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은 언제까지나 나중이에요.”
11월5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한 카페에서 만난 장혜영(32·사진)씨는 인터뷰 중 “나중은 없다”라는 말을 몇 차례 반복했다. 그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도 언제나 ‘나중은’ 없었다. 2011년 11월15일 그는 연세대 중앙도서관 앞에 “나는 오늘 여러분 앞에서 공개 이별을 선언합니다”라고 쓴 대자보를 붙이고 4학년 2학기에 공개 자퇴를 선언했다. 이른바 ‘명문대생 자퇴 선언’이 이어지던 시기였다.
“나는 다른 사랑을 향해 떠납니다”라고 외친 그는 진짜 하고 싶은 일들을 했다. 책을 쓰고 외국 여행을 하고, ‘생각 많은 둘째 언니’라는 이름으로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다. 그러다 장애인거주시설에 살던 한 살 아래 동생 혜정씨를 데리고 나와 같이 살기로 결심했다. 혜영씨 부모는 중증발달장애아이던 13살 혜정씨를 시설로 보냈다. 그 뒤 부모의 이혼으로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2013년 동생이 있던 시설에서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사실이 외부로 공개됐다. 그때도 혜영씨에게 나중은 없었다. 꿈꾸던 삶을 접고, 동생과 같이 살기 위한 준비를 바로 시작했다. 2017년 6월 동생을 시설에서 데리고 나왔다. 동생과 같이 사는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아 2018년 12월 다큐멘터리영화 <어른이 되면>을 세상에 선보였다. 자매의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소소한 삶’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도 많은 이에게 ‘장애인 탈시설’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어른이 되면> 공동체 상영과 강연을 위해 전국을 돌며 바쁜 나날을 보내던 혜영씨는 10월2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저는 오늘부터 정의당에서 정치를 시작합니다”라는 글을 올리며 ‘깜짝 선언’을 했다. 이번에도 ‘나중은 없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삶은 미룰 수 없습니다. (…) 무참한 불평등 앞에 꺼질 듯이 흔들리는 곳곳의 촛불 같은 삶에는 ‘나중’이 없습니다.” 그가 이번에도 ‘나중’이 아닌 ‘지금’을 외치며 정치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랑하면서 차별할 수 있다’ 깨달은 시간
동생과 함께 산 지 2년5개월이 됐습니다. 뭐가 달라졌나요.
모든 게 변했죠. 제 삶의 방식이 변했습니다. 혜정 또한 18년 만에 사회에 나와 응당 자신이 가졌어야 할 자유에 적응하는 기간이 되었어요. 그전까지 혜정은 시설에서 살라는 대로 사는 사람이었어요. 개별성을 존중받지 못하고 ‘예스’만 말하는 사람이었는데, 이제 원하는 것에 ‘예스’, 싫은 것에 ‘노’라고 할 수 있는 권리가 자기한테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명확한 변화죠.
<어른이 되면>에서 “왜 누군가를 돌보는 것이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삶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 돼야 하는 걸까”라고 했습니다. 지난 2년5개월 무엇을 보고 느꼈나요.
‘장애는 개인의 것이다, 개인과 가정의 불행일 뿐이다’라는 우리 사회의 구조를 뼈저리게 느꼈죠. 사회제도가 기본적으로 ‘돌봄’은 장애 당사자와 개인의 일이다, 사회의 일이 아니다라고 디자인돼 있어요. 너무 불쌍하면 좀 도와주겠다는 것이고요. 혜정이 시설을 나올 때부터 ‘돌봄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가 제일 큰 고민이었어요. 제가 혜정의 그림자는 아니잖아요. 혜정도 한 사람, 저도 한 사람 몫을 가지려면 기본적으로 24시간 장애인 활동지원 제도를 구축해야 해요. 그래야 ‘그다음’이 가능하죠. 혜정은 심사를 거쳐 활동지원 서비스 월 94시간을 받았어요. (하루 8시간 기준) 2주가 안 되죠. 그나마도 장애인 활동지원사를 못 구했어요. 발달장애인을 두려워하거나 기피하는 분이 많아 혜정과 같이하겠다는 활동지원사가 거의 없어요. 결국 주변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고 있죠. 한 친구가 활동지원사 자격증을 따기도 했어요.
동생과 함께 살게 된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나요.
동생이 있던 시설의 인권침해 사건을 알고 동생에 대한 사랑이 평등한 것이 아니었다고 자각했어요. 당장 내 주변 사람의 존엄이 침해됐는데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잖아요. ‘사랑하면서 차별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이 나라고 깨달았어요. 비장애인으로서 제가 지금까지 누려온 게 특권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번 삶에서는 하나만 하자. ‘장혜정과 내가 같은 인간이라는 걸 증명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자. 그게 내가 유일하게 행복해지는 길이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길이겠다’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죠.
지금 반드시 필요한 변화 만들어야
‘동생과 내가 같은 인간이라는 걸 증명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자’는 생각은 개인의 결심에만 머무를 수 없었다. 제도나 문화의 변화 없이는 ‘자매의 삶’을 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이 결심이 ‘정치’라고 생각했다. 지금 반드시 필요한 변화를 만드는 일에 주저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지난 9월 심상정 정의당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정치할 생각이 없냐”는 질문을 받고 혜영씨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고졸 장혜영, 장애인 동생을 둔 ‘둘째 언니’ 장혜영, 영화감독 장혜영, 이제는 ‘정치인 장혜영’이 됐습니다. 왜 정치인가요.
혜정을 시설에서 데려오고 같이 살면서 이건 개인적인 한 집안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라고 자각했어요. 이 순간부터 시민으로서 정치를 한다고 생각했죠. 현실의 불평등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해결을 촉구하는 게 사익을 넘어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이익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심상정 대표가 빙빙 돌리지 않고 “정치할 생각 없냐”고 물으셔서 “저는 이미 정치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라고 답했어요. 그러자 심 대표가 “그걸 우리 당에 와서 하세요”라고 하더라고요.
출마의 변에서 “우리에게 지금 반드시 필요한 변화를 만드는 일에 주저하는 지금의 정치에 지쳤기 때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본인이 그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장애를 가진 동생이 좀더 살기 좋은 사회가 된 뒤 시설에서 나오는 게 나을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 해주길 기다리면 언제까지도 안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나중은 없다’ ‘나중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2년5개월 동안 느낀 거죠. 여성 둘이서,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랑 살아가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는 도전이에요. 만약 제가 실패한다면 저희 둘과, 또 비슷한 이들이 사회 밖으로 밀려날 거예요. 장애인도 평범하게 어울려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시점을 앞당기는 게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책임과 권한이 있는 사람들이 제대로 결정을 내리지 않을 때 지금 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더라고요. 그렇다면 내가 책임과 권한을 가져보면 어떨까 생각한 거죠.
기자와 3년 전 ‘청년이 바라보는 정치’를 주제로 인터뷰할 때 ‘여의도 정치’에 대해 “이해하려 노력할수록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청년 정치’로 여의도를 바꿀 수 있을까요.
‘청년 정치’라는 단어가 제게 꽂히지는 않아요. 청년 정치가 따로 있다고는 생각 안 해요. 지금 필요한 일을 해내는 정치가 있고, 그렇지 못한 정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필요한 일을 해내지 못하는 것은 현재의 ‘고인 정치’가 현상유지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선거법 개정(연동형 비례제)은 고인 정치를 흐르게 하는 것이겠죠. 그 과정에서 중년·남성·비장애인으로 과다 대표된 국회를 바꿀 수 있을 거예요. 여성·청년·장애인이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을 대변할 권리를 더 가진다면 그들의 고통과 문제가 국회에 더 잘 반영되지 않을까요. 물리적 세대·성별만 바뀐다고 변화가 있겠냐고 하는 지적은 충분히 존중합니다. 하지만 일단 바꿔나 보고 이야기했으면 해요.
불공평 룰이 ‘공정’이라고 한다면
총선을 앞두고 ‘인재 영입’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정치가 정당 내부에서 사람을 키우지 않고 매번 정치인으로 훈련이 안 된 외부 인사 수혈에만 매달린다는 지적도 받습니다. 혜영씨도 그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은데요.
그런 비판은 귀담아들으려고 합니다. 저는 새내기 당원이고 이제부터 정당과 기존 당원들에게 신뢰를 쌓아야겠죠. 정의당은 그동안 사회적 약자 편에 서겠다는 입장을 밝혔어요. 저는 변화를 만들고 싶고 정의당은 변화를 만들려는 권력의지를 가진 정당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의 변화를 만들고 싶은 이들이 정의당을 만들었고 지금까지 정의당을 있게 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 변화를 향한 정의당의 가능성을 넓히고 그것에 기여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조국 사태’로 공정성 논란이 불거졌다. 하지만 혜영씨는 출마의 변에서 “가진 자들이 규칙을 정하는 사회에서 공정은 힘없는 외침입니다. 공정한 차별이 하루가 다르게 우리 사회를 잠식하는 지금, 우리는 공정이 아니라 불평등을 외쳐야 합니다”라고 했다. 그가 ‘여의도’에서 하고 싶은 일과 연결되는 지점이다.
왜 불평등인가요.
‘공정’이라는 열쇳말은 불평등을 가리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혜정이 활동지원 서비스 갱신 심사를 얼마 전에 받았어요. 그동안 월 94시간을 받았다고 하니 심사하시는 분이 “그것도 잘 받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2주도 안 되는 시간을 주고 ‘나머지 2주는 내 알 바 아니다’라고 하는 셈인데 그게 공정의 언어죠. 개별 인간의 최소한의 생존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런 말이 나올 수 없어요. 불평등한 룰이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잘 지켜지면 그 결과는 계속 불평등이죠.
그럼 정치인으로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24시간 활동지원 제도를 실효성 있게 만드는 거요. 그리고 기초생활보장제도 이름에 걸맞은 제도로 만드는 입법을 하고 싶어요. 그동안 복지 사각지대에서 많은 사람이 궁핍한 생활을 하다 돌아가셨어요. 기초생활이 보장 안 되는 사람들이 몇 푼이라도 버는 순간 아무것도 주지 않겠다는 지금의 제도는 ‘동정의 법’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문재인 정부의 장애인 탈시설, 장애등급제 폐지 등 대책도 한숨이 나오죠. 장애인 당사자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원하는 만큼 받아야 한다는 원칙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고 있어요.
동생이 더 자유롭게 춤을 추도록
언니가 정치를 시작하겠다고 했지만 동생은 관심이 없다고 한다. 혜영씨는 “앞으로 더 바빠져 잔소리를 적게 할 테니, 동생이 그건 좋아할 것 같다”며 웃었다. 혜정씨는 음악과 춤을 좋아한다. 지난해 9월 청와대에서 열린 ‘발달장애인 평생케어 종합대책 발표 및 초청 간담회’에 참석한 혜정씨는 음악이 나오자 문재인 대통령 앞에서도 자유롭게 춤을 췄다. 혜정씨는 앞으로도 춤을 출 것이다. 혜영씨는 동생이 더 자유롭게 춤을 출 수 있도록 도전을 이어갈 것이다. 그들이 그동안 노래해온 ‘무사히 할머니가 되기 위해’.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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