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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래된 물건] 롤라이는 웃지 않았다

등록 2006-01-12 15:00 수정 2020-05-02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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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엔 30년 가까이 된 싱가포르산 롤라이35SE 카메라가 있다. 담뱃갑만 한 크기에도 셔터스피드와 노출 조절이 가능하고 내구성도 좋아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이 카메라는 아버지가 70년대 후반 건설노동자로 사우디아라비아에 다녀오면서 사오셨다. 당시 중동 파견 노동자들 사이에선 귀환길에 홍콩을 경유해 홍콩 공항 면세점에서 오디오 세트 같은 ‘사치성’ 전자제품과 함께 롤라이를 사오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한다.

우리 아버지는 키가 크시다. 커다란 덩치에 말씀도 없고, 잘 웃지도 않으신다. 아버지는 사우디아라비아에 3년간 계셨다. 그때의 수고를 말씀하신 적은 없다.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수분을 보충하느라 냉수를 너무 많이 들이켜 위장병을 얻으셨다는 이야기로 얼마나 힘드셨을지 짐작할 뿐이다. 아버지가 돌아오신 뒤 우리는 인천 간석동에 집을 샀고, 동생과 나는 안정적인 성장기를 보낼 수 있었다.

주말이면 목에 카메라 걸고 가족과 나들이하는 게 행복한 중산층의 이상이었던 시절, 우리 집도 식구끼리 수영장에 다녀오자고 해서 집을 나선 적이 있었다. 그런데 너무 늦게 출발해서 송도 풀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문을 닫은 뒤였다. 그 가족 나들이가 좌절된 이후 함께 어딘가 놀러가서 가족의 행복한 한때를 카메라에 담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아버지는 이제 칠순이 다 되어가신다. 키도 줄고, 어깨도 많이 굽었다. 롤라이로 아들 녀석을 찍어줄 때면 가끔 아버지 생각을 한다. 손바닥에 절반도 차지 않는 조그만 카메라를 주머니 속에 넣고 3년 만에 가족에게 돌아가는 비행기에 올라탄 젊은 아버지. 그땐 벙긋벙긋 웃음이 나셨을까. 내년 여름에는 부모님 모시고, 손자 손녀 대동해 송도 풀장에 다녀와야겠다.

차창원 경기도 의왕시 내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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