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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땡큐] 국회의원에겐 없는 권리

등록 2020-07-11 05:07 수정 2020-07-11 05:31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3천만원 무서워서 농담도 못하겠네.” “3천만원 판결에 얼어붙은 회식 분위기.” “3천만원 없으면 쳐다보지도 말고 얘기하지도 말고 접근하지도 말라.”

한국 최초의 성희롱 소송이었던 ‘서울대 화학과 신정휴 교수에 의한 조교 성희롱 사건’ 1심에서 피해자가 승소해 3천만원 배상 판결이 나왔을 때, 모이는 자리마다 나왔던 말들을 기억한다. 이 정도 농담도 못하냐며 억울해하던 얼굴들. 전혀 위축감 없이 ‘위축감을 느낀다’고 큰 소리로 떠들어대던 목소리들. ‘동료 시민을 괴롭힌 사람’의 자리를 받아들이지 못해 ‘3천만원 없는 사람’이라는 약자의 자리로 냉큼 옮겨 앉던 그 뻔뻔함들. 26년 전 일이지만, 기시감을 느낀다.

정말 무서운가

‘엄살’은 기득권의 단골 레토릭이다. “무서워서 말도 못하겠다”는 사람치고 정말 무서움을 느끼는 사람은 없다. 21세기에 사람이 일하다가 떨어져 죽고 끼여 죽고 빠져 죽고 병들어 죽는데도, 기업주는 노동조합의 파업 때문에 ‘손해를 입었다’고 소송한다. 오랜 투쟁 끝에 호주제가 폐지될 때, 반대파들은 “나라 망한다” “가족이 무너진다”고 한탄했다. ‘디지털성범죄 처벌을 강화하라’는 10만 명의 국민청원을 받아들고도 어떤 정치인들은 “예술작품”이라 생각하고 성범죄물을 만드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혹시 무슨 피해(?)라도 볼까 살뜰히 걱정했다.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손아무개의 미국 송환을 막아달라는 부친의 청원글에는 ‘가해자도 달리 보면 이 사회의 피해자’라는 유서 깊은(?) 논리도 등장한다.

“다수 국민 역차별” “표현자유 말살 독재법”.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세력이 만든 구호다. 이들의 조직력, 유튜브에 넘쳐나는 동영상, 그 속도와 ‘생산량’을 생각하면 도저히 믿기 어렵지만, 이들은 자신이 ‘차별당하고’ ‘자유를 빼앗기는’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언어는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이다. 무엇이 ‘손해’ ‘인권’ ‘피해’ ‘차별’인지 정의하는 것 자체가 권력이고 정치다. 특히 ‘역차별’이라는 용어가 끼치는 사회적 해악은 이루 말할 수 없는데, 그중 하나는 권리가 아닌 것을 ‘권리’로 호도해 인권을 제로섬게임처럼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206명의 국회의원에게

2000년대 초반 장애인 이동권이 ‘비장애인을 역차별’한다고 주장한 사람도 있었지만, 투쟁의 결실로 지하철역마다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자 그 혜택은 모두의 것이 되었다. 유아차와 함께 이동하는 보호자, 관절염이 심한 노년층, 목발을 사용하는 청년, 무거운 짐을 나르는 택배노동자, 통증에 시달리는 환자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것을 볼 때, 우리는 ‘우리 모두에게 엘리베이터가 필요한 순간이 올 수 있음’을 깨닫는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이들도, 인생의 어떤 순간에는 결국 차별금지법의 보호를 받을 것이다.

그런데 ‘포괄적 차별금지법(안)’에 대한 의견을 묻는 KBS 설문조사에서, 국회의원 300명 중 206명이 입장 표명을 거부했다고 한다. “별생각이 없다” “공식적으로 답하고 싶지 않다” “내 소신과 지역구 민심이 달라 의견을 밝히기 어렵다” “아는 목사님이 많다” “법에 대해 의원이 답하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한다” 등 이유도 가지가지다. 입법 활동을 직무로 하는 국회의원이 법의 취지와 내용을 오해하는 시민들을 향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든다. 그래서 덧붙인다. 국회의원은 ‘입장 표명을 거부’할 권리가 없다. 국민 중 힘세고 목소리 큰 사람만 골라서 두려워할 권리가 없다. 그들이 대표하는 유권자가 어떤 차별을 겪는지 모를 권리가 없다.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 매월 평균 1200만원(2019년 기준)의 세비를 받는 한국의 국회의원들. 당신들에게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몸을 사릴 권리가 없다.

전희경 여성주의 연구활동가·옥희살롱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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