을 물은 셈입니다. “그래 한번 해봐라” 하는 든든한 격려를 받은 기분입니다. 소중한 지면에 부족한 제 글이 실리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당선 연락을 받기 전날 사회진보연대 활동가 송민영이라는 동생의 장례가 있었습니다. 그 모든 비극적인 죽음을 막으려 빛나는 삶을 살았던 아름다운 민영이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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