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캠페인_ 대추리를 평화촌으로!]
평택 도두리의 들녘에서 자란 가수, 대추리 비닐하우스에서 부르는 노래
“예술을 하려고 온 게 아니다” 매주 토요일 촛불집회마다 콘서트 열려
▣ 평택=글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가수 정태춘의 고향은 평택 도두리다. 그의 노래에는 해질 녘 황새울로 저무는 노을빛이 느껴지고, 너른 들판에서 전해오는 선선한 짚풀 냄새가 차오르고, 그 안에 깃들였던 서글픈 초가집의 풍경이 떠오른다. 그는 2003년 11월3일 평택 미군기지확장반대 팽성대책위원회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그의 노래에 담긴 고향의 풍경을 담담하게 풀어놨다. “도두리는 달이 솟아오르는 곳이고, 연을 날리면 그 너머로 연결이 안 되는 마지막 들이고, 철조망 너머 미군부대의 너무나 컬러풀한 물탱크들이 세워진 경계이고, 그 미군부대 쓰레기통을 뒤져서 먹고 산다는 두집인가 세집매의 조그만 언덕이고, 거기는 어린 우리에게 신비로운 변방이었고, 그 너머 더 큰 세상의 최후방 초소만 같던 마을이었다.” 2월11일 정태춘은 고향을 잃을 위기에 놓인 고향 사람들을 위해 평택 대추리 비닐하우스를 찾아 작은 콘서트를 열었다. 그와 그의 아내 박은옥씨가 고향의 노래를 부를 때 비닐하우스에는 539일째 촛불이 타올랐다.
문예인 모임 ‘들 사람들’
사람들이 평택으로 모여들고 있다. 문예인들도 모였는데.
=평택 미군기지확장반대와 대추리·도두2리 주민 주거권 옹호를 위한 문예인 공동행동을 꾸려 그 이름을 ‘들 사람들’이라고 지었다. 1월24일 기자회견을 했고, 2월3일 기금 모집을 위한 일일주점을 열었다. 700명 가까운(2월13일 현재 694명) 문예인들이 ‘들 사람들’이라는 이름 안에 모였다. 오늘(2월11일) 평택의 빈집 한 채를 얻어 본부(들 사람들의 집)로 정했다. 미군기지확장반대 팽성대책위 사무실이 자리잡은 대추초등학교 창문에 주민 초상화를 그리는 등 앞으로 평택 싸움을 돕기 위한 예술인들의 참여가 이어질 것이다. (예술인들은 2004년 말 추수 끝난 논에 모여 ‘들이 운다’는 이름의 평화 축전을 벌였고, 정태춘씨는 지난해 8월부터 광화문 앞에서 ‘평화 그 먼 길 간다’는 제목으로 석 달 동안 거리에서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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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싸우는가?
=평택 싸움에는 미군기지 확장에서부터 주민 강제퇴거까지 폭넓은 이슈들이 있다. 평택에는 자신의 고향을 떠나야 하는 대추리·도두리 주민들의 정서적인 문제에서, 강제 철거의 위기에 놓인 주민들의 주거권 문제, 미국이 세운 새로운 국제 전략 아래서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한-미 간의 정치적인 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이 중층적으로 겹쳐 있다. 그 속에서 평택 주민들은 합법적으로 이뤄지는 국가의 폭력 앞에서 궁지에 몰려 있다. 우리의 주장은 현장에서 그들과 함께 하겠다는 것이다.
대중들은 “주민들의 사정은 딱하지만 과연 이길 수 있을까” 하는 현실론 뒤에 숨는 것 같다.
=그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그런 대중들의 생각에 동의하지도 않고, 크게 신경쓰지도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을 할 뿐이다. 우리는 현장 속에서 주민들과 함께할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문예인들이 예술이나 하지 왜 현실 참여를 하는가 하는 말도 할 것이다. 그런 주장에 대꾸할 필요를 못 느낀다. 다른 사람의 생각은 다를지 모르지만 나는 예술을 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게 아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사람들의 무관심은 여전하지만, 애초 싸움을 시작하던 2~3년 전에 견준다면 많이 나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언론과의 인터뷰를 피해왔는데.
=개인적으로 언론인들에게 악감정이 있거나 했던 것은 아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나는 기자들이 소속된 우리나라의 언론을 신뢰할 수 없었다. 그들이 속한 세계와 내가 속한 세계는 다르다고 생각하고, 그 신념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렇지만 평택 운동을 하면서 내 소신만 지키는 게 옳은 것이냐는 의문을 갖게 됐다. 특히 아내 박은옥씨는 “당신은 당신의 신념을 위해 노래하는가, 주민들의 문제 해결을 위해 노래하는가”라며 나를 몰아세웠다. 고민 끝에 한국방송 <시사중심> 출연을 결심했고, 언론 인터뷰에 응하게 됐다.
고향의 바람에서 나온 노래들
노래에 평택의 지명이 많이 등장한다. 1984년에 나온 <애고 도솔천아>에서 노래 부른 ‘선말산’의 소나무와 나팔소리에 깨기 전에 넘기를 바랐던 ‘아리랑 고개’ 등은 바로 이곳 평택 팽성의 지명들이다. 평택은 무슨 의미인가?
=나는 도두리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22살까지 살면서 농사도 지었고, 바이올린·기타 등을 들고 다니면서 노래도 만들었다. 도두리·대추리 벌판에 대한 노래도 많았고, 세상에 대한 노래도 많았고. 세상과 한바탕 싸우던 노래도 많았다. 풍파와 열정의 시기를 거치고 고향 사람들 앞에 와 섰다. 그냥 내 고향에 살게 해달라는 사람들 앞에서 그동안 내가 불렀던 노래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고향의 들판과 바람과 독특한 풍광 속에서 세례 받았다. 꼭 의도하진 않았지만 그 속에서 많은 노래가 나왔고, 그것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 기억들은 지울 수 없는 상처 처럼 내 속에 단단히 박혀 있다.
앞으로 일정은.
=앞으로 12주 동안 매주 토요일을 ‘황새울의 날’로 정했다. 매주 토요일마다 주민들이 촛불 집회를 하는 대추초등학교 비닐하우스에서 평화 콘서트가 열린다. 2월24일에는 도종환 시인 등 문인들의 무료 사인회가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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