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이 지났지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세월호 참사 100일째인 7월24일 희생자·실종자 가족은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서울 태평로 서울광장에서, 여의도 국회 앞에서 울었다. 유가족이 도보 순례에 나서고 11일째 단식을 이어갔지만 정부와 국회는 침묵했다.
“뼛조각이라도 찾고 싶다”[AM 1:00 전남 진도 팽목항] 실종자 10명의 이름이 울려퍼졌다. “남현철, 박영인, 조은화, 허다윤, 황지현, 고창석, 양승진, 권재근, 권혁규, 이영숙.” 서울과 광주, 대구 등에서 ‘기다림의 버스’를 타고 온 시민 170여 명은 “돌아와”라고 소리쳤다. 캄캄한 바다도 숨소리를 죽인 채 출렁였다. 전날(7월23일) 저녁 시민들은 진도 실내체육관을 찾아가 무릎을 꿇었다. “정부가 100일이 지나도록 진심으로 참회하고 반성하지 않기에 국민이 대신 사죄한다.” 실종된 단원고 남현철군의 아버지 남경원씨는 “‘그만 좀 하라’는 한마디 한마디가 칼로 찌르는 듯 아프다. 뼛조각이라도 찾아서 아들을 편히 보내주고 싶다”고 말했다.
[AM 5:10 전남 함평군] 부슬비가 내렸다. 두 아버지가 말없이 한 걸음씩 내디뎠다. 7월8일 경기도 안산 단원고를 출발한 고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씨와 고 김웅기군의 아버지 김학일씨가 17일 만에 함평군 엄다면 성암마을을 지났다. 이날 아침 10여 명으로 시작한 순례단은 금세 30여 명으로 늘어났다. 지나가던 야쿠르트 아줌마는 요구르트 두 박스를 안겨주고 돌아서 눈물을 훔쳤다. 함평 청년들은 시원한 오이를 들고 왔고, 트럭 기사는 가던 길을 멈춰서서 주머닛돈을 다 꺼내주고 떠났다.
[AM 8:00 서울 광화문광장] 바쁜 출근길 발걸음 사이에서 유가족 농성 천막은 적막하다. 전날 밤 따발총을 쏘는 듯한 빗소리에 귀마개를 하고서야 유가족들은 잠이 들 수 있었다. “어젯밤은 춥더라.” 유가족과 연대하며 7일째 단식 중인 전국여성연대 손미희 상임대표가 말했다. 여기저기 망가진 천막을 고치는 손길이 분주했다. 40대 여성이 몰아치는 폭우 속에서 노란 세월호 손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중학교 3학년인 두 자녀를 둔 주부 김상현(48)씨다. 지난주부터 목요일 오전에 피케팅을 한다고 했다. “가슴이 막 아파요. 걸어가는 사람, 버스 탄 사람이 한 번씩 고개를 내밀면 그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요.” 김씨는 목이 메었다.
[AM 10:00 경기도 광명 시민체육관] 고 박세도군의 어머니 김미경(49)씨는 다리가 아프다고 했다. 엄마들이 다들 그랬다. 무릎과 발목에 파스가 붙어 있었다. 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전날 안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1박2일 100리 도보행진’을 떠났기 때문이다. 유가족과 시민 300여 명은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를 거쳐 세월호 참사 100일 추모제 ‘네 눈물을 기억하라’가 열리는 서울광장으로 향한다. “세도 만나러 가는 기분이에요. 오늘은 더워도, 비 와도 다 괜찮아요.” 김씨가 말했다. 하지만 서울의 복잡한 도로와 차량은 유가족 행진을 반기지 않았다. 오랫동안 멈춘 차량은 경적을 울리며 지나갔다. 행진으로 버스 타기가 불편해지자 시민들은 인상을 찌푸렸다. 국회와 가까워질수록 유가족의 발걸음은 무거워졌다.
[PM 2:30 진도 팽목항] 노란 물결이 넘실댔다. 세월호 참사 진도군 범군민대책위원회가 마련한 ‘실종자, 100일의 기다림’ 행사가 열렸다. 진도고 학생 100여 명이 노란 풍선을 날리고 노란 리본에 추모글을 남겼다. ‘하늘에서 행복해. 잊지 않을게. 미안하고 사랑해.’ ‘좋은 세상을 만들게. 지켜봐줘.’ 홍아무개양은 ‘보고 싶은 친구들에게’라는 편지글을 썼다.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자율학습 끝날 때까지 항상 뉴스만 바라봤어. 실내체육관도 가보고, 팽목항에도 가봤지만 가슴만 더 먹먹해졌어.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었던 내가 때론 한심해졌어.” 진도고 차영주 교사는 ‘돌아오지 않는 교사들’ 이름을 부르며 말했다. “아이들에게 구명조끼를 먼저 입히고 다시 선실로 들어가는 당신의 뒷모습, 100일 100년이 지나도 당신의 고귀한 희생을 잊지 않겠다.”
“특별법 반대하는 사람보다 딱 1분만 더”[PM 3:30 전남 무안군] 두 아버지와 함께 걸으려고 모여든 사람이 100명을 넘었다. 발걸음이 무거워진 이승현군의 아버지가 혼잣말을 했다. “이번 순례에서 우리가 무엇을 얻고 무엇이 달라졌나? 힘든 고난을 마쳤다는 것 말고….” 어려운 문제지를 받아든 수험생처럼 난감한 표정이다. 저 멀리 휠체어 한 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광주에서 온 대학생 강신영씨다. 그는 유가족 순례길에 꼭 같이하고 싶어 찾아왔다고 했다. 어머니가 끄는 휠체어를 타고 강씨는 두 아버지와 오후 일정을 함께했다. 지쳐 보였던 이승현군의 아버지가 먼저 다가가 강씨의 손을 잡았다. 아버지의 발걸음에 바짝 힘이 들어가더니 성큼성큼 앞장서 걸었다.
[PM 3:47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은 ‘1박2일 도보순례단’에 “뿌듯해하지 말라”고 외쳤다. “끝까지 버텨야 한다. 세월호 특별법을 반대하는 사람들보다 딱 1분만 더 버티면 된다. 아프지 말라. 혼자서 울면 안 된다. 함께 흘리는 눈물은 거대한 강물이 된다. 끝까지 함께하자.” 유가족들은 마음을 다잡고 추모제가 열리는 서울광장으로 향했다.
[PM 9:00 서울광장] “난 난 꿈이 있었죠 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 내 가슴 깊숙이 보물과 같이 간직했던 꿈.” 고 이보미양이 영상 속에서 가수 김장훈씨와 을 열창했다. 죽은 자와 산 자가 음악으로 하나 되자 서울광장은 눈물바다로 변했다. 보미양 아버지는 “정부의 적극적인 수색 작업이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노래를 공개한다”고 밝혔다. 김동혁군의 어머니 김성실(50)씨는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다. “너를 잃고, 자식 없이 살아가야 할 부모가 자식이 죽은 이유를 밝혀달라는 것이 욕심일까. 너를 잃고 살아가는 미래가 너무 두렵고 힘들고 잠들기도 어려운 고통인데 이 고통을 다른 국민에게 주지 말라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워달라는 게 잘못된 것일까. 엄마·아빠가 너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은 ‘내 새끼가 너무 보고 싶다, 너희들이 너무 그립다’는 것이다. 안산 단원고 2학년 예쁘고 착했던 아이들아. 정말 미안하고 사랑한다.”
유가족을 맞는 건 거대한 경찰차벽[PM 10:30 서울광장] 추모행사를 마치고 유가족들은 광화문광장에서 단식농성 중인 유가족 대표를 만나려고 발길을 옮겼다. 경찰과 버스가 가로막아섰다.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이라는 이유에서다. 새벽 2시까지 빗속에서 대치하던 유가족들은 지쳐서 국회 농성장으로 돌아섰다. 7월25일, 세월호 참사 101일째날은 다시 길 위에서 시작됐다.
광명·함평·진도=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김연희 인턴기자 kyhbb72@naver.com·장슬기 인턴기자 kingka8789@hanmail.net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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