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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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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으려고 해보는데 쉽지가 않아요”

중국 등 외국자본의 광풍이 제주를 삼킬지 모르는 시대의 원희룡 제주도지사 인터뷰… 환경과 공존하는 개발 원칙 등 있지만 “솔직히 설거지하느라 미치겠습니다”
등록 2016-08-03 09:22 수정 2020-05-02 19:28
제주로 사람이 모여들고 있다. 없던 문제가 생겨났고, 있던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갈등을 풀어야 하는 정치도 바빠졌다.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제2공항’ 건설 예정지의 성산 주민들, 해군기지 건설로 10년째 고통받는 강정 주민들, ‘제주 4·3사건’으로 68년간 고된 삶을 사는 희생자 등은 여전히 ‘정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요즘 제주에서 가장 바쁜 원희룡 제주도지사를 이 만났다. 그에게 난개발, 주택·토지 가격 폭등, 교통량 폭증, 취업난 등 현안을 묻고 대책을 들었다. 뒤이은 기사에선 ‘낯선 아름다움’의 제주어와 제주의 아픈 역사, 독특한 문화를 다룬 책들을 소개한다.
원희룡 제주특별도지사의 집무실엔 책이 없었다. 칸막이 책장에는 인형, 공예품, 그림, 조각 등이 들어차 있었다. 직접 꾸민 것은 아니라고 했다. “이런 일은 젊은 사람들에게 맡겨놓는다”고 했다. 전국 지자체장의 집무실을 모두 다녀본 것은 아니지만, 유독 젊은 감각의 사무실이었다.
그는 올해 51살이다. 49살에 제주지사가 됐다. 1992년, 28살에 사법고시를 수석 합격했다. 나중에 사법연수원을 수석 졸업했다. 1982학년도 대입학력고사에선 전국 수석으로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제주제일고를 졸업하고 고향을 떠나던 날, 그는 이미 제주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제주가 낳은 인물’이라는 이야기를 일찍부터 들었다. 지난 2년 동안, 그는 명성과 기대에 어찌 부응했을까.
7월26일 오후 3시, 제주도청 도지사 집무실에서 원희룡 지사를 만났다. 인터뷰 앞뒤로 면담 예정이 빡빡했다. 그는 우리에게 1시간을 내줬고, 결국 1시간30분을 인터뷰했으나, 궁금한 것을 모두 묻기엔 여전히 부족했다. 인터뷰는 안수찬 편집장이 진행했고, 서보미 기자가 정리했다.
임기 절반을 끝낸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중국 투자 과잉, 난개발 허용 등을 지적하는 목소리에 대해 “취임 이전 시작된 사업들을 그나마 조정하여 개선시키고 있다”며 “실제 노력한 과정을 이해한다면 사라지게 될 오해”라고 말했다.

임기 절반을 끝낸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중국 투자 과잉, 난개발 허용 등을 지적하는 목소리에 대해 “취임 이전 시작된 사업들을 그나마 조정하여 개선시키고 있다”며 “실제 노력한 과정을 이해한다면 사라지게 될 오해”라고 말했다.

2004년 한나라당 천막당사 시절 뵙고 처음이군요.

아, 맞아요. 천막당사!

대선 불법자금 모금 때문에 ‘차떼기당’의 오명이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 따라붙던 시절, 박근혜 대통령이 새로운 당대표에 올랐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여의도 공터에 천막을 치고 당사를 옮긴 것이었다. 그에게 당대표 출마를 강력히 권유한 것은 원희룡, 남경필 등 당시 소장파 의원들이었다. 이후 총선에서 박 대표는 침몰 직전의 한나라당을 구했다. 원 지사도 당시 재선에 성공했다. 몇 달 뒤 전당대회에서 원 지사는 박 대표에 이어 2위를 차지하며 당 지도부 반열에 올랐다. 2004년 이후에도 행보를 지켜봤는데, 2014년 제주행은 조금 급작스러웠어요.

상투적 표현일지 몰라도 ‘고향 봉사’라는 생각이 강했죠. 변화의 기로에 선 제주에서 제가 할 일이 있다고 느꼈어요. 계획했거나 그 전부터 생각했던 건 아니라는 게 솔직한 사정이에요. 그러나 (국회의원) 3선 하고 쉬고 있는데 중앙당과 지역에서 부름도 있었고. 대중 정치인이니까 언제든 사회가 부르고 기회 되는 곳에 공인으로 봉사한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죠.

2014년 6월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원 지사는 그 전까지 지사를 번갈아 맡았던 우근민·신구범·김태환 등 ‘제주판 3김’의 시대를 끝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1%의 1천년 저항의 정치’ 기사 참조 ) 

제주 지사의 역할이 다른 지자체장의 그것과 다른 면이 있을까요.

국제자유도시를 완성하겠다는 국가적 목표가 분명하고 그를 위해 특별자치도라는 틀과 수단이 주어져 있어요. 규모가 작으면서도 여러 국제적 사업의 현장이니까 (행정의) 성과가 분명히 드러나는 측면도 있지요. 그러니 도지사로서 전 국민적 책임감이 있습니다. 제주도는 우리의 쉼터이자 안식처라는 생각을 국민이 갖고 있으니까요. 난개발이나 외국투자 등으로 인해 제주의 원래 모습이 손상되는 것에 국민들 걱정이 많다는 것도 압니다. 이를 바로잡고 지켜야 한다는 것에 일차적 사명감을 느끼고 있죠.

제주특별자치도는 다른 지자체와 비교해 높은 수준의 자치권이 부여된다. 도지사 직속의 자치경찰이 있고, 제주시·서귀포시의 시장도 투표를 거치지 않고 도지사가 직접 임명한다. 이주민이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어느 수준까지 이주민 규모가 늘어나는 게 적당하다고 보나요.

최근 이주민 규모가 정점에 이르렀을 가능성은 있어요. 그래도 갑자기 다시 이주 규모가 줄어들기보다는 이 추세가 유지될 것 같습니다. 국민의 삶의 가치관이 바뀐 거죠. 경쟁 위주의, 앞만 보고 가는 대도시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으로 봐요. 특히 제주도는 대자연과 도시 생활이 가까운 거리에 압축돼 있거든요. 게다가 귀촌·귀농과 관련된 1차산업을 응용한 부분도 많고…. 그래서 제2의 인생을 설계하기에 유리한 면이 있어요.

취재 기간 내내, 제주 땅값이 폭등했다는 이야기를 주민들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지역에 따라선 불과 2~3년 만에 20~30배 폭등한 곳도 있었다.( ‘‘탐욕의 섬’ 길목에 선 탐라도’ 참조)인구 유입이 급증하면서 당장 부동산 문제가 심각한 것 같아요. 도심 아파트 가격이 서울 강남 수준이더라고요. 경제적 형편 때문에 제주 이주를 포기하는 사람이 많아질 것 같아요.

5년 전쯤 제주로 이주하겠다는 사람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를 봤는데, 3천만원 저축으로 제주 오겠다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3억원 저축이면 고소득층에 속했죠. 지금은 몇 배 수준으로 올랐을 겁니다. 최근 몇 년 동안의 부동산 가격 폭등은 이주를 꿈꾸던 많은 사람들뿐 아니라 도민들, 제주에서 경제활동을 하려는 이들에게도 고통을 안기고 있죠.

당장은 투기적 수요를 진정시키려 해요. 토지 거래를 허가제로 한다든지, 아니면 난개발을 강력하게 제어한다든지. 취임 이후 이 부분을 아주 강도 높게 강화하고 있어요. 농사짓지 않는 사람이 농지를 소유하면 이를 환수하는, 아마 대한민국 사상 최초의 조치도 이미 2년째 하고 있어요.

동시에 실수요 증가에 대해선 적정한 공급이 필요하죠. 그래서 괜찮은 공공임대주택, 적정 가격에 분양할 수 있는 주택의 공급을 앞으로 10년간 10만 가구를 공급하려 합니다. 앞으로 부동산 시장의 추이를 보면서 완급을 조절할 생각입니다.

지금 제주에선 대형 사업들이 진행되고 있어요. 예컨대 제2공항은 지금 말씀하신 난개발을 막겠다는 것과 배치되는 거 아닌가요.

제2공항은 기존 (제주) 공항이 포화상태라서 국가적으로도 과제였어요. 지역 주민들의 25년간의 묵은 현안이기도 했지요. 그것을 결론 내려 진행하고 있는 거죠.

기존 공항을 확장하는 등의 대안을 찾으라는 지적도 있던데요. 해당 지역 주민들이 최근 반대 대책위도 만들었고요.

원래 기존공항 확장안, 신공항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연구조사를 했어요. 기존 공항을 확장하면 비용이 저렴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제주공항 주변은 이미 도심으로 개발돼 있어 바다 방향으로만 확장이 가능해요. 그래서 대규모 해양 매립이 필요한데, 그렇게 되면 천혜의 해안선과 해상 식생 등의 대규모 훼손이 불가피해져요. 대규모 매립 공사로 사업비도 크게 높아지지요. (항공 연습용으로 사용 중인) 정석비행장의 경우, 입지 평가 과정에서 기상, 환경, 접근성, 공공지원 시설 분야 등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입지인 것으로 분석됐어요. 그래서 제2공항 건설로 방향이 모아진 것이고요.

지난해 11월 국토교통부는 ‘성산 제2공항’ 건설을 발표했다. 2025년까지 총사업비 4조1천억원을 들여 연간 250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국제공항을 짓겠다는 것이다. 예정 부지는 495만m²(150만 평)다.( ‘“조용히 살당 가시믄 조으크라”’ 참조)  

주상절리대가 있는 지역에 호텔 신축도 허가하셨어요. 자연환경을 보존해야 한다는 여론이 많던데요.

그동안의 과정을 잘 모르시면, 경관 보존하겠다는 제 입장과 모순된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겠죠. 솔직히 말해 설거지하느라 미치겠습니다. (함께 웃음) 주상절리 지역에 들어설 호텔은 제 취임 당시 이미 절차가 상당 부분 진행됐습니다. 그런데 호텔이 모든 경관을 막게 돼 있었던 것을 제가 다시 심의하게 해서, 건물 중간중간에 경관을 확보하도록 했고, 해안에 공공의 접근도 보장하도록 했어요. 지금도 건설사 회장을 여러 차례 만나 직접 담판을 지으면서 계속 양보를 받아내는 과정에 있습니다.

(애초부터) 왜 기업에 땅을 줬냐는 분도 있어요. 저도 (취임 뒤에) 물어봤더니, 중문 관광단지에 아무도 투자를 안 해서 (취임 전) 제주도에서 건설사에 떠맡겼다는 겁니다. 그러니 억지로 호텔을 지어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지금은 다시 제한하려 하니까, 투자자 입장에선 불만이 많죠. 중국 투자자들도 원희룡 지사 때문에 못해먹겠다고 하고요, 국내 투자자들도 아주 불만이 많아요.    

딜레마적 상황이 계속 발생할 것 같군요. 수요에 부응하겠다면 결국 개발을 계속하게 될 텐데요.

인프라 확충과 관련해서, 제주 경제를 지금보다 줄여야 한다는 극단적 의견도 있지만 적정한 성장은 뒷받침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주는 자급자족 경제가 아니에요. 개방성을 바탕으로 전세계와 연결된 것을 잘 유지해야죠. 다만 그 과정에서 외부 주도가 아니라 도민이 주도해 도민의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을 찾아야죠. 성장 자체를 도외시하는 것은 동의가 어려습니다.

개발 문제와 관련해 취재 기간에 만난 어느 제주도민이 말했다. “중국이 제주를 집어삼킨다는 불안이 많아요. 그 실체를 꼭 좀 파헤쳐주세요.”( ‘독도는 우리땅! 제주도 우리땅?’ 참조) 이 문제를 꺼내자 원 지사는 컴퓨터로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인터뷰 도중, 원 지사가 인터넷 검색으로 중국 언론의 기사를 보여주고 있다.

인터뷰 도중, 원 지사가 인터넷 검색으로 중국 언론의 기사를 보여주고 있다.

제주도가 중국에 다 넘어간다는 이야기가 도민들 사이에 퍼져 있더군요.

(컴퓨터 화면으로 중국어 기사를 보여주며) 자, 참고로 보여드릴게요. 이건 중국 관영라디오 기사입니다. ‘한국 제주도에 새로운 지사가 취임하더니 중국 투자에 대한 태도가 돌변했다. 변검했다. 즉, 얼굴을 바꿨다. 중국 투자를 투기자본이라 하면서 근본부터 재검토한다는데 이래 갖고 중국 투자 되겠냐’는 내용이죠. 이 기사가 나온 건, 제가 취임하기 전이에요. 그러니까 취임 전부터 (중국 투자에 대한 입장을) 선언했고, 취임하자마자 대규모 투자에 대한 제주도의 방침을 정했어요. 중산간 이상 지역을 잠식해 들어가는 사업 여러 건이 허가 직전까지 갔는데 전면 재검토했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 녹지그룹이 짓는다는 56층짜리 빌딩을 재협상해서 38층으로 낮췄죠. 이런 일이 중국 투자에 대한 적대적 정책이라 해서 외교 현안이 될 정도였어요.

제 취임 이후 (중국 투자와 관련해) 새롭게 진행하는 건 사실상 전혀 없고요. 취임 전에 절차가 진행되던 것은 강화된 기준으로 다시 검토한 겁니다. 그런데 취임 전부터 진행되던 것이 (취임 이후에) 완공되니까, 계속 그런 오해를 하시는 것 같아요.

중국 투자에 대한 기본 입장은 뭔가요.

중국까지 가서 투자자들에게 설명도 했어요. 3대 원칙을 내걸었죠. 환경보전에 부합하지 않으면 일절 불허하겠다. 지속적인 경제활동이 가능한 투자만 받아들이겠다. 특히 숙박시설을 만들어 분양하는 식의 투자는 허용하지 않겠다. 마지막으로, 에너지·문화·관광·국제교류 등 제주의 미래 가치를 높이는 투자만 받겠다. 이 원칙을 투자 심사, 건축 인허가 등에 구체적 지침으로 스며들게 했어요. 그게 안 되면 사업 못하겠다고 선언했죠. 그렇게 해서 중국 투자자들이 땅 사놓고 전혀 진도 못 나가는 건이 여럿 있어요.

그런 사업으로 구체적으로 뭐가 있죠.

‘차이나 비욘드 힐’이라고 500세대의 콘도를 짓는 사업이 있는데, 그것과 똑같은 것을 그 지역 아래에 또 하겠다고 했어요. 취임 당시 이미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는데, 보완 명령을 내렸어요. 심사가 여전히 진행 중이긴 하데, 엄격한 기준으로 보완 명령을 내렸으니, 그것에 맞는 사업계획을 제출 못하고 있죠.

반대로, 3대 원칙을 적용해서 진행 중인 사업은 무엇이죠.

신화역사공원이오. 취임 전에 허가가 났지만, 다시 새 조건을 걸었어요. 실제 관광 수요에 맞게 숙박시설을 계산해서 다시 제출해라. 그래서 4500실로 돼 있던 걸 3천실대로 줄였고요. 도민 80% 이상 고용하라고 해서, 앞으로 2~3년에 걸쳐 도민 4천 명을 고용해야 하고요. 이런 식으로 일자리 창출과 지역업체 상생 등에 대한 이행 계획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허가하지 않는다고 했지요. 앞으로 진행할 대규모 투자에 대해서도 이런 방식의 상생 조건을 엄격하게 관철할 생각입니다.

제주도는 최근 잇달아 환경 친화 정책을 발표했다. 반면 제주해군기지는 대표적 반환경·반평화의 상징으로 꼽힌다. 그 모순을 어찌 이해하는지 궁금해졌다. 환경 관련 새로운 정책을 많이 추진한다고 들었습니다.

청정을 유지하는 핵심은 에너지와 교통입니다. 지금 육지에서 해저케이블 등으로 공급받고 있는 원자력이나 석탄 에너지로부터 완전히 독립한다는 게 ‘탄소 없는 섬’ 프로젝트입니다. 2030년까지 4기가 이상의 전력을 풍력, 파력, 태양광, 바이오 등을 통해 자급자족할 뿐 아니라 수출할 생각입니다. 교통은 원칙적으로 전기차로 갑니다.

세계적으로 보면, 청정이라는 개념 안에 환경 말고 평화도 포함하는 추세입니다. 청정을 추구하신다면 강정 해군기지 등도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요.

원래 제주가 2007년 평화의 섬으로 지정됐습니다. 국제평화회담도 많이 열리죠. 4·3사건 행사도 유족회와 경우회가 함께 치르고 있어요. 앞으로도 평화와 치유를 유념하고 강조하는 방향으로 가야죠. 현재의 갈등도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강정의 경우, 해군기지 자체는 완공됐습니다. 이제 (정부가 주민들을 상대로 낸) 구상권 청구 때문에 마지막 갈등의 골이 메워지지 못하고 있는데, 이건 시간이 좀 걸려도 제주도가 앞장서서 중재하고 풀겠습니다.

제주도가 나서서 문제를 풀 여지와 방법이 무엇인가요. 뭘 할 수 있을까요.

솔직히 지금 뾰족한 카드는 없습니다. 지난 8년간 행정에 대한 강정 주민들의 불신이 워낙 커서…. (직접 나서서) 대화를 유지하기 위해 공식·비공식 노력을 정말 많이 기울였습니다. 다만 정부도 구상금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해군기지 건설) 반대 투쟁으로 워낙 애를 먹어서 경고 등의 효과를 노리는 게 아닌가 합니다. 그러니까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풀지 못한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자본을 유치해 없던 시설을 만들면 결국엔 일자리 등 주민들의 복지가 증진된다, 고 정치인들은 말한다. 그 약속을 믿은 주민들의 상당수는 나중에 배신감을 토로하기도 한다. 제주도의 사정은 다를까. 

세계적 관광지의 공통점이 있어요. 돈 버는 사람들은 있는데 원주민의 소득은 낮죠. 제주도민의 평균임금이 여러 지자체 가운데 최하위 수준입니다.

공기업과 외국투자 기업 중심으로 꾸준히 임금 수준을 높이자는 걸 정책 기조로 삼고 있어요. 제주개발공사나 에너지공사 등 공기업들, 그리고 신화역사공원 등 수조원을 투자한 민간기업들이 도민 중심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그 임금과 복지 수준을 최대한 높이는 걸 조건으로 걸어서 일자리 창출형 투자로 유도할 겁니다. 또 제가 주목하는 건 고급 두뇌랄까, 문화예술인들입니다. 전세계적으로 보면, 창조적 두뇌들이 거주하고 작업하기 좋은 장소로 날씨 좋고 경치 좋고 대자연 가까이에 있는 도시들이 각광받거든요. 그래서 이런 문화 부문에서 일자리를 창출하려고 해요. 올해는 문화예산만 400억원 증액했습니다. 이주 예술가들이 일할 수 있는 문화 커뮤니티를 공공 주도로 만들어갈 계획입니다.

오늘 말씀 중에 아직 소외계층에 대한 이야기는 안 하셨어요. 다른 지자체에 비해 제주도는 그 분야에 대해 그다지 절실하지 않아 보이는데, 어떠세요.

복지와 관련해 우리가 초점을 두는 것은 일자리 창출이에요. 그 밖에 경제적 약자나 장애인 계층에 대한 복지는 어느 지자체 못지않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워낙 다른 대형 현안이 많아서 복지 분야를 내세우지 않은 것뿐이죠.

청년배당이나 기본소득에 대해 어찌 생각하나요.

그렇게 한다고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것인지 (다른 지자체 사례를) 예의주시하고 있어요. 제주는 직접 공기업과 투자기업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고 있어요. 그냥 돈을 주는 것보다 연봉 2천만원짜리 일자리 1천 개 만드는 게 더 확실한 거 아닐까요.

인터뷰 전, 그의 정치적 미래에 대한 제주 사람들의 의견과 전망을 두루 들었다.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그런 일 모두 하려면 남은 임기 2년이 모자라겠어요.

이어달리기라는 게 있어요. (함께 웃음) 한 사람이 계속 달리는 마라톤도 있지만 여럿이 나눠 달리는 일도 있는 겁니다. 누가 (도지사를 ) 하더라도 시스템에 의해 도민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는 게 중요하죠.

제주에서 펼친 일을 중앙정치 차원에서 구현할 생각은 없나요.

미래 에너지나 관광을 비롯한 국제적 서비스 산업은 제주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제주에서 먼저 실험 또는 시범을 보여서 대한민국의 먹거리와 직결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런 대목은 늘 고민하면서 중앙정부를 설득하고 있어요.

직접 중앙정치를 할 생각이 있는지 물었던 겁니다. 박원순, 남경필, 오세훈 등 전·현직 지자체장의 상당수가 대권 도전에 나섰거나 그 준비를 하고 있잖아요.

(웃으며) 언제든지 열려 있죠. 지자체는 종합행정이고 (국회의) 일반 정치와 달리 직접 성과를 내고 그것에 책임지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니 국가경영과 직결돼 있는 게 맞죠. 앞으로도 국가 지도자는 지자체장의 경험을 가진 사람 중에 나오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지자체장 출신들의 대선 도전을) 긍정적으로 봅니다. 다만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내가 어떻게 할 거냐, 이렇게 물으면 그건 참, 간단한 문제가 아니죠.

대통령은 지자체 경험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한다는 거죠?

(웃으며) 네, 그렇게 써주세요.

빠뜨린 질문이 있네요. 제주는 마을 공동체가 살아 있는 유일한 지역인데요. 전세계적인 마을 네트워크를 만드는 일을 제주가 선도하는 건 어떤가요. 이 문제에 이 관심이 많거든요. (웃음) 

예를 들어 제주 가시리 마을은 세계적인 모범사례입니다. 그 밖에도 성공적인 마을이 제주에 많아요. 그러니까 이게 연구 대상입니다. 제주에 고유한 마을문화의 에너지를 살리면서도 이를 어떻게 국제화할지 고민이 필요하죠. 이건 유엔도 관심을 많이 갖고 있어요. 마침 내년에 유엔 문화정상회의를 제주에서 합니다. 이런 자리를 통해 제주의 마을과 문화, 그리고 도시 재생의 사례를 소개할 수 있을 겁니다. 함께 고민해봅시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사진을 찍는 동안 몇 마디 더 물었다. “예전 ‘미래연대’(2000년대 한나라당 소장파 모임) 멤버들과는 가끔 연락하시나요.” “네, 가끔.” “남경필 (경기도)지사하고도 만나시나요.” “음, 개인적으로 만난 적은 최근엔 없고…. 뭐, 도지사 협의회 나가면 만나니까.”
10여 년 전 소장파였던 두 사람은 한때 박근혜 당대표 체제의 주역이었으나, 이제는 새누리당의 반박근혜 진영을 대표하는 대권 주자로 거론되고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대권 도전에 대한 말을 아꼈다. 마을과 도시, 개발과 환경, 갈등과 평화 사이에서 전에 없는 혼돈을 겪고 있는 제주민들에게 절실한 존재는 무엇일까. 제주 출신의 대통령일까, 아니면 고향을 아끼는 제주지사일까.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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