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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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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려보아요, 눈을 마주하기 위해

독자가 그린 얼굴 그림을 기다립니다. 9월29일까지 보내주세요.
등록 2015-09-22 20:43 수정 2020-05-03 04:28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의 오성윤 감독이 딸을 보며 그린 그림. 오성윤 제공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의 오성윤 감독이 딸을 보며 그린 그림. 오성윤 제공

오늘도 여러 번 거울과 휴대전화 화면에 비친 ‘나의 얼굴’을 보았을 것이다. ‘나’는 주로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가.

눈을 감고 잠시 어머니·아버지의 얼굴도 떠올려보자. 그새 많이 늙은 엄마의 얼굴이 보일 수 있고, 깊게 파인 아버지의 주름을 더듬어가다 내가 가슴 아프게 했던 어떤 시간의 흔적을 찾아낼 수도 있다. 두 분의 얼굴 구석구석이 제대로 떠오르지 않는 ‘나의 무심함’에 가장 먼저 부딪힐 수도 있다.

이런 부탁에 당황할 때도 있다. “아빠, 그림 그려줘요.” 바보 같은 내 손은 동그라미 하나 그리는 것을 힘겨워하며 쩔쩔매기도 한다.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매일 아침 비슷한 시간에 마주치는 저 아이, 도서관 창문을 통과한 햇살 때문에 유난히 더 밝게 보이던 그 사람의 얼굴을 그려서 건네면 내 마음도 그 종이에 실려 함께 전해지지 않을까.

화가 김용일씨는 “행복이란 연필로 그린 사랑이다”라고 했다. 누군가의 얼굴을 그리는 것이지만, 사실은 그 사람의 얼굴을 다시 찬찬히 바라보면서 상대의 얼굴에 쌓인 세월과 감정과 대화하며 이 사람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얼굴을 그리는 것은 사랑을 표현하는 것”</font></font>

애니메이션 제작 스튜디오 <font color="#00847C">‘연필로 명상하기’</font>의 안재훈 감독은 얼굴 그리는 것을 주저하는 이들에게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다. “‘눈을 마주친다는 것’은 살면서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잘 그리기 위해 그리는 것이 아니라 눈을 마주하고 말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서로 나누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연필을 쥐고 얼굴을 그리는 것조차 어려워한다. 의 저자 김충원씨는 “우리가 태어나 3~4년이 지나면 단순한 선으로 스케치를 시작해 그림으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나타낸다. 하지만 대부분 10살 전후로 재미를 잃은 뒤 그림을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로 여기게 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20여 년간 미술을 가르치며 깨달은 사실은 우리 모두의 손은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도록 만들어졌고, 우리의 마음은 그 창조의 과정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동그라미를 그리고 그 안에 무언가를 채우는 것에 겁먹지 말라는 얘기다.

은 추석을 맞아 나의 얼굴, 부모님의 얼굴, 아내의 얼굴, 연인의 얼굴, 친구의 얼굴을 그려보면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나의 얼굴을 그리는 것은 나를 객관화해 돌아보는 시간이다.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1889년 병원에 몇 달간 입원한 뒤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첫 대상으로 자신의 얼굴(제목 )을 택했다.

누군가의 얼굴을 그리는 것은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 않았던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 사람의 마음에 다가가고, 이를 그림으로 말하는 시간이다. 일본 화가 하라다 아키히코는 연필로 얼굴을 그리는 것에 대해 “대상을 보고 느끼고(관찰하는 힘), 대상에 대해 생각하며(분석·상상하는 힘), 대상을 그림으로 나타내는(표현하는 힘) 일련의 과정이 원을 이루며 순환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똑같이 그리려는 강박을 버려야</font></font>
오성윤 감독은

오성윤 감독은 "몸에도 표정이 있다"며 두 딸의 몸을 표현한 그림이 "재미있다"고 말했다. 오성윤 제공

그림 전문가들은 얼굴을 그리는 방법에 대해 대체로 이런 조언을 한다.

얼굴의 중심인 코를 어떻게 그리느냐가 얼굴 형태에 영향을 준다. 코가 길면 얼굴이 길어지고, 코가 넓으면 얼굴도 넓어지는 느낌을 준다. 눈을 잘 그리면 그 사람의 인상을 제대로 살릴 수 있다. 입은 표정을 나타내는 데 중요한 부위다. 그래서 입꼬리 부분의 기울기와 모양에 신경 써야 한다.

눈의 높이를 높게 잡거나 눈을 크게 그리고 귀의 위치를 낮게 잡거나 귀를 작게 그리는 경향이 있는데, 귀는 생각보다 크며 눈보다 낮지 않다는 점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양쪽 눈은 한쪽 눈의 너비만큼 평균적으로 떨어져 있으며, 눈과 눈 중간에 코가 수직으로 흐른다는 점도 강조한다. 목은 무거운 머리를 받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두꺼운 원통형임을 잊지 말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얼굴을 똑같이 그려야 한다”는 강박증은 버려야 한다. 이탈리아의 화가 겸 조각가였던 미켈란젤로는 누군가의 얼굴을 똑같이 그려내는 것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한 예술가다. 그는 “(얼굴 그림을 보고) 1천 년 후에 그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누가 상관할 것인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안재훈 감독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그는 2011년부터 자신의 작품을 보는 관객과 새롭게 만나는 사람에게 그들의 얼굴을 즉석에서 그려 선물해왔다. “천천히 얼굴 구석구석을 보며 ‘이런 흔적을 가지셨구나’ 생각하는 겁니다. 한 선 한 선 그을 때마다 그 사람을 생각하면 됩니다. 다행히 잘 그려지면 놀라서 웃으시고, 못 그려지면 해학을 표현한 것으로 여기고 웃으시면 됩니다.” 안 감독은 “얼굴 전체를 잘 그리려고 하지 않는 게 좋다”고도 말한다.

“부분부분에 집중하는 것도 좋습니다. ‘눈썹이 이리 생겼구나, 코가 이랬네, 입술이 참 이랬구나’라면서. 여기까지 하고 나면 이 중 하나 정도는 맘에 듭니다. 그러면 기분이 좋아져요. 비교적 머리카락 형태는 구분이 쉬우니 편히 그리면 됩니다. 그러고는 얼굴 윤곽을 그려주세요. 위의 모든 것이 균형이 맞지 않아도 됩니다. 피카소의 추상화처럼 그려도 됩니다. ‘발가락이 닮았다’처럼 그 이목구비 중 하나는 틀림없이 닮게 됩니다. 그리고 날짜를 적고 서명을 꼭 하세요. 그림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함께한 그 시간이 더욱 중요하니까요.”

<font size="4"><font color="#008ABD">부분부분에 집중하고 날짜 적고 서명 꼭 </font></font>
오성윤 감독의 딸이 아빠를 그린 그림. '불쌍한 아빠'란 제목을 붙였다. 오성윤 제공

오성윤 감독의 딸이 아빠를 그린 그림. '불쌍한 아빠'란 제목을 붙였다. 오성윤 제공

애니메이션 을 만든 오성윤 감독은 “그 사람의 속 감정과 특징을 보라”고 얘기한다.

“작품을 만들면서도 어떤 캐릭터의 속 감정을 잘 찾아내 그렸을 때 그 캐릭터가 잘 드러나고 만족감을 느낍니다. 캐릭터의 인간성, 가치관까지 이해하면 새롭고 재밌는 캐릭터를 만들 수 있죠. 얼굴 그림도 사실적으로 그리는 데 집중하면 ‘나랑 똑같이 그렸는지, 아닌지’를 따지게 됩니다. 그건 재미가 없죠. 그 사람의 특징을 포착해 그리면 인간성까지 담은 느낌을 받죠. 그때 상대도 놀라게 됩니다. ‘어, 나의 이런 면이 보였구나!’라고.”

오 감독은 독자를 위해 자신이 그린 딸의 그림과 딸이 아빠를 그린 그림을 보내왔다. 주말에 집에서도 작품으로 고민하는 아빠를 보며 딸은 ‘불쌍한 아빠’란 제목의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1분30초 만에 그린 이 그림에서 그는 딸이 아빠를 바라보는 느낌과 자신의 현재 모습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 기다리는 그림도 그러한 것이다. 엄마를, 딸을, 아내를 바라보고 일단 그들의 눈부터, 또는 동그라미부터 그려보는 것.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연필로 그린 사랑


구석구석, 온기 담아

이 얼굴 그림을 공모합니다. 누구의 얼굴이라도 좋습니다. 직접 그린 그림을 사진으로 찍어 아래 전자우편으로 보내주세요. 응모자 가운데 다섯 분께 ‘한화아쿠아플라넷 빅5이용권(<font color="#991900">한가위 퀴즈큰잔치 소개글</font> 참조)’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누군가의 얼굴을 그리는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 큰 기쁨을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응모기간 9월29일 자정까지
문의 또는 보내실 곳 dmzsong@hani.co.kr
참고사항 전자우편 제목을 <font color="#991900">‘공모-연필로 그린 사랑’</font>으로 달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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