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질게요.’
지난 7월3일 열린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의 슬로건이다. 한국당은 이날 당대표 선거를 ‘이원생중계’로 진행했다. 당대표 후보로 나선 홍준표·신상진·원유철 후보가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시우리에서 감자를 캐는 모습을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생중계하며 개표 결과를 발표했다. 당이 여의도 정치에만 머무르지 않고 민생 현장을 함께 생각하겠다는 의미였다. 65.7%(5만1891표)의 득표율로 홍준표 후보가 당선되는 순간 헌정기념관에 모인 대의원 250여 명은 우렁찬 박수를 보냈다.
새롭게 닻을 올린 홍준표의 자유한국당은 정말 달라질 수 있을까? 전망은 비관적이다. 자유한국당이 변화하기 어려운 5가지 이유를 살펴봤다.
콘텐츠 없는 발목잡기
첫째, 인물이 없다. 홍준표 대표는 한때 보수정당 안에서 ‘개혁적 인물’로 분류됐지만 경남도지사와 대선 후보를 거치면서 ‘수구보수’로 변했다. ‘돼지발정제’로 상징되는 홍 대표의 언행은 그가 당대표 수락연설에서 보수의 가치로 언급한 “우리 선배들이 피땀 흘려 이룩한 고귀한 성과”와는 거리가 멀다. 최고위원으로 선출된 이철우 의원, 류여해 당 수석부대변인, 김태흠 의원,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 등 지도부의 면면을 보더라도 자유한국당이 ‘합리적 보수’의 길을 걸을 것으로 예상하는 이는 별로 없다.
과거 보수정당이 위기에 대응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개혁적 인물의 수혈이었다. 1990년 3당 합당을 통해 김영삼 총재가 입성한 것을 시작으로 보수정당은 이재오·김문수·손학규 등 독재에 저항했던 인물들을 영입했다. 이른바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 등을 중심으로 한 각종 소장파 모임들도 당내 혁신을 이끌었다. 보수에 실망한 유권자는 이들을 통해 변화의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옛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안에서 개혁을 이끌었던 인물들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거치며 당을 떠나 바른정당을 창당했다. 자유한국당의 수구성을 누구보다 강하게 비판하는 바른정당에 ‘보수 혁신’ 가치를 빼앗긴 자유한국당은 변화 동력이 상당히 떨어질 수밖에 없는 처지다.
둘째, 콘텐츠 없는 ‘발목잡기’다. 제1야당으로서 정부를 견제하려면 대안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자유한국당이 내놓는 주장을 보면 “하지 말라”는 많지만 “이렇게 하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홍준표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보수우파의 가치를 바로 세우고 이념과 가치에 따라 행동하고 정치적 운명을 함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이 바로 세워야 할 보수우파의 가치가 무엇인지 알기 힘들다는 평가가 많다.
정부가 내놓은 일자리 추가경정예산안(추경)에 대해 ‘요건이 성립되지 않는다’며 심사 자체를 반대하는 것도 이들의 콘텐츠 부재를 상징한다.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제1야당으로 직무유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지점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비슷한 추경이 이들의 특별한 반대 없이 통과됐다는 점에서 이중 잣대라는 지적도 있다.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는 “자유한국당은 추가경정예산 요건을 말할 자격이 없다”며 “당시 새누리당 최고위원으로서 (박근혜 정부의 추경이) 국가재정법 제89조에 안 맞는다고 지속적으로 얘기했다. 지금 문재인 정부의 추경에 대해 ‘요건에 안 맞는다’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당시엔 ‘요건이 된다’고 했다”고 말했다. 현재 자유한국당의 반대가 전형적인 ‘발목잡기’라는 지적이다.
의석수 107석인데 지지율 4.3%
셋째, 쉽게 봉합하기 힘든 당내 갈등이다. 65.7%의 압도적인 지지율로 당선됐지만 당내 비주류인 홍준표 대표는 초반부터 정우택 원내대표와 갈등을 빚고 있다. 홍 대표는 7월4일 “문재인 정부의 인선·정책에 발목 잡는 식의 투쟁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 정 원내대표는 의원총회를 열어 추경 및 정부조직법 심사를 거부하면서 홍 대표와 충돌했다. 이에 대해 정 원내대표는 다음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홍 대표의 발언은) 대표로서의 개인 소견이었을 것이다. 국회의 모든 원내 전략과 국회 내 관계는 제가 원내대표로서 의원총회를 거쳐 의원들의 총의를 모아서 운영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와의 관계 설정 등 대여 관계는 원내대표 소관이니 관여하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를 날린 셈이다. 그는 이어 “국민들이 듣기에 거북스러운 말씀을 계속하면 저희 당에 굉장히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며 각을 세웠다.
넷째, 지지율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의석수다. 여론조사기관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 여론조사기관 ‘디오피니언’에 의뢰해 7월4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은 4.3%로 나타났다. 바른정당과 정의당의 지지율 5.1%에도 못 미치는 지지율이다. 반면 의석수는 107석으로 299석 가운데 35.7%를 차지한다. 지지율과 의석수 사이에 큰 폭의 불일치가 나타나는 것이다. 다음 선거는 2020년이다. 3년 동안 의석수 107석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 ‘혁신’을 가로막는 이유 중 하나로 지적된다.
여기에 홍준표 대표는 바른정당과의 합당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는 당선 뒤 기자회견에서 “바른정당도 어차피 지방선거 전까지는 흡수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혁신보다는 세불리기에 방점이 찍힌 발언이다. 보수 정치 세력의 합당은 양당 체제로의 회귀라는 점에서 당내 개혁뿐 아니라 정당 체제 전반의 민주화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영남·고령층 버리지 못하는 딜레마다섯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영남과 60대 이상에 갇힌 지지층과 이들이 지지하는 강경보수 노선이다. 그러나 보수당에 충성도 높은 지지를 보내던 대구·경북 민심도 서서히 분화되고 있다. 리얼미터가 7월3일 공개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을 보면, 대구·경북 지역의 지지율이 큰 폭으로 하락했음에도 여전히 56.7%를 기록했다. 현재 대구·경북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참혹한 수준이다. 지역 구도에만 안주하다가는 ‘영남 자민련’으로 전락해 결국 소멸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까닭이다. 60대 이상 지지층이 많다는 점도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내기엔 좋은 조건이 아니다. 더구나 젊은 보수 유권자에게는 바른정당이라는 대안이 존재한다. 영남과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강경보수 노선은 자유한국당에 일종의 덫으로 작용한다. 이들을 껴안고 가기엔 혁신이 힘들고 이들을 버리면 그마저 남아 있던 지지율이 사라지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이를 어떻게 극복할지가 현재 자유한국당 앞에 놓인 가장 큰 과제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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