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8일 이준석 전 대표의 ‘6개월 당원권 정지’ 징계에서 촉발된 국민의힘 내부 혼란이 좀처럼 수습되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국민의힘 내부 리더십의 부재다. 당내 갈등을 원만하게 수습하고, 여러 정치인을 한데 모을 수 있는 중진이 눈에 띄지 않는다. 나아가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보수 여당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도 없다. 정권은 탈환했지만 인물, 이데올로기, 전략이 없는 진공상태라는 게 보수정치의 현주소다.
보수정치가 아노미(무질서한 혼돈 상태)에 처한 것은 박정희, 반공·반북, 영남으로 요약할 수 있는 전통적 보수가 퇴조한 가운데 경제문제에 집중하는 새로운 보수가 좀처럼 자리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자를 ‘안보 보수’, 후자를 ‘시장 보수’라고 규정할 수 있는데 따지고 보면 권성동·장제원 의원 등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과 이준석 전 대표 등은 모두 ‘시장 보수’에 속한다. 각각 이명박계와 바른정당(개혁보수 성향)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장 보수’ 내부에서 전국적인 지명도와 지지세를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당을 이끌어갈 인물이 없다. 수도권의 고학력·고소득 집단을 상대로 소구력이 낮은데다, 전통적으로 보수를 지지해왔던 자영업자나 블루칼라 노동자에게 정치적 대안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수 지지층을 관통하는 정체성이 있다면 반북·반공이다. 또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 평가, 즉 산업화 시기를 높게 평가하는 것도 보수 지지층의 정서다. 정부의 재분배 정책 등 경제문제에서는 보수와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의 차이가 크지 않다. 20~30대에선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40대 이상에선 연령층이 높아질수록 수렴한다.
이 전통적 보수는 몇 년 전부터 세력을 잃어갔다. 동아시아연구원(EAI)이 역대 대통령 업적을 점수로 물어본 조사(‘2020 한국인의 정체성’, 5년마다 일반인 1천 명에게 설문)에 따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의 평가점수는 2005년 6.65점에서 2020년 5.97점으로 하락했다. 반면 같은 기간 노무현 전 대통령은 3.94점에서 5.71점, 김대중 전 대통령은 4.69점에서 5.58점으로 올랐다. 2020년 기준 서울에서는 김 전 대통령이 5.65점으로 가장 높고 노 전 대통령(5.64점)과 박 전 대통령(5.57점) 순이다.(표1 참조).
반북·반공도 마찬가지다. 2018년 6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에 대한 평가를 묻는 한국갤럽 조사에서 60대 이상 고령자 58%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부정 평가는 16%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안보 보수’와 ‘시장 보수’의 분화가 발생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가 2017년 대선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와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지지층을 분석한 자료(‘2017년 대통령선거에서의 보수정치: 몰락 혹은 분화?’, <한국정당학회보>)를 보면, 유 후보 지지층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선호도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찬성하는 비율이 홍 후보 지지층에 견줘 현격히 낮았다. 유 후보 지지층은 20~30대 젊은층이나 월소득 300만~499만원의 중산층 비중이 높았다.
문제는 ‘시장 보수’의 낮은 경쟁력이다. 잠재적 지지층일 수도권 유권자에게 외면받는 데서 잘 드러난다. 국민의힘 계열 보수정당의 재선 이상 의원 지역구 추이를 보면 수도권 의원의 비중은 제18대(2008년 총선) 51.0%에서 제19대(2012년) 33.9%, 제20대(2016년) 35.1%, 제21대(2020년) 18.4%로 줄어든다. 2017년 대선 당시 유승민 후보의 수도권 득표율(7.0%)은 전국 득표율(6.8%)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요즘 보수는 이전과 달리 중상위층 지향적이다. 2022년 7월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청년층 채무조정 방안이 대표적 사례다. 정부는 “주식, 가상자산 등 청년 자산투자자의 투자 손실 확대”를 도입 배경이라 밝혔다. 어느 정도 자금 여유가 되는 중산층 자녀를 위한 것처럼 포장했다. 그런데 채무조정은 일자리를 잃거나 소득이 낮은 취약계층이 주로 이용한다. 신용회복위원회가 2021년 채무조정을 받은 청년들의 연체 발생 사유를 집계한 자료를 보면 ‘생계비 지출 증가’가 30.0%로 가장 많았고 그다음이 실직(21.3%), 금융비용 증가(12.9%), 근로소득 감소(12.7%) 순이었다.
정수현 명지대 연구교수가 2019년 실시한 조사를 분석한 논문(‘당원들의 이념 성향과 정책 이슈에 대한 태도’, 2019년)에 따르면 성별과 연령 등이 동일하다면 바른미래당(바른정당의 후신) 당원이 자유한국당 당원보다 저소득층 복지, 고소득자 과세, 고등학교 무상교육 등 경제 이슈에서 더 보수적인 입장이었다.
그런데 정작 수도권에 거주하고, 유명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서 일하는 중상위층은 보수정당을 외면한다. MBC 기자였던 고 이용마씨가 1997~2012년 계층별 정치 성향 변화를 분석한 논문(‘2000년대 이후 한국 사회 계층균열 구조의 등장’, 2014년)에서는 사무직·전문직·공무원 등 신중산층이 강력한 민주당 지지층으로 변화했음이 나타났다.
여러 자료가 보여주듯 수도권의 보수 지지층은 자영업자, 블루칼라, 주부, 저소득층이 주력이다. 이들을 위한 정책을 펴지 않는 보수세력이나 정치인은 수도권에서 지지를 얻기 어렵다.
현직 의원의 우위가 강화되는 정당 구조 속에서 새 인물은 나오기 힘들어졌다. 새누리당 당직자 출신인 윤왕희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위원의 박사학위 논문(‘공천제도 개혁과 한국 정당정치의 변화에 관한 연구’, 2022년)을 보면 국민의힘 계열 정당이 총선 공천 과정에서 경선을 벌였을 때 현역 의원이 승리하는 비율은 84~92%에 달했다.(표2 참조) 윤 연구위원은 “중앙에서는 패권을 장악한 파벌이 전략 및 단수공천을 통해 자파를 유지 강화하는 데 몰두하고, 주류 현역 의원들은 인지도의 이점을 활용해 여론조사 경선에서 안정적인 우위를 확보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도전자가 성공하는 거의 유일한 길은 인터넷을 통한 지지자 확보다. 2021년 6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뽑힌 최고위원 5명은 여성 비율이 60%이고 평균나이가 46.2살에 불과했다. 그런데 조수진, 배현진 전 최고위원 등은 유튜브나 종합편성채널 등에서 전투력을 과시하는 ‘강성’이기도 했다. 586세대의 절대 우위 속에 팟캐스트, 팬클럽 정치에 의존해 몰락한 민주당과 비슷한 궤적을 국민의힘도 밟아가게 된 셈이다.
조귀동 <전라디언의 굴레> 저자·<조선비즈> 기자
*조귀동의 경제유표: 경제유표란 경제를 보면 표심, 민심이 보인다는 의미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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