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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유어북] 도서관을 해방시켜라!

등록 2004-04-21 15:00 수정 2020-05-02 19:23

[과 함께하는 ‘프리유어북’]

프리유어북의 원조, 책자유교환 운동을 처음 제안했던 이탈리아 피렌체시 문화부장 루카 브로기오니를 만나다

세계 곳곳에서 책들에게 발과 날개를 달아주는 움직임이 부산하다.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몇년 전부터 미국의 북크로싱 운동과는 또 다른 색채를 띠고 책의 해방과 공유가 이뤄져왔다. 하영식 전문위원이 프리유어북 운동의 또 한 갈래 원조라고 할 만한 이탈리아의 책자유교환 운동현장을 찾았다. 처음 이 운동을 제안했으며 책과 관련한 문화정책을 꾸준히 기획하고 있는 피렌체시 문화부장 루카 브로기오니를 만났다. -편집자



피렌체= 글 · 사진 하영식 전문위원 youngsig@teledomenet.gr

피렌체대학에서 예술과 철학을 전공한 루카 브로기오니(48) 부장은 시청에서도 항상 책과 관련된 분야를 맡아왔다. 그가 관심을 갖고 연구했던 분야도 한 출판사의 역사에 관한 것이었다. 또 그는 인권활동가로서 남미와 팔레스타인의 인권 현황 개선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 책자유교환 운동의 시작과 경과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해달라.

= 2002년 12월17일 피렌체 시청에서는 시장인 레오나르도 도메니치, 도서 관계자들, 명사들이 모여 책을 기증하고 교환하는 행사를 벌였다. 당시 모인 책이 3천여권이나 됐고 성공적으로 행사를 끝맺었다. 당시 모인 모든 책에 ‘Lo scaffale del Libero scambio’(자유교환 스탠드)라는 딱지를 붙였다. 이 책들은 북스탠드에 진열됐고 시민들은 필요한 책들을 빼갔으며 읽은 책들을 되돌려놓았다. 또 읽지 않고 쌓아뒀던 책들을 꽂아놓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자유교환을 위한 북스탠드는 5곳에 설치됐는데, 이 중 시청과 피렌체 시내에서 가장 큰 음식백화점(메르카토 디 산 로렌초)에 설치된 북스탠드가 가장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다. 북스탠드가 세워진 뒤 많은 사람들은 책을 통해 서로 만나는 기회를 갖게 됐고 서로의 발전을 위해 자극을 주는 기회로 삼게 되었다.

- 피렌체에서 시작된 책자유교환 운동이 파리로 전파됐고, 이에 파리 시민들이 피렌체시에 깊이 감사해한다고 들었다.

= 피렌체에서 시작된 책자유교환 운동이 2003년에는 더욱 세계적인 규모로 일어나게 됐다. 2003년 3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기로 결정할 무렵, 피렌체시는 반전운동의 차원으로 책자유교환 운동을 프랑스 파리로 확산시키기로 결정하고, ‘책전달운동’(Passe-Livre)를 벌였다. ‘전쟁 대신 평화를 위한 책 교환’이란 구호를 내걸고 파리의 4개 구청에 북스탠드를 설치해 2천권의 책을 전달했다. 피렌체가 파리에 퍼뜨린 이 운동은 당시 폭발적인 호응을 받았고, 10월17~19일엔 책축제(Lire en Fete)로 이어졌다.

- 피렌체시는 책자유교환 운동을 어떻게 발전시켜나가고 있나?

= 책자유교환운동의 시작을 따져보면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피렌체의 한 도서관이 등록을 하지 않고 책을 자유롭게 가져가게 하는 일을 시작했다. 이 운동을 위해 특히 ‘라디오3’에서 ‘Passe-Livre’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대중들에게 책을 내놓자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이 운동이 나중에 미국의 시카고에서 인터넷상의 ‘북크로싱 운동’으로 발전했고 이곳이 공식적 운동기구가 됐다. 통계조사를 보면 약 50%의 시민들은 1년에 책 한권도 읽지 않을 정도로 책과는 담을 쌓고 지냈지만, 이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많은 시민들이 시청과 음식백화점에 들러 책을 가져가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북스탠드에 책이 아예 없는 일이 자주 발생하기도 한다. 물론 그런 경우에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책을 가져와 비치해두기도 해 큰 문제 없이 지금까지 운영돼왔다. 이 캠페인을 홍보하기 위해 시청에서는 시내버스에다 책자유교환 운동 선전지를 부착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해엔 부활절 직후인 5월과 크리스마스 직전 12월, 두 차례에 걸쳐 ‘책축제’를 열었다. 어린이들은 자신의 헌책들을 가지고 나와 다른 책들과 무료로 교환했으며, 어른들은 책축제에 참가한 서점에서 책을 구입했다.

- 피렌체시에선 이 일에 몇명이 일하고 있는가.

= 시청에서 책자유교환 운동을 위해 일하는 직원들은 4명이다. 나를 포함한 두명은 풀타임으로 일하고 두명은 파트타임으로 자원봉사를 한다. 우리가 맡은 영역은 광범위하다. 우리는 피렌체의 주변 시골마을들을 돌면서 책을 공급해주거나 대학도서관과 시골도서관들을 하나로 통합한 도서검색 프로그램을 통해 책을 원활하게 순환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시골에 사는 사람이 원하는 책을 그곳의 도서관에 요청했지만 책이 없을 경우 인터넷을 통해 원하는 도서를 요청하고, 담당 직원들은 대학도서관·대형도서관에서 책을 찾아 시골 도서관으로 옮겨놓는다. 피렌체시가 이런 순환시스템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누구든지 어디에서나 원하는 책을 받을 수 있다.

- 책과 도서관에 대한 개념이 전혀 새로워 보인다.

= 도서관에 대한 관념이 변해야 한다. 국립도서관은 책을 보존하는 곳이어야 하지만, 공공도서관은 책을 나눠주는 곳이어야 한다. 대중에게 책을 개방한다는 생각은 책을 쌓아두고 보존해야 한다는 기존의 보편적인 도서관 개념과 비교하면 혁명적인 사고방식이다. 이탈리아 역사를 보더라도 책은 권력의 상징이었다. 권력과 부를 독점했던 명문가나 종교그룹이 소중한 책이나 예술품들을 보관하고, 일반인에게는 접근이 금지됐다. 특권층이 소장했던 책과 예술품을 일반인에게 개방하기 위해서는 ‘혁명’이 필요했다. 지금도 이른바 명문가에서는 책과 예술품을 비밀스럽게 소장하고 있다. 최근 몇몇 명문가에서 소장 서적과 예술품들을 자발적으로 일반인에게 공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책자유교환 운동 외에도 책과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해온 일이 있다면?

= 병원에 작은 도서실을 설치해왔다. 병원 한구석에 북스탠드를 설치해 500권 정도의 책을 놓고 환자나 간병을 하는 가족이 마음대로 책을 뽑아볼 수 있게 했다. 지금도 3군데의 병원에 북스탠드를 설치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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