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같고도 또 다른 ‘위장전입’

투기나 자녀 학군 위한 위장전입과 결이 다른 새정부 공직자 위장전입 논란…

주민등록법 개정과 검증 기준 마련 여론 일어
등록 2017-06-06 07:47 수정 2020-05-02 19:28
2000년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이후 위장전입은 공직 후보자의 도덕성을 가늠하는 단골 소재로 작용해왔다. 문재인 정부의 첫 내각 후보자인 이낙연 국무총리(왼쪽),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운데),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도 위장전입 논란에 휩싸였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한겨레 신소영 기자, 청와대사진기자단

2000년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이후 위장전입은 공직 후보자의 도덕성을 가늠하는 단골 소재로 작용해왔다. 문재인 정부의 첫 내각 후보자인 이낙연 국무총리(왼쪽),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운데),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도 위장전입 논란에 휩싸였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한겨레 신소영 기자, 청와대사진기자단

5월31일 문재인 정부의 첫 국무총리인 이낙연 총리가 취임했다. 이날 오전 국회는 재적 의원 299명 중 188명이 참석한 가운데 찬성 164표, 반대 20표, 기권 2표, 무효 2표로 이낙연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가결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이 이 총리 부인의 위장전입을 빌미로 총리 임명동의안 표결에 불참하는 등 정치권 갈등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표결에 참여한 바른정당과 국민의당도 이낙연 총리 임명에 대승적 차원에서 동의했지만,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와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는 제대로 검증하겠다며 벼르는 상황이다.

세 후보의 도덕성 논란 가운데 가장 큰 쟁점은 ‘위장전입’이다. 특히 대선 기간에 문재인 캠프에서 발표한 5대 인사 배제(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전입, 논문 표절) 원칙이 깨진 것에 청와대와 여당은 곤란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문재인 대통령이 5월29일 “제가 공약한 것은 그야말로 원칙이고, 실제 적용에 있어서는 구체적 기준이 필요하다. 야당 의원들과 국민들께 양해를 당부드린다”며 이해를 구했지만 야당의 공세를 멈추진 못했다.

무조건적 지탄 대상 되지 않아

2000년 인사청문회 제도가 처음 도입된 뒤 위장전입은 공직 후보자의 도덕성을 가늠하는 단골 소재로 작용해왔다. 문재인 정부의 첫 인사청문회 대상자 3명도 예외 없이 위장전입 논란에 휩싸였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들의 위장전입은 무조건적 지탄의 대상이 되기보다 공직 후보자의 도덕성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논의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이는 이낙연 총리와 김상조·강경화 후보의 위장전입이 과거 고위 공직 후보자들의 위장전입과 다소 결이 다르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과거 고위 공직자의 사례를 보면 위장전입의 도덕성 기준이 정권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인사청문회 도입 초기인 2002년 7월 장상 총리 후보자가 아파트 매입을 위한 위장전입으로, 8월에는 장대환 총리 후보자가 자녀 진학을 위한 위장전입으로 나란히 낙마했다. 장상 총리 후보자는 당시 인사청문회에서 전세로 살던 아파트가 경매로 넘어갔던 상황을 설명하며 고의가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은 “살인을 할 의도와 목적이 없었더라도 결과적으로 사람이 죽으면 살인”이라고 몰아세워 결국 사퇴했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에는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부인의 부동산 투기성 위장전입이 밝혀져, 이 부총리가 취임 1년 만에 사퇴했다. 이 전 부총리의 부인은 1979년부터 네 차례 걸쳐 경기도 광주의 논밭과 임야 약 6천 평을 사들이는 과정에서 위장전입을 했다. 이 전 부총리의 부인은 또 1986년 전북 고창의 밭을 본인의 어머니로부터 살 때도 실제 살지 않으면서 주소지를 고창군으로 등록했다. 이런 사실은 2004년 취임 때는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다가 이듬해 고위 공직자 재산 공개를 통해 드러났다. 당시 이 전 부총리의 직위가 부동산 정책을 책임지는 자리라는 점에서 투기성 위장전입은 국민적 비판의 대상으로 떠올랐고 결국 그는 3월 사퇴했다. 비슷한 시기 최영도 국가인권위원장도 위장전입을 통한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사퇴했다.

MB 본인도 5차례나 위장전입

이명박 정부 들어 위장전입을 저지른 고위 공직자 수는 대폭 늘었다. 이명박 대통령 본인도 자녀 학교 진학을 위해 다섯 차례 위장전입 경력이 있다. 정권 수립 1년7개월 만인 2009년 9월에는 이명박 정부의 장관급 이상 고위 공직자 가운데 20% 넘는 16명이 위장전입을 했다는 사실이 통계적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이들의 위장전입은 부동산 투기와 자녀 학교 배정 등 대부분 ‘부당이익 취득’ 목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위장전입 수 자체도 많았지만 여간해서는 위장전입을 이유로 사퇴하지 않았다는 점은 이명박 정부의 또 다른 특징이다. 위장전입이 밝혀진 16명 가운데 사퇴하거나 후보직에서 낙마한 사람은 4명에 불과했다. 사퇴한 이들도 위장전입 자체가 아닌, 다른 여러 의혹과 겹친 경우가 많았다.

이 가운데 이봉화 당시 보건복지가족부 차관은 과거 부동산 투기를 위해 경기도 안성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위장전입을 한 사실이 취임 초인 2008년 밝혀졌고 본인도 인정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 인맥으로 발탁돼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얻던 이 차관은 ‘버티기’에 나섰다. 하지만 6개월 뒤인 2008년 10월 쌀 직불금 부당 수령 논란이 일면서 사퇴했다. 이 차관의 쌀 직불금 문제는 이후 검찰에 의해 무혐의 처리됐다. 이후 2012년 총선에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이 그를 비례대표 15번으로 내정하면서 또다시 논란이 불거졌지만, 국민적 비판 여론이 거세지면서 공천을 취소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고위 공직자의 도덕성 기준은 크게 낮아졌다. 특히 ‘도덕성에 문제가 있어도 능력만 있으면 된다’는 잘못된 인식이 한국 사회에 폭넓게 자리잡게 됐다. 최창열 용인대 교수는 “고위 공직에 올라가려면 정의로우면 안 된다는 인식까지 생겼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공적 권력을 이용해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거나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도덕성 검증’이라는 인사청문회의 목적은 크게 훼손됐다.

이명박 정부에서 낮아진 도덕성 기준은 박근혜 정부에서도 그대로 유지됐다. 2013년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가 위장전입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문제없이 총리직에 올랐고, 이후에도 유일호 경제부총리를 포함해 자녀의 강남 8학군 진학 등을 위해 위장전입을 한 사실이 밝혀진 공직 후보자들이 줄줄이 청문회를 통과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도덕 불감증은 결국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희대의 권력형 비리로 터져나왔다.

‘주소 불일치’의 문제인 경우도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2005년 부인의 투기성 위장전입 사실이 밝혀지면서 취임 1년 만에 사퇴했다(왼쪽). 이봉화 전 보건복지가족부 차관은 2008년 부동산 투기성 위장전입 사실이 밝혀졌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한겨레 강창광 기자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2005년 부인의 투기성 위장전입 사실이 밝혀지면서 취임 1년 만에 사퇴했다(왼쪽). 이봉화 전 보건복지가족부 차관은 2008년 부동산 투기성 위장전입 사실이 밝혀졌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한겨레 강창광 기자

과거 여당으로서 위장전입 후보들을 적극 비호해왔던 자유한국당은 이제 야당이 되어 이낙연 총리의 임명 반대와 더불어 강경화·김상조 후보의 자진 사퇴를 주장한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후보의 위장전입이 고위 공직을 맡지 못할 정도의 흠결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과거 공직 후보자의 위장전입이 문제가 된 것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주로 부동산 투기나 자녀 학군이라는 ‘부당이득 취득’ 목적이 분명했던 반면, 이번 후보자들은 부동산 투기가 목적인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강경화 후보는 자녀의 학교 배정을 위해 위장전입을 했지만 이른바 ‘강남 8학군’은 아니다. 물론 ‘원하는 학교 배정’이라는 편익을 취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점에서 도덕적 비판을 받아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과거 사례에 비추어 낙마 사유가 되는지에는 의견이 갈린다.

특히 김상조 후보자의 위장전입 사유는 다른 후보들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논란이 되는 위장전입 두 건 가운데 한 건은, 1997년 1월 부인과 아들의 주소를 친척집으로 옮겨 17일 동안 위장전입을 한 경우다. 법을 위반한 것은 맞지만 아내가 지방으로 전근하는 상황에서 가까이 살던 친척집에 아이를 맡기고 원래 살던 동네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 후보자의 설명이다.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아내는 아들 교육을 위해 직장을 그만뒀고 가족은 서울 중랑구로 이사했다. 이는 좋은 학교 배정이나 부동산 투기 등 ‘부당이익 취득’ 목적으로 볼 수 없다. 또 다른 건은, 2004년 해외 연수를 가면서 다른 이가 전세를 사는 서울 목동의 자기 소유 아파트로 집주소를 옮긴 것이다. 이는 해외에 거주하면서 우편물을 수령하려는 목적으로 행정자치부에서 공식적으로 위법이 아니라는 판단이 나왔다.

김상조 후보의 위장전입 사례가 논란이 되면서 이 기회에 위법을 양산하는 주민등록법 일부를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애초 주민등록제도는 군사독재 시절 주민 통제와 감시를 위해 만들어졌다. 1962년 공포된 주민등록법 제1조는 이 법을 “주민의 거주관계를 파악하고 상시로 인구동태를 명확히 하기 위하여”라고 명시한다. 이 법은 국내 거주 한국인이 주소지를 실제 거주지와 다르게 등록할 경우 이유를 불문하고 모두 처벌한다. 이로 인해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표적인 예가 오피스텔 세입자다. 이들은 세금을 회피하려는 집주인에 의해 위장전입을 강제당하는 경우가 많다.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오피스텔을 사업용으로 사용할 때 여러 세금 혜택이 있기 때문에 오피스텔 임대인이 주거용으로 사용하는 세입자의 전입신고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경기도 성남시에서 전수조사를 했더니 이런 사례가 (전체 표본의) 40%나 되었다. 세입자는 본의 아니게 위장전입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외에 학업을 위해 서울에서 거주하는 대학생들이 집주소를 고향집으로 남겨놓는 경우, 예체능 특기생들의 타 지역 주소지 이동, 공무원 준비생들의 시험을 위한 주소 이동 등 다양한 사례가 있다. 한창민 정의당 대변인은 “위장전입이 굉장히 부정적 어감을 풍기는데 ‘주소 불일치’의 문제로 봐야 하는 경우도 많다. 주민등록법을 어쩔 수 없이 어겨야 하는 서민들의 상황이 많이 발견된다. 이것의 개선책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용인되는 현실적 범위 정해야”

이번 위장전입에서 또 다른 변수는 거짓말 논란이다. 청와대는 강경화 후보자가 2000년 자녀를 이화여고로 전학시키기 위해 친척집에 주소를 두는 위장전입을 했다고 밝혔지만, 실제 주소지는 친척집이 아닌 이화여고의 교장을 지냈던 심치선씨의 집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학교 고위 관계자의 집에 위장전입하는 것은 기득권층이 아니면 할 수 없는 행위로 서민 정서와는 거리가 멀다. 법적·도덕적 문제가 제기될 여지가 충분하다. 이에 대해 강 후보자의 남편인 이일병 연세대 컴퓨터공학과 명예교수는 5월31일 “인사 검증 과정에서 내가 잘못된 정보를 청와대에 전달했다. 후보자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강 후보의 적격성 여부는 6월7일 인사청문회에서 가려질 것이다.

한 가지 생각할 것은, 공직 후보의 적격성을 논의해야 하는 청문회가 언제나 여야 ‘정쟁’의 무대가 되어왔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여야가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머리를 맞대고 고위 공직자 도덕성 기준의 현실적 범위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문재인 정부가 한 사람이 공직에 적합한지 아닌지 명확한 기준을 만들어 집행하기보다 “기준 앞뒤로 관용할 수 있는 현실적 범위를 설정해야 한다. 그것이 인사청문회고, 정치다. 대통령이 제시한 원칙을 지키면서 그것을 기준으로 도덕성을 조금씩 높여가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경직된 기준을 대통령과 여당이 일방적으로 정할 것이 아니라 여야가 함께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정치권 안에서도 고위 공직자 도덕성 기준을 마련하는 협의체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아직까지 현실화하지 못하고 있다.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는 5월29일 정세균 국회의장과 각 당 원내대표와의 회동에서 “나는 수차례 국회가 인사청문 통과 기준을 마련하자고 요구했다. 몇몇 분이 동의해서 그런 절차가 만들어질 걸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전날 “국민이 납득할 만한 고위 공직자 검증 기준을 국회와 청와대가 함께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따라 여야는 5월31일 국회 운영위원회 소위원회를 열어 청문회 검증 기준을 마련하기로 했지만 자유한국당의 불참으로 무산됐다.

정태옥 자유한국당 원내대변인은 과의 통화에서 인사청문회 기준 마련을 위한 회의체 구성에 대해 “총리 인사청문회 물타기용이었기 때문에 응하지 않았다. 남은 청문회 일정이 다 끝난 뒤 충분히 고민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청와대가 제안한 ‘2005년 7월 이후 위장전입자 배제’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부터 논의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유한국당이 당장 회의에 참여하지 않는 것에 여당은 ‘위장전입이란 공격 카드를 놓지 않으려는 의도’가 담겼다고 본다. 민주당 관계자는 “인사청문회 진행 중에는 야당이 자신들의 공격 포인트를 해소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청문회가 다 끝난 뒤에야 논의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원칙의 예외 정당화해선 안 돼”

야당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여론은 아직 정부에 그리 나쁘지 않다. 여기에 가장 위험한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가장 경계할 지점이 여론을 등에 업은 채 원칙을 벗어난 ‘예외’를 인정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여론만을 무기로 현재의 논란을 돌파하면, 문제는 이후에도 문재인 정부의 짐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스스로 천명한 원칙에 여론을 끌고 들어와 그 원칙의 예외를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돌파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