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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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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시간, 신파도 낭비도 없는

정치인 조국은 지지자들의 뜻에 반하는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등록 2024-03-22 12:57 수정 2024-03-23 02:04
2024년 3월3일 조국혁신당 창당대회의 조국 대표. 한겨레 강창광 선임기자

2024년 3월3일 조국혁신당 창당대회의 조국 대표. 한겨레 강창광 선임기자


조국은 이미 이겼다. 정치 참여를 시사한 지 불과 넉 달 만에, 창당에 나선 지 한 달도 안 돼 제22대 국회의원선거의 판도를 바꿨다. 그가 이끄는 조국혁신당 지지율을 보면 ‘비법률적 방식의 명예회복’도 상당 부분 이뤘다. 윤석열 정권 심판을 바라는 이들에게 더 선명한 선택지를 주면서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유발해 일종의 ‘조국 치료’ 효과까지 내고 있다.

절치부심 끝에 더불어민주당 문을 두드렸다가 ‘까일’ 때까지만 해도 그가 이렇게 호랑이 등에 올라타리라고는 누구도 예상 못했다. 민주당이 그를 안았다면 그는 지겨운 정쟁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또 하나의 표적 역할만 하지 않았을까. 반전의 드라마인 셈이다.

윤석열 정권에 맞서 더 잘 싸우겠다는 약속에 민주당 대신 조국혁신당에 마음을 주는 지지자가 많다. 하지만 민주당이 늘 싸우기만 하기 때문이라는 이도 적지 않다. 민생 문제도 당내 문제도 해결 못하고 시끄럽게만 하는 민주당에 대한 실망감이다. 해결할 생각이 과연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민주당이 망가졌다고 보는 것이다. 윤석열 정권의 전횡은 지긋지긋하고 이재명 리더십도 영 못 미더운데 3지대 세력은 맥을 못 추니 부평초처럼 떠도는 마음이 조국혁신당에 쏠린다.

저마다 자기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조국에게서 찾는다. 서스펜스 복수극을 꿈꾸기도, 난세를 구하는 영웅담을 읽기도 한다. 시련과 고난을 딛고 자아를 찾는 성장기를 보기도, 혼자서는 어려워도 함께라면 두렵지 않은 버디무비를 찍기도 한다. 덕분에 민주당의 스핀오프(갈라져나온 이야기) 말고도 각양각색 하이브리드 지지가 가지를 친다. 한 번도 자기가 찍은 후보가 당선된 적 없는 한 친구는 “내 마음은 김종대 옆인데 눈은 자꾸 조국을 향한다”며 인지부조화를 호소했다. 부산 사나이를 자처하는 지인은 “조국이 (정치) 쫌 한다”며 “지역구는 국힘, 비례는 조국”이라고 했다. 명분과 타이밍, 세력에 자기 서사까지 갖췄으니 하루아침에 국민의힘 위성정당과 조국혁신당이 비례의석을 놓고 겨루는 현재 판도가 어색하지 않다.

내건 기치는 검찰 독재정권 조기 종식이라는 시퍼렇고 날 선 것인데, 왜 어떤 이들은 그의 당에서 다정함에 가까운 위로를 얻을까. 자녀입시 특혜만큼은 넘어갈 수 없다며 그의 공적 등장을 달가워하지 않던 이들조차 조국 개인이 지닌 특유의 단정하고 담백한 톤앤매너는 인정한다. 그는 자기 허물에 대한 비판을 달게 받고 죗값도 치르겠으니 윤석열 대통령 부부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같은 잣대로 수사해달라고 말한다. 개인의 해원이 분명하나, ‘공정’한 명분이다. 자기 경험을 신파로 몰고 가지 않고 말의 낭비가 없는 것도 신뢰의 밑천이다. 윤석열과 이재명, 한동훈이라는 지도자에게 질린 탓일까. 무도하지도 뭉개지도 촐싹대지도 않는다니! 그 당에 결합한 이들의 ‘서타일’과 ‘너낌’도 안정감을 주는 데 한몫한다.

국회에 입성하면 1호 법안으로 ‘한동훈 특검법’을 발의하겠다는 ‘거친 다짐’으로는 예상 밖으로 그에게 다가온 바람과 열망을 다 담아낼 수가 없다. 지지율 1~2%, 5%, 10%, 20~30% 정당에 사람들이 바라는 건 다 다르다. 정치인 조국에게 쏠린 기대는 인과응보나 권선징악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제 그는 훨씬 더 복잡하고 입체적이며 어려운 과제를 떠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지지자들의 뜻에 반하는 선택도 기꺼이 할 수 있을까? 3년은 너무 길지만, 3년 내내 싸움만 하는 것이 더 두려운 국민이 많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김소희의 정치의 품격: 격조 높은 정치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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