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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이어서, 노회찬이라면

노회찬 1주기, 마지막 비서실장 김종철 인터뷰
등록 2019-07-13 14:04 수정 2020-05-03 04:29
박승화 기자

박승화 기자

2014년 4월16일 세월호가 침몰했다. 같은 해 서울 동작을 지역구의 재보궐선거는 ‘정권심판론’이 떠오르면서 자연스럽게 전국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삼성 엑스파일 사건으로 의원직에서 물러나 절치부심하던 노회찬이 출사표를 던졌다. 상대는 나경원이었다. 그때 노회찬이 나경원을 꺾고 국회에 들어갔더라면 어땠을까. 당시 표 차이는 불과 929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의 후보가 사퇴한 줄 모르고 유권자가 던졌던 무효표만 1180표였다. 투표용지 인쇄 전 단일화가 됐다면, 그래서 노회찬과 나경원의 이름만 거기에 있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사퇴 없이 선거를 완주한 노동당 후보도 입길에 올랐다. 그가 얻은 1067표가 노회찬에게 갔더라면? 그랬다면 역사는 다른 기록을 남겼을까.

“내가 동작에 간 게 더 미안하다.”

낙선자 노회찬이 투표 사흘 뒤 노동당 출마자였던 김종철 후보에게 보낸 메시지다. 노회찬은 왜 김종철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냈을까. 김종철은 동작구에서만 진보정당 간판을 걸고 네 번 낙선했다. 2002년을 시작으로 일곱 번의 선거에서 번번이 패했다. 20년 넘는 낙선 이력으로 지역에서는 “출마했던 사람”으로 알아볼 정도다. 노회찬은 “미안하다”는 말에 그치지 않았다. 노회찬은 2년 뒤 20대 국회의원이 됐고 김종철을 다시 찾았다. 정의당 원내대표에 올라 김종철에게 비서실장을 맡긴 것이다. 김종철은 자연스럽게 노 원내대표가 드루킹에게서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을 살 때 가장 마지막까지 고민을 나눈 사람이 됐다.

고 노회찬 의원 1주기를 앞둔 7월10일 김종철 원내대표 비서실장(사진)을 국회에서 만났다. 1년 전 그는 기자들과 만나 서거에 얽힌 얘기를 나눴다. 당시 그는 무엇보다 노회찬이 없는 정의당을 걱정했다. 두 자릿수로 급등한 정의당 지지율을 지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비관 섞인 전망을 내놨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노회찬 없는 정의당의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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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이 흘렀다. 그의 예견은 대부분 고스란히 현실이 됐다. 지지율은 반 토막이 나 한 자릿수로 돌아갔고, 여전히 민주당과 차별화하는 데 애를 먹는다. 김 실장은 “세금과 관련해서 증세를 통한 재분배 문제 등은 더 세게 밀고 가면서 우리 의제로 삼았어야 했다”며 “부동산 문제도 다주택자에 좀더 강한 규제를 하도록 얘기했다면 민주당을 견인할 수 있었을 텐데, 그리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비정규직 문제도, 더욱 심화하는 양극화도 정의당이 더 적극적으로 관여했어야 하는 주제다.” 원내대표 비서실장은 원내의 정책 방향과 메시지를 조율하는 일에 깊게 관여한다. 이때문에 김 실장의 후회는 자신을 향한 비판이기도 했다.

예상했다고는 하지만 지지율은 아쉬웠을 법하다. 내년 20대 총선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적용된다고 가정하면 더욱 그렇다. 그 정도면 정의당만의 힘으로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다. 실제로 거대 양당이 버티는 현재의 정치 구도에서는 쉽지 않은 수치다.

“노 원내대표 추모 열기로, 정의당의 준비된 실력에 비해 그때는 지지율이 너무 올라간 것이어서 낙폭이 클 것으로 예상했다. 지금은 (노회찬 서거 이전) 원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나마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아직은 희망이 있다는 뜻이다. 2004년 한 자릿수 지지율을 기록하던 민주노동당이 실제 선거에서 13%를 득표했던 경험도 섞여 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노회찬이 남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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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그는 조심스럽게 노회찬이 남긴 것들을 봐달라고 주문했다. 노회찬의 빈자리는 역설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기회가 열렸다는 말이기도 하다. 지난해 12월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을 위해 단식이라는 초강수를 던져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선거제 개혁이 노회찬의 평생 과업이었다는 이유가 컸다. 이 대표의 단식투쟁으로 바른미래당이 움직였고, 민주평화당에 이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나섰다. 이정미라는 정치인이 시민들에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순간이기도 했다.

노회찬에게서 원내대표를 이어받은 윤소하 의원도 있다. 그가 자유한국당과 선명하게 대립각을 세우면서 정의당은 진보정당의 색깔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지난 3월 선거제 협상에 동참을 촉구하는 윤 원내대표의 비교섭단체 연설에 자유한국당 전원이 자리를 박차고 나섰다. 소수정당으로 투명인간 취급받던 시절에 비하면 달라진 위상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런 선명 기조의 뒤에는 김종철 실장이 있다. “‘노회찬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라고 질문을 던져요. 그러면 의외로 쉽게 답이 나올 때가 많죠.” 우연일까. 이 제1270호에서 ‘내 안의 노회찬을 찾아서’를 통해 만난 청년 정치인 다섯 명이 했던 말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개인 김종철에게 1년은 어땠을까. 인터뷰 하루 전 있었던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얘기를 꺼냈다. “청문회에서 정점식 자유한국당 의원이 황교안 대표를 보호한답시고 ‘노회찬 의원이 명예훼손으로 의원직을 박탈당했다’고 들먹이는데, 그 말 하나만으로도 울컥하더라고요. 명예훼손도 아니고 통신비밀보호법이거든요. 게다가 그 사건이 삼성 엑스파일이었는데, 당시 떡값을 줬다는 김용철 변호사도 황교안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데….”

정의당은 “노회찬 전 대표 이름은 정점식 의원 같은 모리배의 입에서 함부로 거론될 것이 아니다”라는 이례적으로 강도 높은 논평을 내놨다. 메시지를 함께 조율했던 김종철 실장은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는 듯했다. “아무렇지 않다가 불쑥 가슴 저 안쪽에서 뜨거운 울분이 치밀어오르면 잘 가라앉지 않는다”고 했다. 노회찬의 비서실장은 여전히 노회찬을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여덟 번째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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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15일부터 노회찬재단이 정한 추모 기간이 시작된다. 마침 정의당은 전국동시당직선거 중이다. 13일 당대표를 비롯한 5기 지도부 선출을 마무리한다. 이변이 없는 한 이번에도 내년 선거를 이끌 사람은 심상정이다. 심상정의 뒤를 이을 사람이 누구냐에 대한 답을 이제는 준비해야 한다. 김종철을 비롯한 남은 정치인들의 몫이다. 김 실장은 “정치는 피겨스케이팅이나 링 위의 권투처럼 개인 종목이 아니라 필드에서 전략에 따라 합을 맞춰야 하는 단체 종목”이라면서 딱히 답을 내놓지는 않았다.

‘노심’ 이후를 책임질 정치인이 나와야 한다는 것은 노회찬 서거와 무관하게 오랜 진보정당의 숙제였다. 그는 이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여덟 번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상대는 5선에 도전하는 제1야당 원내대표 나경원이다.

“어렵죠, 징하게 어렵죠.”

김종철은 노회찬의 5년 전 패배를 되갚아줄 수 있을까. 그는 되묻는다. “노회찬이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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