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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15일 1시43분. 방금도 시계를 봤습니다. 멍 때리는 사이, 또 3분이흘렀군요. 마감 압박이 밀려듭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날짜와 시간을 조용히 읊어봅니다. 이천십삼년 삼월십오일 ‘한’시사십삼분…. 저도 모르게, 시간을 표기하는 아라비아숫자만 한자어가 아닌 순우리말로 말하고 있네요.
끙끙 앓는 기자를 향해, 조카들을 종종 돌보고 있는 신윤동욱 기자가 덧붙입니다. “1월·2월처럼 날짜를 표시할 때는 한자어로, 1개월·2개월같이 기간을 이야기할 때는 고유어로 숫자를 말한다. 올해 8살이 된 조카는 세달·네달이라고 말하지 않고 삼달·사달이라고 하더라.” 그러곤 ‘시간·분 한덩어리론’을 주창합니다. 시간과 분을 보통 붙여서 이야기하니 사시사분보다는 네시사분으로 앞뒤 구분되게 읽는 것이 낫지 않냐는 거지요. 또 일상에서 연월보다는 시간과 분 단위를 자주 말하다보니, 고유어 영향력이 강하게 남아 있는 것 같다는 추측이었습니다.
칼럼 ‘전우용의 서울탐史’ 필자 전우용 교수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번엔 ‘고유어커버론’이 제기됩니다. 시간은12까지만 세면되지만, 분은 60까지 세야 합니다. 12까지는 고유어로 말할 수 있지만, 20 이상 단위가 넘어갈 때 고유어를 사용하면 말이 복잡해집니다. 이런 연유로 시간을 지칭하는 숫자만 고유어로 말하게 됐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전 교수님은 이어 ‘착각 방지론’의 가능성을 제기하셨습니다. 24시간제가 우리 사회에 도입된 것은 개항 이후입니다. 전통적으로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십이간지로 시간을 표시했지요. 이 가운데 4시를 사시라고 말하게 되면 ‘뱀 사’자로 표기하는 사(巳)시와 헷갈리게 됩니다.
4시4분을 꼭 네시사분으로 말해야 정답은 아닐 겁니다. 일종의 관습으로 보아야겠지요. 또 하나의 사회, 군대에서는 시간을 말하는 방식이 조금 다르지요.1998년 군에 입대한 오승훈 기자는 군 복무 기간에 오후 두시 대신 14(십사)시라고 복창했습니다. 선임이 그렇게 시켰답니다. 두시라고 하면, 새벽 2시인지 오후 2시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는군요.
전우용 교수님 말씀으로는1930년대 동시엔‘넉점’이라는시간 단위가 등장한다는데요. 해가 진 뒤부터 해가 뜰 때까지 밤 시간을 5등분해 5경으로 지칭하고 각 경은 다시 5점으로 나누었다고 합니다. 초경은 오후 7~9시, 오경은 오전 3~5시를 뜻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새벽 4시쯤인 5경3점에 종을 33번 쳐서 통행금지가 해제됨을 알려주었습니다. 이렇게 시간을 듬성듬성하게 나누었으니, 옛날 사람들에겐 분이나 초 단위가 별로 중요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1분1초에 매달려 사는 삶이 아니었다는 방증이지요. 마감을 앞두고 1분1초에 안달복달하다보니, 푸념이 절로 나오는군요.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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