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성별로 갈린 20대 표심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일부 정치인은 20대 남성이 정부의 여성 우호적인 정책에 반발해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에게 표를 줬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여성들은 오히려 정부·여당이 펼친 페미니즘 정책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한겨레21>은 20대의 마음을 직접 들어보기로 했다. 지상파 방송 3사 출구조사에서 ‘오세훈 후보를 찍었다’고 답한 20대 남성(72.5%) 가운데 중도보수 또는 스윙보터(마음이 흔들리는 유권자) 성향을 지닌 2명, 소수 정당 후보에게 투표한 20대 여성(15.1%) 가운데 2명을 찾았다. 4월13일 밤 10시에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서 이들 4명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처음엔 서먹해했지만 대화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20대의 취업난과 주거 문제, 불확실한 미래, 재테크 그리고 기성 정치에 대한 아쉬움까지. 기성세대가 20대 남성과 여성 사이 갈등을 부추기는 동안, 정작 20대가 겪는 공통의 어려움은 논의조차 되지 않는다는 공감대도 생겼다.
여기 모인 네 분은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찍지 않았는데요. 이유가 무엇인지 말씀해주세요.
베토디(남) 저는 지난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을 뽑았어요. 정유라 사태, 국정 농단 등을 보며 불공정하다고 느꼈거든요. 총선 때는 비례대표에 정의당을 찍었습니다만, 이번 선거에선 오세훈 후보에게 투표했습니다. 민주당이 유독 네거티브에만 집중한다는 느낌을 받아 안 뽑았습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두 후보가 하는 네거티브는 쳐다도 안 봤어요. 키워드만 알아요. 도쿄, 페라가모, 생태탕… 보다보면 지쳐요. 그래 생태탕이 어쨌는데?
A(여) 제 주변에 진보 성향인 친구들도 오세훈 뽑았어요! 민주당의 오만함을 혼낼 거라고 말한 친구도 있었고요. 20대 여성 친구는 박영선을 뽑아주고 싶어도 이사하며 부동산 때문에 질려서 오세훈으로 마음 굳혔다고 했어요.
복숭아(남) 20대 남성이면 여당을 절대 뽑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이 암묵적으로 공유됐던 것 같아요. 그동안 청와대와 여당의 정책과 발언이 청년, 그 가운데 20대 남성에 대해 몰지각하다고밖에…. 어이없는 사건이 상습적으로 일어났어요.
A(여) 오! 어떤 사건 때문인지 궁금합니다.
복숭아(남) 2018년 정부가 청년창업사관학교를 만들었는데요. 여성 지원자에게 3점을 가점으로 부여했어요. 특허 보유자나 장애인 등 약자에 대한 가산점은 0.5점이었거든요. 여성이라는 이유로 전문성을 입증한 사람이나 다른 소수자보다 2.5점이나 앞서서 시작하다니 어이가 없었습니다. 논란이 되자 여성 가산점은 3점에서 0.5점으로 바뀌었습니다. 정부가 잘못을 인정한 거라 생각합니다.
민초단(여) 소수 정당에 표를 계속 줘야 정치 다양성이 생긴다는 신념 때문에 항상 소수 정당을 지지했는데요. 여당에 실망했던 건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이 결정적이었어요. 민주당은 ‘피해 호소인’ 등의 단어를 쓰며 고인의 잘못을 축소하려는 태도를 보였고요. 민주당에 표를 던지는 게 정말 의미가 없겠다는 생각이 굳어졌습니다. 제 주변 사람이 데이트폭력으로 죽었어요. 그런 경험이 공유되지 않았으면 해요. 여성 의제를 던진 여성의당 후보에게 표를 줬어요.
A(여) 민주당이 피해자에게 제대로 사과도 하지 않은 채 당헌·당규를 개정해서 이번 선거에 후보자를 낸 일은 정말 별로였어요. 심지어 박영선 후보는 권력형 성폭력과 차별금지법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답변을 회피했어요. 이번 선거가 권력형 성폭력으로 발생한 만큼 20대 여성은 거대 양당이 아닌 다른 선택을 하겠다는 방향이 명확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20대가 보수화됐거나 진보에서 이탈했다는 분석이 나오는데요. 기성세대의 이런 진단을 어떻게 생각해요.
복숭아(남) 보수 입장에서 20대 남성은 보수화된 건 아닌 거 같아요. 보수화되려면 지킬 기득권이 있어야 하는데요. 20대 남성은 가진 게 무엇이 있을까요. 동일한 출발선, 기회의 평등에서 차별받고 있어요. 정당한 시험을 거쳐 경쟁할 기회를 빼앗기고 있고요. 출발선 자체가 사라지는 상황에서 벌이는 생존 투쟁이랄까요. 벼랑 끝으로 몰려 보수를 찍는 것 같아요.
베토디(남) 맞아요. 저는 28살에 결혼하고 싶었는데…. 엔(N)포족이 남 얘기인 줄 알았는데 아닌 거 같아요.
A(여) 생존 문제에서는 여성과 남성 모두 힘든 시기가 아닐까요. 20대 여성의 자살과 우울을 들여다보면, 이 아슬아슬함에서 젠더 갈등, 성차별 문제를 겪다보니 (삶을) 포기하게 되는 거 같아요. 더 지속해도 더 나은 삶이 있을 거라는 기대가 없는…. 흑흑. 선거 해석을 보면 자꾸 20대 여성과 남성을 갈라치니, 서로 동료 시민으로서 멀어집니다. 어차피 기성세대보다 저희가 더 오래 같이 살아야 하는데.
복숭아(남) 진짜…. 20대 여성, 남성 둘 다 힘든 게 맞아요. 사실 20대 남성이 기성세대에 대한 항의 표시, 정책에 대한 불만으로 오세훈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 건데 어느새 성별 갈등으로 둔갑하고요. 20대 남성은 기성세대의 잘못된 청년 정책에 20대 여성이 연대해주길 바라고 있을지 몰라요.
기성세대의 잘못된 청년 정책은 뭐가 있을까요.
A(여) 박영선 후보 캠프에서 무슨 데이터 어쩌고 주는 걸 청년 정책이라고 해서… 담당자 누구야?(※박영선 후보는 서울 청년에게 매월 5기가의 무료 데이터를 주겠다는 ‘청년 반값 데이터요금’ 공약을 내놓았다.)
복숭아(남) 데이터 무료 제공. 끔찍한 청년 정책이었어요.
A(여) 기성세대가 20대의 욕망을 너무 납작하게 이해한다고 봐요. 부동산 욕망으로 오세훈 찍었다고 세속적이라 하지 않나. 밀레니얼세대에게 주거 문제는 부동산만 있지 않잖아요. 누구와 어떻게 살지도 중요하잖아요. 생활동반자관계법도 있고 주거환경의 질적 개선도 있고….
민초단(여) 정치에서 당사자성이 가장 중요하지만, 기성 정치인은 아무리 각성해도 (20대에 대한) 당사자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20대가 조국 사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 등 ‘공정’에 민감해서 여당을 심판했다는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카톡방에는 갑자기 침묵이 이어졌다. 4분간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20대가 생각하는 공정이 대체 무엇이냐’는 질문으로 대화가 다시 시작됐다.
베토디(남) 이런저런 사태를 겪으며 공정에 대해 더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공정하지 않은 것에 분노하는 건 맞는데요. 그럼 뭐가 공정한 거죠? 공정하다는 것도 다 착각 아닐까라는 생각도 하게 되네요.
복숭아(남) 적어도 평가 방법이 투명하고 공개돼야 할 것 같아요.
민초단(여) 현 정부가 이분법적으로 공정에 접근하다보니 오히려 발목을 잡히지 않나 싶어요. 인국공(인천국제공항) 사태의 경우 비정규직은 약자야, 그러니까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줄게, 이러면 너희를 강자에 편입시켜주는 거야! 정부가 이렇게 생각했던 거 같아요. 시스템에 깔린 불평등에 집중했어야 하는데 말이죠.
A(여) 공정 담론 때문에 불평등 논의가 지워지는 게 참 어려워요. 오히려 출발선이 달라야 불평등을 줄일 수 있는데요. 그래야 공정한 경쟁이 될 수 있는데, 이 가능성을 공정 담론이 닫아버렸다고 생각합니다. ‘공정해야 한다’는 말 자체가 일단 반박하기 어려운 말이라서 더 어렵고요.
페미니즘 이슈로 서울시장 선거 향방이 남녀별로 좀 갈렸다고 보나요.
A(여) 현 정부의 페미니즘 정책으로 체감하는 게 있나요? 저는 체감이 안 돼서요. 그냥 공정 담론+반페미 정서+이남자(20대 남자) 현상. 무언가 그 조합으로 페미니즘이 되게 문제인 거 같은데. 딱히 여당은 어떤 정책도 없음. 페미니즘 정책도 없는데 왜 여성들만 자꾸 같이 끌려 들어가서 욕먹죠? 정책적 한계와 실책을 페미니즘을 포함한 갈등으로 넘겨버리고.
민초단(여) 여당이 성과를 낸 게 없다고 보니까요. 당연히 여성 인권을 생각하는 20대 여성 입장에선 소수 정당을 찍을 수밖에 없죠. 저출산부터 시작해서 그저 노답.
복숭아(남) 여성가족부에서 경력단절여성을 지원하는데 부정수급 논란이 있었어요. 경력단절이 아닌 여성이 지원받았다, 그런 정책상의 문제가 남성들에게 페미니즘에 계속 피로감을 느끼게 해요. 지금 와선 그냥 남성들이 페미니즘 자체를 피해요.
베토디(남) 페미니즘이 진짜 부정적 어감이 돼버린 게 큰 거 같아요!
현재 20대가 겪는 생존 불안, 저성장,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 등은 공통적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복숭아(남) 진짜 미래를 설계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100세 시대라는데 오르는 집값, 취업시장을 보면 저축도 생애설계도 그냥 하루 벌어 하루 쓰는 게 아닐까 걱정되네요. 국민연금공단에서 연금은 2050년 전후로 고갈된다고 하고. 불확실성이 너무 커요.
A(여) 집 사는 친구 보면 부모님이 결국 도와주세요. 사회가 문제를 해결해줄 거란 기대감이 아예 사라지니까 개인이 계속 해결하려는 거 같아요.
민초단(여) 저는 지금 취준생인데 어머니가 조언해서 주택청약 넣고 있거든요. 진짜 취직 못한 상태에서 이래야 하나 싶어서 좀 슬퍼요. 제 주변에 취직한 친구들은 다 비트코인이나 주식 합니다. 근데 다들 ‘쫌쫌따리’(조금씩)로 수익 거두는 정도인 것 같았어요. 제 친구는 삼전(삼성전자) 주식 ‘9만전자’일 때 팔아서 좀 따뜻했다고 하더라구요.ㅋㅋㅋ
베토디(남) 저도 요즘 그 생각 진짜 많이 했어요. 직업 안정성이 생기면 나도 그런 재테크 공부 맘 편히 하고 싶다. 저는 만으로는 20대지만 30살로 넘어오면서 캥거루족인데요. 집에 있는데 ‘어른 계신가요’라고 누가 물어보면 어른 없다고 하는 제 모습….
A(여) 유능한 개인이 돼야만 평범한 노후를 누릴 수 있다는 것. 심지어 커뮤니티도 다 유료화하더라고요. 독서모임도 유료, 대화 나누기도 유료, 관계도 돈으로 사고요.
복숭아(남) 해야 하는 건 점점 많아지는데 보상은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에요.
20대는 스스로를 “내 문제가 가장 우선시되는 세대”(민초단)로 정의한다. 밀레니얼세대는 “586세대와 다르게 받아들이는 정보 양도 너무 많고, 역사적 사건에 받는 임팩트도 다른 세대”(베토디)라는 말도 나왔다.
이런 세대가 “(20대 남녀 모두) 기성세대보다 함께 오래 살아가야 할 동료 시민”(A)으로서 앞으로 어떤 정치를 만들어가게 될까. “소수 정당이 더 많아지고 다당제로 가야 한다.”(복숭아) 중도보수 성향의 20대 남성이 소수 정당을 지지하는 20대 여성에게 화답하며 밝힌 정치적 소신이다.
좋은 정치를 하려는 정치인은 시민을 잘 봐야 한다. 거대 양당 정치는 청년을 정말 알고 싶어서 관심을 갖고, 이해하고 싶어서 대화하며 본 적이 있을까. 이번 선거의 승자와 패자 모두 진짜 20대를 봐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
이정규 기자 jk@hani.co.kr
*이어진 기사 - 바보야, 문제는 ‘이남자’가 아니야
http://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020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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