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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1년, 아직도 투쟁은 계속된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첫돌 맞아 다시 호명하는 인천공항

비정규직·가습기살균제 피해자·세월호 유가족
등록 2018-05-15 07:43 수정 2020-05-02 19:28
한겨레 김명진 기자

한겨레 김명진 기자

청와대사진기자단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뒤 호명한 이들은 지난 1년을 어떻게 보냈을까. 위에서부터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 청소노동자, 문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만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세월호 참사 희생자 김초원 교사 아버지 김성욱씨. 한겨레 신소영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뒤 호명한 이들은 지난 1년을 어떻게 보냈을까. 위에서부터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 청소노동자, 문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만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세월호 참사 희생자 김초원 교사 아버지 김성욱씨. 한겨레 신소영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년간 많은 이를 호명했다. 특히 이전 정부에서 ‘투명인간’ 취급받으며 고통을 겪은 이들을 불러내 제 이름을 찾아줬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유족의 등을 토닥이는 모습에 유족과 진상 규명을 외치던 많은 이들이 마음속 응어리를 풀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군 복무 중 지뢰 사고로 다리를 잃었지만 직업군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보상금 800만원만 받고 전역한 장병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하고, 현충일 추념식 앞자리에 앉혔다. 당사자들은 그동안 속으로 삭여왔던 아픔과 분노를 눈물과 함께 흘려보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첫돌을 맞은 5월10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국민들께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자부심을 드리고자 한 1년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1년이 지난 지금 문 대통령이 호명한 이들은 대부분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복잡한 현실은 대통령의 한마디로 한번에 해결되지 않는다. ‘투명인간’에서 벗어난 이들 가운데 일부는 정부·기업·사회에 맞서 자신만의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주변에서 “해결돼서 좋으시겠다”는 말을 할 때마다 “뭐라 답해야 할지 말문이 막힌다”고 했다.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주 5일 근무 한 번이라도 해봤으면”

“아직은 변한 게 아무것도 없죠.”

5월9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에서 청소 카트를 끌던 ㄱ(62)씨는 1년 전 ‘약속’에 대해 묻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2017년 5월12일 문 대통령은 취임 이틀 만에 인천국제공항을 찾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간담회를 열고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했다. 그 자리에서 정일영 인천공항공사 사장은 “공항 가족 1만 명 모두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연내 전환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에서 눈물 섞인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공항공사 비정규직 9785명(5월9일 기준) 가운데 정규직 전환 노동자는 1143명(11.7%)에 그친다. ‘2017년 연내 전환’ 약속은 물 건너갔다. 2017년 12월26일 공항공사 노사는 소방대와 보안검색 분야 등 약 3천 명이 공사 직접고용 대상으로, 공항 운영과 시설·시스템 관리 분야 약 7천 명은 자회사 소속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정규직 전환 완료 시점은 2020년까지 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공항공사는 정규직 전환을 약속한 뒤에도 추가 용역 계약을 하기도 했다. ㄱ씨처럼 용역업체 소속 노동자들은 그동안 지적된 열악한 처우와 저임금에 여전히 시달려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는 기존 용역업체와의 계약 기간 때문이다. 2017년 7월 정부가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추진 계획’에는 “정규직 전환 시기는 민간 업체와의 계약이 종료되는 시점을 기준”이라는 권고가 포함됐다. 민간 업체들과의 법적 분쟁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는 ‘가이드라인’으로 공공부문의 정규직 전환 논의에 영향을 끼친다.

이날도 새벽 4시에 일어나 공항으로 출근해 아침 7시부터 청소를 시작한 ㄱ씨는 “‘손님들이 정규직 돼서 좋으시죠’라고 하면 말문이 막힌다”고 했다. 정년을 2년 앞둔 그는 “1년 전에는 정말 기뻐서 하늘을 날아갈 것 같았다”면서도 “지금 봐서는 내가 (정규직이) 될지 모르겠다. 대우받으며 일하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거냐”고 청소 카트를 다시 밀었다.

이들은 정규직 전환 논의에서 예상치 못한 상처도 받았다. 2017년 11월23일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방안’ 공청회장에 공항 정규직 노동자들은 “무임승차가 웬 말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장에 있었던 청소노동자 ㄴ(60)씨는 “너무 충격적이라 말문이 막혔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공사 직원들이 (정규직 전환을) 못하게 할 줄 몰랐어요. 그분들이랑 우리는 임금체계도 다른데… 우리가 있으니까 공항도 운영되는 것 아니에요?” 그는 “임금도 임금이지만 주 5일 근무를 한 번이라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인천공항지역지부(공항지부)는 제1여객터미널 3층 출국장에서 정규직 전환 선언 1주년 기자회견을 열었다. 항공 티켓을 받은 이들은 무심히 지나쳤고, 청소노동자와 보안요원 몇몇이 먼발치에서 기자회견을 지켜봤다. 박대성 공항지부장은 “정부가 초심으로 돌아가 공공성 강화와 양극화 해소라는 정책 목표를 되새겨주시기 바란다”며 “인천공항 정규직 전환이 공공부문에서 진짜 가이드라인이 되도록 정부가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달라”고 호소했다. 공항지부는 “노사합의문(2017년 12월26일)에서 ‘협력사(용역업체)와의 계약 해지는 합의 해지가 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한다’고 명시했다. 공항공사 의지에 달린 문제”라고 주장한다.

현재 공항공사와 정규직·비정규직 노조, 외부 전문가로 이뤄진 ‘제2기 노사전문가 협의회’가 정규직 전환에 따른 세부 논의를 하고 있는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근속 반영, 임금체계 설계,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인력 충원 등의 문제를 두고 노사가 맞서고 있다. 완전한 정규직 전환까지 넘어야 할 산이 계속 남아 있는 것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강은씨-“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4단계 판정을 받은 강은(47)씨는 5월10일 오전 과 한 통화에서 “그동안 ‘아직도 해결 안 된 것이냐’고 묻는 주변 사람들 앞에서 속만 끓여왔다”고 말했다.

강씨는 2017년 8월8일 문 대통령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15명을 청와대로 초청한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봤다. “너무나 고맙고, 얽힌 실타래가 풀어지겠다는 생각에 들떴어요.” 당시 청와대에는 강씨 같은 4단계 피해자들도 함께했다.

하지만 그는 이후에도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정부에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신청한 이들은 6014명으로 현재(5월14일 기준) 1321명이 사망했다. 그런데 522명만 피해자로 인정됐다. 2011년 가습기살균제 사태가 터진 뒤 피해자 인정이 폐섬유화 질환을 중심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천식을 앓았던 강씨와 딸은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없었다. 1999년 딸을 출산하고 옥시 가습기살균제를 이용한 뒤 강씨는 중증 천식을, 딸은 생후 10일 만에 모세기관지염·급성폐렴·장염을 앓아 병원 신세를 졌다. 스무 살이 된 딸은 상태가 그나마 나아졌지만 강씨는 여전히 천식으로 고통받고 있다.

물론 문재인 정부의 환경부는 폐 질환 외에 천식을 앓는 피해 신청자 71명(5월 14일 기준)을 피해자로 최근 인정하고 구제 지원을 하는 등 전향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천식 피해 신청자는 2천 명이 넘는다. 특별법에 따라 진상 규명을 위해 구성된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최근 “환경부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판정에 소극적이고, 기업에서 징수한 구제 기금(1250억원)도 10개월 동안 3%만 집행했다”고 지적했다.

앞선 심사에서 탈락하고 재심을 신청한 강씨는 11일 오후 피해자로 인정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떨리는 음성으로 “그동안 고생했던 게, 억울함이 풀어진다”고 말했다. 강씨는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지겹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서글펐다. 누구도 피해자가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지 않냐”며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세월호 교사 유족 김성욱씨의 끝나지 않은 법정 투쟁

세월호 참사 희생자인 고 김초원(당시 26살) 교사의 아버지 김성욱(59)씨도 또 다른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2017년 5월15일 스승의 날에 문 대통령의 지시로 기간제 교사도 순직 인정을 받게 된 순간을 떠올리며 그는 수화기 너머로 울음을 삼켰다. “대통령이 바뀔 때만 해도 긴가민가했죠. 그런데 우리 딸도 대우를 받는구나 싶으니 3년 넘게 순직 인정받으려 전국을 돌아다닌 것도 생각나고… 너무 감격스러웠어요.” 지난해 8월 문 대통령은 청와대로 세월호 가족들을 초대했다. 김씨는 문 대통령과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악수하시고 안아주시더라고요. ‘건강 잘 지키시라. 그래야 하늘에 있는 따님도 좋아할 것이다’라고 하셨어요.”

그는 현재 경기도교육청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진행 중이다. 교육청은 교사에게 ‘맞춤형 복지제도’를 운용하는데 단체보험 가입비가 여기서 공제된다. 세월호 참사 당시 교육청은 공무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기간제 교사를 맞춤형 복지제도에서 제외했다. 희생된 기간제 교사 두 명의 유족들은 사망보험금을 받지 못한 것이다. 여행자보험에도 가입돼 있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4년 말 “기간제 교사에게도 맞춤형 복지제도를 적용해야 한다”고 권고해 뒤늦게 15개 시·도 교육청은 기간제 교사를 제도에 포함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에 희생된 두 교사에게는 소급 적용되지 않았다. 돈 때문에 소송한 것 아니냐는 외부의 시선에 김씨는 “기간제 교사도 정교사와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소송대리인인 윤지영 공감 변호사는 “교육청은 기간제 교사가 공무원이 아니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소송은 전체 기간제 교사를 위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현재 고향인 경남 거창에서 흑염소와 닭을 키우고 있다. “병아리가 21일 만에 부화가 돼요. 부화가 되기까지 기다리고 새 생명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 순간 아픈 마음이 잊혀서…”

문 대통령은 취임 첫돌을 맞아 소셜네트워크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변화를 두려워하고 거부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뒤에서 끌어당기는 힘이 여전히 강고합니다. 하지만 국민들께서 지금까지 해주신 것처럼 손을 꽉 잡아준다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들 역시 ‘뒤에서 끌어당기는 힘’에 오늘도 저항하고 있다.

영종도(인천)=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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