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국가정보원은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활동 결과를 담은 보고서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을 내어 과거 권위주의 정권 때 국정원 행태를 반성했다. 그러나 이 보고서가 나온 지 고작 2년여 만에, 이명박 정부 국정원은 전교조, 민주노총에 노골적인 와해 공작을 펼친다. 군사정권의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의 공작과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 공작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전모는 10년이 지난 2020년, <한겨레21>이 입수한 국정원의 ‘노조 와해 공작’ 국고손실 재판기록 1만여 쪽을 통해 밝혀졌다.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에게 모두 유죄를 선고하면서 이렇게 밝혔다. “국가정보원의 행위는 종국적으로는 헌법상 보장된 민주노총과 그에 소속된 노동자들의 단결권을 침해할 위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개별 노조의 자주적·자율적 의사결정에 터 잡아 진행돼야 하는 제3노총의 설립 과정에 국가기관이 직접 관여한 것으로서 그 위법성이 중대하다.”
이제는 ‘죽은 권력’인 이명박 정부 국정원의 해묵은 과오를 10년 뒤 기록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할지도 모른다. 그 답은 13년 전 보고서 마지막 부분에 나온다. “국정원은 지난날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철저한 자기반성과 함께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나가야 한다. 이를 통해 향후 모범적인 정보기관으로서 국민의 신뢰를 받아 국민에게 충실히 봉사할 수 있는 기틀을 세워야 할 것이다.” 그 약속을 국정원은 다시 깨지 않을 것인가, 정권이 바뀌어도, 시대가 달라져도.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선생님 괜찮으세요? 저 아저씨들 선생님한테 왜 그러는 거예요?”
2009년 6월3일, 당시 서울 경기상업고등학교 역사교사 이원철(56)씨에게 학생들이 던진 질문이다. 그날 아침, 학생들이 하나둘 등교하던 경기상고 교문 앞에 큰 펼침막을 붙인 승합차 한 대와 팻말을 든 사람 네 명이 서 있었다. 펼침막에 적힌 구호는 이랬다. “김일성이 이뻐하는 주체사상 세뇌하는 종북집단 전교조, 북한에서 월급 받아라!” “전교조의 참교육과 계기 수업은 국민 속인 민중혁명교육이다. 당장 파기하라!” 이씨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조합원이고, 팻말을 든 이들은 ‘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 ‘교육과 학교를 위한 학부모연합’ 등 회원이었다.
저 사람들은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
“‘김일성이 이뻐하는’ 문구를 보는 순간 정말 피가 거꾸로 솟더라고요. 아이들 등교하는데 그러고 있으니까 정말 참을 수 없었어요. 제가 당시 학교 홍보 업무를 맡고 있어서 애교심이 컸고, 그때는 전교조가 무상급식이나 학생인권조례처럼 학교 현장에 많은 변화를 이끌던 때였어요. 전교조 조합원이라는 자긍심도 컸죠.” 이씨는 출근길에 그들을 발견하고 다가갔다. 그리고 팻말을 들고 있던 사람에게 “이것은 1인시위가 아니라 불법집회다. 아이들 등교 방해하지 말라”고 항의했다. 그들은 “네가 뭔데 그러냐”고 맞받아쳤다. 언성이 높아졌다.
이 시위대가 학교를 찾아오기 석 달여 전인 2009년 2월, 전교조는 초·중학생 진단평가가 학교와 학생을 서열화하는 일제고사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며 반대 입장을 냈다. 이 보수단체들은 2009년 3월부터 6월까지 학생들 등교 시간에 맞춰 진단평가 반대 성명을 냈던 전교조 조합원이 속한 학교 40여 곳을 돌며 전교조 반대 시위를 벌였다. 경기상고에는 반대 성명에 참여한 교사가 없었음에도 이들은 7일간 시위를 벌였다.
실랑이를 벌인 뒤에는 이씨 사진과 ‘전교조 노동자 이○○을 즉각 파면하라’는 문구가 펼침막에 추가됐다. “시위가 길어지다보니 경기상고 동창회까지 제 편에 서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 사람들이 저와 함께 항의했던 선생님을 경찰에 고소해서 경찰서에서 조사도 받았습니다. 민사소송도 냈고요. 그럴수록 의문이 들었죠. ‘저 사람들은 도대체 왜 저러는 것일까.’”
이명박 정부 때, 보수단체들은 정권과 발을 맞춰 전교조 ‘죽이기’에 앞장섰다. 전교조가 정부 정책에 반대하고 진보정당에 후원한 교사들을 검찰이 수사하면, 이에 맞춰 보수단체들은 전교조 앞과 학교 앞에서 시위했다. 이들은 전교조와 조합원 교사를 잇따라 고발하고, 보수언론에 광고를 냈다. 전교조 파괴에 나선 정권과 보수단체의 연결고리는 국가정보원이었다.
2009년 2월16일 국정원 심리전단은 주요 업무보고를 통해 “금년은 ‘좌파척결’ 국론통합 원년화”라는 목표를 잡고 “좌파 무력화 지속, 전교조 교사 압박”을 추진 계획으로 내걸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전교조와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민주노총을 ‘3대 종북좌파’라고 규정하며 그 가운데 “전교조가 가장 문제”라고도 주장했다. 그러나 국정원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교조 고사 작전에 나섰는지 전모가 드러난 적은 없다.
<한겨레21>은 국정원이 2017년 ‘노조 파괴 공작 의혹’에 관한 내부 감찰을 벌여 2018년 4월 검찰에 송부한 ‘수사참고자료’를 입수했다. 여기에는 박근혜 정부 시기인 2013년 교사 5만7천 명(당시 기준)이 가입한 전교조가 해직교사 6명이 가입했다는 이유로 법외노조가 된 것에 대한 의문을 풀 수 있는 자료가 담겼다. 전교조 법외노조화를 계획한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노조 할 권리를 ‘혐오’했던 이명박 정부 국정원이었다.
[%%IMAGE2%%]국가기관 조합원 대량해고 작전 벌이던 때
이명박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지속해서 전교조에 공격을 퍼부었다. 2008년 교육감 선거 때 조합원 1천 명이 주경복 후보에게 선거자금을 대여해줬다는 것을 문제 삼아 검찰이 수사에 나섰고 그 결과 6명이 해고됐다. 같은 해 진단평가 당일 현장체험학습을 학생들에게 안내했다는 이유로 13명이 추가로 학교를 떠나야 했다. 2009년에는 이명박 정부의 주요 정책에 반대하는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사 18명이 희생양이 됐다. 2010~2011년 민주노동당에 후원금을 낸 교사들도 같은 운명을 맞았다. 그러나 2008년 해고된 6명을 제외하고는 소송을 통해 전원 복직했다. 전교조는 이 시기를 “국가기관을 동원한 조합원 대량해고 작전”이 벌어진 시기라고 설명한다.
“해직자 노조 가입을 인정하는 전교조 규약을 이유로 불법단체화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 국정원 문건을 보면, 2010년 1월22일 국정원은 청와대에 이렇게 보고한다. 닷새 뒤인 1월27일, 보수 학부모 단체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들의 모임’에 “전교조의 교원노조법 위반 규약 비판 여론을 조성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단체는 노동부(현 고용노동부)에 “전교조가 교원노조법을 위반해 해직자 30여 명이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며 ‘전교조 설립 취소 검토 요청’ 공문을 보내고, 노동부는 같은 해 3월31일 “교원 신분을 상실한 사람에게 조합원 자격을 부여하고 있는 규약을 시정하라”고 전교조에 시정명령했다. 현재까지 10년째 이어지는 ‘전교조 법외노조화’가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전교조는 이 시정명령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자 2010년 9월14일 국정원은 청와대에 ‘전교조의 ‘조직 불법단체화’ 회피 전술 조기 무력화’라는 문건을 보고한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까지 청와대 캐비닛에서 보관 중이던 문건으로, 문재인의 청와대가 국가기록원에 넘긴 것을 검찰이 압수수색해 확보했다. 대통령비서실장, 정책실장, 민정·홍보·고용복지·교육문화수석에게 전달된 것으로 보이는 이 문건에는 이명박 정부 국정원의 전교조 법외노조화 추진 전략 내용이 구체적으로 나온다.
[%%IMAGE3%%]2013년 박근혜 정부 ‘노조 아님 통보’
“고용부는 시정명령을 한 번 더 거부시, 노조 설립 취소를 통보할 방침 아래, 명분과 시기를 고려, 민주노동당 가입 교사 징계·G20(정상회의) 종료 이후 추진 계획. 이번 불법단체 전환 추진이 전교조의 비뚤어진 행태를 바로잡을 기회. 교육과학기술부는 (민주노동당 가입 교사) 징계 지연 교육청을 경고하고, 9월 한(안에) 해직 조합원 양산 유도. 고용부는 전교조의 결속력이 저하되는 12월 중 ‘2차 시정명령’ 등 불법단체화 착수. 노조 설립 취소 이후 ‘전교조=불법단체’임을 강조, 유사 노조행위 차단.”
국정원은 정부 조처가 정당하다는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보수단체를 적극 활용하며 자금을 댔다. 국정원 문건에는 보수단체에 지급할 예산이 적힌 사업계획서와 예산의 현금 지급을 확인한 자금집행명세서, 보수단체가 돈을 받았다는 영수증이 세트로 묶여 있다. 예를 들어 2010년 7월29일 “정부 교육정책을 악의적으로 왜곡하는 좌파 교육감 및 좌편향 이념교육을 실시하는 전교조 교사를 검찰에 고발, 반정부·친북 활동 압박” 목적으로 법률자문 비용, 고발장 작성 경비 200만원이 ‘반국가교육 척결 국민연합’에 지급됐다. 원 전 원장에게 보고된 ‘공교육 살리기 학부모연합’의 ‘전교조 실체 폭로 학부모 간담회’(2010년 9월14일)나 ‘현대사포럼’이 개최한 각종 토론회와 구국기도회 등에도 세금이 쓰였다. 보수언론의 의견광고 게재비 지원도 숱했다. ‘가두 이벤트’라 불린 1인시위는 1회에 30만~50만원 수준으로 단가가 책정됐던 것으로 보인다. ‘연말 격려비’로 수백만원씩 지급하기도 했다. 국정원의 보수단체 지원 계획 문서에는 “당원(국정원)과의 협조 사실에 대해서는 보안을 철저히 유지한다”고 적혀 있다.
[%%IMAGE4%%]이명박 정부 국정원이 2010년 2월부터 2011년 12월까지 2년간 전교조와 관련해 보수단체에 지급한 비용이 1억7640만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돈을 받아간 곳은 역사교사 이원철씨가 있던 경기상고에 펼침막을 내걸고 시위한 ‘교육과 학교를 위한 학부모연합’(교학연)이었다. 이 단체는 조전혁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공개한 전교조 조합원 명단을 바탕으로 전교조 교사에게 탈퇴 권유 편지 6만1천 통을 보냈는데(2010년 5월19일), 이 비용 3천만원을 국정원이 ‘스승의날 계기 심리전 활동’ 명목으로 지급했다. 서한 발송 결과를 보고하는 국정원 문건에는 “전교조 와해 유도 및 무력화 심리전 활동을 지속 전개하겠음”이라고 쓰여 있다. 이에 전교조와 소속 조합원들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고 형사고소하자, 국정원은 전교조를 ‘무고’로 맞고소할 것을 독려한다. 민사소송 1심에서 이 보수단체가 패소한 뒤 판결의 부당함을 알리는 1인시위 비용과 변호사 비용 750만원도 국정원이 내줬다.
이명박 정부 국정원이 기획하고 보수단체 등을 동원해 실행에 옮긴 전교조 법외노조화는 2013년 9월 박근혜 정부의 ‘노조 아님 통보’로 마무리된다. 이명박 정부 시절 찍지 못한 ‘종지부’를 박근혜 정부가 찍은 셈이다. 국정원은 “2013년 2월 고용부가 전교조 법외노조화를 추진하자, 2013년 4월 대공수사국이 전교조 해직조합원 간부 현황을 정리한 문건은 확인됐으나 고용부에 실제 제공한 사실은 내부 조사 한계상 확인하지 못했다”며 “전교조 법외노조 결정 때 국정원이 노동부 등에 압력을 행사하거나 전교조 제기 소송 등 재판 과정에 관여한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검찰에 통보했다.
[%%IMAGE5%%]전임 복귀 거부 투쟁 해직자 34명
“너무 충격적이네요.” 이원철씨는 국정원 문건을 보며 말했다. 보수단체가 도대체 왜 그랬는지에 대한 의문이 일부 해소됐다고 했다. “노조 아님 통보 이후 전교조 전임 복귀 거부 투쟁으로 지금 해직되신 분이 34명입니다. 정년을 앞둔 분들도 있어 늦어지면 학교로 못 돌아오실 것 같은데…. 많은 선생님과 전교조가 정권과 사법부로부터 피해를 입었습니다. 대법원의 올바른 판결을 기대합니다.” 5월2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넘어간 전교조 노조 아님 처분 취소소송 상고심 공개변론이 열린다. 2010년 이명박 정부 국정원에서 시작한 법외노조화 논란이 마무리 절차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알 수 없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전교조 가처분 인용- 잘 노력해서 집행정지 취소토록 할 것.”(2014년 9월22일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 업무일지)
이명박 정부에서 구상한 전교조 와해 공작은 박근혜 정부에서 완성됐다. 그러나 고용노동부의 법외노조 통보 처분에 불복한 전교조가 행정소송을 제기하면서 법정 다툼으로 번졌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전교조 재판을 최대 현안인 상고법원(대법원이 맡은 사건 중 단순한 사건만 심리하는 법원)을 도입하기 위한 거래 수단으로 취급했다. 양 전 대법원장 등의 ‘사법농단’ 재판에서는 박근혜 정부에서 이어진 지속적인 전교조 와해 시도와 이를 활용하려 한 대법원의 흔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고용부를 상대로 한 전교조의 법정 싸움은 크게 △행정처분의 타당성을 가리는 본안 소송 △소송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처분 효력을 멈춰달라는 집행정지 가처분 소송으로 나뉜다. 본안 소송은 1·2심 모두 패소했지만 가처분 소송 결과는 반대였다. 2013년 11월(1차·서울행정법원)에 이어 2014년 9월(2차·서울고등법원)에도 전교조 요청을 받아들여 행정처분 효력을 정지하는 결정이 내려졌다.
2차 효력 정지 결정에 청와대는 격노했던 듯하다. 정다주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심의관이 작성한 문건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 집행정지 관련 검토’를 보면, “BH(청와대)는 크게 불만을 표시했다는 후문(이 들린다)”이며 “비정상의 정상화가 필요한 것으로 (청와대가) 입장을 정리”했다고 돼 있다. 그러면서 청와대가 전교조 사건을 “헌재의 통진당 위헌정당 해산 심판 사건과 함께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 취급”하는 만큼 대법원이 고용부 손을 들어주면 청와대와 대법원 모두 “윈윈의 결과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수상한 정황이 발견된 건 그즈음이다. 법원행정처는 전교조의 2차 효력 정지 결정 문제점을 분석해 보고서를 썼다. 이 보고서는 청와대를 거쳤고 일부 내용은 고용부 재항고 이유서에 그대로 인용됐다. 법원행정처 보고서가 청와대→고용부를 거쳐 다시 대법원으로 되돌아온 셈이다. 게다가 고용부 처분의 근거가 된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제2조)을 검토한 재판연구관들이 기각(고용부 패소)으로 의견을 내자, 마치 다른 결론을 찾으려는 듯 주심 고영한 대법관의 사건 검토 지시가 거듭되기도 했다. 이 사건 검토에 참여한 재판연구관은 “대법관님 생각이 잘못됐을 가능성도 있어서 양쪽 근거를 충분히 살펴보는 게 일반적인데, (고용부가 패소하는) 파기 환송을 전제로 한 검토들만 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그럼에도 양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사법농단 재판의 ‘피고인’들은 사실관계와 법리를 따져봐도 모두 죄가 되지 않는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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