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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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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더 절박한가, 누가 더 세게 결집하나

투표용지 인쇄 끝나고 사전투표 하루 앞두고 이뤄진 윤석열-안철수 단일화
전문가 전망 엇갈리는 속 파장 가늠하기 어려워
등록 2022-03-05 11:01 수정 2022-03-08 14:04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022년 3월3일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 앞 광장에서 열린 집중 유세에서 이 후보와 단일화한 뒤 지원 유세에 나선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표와 함께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022년 3월3일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 앞 광장에서 열린 집중 유세에서 이 후보와 단일화한 뒤 지원 유세에 나선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표와 함께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번 대선 최대 변수인 야권 후보 단일화가 사전투표(3월4~5일)를 하루 앞두고 성사됐다. 초박빙이던 판세는 더욱 격랑에 휩싸였다.

2022년 3월3일 아침 8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국회 기자회견장에 나란히 섰다. “안철수, 윤석열 두 사람은 ‘더 좋은 정권교체’를 위해 뜻을 모으기로 했다. 저희 두 사람이 정권교체의 민의에 부응해 함께 만들고자 하는 정부는 미래지향적이며 개혁적인 ‘국민통합정부’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두 당은 선거 후 즉시 합당을 추진할 것이다. 이제 통합과 미래로 가는 길만 남았다.” 이 선언은 어떻게 나왔을까.

‘안철수 방지법’을 만들어달라는 요구

2월13일 안 후보는 여론조사 방식을 통한 야권 단일화를 제안했다. 윤 후보는 ‘담판’ 방식을 고수하며 거부했다.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안 후보는 일주일 뒤인 2월20일 ‘단일화 결렬’을 선언했다. 2월27일 윤 후보가 기자회견을 열어 안 후보 쪽과의 막후 단일화 협상 과정을 낱낱이 공개했고, 양쪽은 단일화 무산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겼다. 야권 단일화는 파국으로 치닫는 듯 보였다. 게다가 이튿날인 2월28일 투표용지가 인쇄됐다. 단일화의 문이 닫히는 듯했다. 그러나 반전을 거듭한 끝에, 두 사람은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한 3월3일 새벽 전격 단일화에 합의했다.

담판을 요구한 건 안 후보 쪽이라고 한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3월3일 불교방송(B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안철수 대표 측의 갑작스러운 요청으로 저희가 단일화에 나서서 이렇게 성사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단일화 합의 이틀 전인 3월1일 국민의당 내부 회의에선 단일화 여부를 놓고 찬반 격론이 벌어졌고, 안 후보가 이 회의 이후 단일화 결심을 굳힌 것으로 추정된다는 보도가 나왔다. 실제 이날 안 후보는 ‘윤 후보와 만날 의향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정치인들끼리 중요한 어젠다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면 어떤 정치인이든지 만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야권 단일화가 물 건너간 듯 보이는 상황에서 단일화 논의의 불씨를 살리는 발언이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2022년 3월3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 소통관에서 야권 후보 단일화 기자회견을 마치고 손을 맞잡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2022년 3월3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 소통관에서 야권 후보 단일화 기자회견을 마치고 손을 맞잡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부자 몸조심 “단일화는 시작에 불과”

안 후보는 이번 대선 기간 내내 ‘안일화’(안철수로 단일화)나 ‘독자 완주’를 강조했다. 그의 독자 행보를 지지한 이들은 윤 후보와의 단일화 발표 직후인 3월3일 국민의당 누리집, 유튜브 댓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등 온라인에서 비판을 쏟아냈다. 국민의당 누리집 자유게시판에는 “이번만은 완주할 줄 알았다. 이 순간부터 안철수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 “다당제라는 소신에 존경을 담아 지지했다. 많은 지지자가 안철수의 결정에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등 200개에 가까운 비판글이 올라왔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재외국민 투표 이후 후보직 사퇴를 막는 ‘안철수 방지법’을 만들어달라는 요구가 올라왔다. 안 후보에게 투표한 재외국민 유권자의 표가 사표가 된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그럼에도 안 후보가 단일화에 합의한 이유는 뭘까. 안 후보가 독자 완주하고 야권이 대선에서 패배하는 경우 패배의 책임을 뒤집어쓸 수 있고 완주의 실익도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안 후보가 지난 대선에선 21%를 득표했지만 이번에는 많이 득표해봐야 10% 내외다. 제3지대에 남아 있는 한 다음 선거에서 또 단일화 압박에 몰리기만 할 뿐이다. (거대 정당과의 단일화와 합당으로) 앞으로 더는 ‘철수’하지 않기 위해 이번에 ‘철수’한 것으로 본다”고 짚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안 후보가 정권교체라는 ‘명분’도 챙기고, 후보 사퇴라는 ‘희생’을 통해 그동안 안 후보가 갖지 못했던 세대(60대 이상)와 지역(영남)이라는 국민의힘의 정치적 자산을 취하는 ‘실리’를 추구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시민 작가는 3월3일 기독교방송(CBS) 라디오에 출연해 “권력 분점이라는 이면합의가 있었을 것”이라며 1997년 대선의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처럼 윤-안 단일화에서도 내각 구성 등을 놓고 합의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윤석열-안철수의 뒤늦은 단일화가 선거판에 미칠 영향은 가늠하기 쉽지 않다. 3월4~5일 사전투표 용지는 현장에서 즉석 출력되기 때문에 안 후보의 이름 옆 기표란엔 ‘사퇴’라고 표기된다. 그러나 본투표(3월9일) 용지는 이미 인쇄가 완료된 상태여서 기표란에 사퇴 표기는 되지 않고, 투표소에 사퇴했다는 안내문이 붙는다. 적잖은 무효표가 나올 상황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여야는 각각 지지세력이 총결집할 것이라며 표심의 향배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윤 후보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예측불허의 살얼음판 승부를 이어온 상황에서, 단일화로 안정적인 정권교체 발판을 마련했다며 한껏 고무된 분위기인데다 ‘부자 몸조심’하는 움직임마저 감지되고 있다. 권영세 선거대책본부장은 3월3일 확대선거대책본부 회의에서 “단일화는 매우 감동스럽지만 시작에 불과하다. 단일화에 우리가 조금이라도 해이해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야권 단일화 이슈는 끝났다고 판단했던 민주당은 비상이 걸렸다. 우상호 총괄선대본부장은 3월3일 기자간담회에서 “새벽에 갑자기 이뤄진 두 후보의 단일화는 자리 나눠먹기형 야합으로 규정한다. 오늘 하루 여론이 중요하다. 정권교체 열망이 높아질지, 야합으로 평가받을지 중대 기로라고 본다. (안 후보를 지지했던) 지지자 설득이 어려워 판세에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 갈래로 나뉜 안 후보 지지자

공교롭게도 단일화가 이뤄진 3월3일부터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할 수 없어 단일화의 파장을 여론조사로 확인할 수 없다. 이 기간에는 여론조사는 할 수 있지만 공표는 금지된다. 다만 3월2일까지 조사가 이뤄져 3월3일 발표된 단일화 관련 여론조사를 참고할 수 있다. <한국경제>가 입소스에 의뢰해 3월1~2일 전국 18살 이상 유권자 1천 명에게 한 조사에서 야권이 단일화할 경우 지지율이 이 후보 42.8%, 윤 후보 48.9%로 나타났다. 단일화를 했지만 두 후보의 격차는 오차범위(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내인 6.1%포인트다. 후보 단일화를 할 경우 안 후보 지지층의 44.9%가 윤 후보에게, 25.1%가 이 후보에게, 8.4%는 심상정 정의당 후보에게 옮겨가는 것으로 집계됐다. 안 후보 지지자가 세 갈래로 갈라진 것이다.

<문화일보>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3월1~2일 전국 만 18살 이상 남녀 1002명을 조사한 가상 양자대결에서도 이 후보 45%, 윤 후보 45.9%로 나와 오차범위(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내 초접전 양상을 보였다. 두 조사 결과는 단일화 효과가 거의 없음을 보여준다. 반면 윤 후보가 야권 단일후보가 되면 이 후보를 오차범위 밖에서 이긴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중앙일보>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2월28일~3월2일 전국 만 18살 이상 남녀 2013명에게 한 여론조사에서, 야권 단일화를 하면 이 후보 41.5%, 윤 후보 47.4%로 오차범위(95% 신뢰수준에 ±2.2%포인트) 밖에서 윤 후보가 앞서는 결과가 나왔다. 안 후보의 지지층 중 야권 단일화에 따라 이 후보로 31.2%, 윤 후보로 29.2%, 심 후보로 8.5%가 옮겨갔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조)

여론조사 결과도 이렇게 엇갈리게 나와, 단일화의 파장을 섣불리 가늠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이 조사들을 실시한 뒤 야권 단일화가 성사됐기 때문에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어느 쪽 지지층이 더욱 절박하고 세게 결집하냐에 따라 선거 결과는 달라질 것이다.

단일화 효과에 대해 전문가들의 전망도 엇갈린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안 후보의 지지율이 6~7%까지 떨어졌는데 그 지지율 이상의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 차마 국민의힘은 못 찍겠다고 망설이던 유권자에게 이제 안 후보가 함께하게 됐으니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국민의힘도 찍을 수 있다는 심리적 명분을 줄 것”이라고 봤다. 반면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단일화 효과가 무의미할 정도는 아니지만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본다. (투표용지 인쇄 이후로) 단일화 시점이 늦었고, 안 후보가 그동안 단일화에 분명히 선을 그었어서 (이제 와서 하는) 단일화 모양새가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2030 여성들의 향방이 중요

중도층, 그중에서도 2030 여성들의 향방이 중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엄경영 소장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안 후보 지지자에 2030 여성이 많다. 정권심판론과 젠더 문제로 이 후보나 윤 후보에게 마음을 주지 못하고 안 후보를 지지한 것이다. 탈이념, 탈진영 성향의 2030 여성 표심을 어느 쪽이 잡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갯속 판세이던 이번 대선. 안개가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과 맞물려 여전히 자욱하다. 3월4일과 5일 사전투표로 유권자의 선택은 이미 시작됐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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