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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세력 ‘샅바싸움’

등록 2001-12-19 15:00 수정 2020-05-02 19:22

민노당·사회당의 치열한 정체성 논쟁… 진보정당 통합 논의도 가열

민주노동당과 사회당 홈페이지 게시판은 요즘 불꽃이 튄다. 두당의 당원과 지지자들이 서로의 지향점과 대북관, 통합 진보정당 창당방법 등을 놓고 치열하게 논쟁하고 있는 것이다.

논쟁의 씨앗은 지난 11월30일 황광우 민노당 중앙연수원장이 당 기관지 67호에 기고한 ‘사회당 동지들에게 드리는 7가지 질문’. 황 원장은 “보수 정치세력은 어제의 적과 손을 잡고 권력을 재생산하는 ‘큰일’ 앞에서만큼은 작은 차이를 슬기롭게 극복해왔는데, 민중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진보진영은 아직도 ‘작은 차이’에 눈이 어두워 큰일을 도모하지 못하고 있다”며 사회당에 서슬 퍼런 질문을 던졌다.

‘작은 차이’에 따른 가시밭길 예고

그는, 민노당 지도부는 (구로을과 동대문을) 보궐선거에서 두명의 진보정당 후보가 나선 것은 국민 앞에 죄악을 저지른 것이라는 반성을 했는데, 사회당은 어떻게 평가하느냐며 포문을 열었다. 잇따라 △사회당은 이념정당인가, 진보정당인가 △조선노동당은 사회당의 적인가 △사회당이 개량파로 규정한 운동진영은 구체적으로 어디인가 △사회당은 사회민주주의인가 혁명적 사회주의인가 △사회주의 강령없는 당도 사회주의 정당인가 등을 캐물었다. 황 원장은 특히 청년진보당이 사회당으로 개칭하면서 내건 ‘반자본주의, 반조선노동당’ 노선의 모순을 지적하며 아주 도전적으로 물었다. “조선노동당도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세력이다. 남한의 노동계급이 북한으로 쳐들어가 조선노동당을 물리치자는 것인가. 사회당은 진정으로 조선노동당을 적으로 생각하는가.”

사회당 지도부는 공식반응을 자제했다. 그러나 당원들은 분노했다. 황 원장이 악의적 질문으로 사회당을 매도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사회당 구로을 선거대책본부장을 지낸 김준오씨는 “그렇다, 적이다. 조선노동당을 북한의 노동자 민중을 억압하는 절대권력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공격적인 답글을 올렸다. 김씨는 며칠 뒤 3주 전 민노당에서 진보대연합을 위해 만나자고 했는데 이를 거절하자 황광우 원장이 화가 나 사회당을 공격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사회당과 통합이 어려울 것 같자, 별 사상도 없이 진보진영 통합의 대의를 거부하는 집단으로 낙인 찍자”는 게 속셈이라는 것이다.

도대체 황 원장은 왜 이런 도발적인 글을 썼을까. “청년진보당일 때는 민노당과의 차이가 그 자체로 선명했다. 그런데 어느날 강령이나 내용변화 없이 사회당으로 이름만 바꾸면서 마치 노동계급을 지도하는 대표정당처럼 비쳐졌다. 패션을 바꾸자 내용은 은폐됐고 노동자들도 혼동하고 있다. 당명을 바꿀 때부터 논쟁을 했어야 하는데 시기를 놓쳤을 뿐이다.” 민노당과 사회당의 차이를 분명히해 노동자의 혼동을 없애야 한다는 개인적 신념에 따라 문제를 제기했다는 것이다. 황씨는 특히 “사회당이 실상 내용도 없이 민노당을 개량주의로 몰면서 선명 혁명정당처럼 행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회당은 재·보선 패배와 진보신당 창당론, 지방선거 후보자리를 둘러싼 논쟁 등 민노당 내부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사회당에 조직적인 시비를 걸고 있다는 의심을 품고 있다. 사회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진보진영 대표를 자처한 민노당이 지난 재·보선에서 사회당과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자 안팎의 불만이 거세졌다. 조급해진 나머지 진보진영 연합을 통한 재창당을 추진하는 데 사회당이 걸림돌이라고 보고 단합을 저해하는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논쟁이 격화되자 두당의 지도부 모두 곤혹스러워한다. 특히 심각한 것은 논쟁이 격화되면서 인신공격성으로 흐른다는 점. 몇몇 사회당 지지자들은 “친북세력인 전국연합과 한총련이 함께하는 민노당과의 통합은 있을 수 없다”면서 친북논란을 일으켰다. 두당 지도부 인사에 대한 인신공격성 비난도 난무하기 시작했다. 이상현 대변인은 황 원장의 글에 대해 “당의 공식입장이 아니고 한 개인의 기고문일 뿐”이라며 “사회당과 이런 식의 논쟁을 계속하는 것은 아무런 득이 안 된다. 생산적인 논쟁을 시작할 때”라고 진화에 나섰다.

민노당은 12월14일 노동·시민·사회운동 등 모든 진보세력을 망라한 통합진보정당 창당방침을 공개 천명하고 사회당에 통합을 공식제안했다. 공개적인 장에서 연대방법은 논의하자는 것이다. 사회당도 12월13일 신석준 대변인 명의로 빗장을 열었다. “민노당 일부 세력과는 절대 당을 같이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민노당에 반대하지 않는다. 민노당은 경쟁하고 연대해야 할 진보세력”이며 “민노당의 통합 제안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공개적인 장으로 옮겨온 진보정당 통합문제가 서로의 차이를 어떻게 생산적으로 풀어낼지는 진보정치 세력들의 정치역량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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