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문학상’이 올해로 5회째를 맞았다. 1회 수상자인 신수원씨는 수상작을 표제로 삼은 소설집 를 지난 6월에 펴냈다. 수상자 신씨와 손바닥문학상이 함께 거둔 성과라 자찬하고 싶은 마음이다. 지난해 167편이던 응모작이 올해엔 248편으로 껑충 뛴 것도 이 상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는 방증으로 읽혔다. 은 내년 봄에 창간 20주년과 지령 1천 호라는 굵직한 전기를 맞는다. 그에 맞춰 손바닥문학상 역시 발전적인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167편에서 248편으로 응모작 껑충 뛰어응모 편수가 늘어난 만큼 전체적인 수준 역시 고르게 높았다. 지난해에는 당선작 한 편을 꼽기가 수월했던 데 비해, 올해는 당선작으로 삼을 만한 수작이 여럿이어서 심사위원들을 즐거운 고민에 빠뜨렸다. 손바닥문학상이 시사주간지가 주관하는 상이며 신춘문예나 잡지의 단편소설 공모와는 다른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심사를 진행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작품에 요구되는 정서적 울림과 미학적 완성도를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지난해에는 다양하고 치열한 삶의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대신 문장과 구성 같은 형식적 측면에서 아쉬움을 주는 작품이 많았다. 그에 비하면 올해 심사 대상작들은 문장이 안정적이다 못해 능란하다는 느낌마저 주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같은 사례가 그러했다. 형제가 외할머니네 밭의 무를 뽑는 단순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시종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혔다. 어떤 소재가 주어져도 자기 식으로 소화할 수 있다는 여유와 자신감이 만져졌다. 그렇지만 입담 이상의 ‘그 무엇’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웠다. 역시 중학생이 쓰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중학생의 언어와 생각을 실감나게 그렸지만, 중학생의 하루 일과를 충실히 재현하는 것에 그치고 말았다.
고민 끝에 당선작으로 뽑은 은 뇌병변 1급 장애로 운신을 하지 못하는 19살 처녀의 시점을 택했다. 장애인이 화자이자 주인공이라면 장애인의 어려움과 장애인을 대하는 외부인의 편견 같은 것을 주로 다룰 것으로 짐작하게 되는데, 그런 관습화한 기대를 배반하는 데 이 작품의 묘미가 있다. 장애인인 주인공의 내부에 함몰되지 않고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점이 돋보였다. 장애인의 처지에 과도하게 감정이입을 하는 대신 시종 냉철하고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함으로써 세계가 한층 넓어질 수 있었다. 초점화자인 장애인이 상대역으로 나오는 사회복지사의 아픔을 이해하고 따뜻하게 품을 수 있게 되는 결말은 이런 감정의 거리 조절을 통해 가능했다.
가작으로는 두 편을 골랐다. 는 이른바 비행청소년을 등장시킨 작품으로 단편영화를 보는 듯 완벽한 구성이 돋보였다. 제도와 규율로부터 일탈한 남녀 고등학생들의 행동과 언어, 감정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섣부른 동정심에 호소하거나 위악에 떨어지지도 않으면서 그들의 고민과 아픔에 공감하게 하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독자의 허를 찌르는 반전, 잘 만든 영화의 엔딩 장면처럼 인상 깊은 결말이 오랜 여운을 남겼다.
관습화한 기대를 배반하는 묘미은 응모자 스스로 ‘논픽션 수필’이라 규정한 글이지만 한 편의 소설로 읽어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습니다’ 체로 시종한 어조가 글의 내용 및 주제와 잘 어울렸다. 학비를 벌기 위해 누드모델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학생의 이야기인데, 감정 노출을 자제하면서 그 세계의 애환을 조근조근 들려주는 것이 믿음직스러웠다.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모델 일이 끝난 뒤 화장실에 들어간 주인공이 “무대 위에서 모른 척하며 잠시 접어놓았던 느낌들을 다시 쫙쫙 펴서 곱씹”는다든가 모델 일을 한 덕분에 어떤 장소에도 지지 않는 힘이 생겼다는 식의 통찰은 앞으로의 가능성에 기대를 걸게 했다.
이 밖에도 같은 작품을 놓고 심사위원들은 고민과 논의를 거듭했으나 아쉽게도 선에 들지는 못했다.
전체적으로 우리 사회의 그늘진 구석을 조명한 작품이 많았다. 그 점은 손바닥문학상의 특징이자 존재 의미라 하겠으나 비슷한 소재가 되풀이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야 할 것이다. 1회 수상작 와 비슷하게 해고노동자의 철탑 고공농성을 소재로 삼은 이 대표적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 노인과 장애인, 일탈 청소년 등이 손바닥문학상의 단골 손님들인 셈이다. 이들이 문학의 이름으로 관심과 애정을 쏟아야 할 대상임에는 틀림없지만, 같은 이야기라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써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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