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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당, 선거제도 개혁에 사활을 걸어라

문재인 정부 비판? 연대?… 정체성 혼돈 직면한 국민의당이 가야 할 길
등록 2017-06-15 05:17 수정 2020-05-02 19:28
6월7일 김태일 국민의당 혁신위원장(오른쪽 두 번째)이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해 박주선 비상대책위원장(왼쪽 두 번째)과 악수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6월7일 김태일 국민의당 혁신위원장(오른쪽 두 번째)이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해 박주선 비상대책위원장(왼쪽 두 번째)과 악수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지지율 8%. 6월5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공개한 국민의당 정당 지지도 조사 결과다.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받은 득표율 21.8%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55.6%. 문재인 정부가 임기 초 단기간에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하면서 정부와 여당의 지지는 훌쩍 뛰어올랐지만 그만큼 야당의 지지도는 떨어졌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13%, 정의당(6%), 바른정당(5.3%)이 국민의당의 뒤를 이었다.

지지율은 한 자릿수에 불과하지만 국민의당은 다른 야당들에 비해 국회에서의 역할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들이 가진 ‘중도 포지션’ ‘의석 40석’이라는 특징이 국회에서 캐스팅보트(의회의 의결에서 결정을 좌우할 제3당의 표) 역할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절반에 못 미치는 의석(120석)을 가진 여당으로서는 가장 비슷한 정책 노선을 걷고 있는 국민의당(40석)을 설득해 과반을 확보해야만, 주요 개혁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 현재 정부는 국민의당의 협조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다.

지지율로 설명할 수 없는 역할

당장 이번 인사청문회만 놓고 보더라도 국민의당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이낙연 국무총리의 국회 인사청문회 통과는 국민의당이 손을 들어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박주선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5월31일 이낙연 총리의 국회 임명 동의안 처리에 앞서 “국민의당은 국정 공백을 막기 위해, 총리 인준에 협력하기로 통 크게 결단했다”고 했다. 호남에 기반을 둔 정당으로서 호남 출신 총리를 반대하기 힘든 내부 사정도 작용했겠지만, 국민의당은 자신들의 찬성 없이는 정부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점을 최대한 부각시키는 전략을 사용했다.

이 전략은 여전히 유효하다. 나머지 인사청문회에서도 국민의당이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국민의당은 6월8일 의원총회를 열어 인사청문회를 진행한 후보자 4명에 대한 입장을 한꺼번에 내놨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는 임명 반대 의견을 분명히 하고 사실상 청문보고서 채택 불가 방침을 내놨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와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는 청문보고서를 채택하기로 했고,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해서는 내부 의견이 엇갈려 재논의하기로 했다.

6월9일 국회는 김동연 후보자를 제외한 나머지 3명에 대한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에 합의하지 못했다.

강경화 후보자의 경우 국회 인준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에 더해 국민의당의 반대까지 무릅쓰고 임명을 강행하면 이후 야당과의 협치는 더더욱 어려워진다. 아직 후보자를 지명하지 못한 10여 명의 장관 청문회가 남아 있고, 일자리 추가경정(추경) 예산안과 정부조직 개편안(정부조직법) 처리 등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인 사안이 줄지어 있다.

국민의당은 일자리 추경과 정부조직법에 대해서도 비판적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의 반대를 상수로 놓고 볼 때, 정부와 여당은 국민의당의 비판에 여러모로 곤혹스러운 처지다. 이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은 6월12일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일자리 추경’ 통과와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의 필요성을 직접 호소하기로 했다.

민주당 2중대 vs 그러면 어떠냐

국민의당이 캐스팅보터로서 역할을 단단히 틀어쥐고 있지만, 문제는 국민의당의 이런 역할이 언제까지 유효할 것인가다. 캐스팅보트는 뒤집어 말하면 아슬아슬한 정치적 외줄타기다. 정치권 안팎에선 국민의당이 사안별로 찬성과 반대를 하는 것에 “뚜렷한 기준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국민의당은 김상조 후보자에 대해 애초에는 “자진 사퇴하라”며 강경한 반대 의견을 냈지만, 이후 “부적격이다”로 다소 완화됐다가 최종적으로는 청문보고서 채택에 협조하겠다며 입장을 바꿨다.

당내 의원들의 생각은 제각각이다.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은 강경화 후보자를 포함한 4명의 후보자에 대한 찬성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과의 통화에서 “민주당 2중대, 3중대, 4중대면 어떤가. 국민이 원하는 길로 함께 가야 한다. 개혁의 대한민국을 위해서 협력할 것은 협력해 법과 제도를 고치고 또 야당으로서 견제할 것은 견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교통상위원회 청문위원인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은 강경화 후보자에 대해 “도덕적 흠결이 해소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를 만회할 만한 업무에서의 전문 능력이 청문회를 통해 발견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때그때 상황 논리에 따른 결정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그리 따뜻하지 않다. 자유한국당도 ‘여당 2중대’ ‘사쿠라 정당’이라는 공격을 서슴지 않는다. 여당에 동조하면 야당으로서 선명성을 잃게 된다는 우려가 있지만, 선명성을 위해 ‘반대’에 올인하는 자유한국당과 함께하기도 힘들다. 이런 딜레마 속에 국민의당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당 내부에서도 현재는 국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지만, 국민의 지지를 지속적으로 받지 못하면 정당의 존재 기반이 사라지고 만다는 위기의식이 존재한다.

국민의당, 나는 누구인가
전국 220개 노동·시민단체가 참여하는 ‘정치개혁 공동행동’이 6월8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 정론관에서 발족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오른쪽 네 번째)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포함한 3대 선거제도 개혁을 정치권에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 220개 노동·시민단체가 참여하는 ‘정치개혁 공동행동’이 6월8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 정론관에서 발족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오른쪽 네 번째)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포함한 3대 선거제도 개혁을 정치권에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최근 국민의당은 김태일 영남대 교수를 위원장으로 하는 혁신위원회를 꾸렸다. 이를 바라보는 당내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국민의당 한 의원은 “혁신위에 대해 말이 많다. 박주선 비대위원장은 임시직인데 혁신위를 꾸리는 등 너무 의욕적으로 일을 벌이고 있다. ‘전당대회를 늦추려는 의도 아니냐’며 의원들이 웅성거리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전문가들은 국민의당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정체성 확립이라고 입을 모은다. 국민의당이 정체성을 명확히 한 뒤 다른 당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사안별로 협의와 견제를 해나가야 유권자들의 마음도 함께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태일 국민의당 혁신위원장은 6월5일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국민의당이) 나는 누구인가, 이것을 분명히 하지 못했기 때문에 선거 과정에서도 우왕좌왕했다. 그런 것들이 지지도를 무너뜨리는 데 기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당이란 것은 어떤 가치를 대표하느냐, 또 누구의 이익을 대표하느냐, 이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국민의당은 무엇을 대표하고 있는가. 이런 부분이 분명치 않았던 것이 현재 어려운 상황의 근원”이라고 진단했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위원도 “국민의당은 여당이나 문재인 정부에 대한 태도를 결정하기 이전에 스스로 포지션을 어디에 둘지 정해야 한다. 그에 대한 외적 표현으로 연대나 비판 전략이 나와야 한다”고 조언했다.

문제는 ‘중도’를 표방하는 국민의당이 어떤 계층을 대표하느냐를 결정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각 정당의 이념 지형을 놓고 보면 원내 5당 가운데 국민의당의 위치가 가장 애매하다. 정의당은 진보, 민주당은 중도진보, 바른정당은 중도보수, 자유당은 보수 노선으로 각각 위치를 선점하고 있다. 국민의당은 그 한가운데서 자신의 위치를 찾지 못하는 모습이다. 2016년 4월 총선이나 2017년 5월 대선에서 나타난 것처럼 사회·경제 정책을 놓고 봤을 때 민주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도 국민의당이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한다. 국민의당의 협조가 절실한 정부의 처지에선 초기 개혁 과제는 국민의당과 뜻을 함께하는 부분부터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의당은 기존 입장을 바꿔가면서까지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기가 쉽지 않다.

정치권 일각에선 국민의당이 정책이나 이념에 대한 정체성을 세우기 이전에 ‘제도 개혁’을 통해 존재 이유를 부각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런 제도 개혁 가운데 하나가 선거제도 개편을 통한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이다.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유권자들은 기존처럼 한두 개의 당에 지지를 몰아주지 않았다. ‘다당 체제’를 유지해 정치적 선택 폭을 넓히자는 게 유권자의 표심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당이 자신의 존재 기반이기도 한 다당 체제를 유지할 수 있게 선거제도 개편을 주도적으로 추진한다면 독자적인 정당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선거제도 개편은 국민의당의 명분과 실리, 이해관계가 모두 일치한다. 이에 부합하는 선거제도 개편을 적극 추진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다당 구도에서 국민의당이 살아남는 길

현재 한국의 총선은 ‘소선거구제 단순 다수대표제’로 치러진다. 이 제도는 한 지역구에서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사람 1명만 국회의원이 되는 방식이다. 지역구에서 1등을 가장 많이 배출할 수 있는 거대 정당만 살아남도록 해 양당 체제를 강제한다. 반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금처럼 유권자가 총선에서 지역구 국회의원 1표, 정당 지지 1표를 행사하되, 전체 의석수를 지역구가 아닌 정당 투표 결과에 따라 배분한다. 이렇게 되면 지역에서 의석수를 많이 확보하지 못한 소수정당이라도 정당 지지율에 따라 의석수가 늘어나 다당 체제를 유지하기 용이해진다.

이와 관련해 전국 220개 노동·시민단체가 참여하는 ‘정치개혁 공동행동’은 6월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포함한 3대 선거제도 개혁을 정치권에 요구했다. 여기에 참여하는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선거제도 개혁은 국민의당이 사활을 걸어야 하는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정책적 정체성이 확고한 정당, 책임 있는 정당을 만드는 것이 선거제도 개혁의 핵심이다. 선거제도 개혁에 합의하는 순간부터 정당들은 개혁적 정책 경쟁을 할 수밖에 없고 이를 통해 대통령이 추진하는 개혁 입법도 탄력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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