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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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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과의 전쟁, 저를 위한 전쟁일까요?”

빈곤층 노인 서가난이 말하는 빈곤 정책
등록 2022-03-07 00:00 수정 2022-03-07 17:32
‘동자동 쪽방 공공주택사업의 흔들림없는 추진을 위한 주민 결의대회’가 대선을 앞둔 2022년 3월1일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새꿈 어린이공원에서 열렸다. 김원 제공

‘동자동 쪽방 공공주택사업의 흔들림없는 추진을 위한 주민 결의대회’가 대선을 앞둔 2022년 3월1일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새꿈 어린이공원에서 열렸다. 김원 제공

미세먼지 없는 파란 하늘 아래 초록 펼침막이 보였다. 아홉 글자가 선명하다. ‘이번 대선 나만 답답해?’
2022년 3월1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앞 야외 ‘광장마당’에 200명가량이 모였다. ‘세상을 바꾸는 2022 대선공동행동’(대선공동행동)이 주최한 ‘3·1 정치파티’에 모인 사람들이다. 대선공동행동은 2022년 2월 지역 시민사회단체들과 개인들이 꾸린 단체다. ‘미래의 비전 대신 네거티브와 막말이 난무하는 대선을, 답답해서 두고 볼 수가 없다’는 데 동의하는 이들이 알음알음 모였다고 한다.
참가자들은 ‘정권 교체 아니면 정권 재창출’ ‘정권 재창출 아니면 정권 교체’라는 돌림노래를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선에서 지워지고 사라진 노동자, 농민, 여성, 청년, 장애인, 성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되살려야 한다!” “누구를 뽑을 것인가를 말할 때가 아니라, 시민 스스로 정치와 나라를 책임지기 위한 목소리를 내야 할 때다!”
2016년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에 같이 다녔던 지역주민들이 모여 만든 시민단체 ‘동서울시민의힘’ 회원들도 이날 참석했다. 김신옥진 집행위원장은 “대선 후보 TV토론을 보면 주요 후보들이 서로 ‘거짓말하지 말라’는 공방만 하고 정작 성평등·노동권 같은 중요한 가치는 말하지 않는다”며 “대선에서 사라진 목소리를 함께 내고 싶어서 참여했다”고 말했다.
‘정치파티’의 마지막 순서는 거리행진이었다. 참가자들은 맨 앞에 ‘기미년엔 독립선언, 임인년엔 주권선언’이라고 쓴 펼침막을 세웠다. 지나가던 한 시민이 참가자들의 구호를 듣고 혼잣말하듯 말했다. “인정, 인정. 나도 누굴 뽑을지 모르겠어.”
제20대 대통령을 뽑는 투표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한겨레21>은 대선을 앞두고, 그동안 선거 국면에서 주요한 ‘표’로 계산되지 않은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대선 후보들이 좀처럼 발언하지 않는, 국민 개개인의 삶과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해 짚고 넘어가야 할 이야기다. 총 25명을 인터뷰했고 그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20대 여성, 장애인, 빈민, 비정규직 노동자, 기후위기 활동가, ‘차별금지법 활동가’ 등 7명이 직접 말하는 형식으로 재구성해 글을 싣는다. 이들은 말한다. 주어진 양자택일형 시험을 거부하고 문제의 오류부터 지적해야 한다고. _편집자주

“제 모든 정책엔 가난하고 참혹했던 저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2022년 2월22일 방송 연설

“팬데믹은 자영업자, 취약계층에게는 생사가 걸린 전쟁. 빈곤과의 전쟁 선포할 것.”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2021년 12월6일 선대위 출범식

“중위소득 100% 이하 시민에게 최저소득 100만원을 보장하는 시민평생소득 도입.” -심상정 정의당 후보 2021년 12월16일 기자회견

제 이름은 서가난, 30대 발달장애인 아들과 함께 삽니다. 오늘도 다세대주택 방바닥에 누워 아들을 지켜봅니다. 제 몸이 아픈 지 오래됐거든요. 여러 차례 토하고 쓰러졌는데 병원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10년 넘게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한 탓이죠. 오래전부터 연락이 닿지 않는 남편이 부양의무자(1촌 직계혈족과 배우자)라는 이유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의료급여 혜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몸이 좀 나아지면 공공일자리에서 간간이 일했어요. 여섯 달에 걸쳐 62일간 일해서 번 돈 120여만원으로 겨우 버텨나갔습니다.

3월2일 대선 후보 TV토론에서 저와 아들의 이야기가 나왔어요. “(서울 방배동 사건에서)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제대로 받아야 될 생계급여나 의료급여를 못 받은 거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대선에서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를 공약했는데 이런 일이 난 것. 폐지가 아니라 완화한 거다.”(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도 “부양의무제 완전 폐지 쪽으로 가는 게 맞다”고 수긍했죠. 문재인 정부는 생계급여에선 부양의무자 기준을 단계적으로 폐지했지만 의료급여는 그대로 뒀거든요. 가난한 게 죄죠. 인연을 끊고 사는 ‘이름만 가족’이 없었다면, 아픈 몸이 이렇게 원망스럽지는 않았을 텐데.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2020년 기준 213만여 명입니다.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한다는 대선 후보들의 약속을 들었습니다. 이재명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말했더라고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아예 언급조차 없었습니다. 저처럼 가난한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버티려면 무엇보다 소득이 있어야 합니다. 2022년 생계급여는 1인가구 기준으로 월 58만3444원 이하를 벌어야 받을 수 있습니다. 각종 복지급여를 정하는 기준이 되는 중위소득의 30% 선으로 정한 액수입니다. 생계급여를 받으려면, 공공일자리처럼 푼돈 받는 일밖에 할 수 없어요. ‘충분히’ 가난해야 하는 거죠. 돌고 도는 가난의 악순환입니다. 윤석열 후보는 이 기준을 30%에서 35%로 찔끔 올려준다는 공약을 내놨어요. 이재명 후보는 50%까지 올리겠다고 했고요.

윤석열 후보가 ‘빈곤과의 전쟁’을 선포하겠다고 말했지만, 저를 위한 전쟁은 아닌 것 같아요. 선거에서 표밭이 되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코로나19로 고통받으니 그걸 해결해주겠다는 말로만 들려요. 쪽방촌·고시원·거리에 사는 이는 나와는 거리가 먼, 다른 세계의 사람들일까요. 살다가 어려운 일이 생기면 누구나 빈곤을 겪을 수 있잖아요. 보이지 않지만 여기 가난이 있다고, 이 자리를 빌려 말하고 싶습니다.

이정규 기자 jk@hani.co.kr

2020년 12월 있었던 서울 서초구 ‘방배동 모자’의 비극과 빈곤단체 활동가·연구자의 이야기를 종합했습니다.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 정택진 <동자동 사람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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