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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전형적인 스토리가 있습니다. 사춘기에 심각한 고민에 빠진 소년. 남들 은 이성에게 지극한 관심을 갖는데, 이상하게 자신은 동성에게 끌립니다. 아니, 이건 뭔가. 고민이 있어도 말을 못하고, 더구나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욱 숨겨야 하는 비밀을 간직한 채 어쨌든 삽니다. 어느 날, 잡지를 넘기다 혹은 TV를 보 다가 자신 같은 사람을 부르는 이름을 듣습니다. 동성애자, 게이, 트랜스젠더, LGBT….
그 소년이 청년이 돼 ‘나 같은’ 사람을 만납니다. 이들의 성 장담을 듣습니다. 사춘기에 얼마나 죽고 싶은 나날을 보 냈는지. 어떤 모임에선 이런 일도 겪습니다. 누군가 사춘 기에 자살 시도한 경험을 말합니다. 그러나 같이 있던 게 이들이 눈물 짜는 연민은커녕 지겹다는 표정입니다. 다들 팔에 남은 날카로운 상처의 흔적을 내보입니다. 한 줄이 아니라 서너 줄. 미국 청소년 자살의 30% 이상이 성정체성으로 인한 고민 때문 이라는 연구가 있습니다. 한국에선 아직도 소녀 둘이 손잡고 아파트 옥상에서 뛰 어내려도 성적 비관 자살이라 말하지, 성정체성 비관 자살을 의심하진 않습니다. 성정체성은 주어진 것이라고 느끼는 청년. 어쩌다 사귀는 사람이 생겼는데, 그 의 성장담을 듣고 거짓말이라 생각합니다. 애인은 사춘기에 이성을 좋아했고 성 인이 된 뒤에야 자신이 동성애자란 사실을 알았다고 합니다. 가혹한 사춘기를 겪은 청년, 그의 얘기가 그도 모르는 무의식에 의해 조작됐다 생각합니다. 동성 애에 대한 사회적 억압이 너무 강해서 심지어 동성애자 자신도 무의식을 조작 할 지경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둘이 아닙니다. 자꾸만 이런 얘기를 듣습니 다. 중복된 증언에 밀려, 비로소 그런 동성애자도 있구나 받아들입니다.
그렇게 태어났다고 하면 간단하지요. 실제로 많은 동성애자가 그렇게 생각합니 다. 하지만 위험도 있습니다. 게이 유전자 연구가 있습니다. 성소수자만의 유전 자를 찾아내는 연구입니다. 그런데, 게이 유전자를 알아낸다면, 그 유전자를 제 거하거나 조작하고 싶은 유혹도 생깁니다. 제거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래서 성 소수자인권운동은 게이 유전자 연구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례도 있어요. 일란성쌍둥이 가운데 한 명은 동성애자가 되고, 한 명은 이성애자가 되 었다는. ‘며느리도 모를’ 일입니다.
다시, 숙명론은 편합니다. 동의를 구하기도 편합니다. 아, 너는 그렇게 태어났으니 나도 이해한다. 근데 좀 ‘보수의 스멜’이 풍기지요? 동성애자로 삶을 선택했다면, 이해하지 않겠다는 겁니까? 그리하여 잠정적인 결론은, 내가 왜 이성애자가 되었 느냐 묻지 않듯이, 당신이 왜 동성애자가 되었느냐 묻지 말자, 되겠습니다. 덧붙이 자면, 동성결혼은 21세기 지구촌에서 가장 ‘핫’한 이슈가 되었지요. 그러나 성소수 자 의제를 동성결혼이 빨아들이는 현상에 대해 모두가 흔쾌한 것은 아닙니다. 이 성애 질서 외부에서 질서를 흔드는 존재로, 동성애 정체성의 핵심을 이해하는 이 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내가 왜 이성애자 흉내를 내니?” 질서 를 흔드는 퀴어란 그런 거라고 합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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