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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대통령님 말씀은 ‘거짓말’

박근혜 대통령의 1월18일 대국민 담화 실체 분석…‘기대’를 ‘사실’처럼 강변하고 즉석 질의응답도 사전 각본 드러나
등록 2016-01-26 05:56 수정 2020-05-02 19:28

“밥 먹고 취재하는 언론들이나 학자들, 뭐하시는 거예요. 아무 근거가 없는 거예요, 대통령 담화문이….”
지난 1월18일 ‘노유진의 정치카페’에서 현직 기자들에 대한 성토가 나왔다. 1월13일 박근혜 대통령이 발표한 대국민 담화에 ‘엉터리 내용’이 담겼는데도, 언론이 아무 검증 없이 ‘받아쓰기식 보도’에 열중한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언론들이 그걸 추적해야 하는데, 그걸(담화문 내용을) 받아적기 바빠. (검증을) 우리가 하잖아”라고 꼬집었다. 유쾌하지 않지만, 틀린 말이 없다. 노유진의 일갈에 이 ‘팩트체크’로 응답한다.
한국 성장 전략이 G20 중 최고? 노!

박근혜 대통령이 1월13일 대국민 담화 발표 뒤,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하던 중 웃음을 터트리고 있다. 한겨레 이정용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1월13일 대국민 담화 발표 뒤,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하던 중 웃음을 터트리고 있다. 한겨레 이정용 기자

먼저, ‘노유진’이 일부 지적한 내용에 대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담화에서 “2014년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토대로 한 우리의 성장 전략을 주요 20개국(G20) 국가들 중 최고로 평가”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좋은 평가는 비효율적인 노동시장과 방만한 공공부문을 바로잡으려는 우리의 구조개혁 노력을 세계가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진짜일까? 관련 사실은 2014년 11월16일 오스트레일리아 브리즈번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재무장관회의 뒤,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브리핑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시 G20은 2018년까지 회원국 전체 국내총생산(GDP)을 2% 이상 늘릴 필요성을 제기하고, 회원국들로부터 구조개혁 방안을 제안받았다. 그 결과, 최 장관은 “IMF와 OECD는 우리나라의 경우 (성장 전략이 제대로 이행된다면) 2018년까지 GDP를 현 추세 대비 4.4%, 금액상으로는 60조원 더 생산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성장 GDP 효과가 회원국 성장 전략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각 국가의 희망만큼 성장 전략이 진행되면, 높은 기대치를 써낸 한국의 성장률이 높을 것이라는 ‘당연한 분석’을 아전인수 격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그나마 ‘GDP 60조원 증가 예상’은 2012년 1377조원이던 GDP가 향후 6년간 해마다 5조원가량밖에 늘지 않는다는 계산이다. 또 2018년까지 G20 회원국의 전체 예상 증가액 2조달러(2401조원)와 견줘도 2.5%에 불과하다.

박 대통령은 또 “최대 69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무려 1474일째 국회에 발목이 잡혀 있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1월에도 “청년 일자리가 최대 69만 개 생긴다”며 이 법의 제정을 촉구한 적이 있다. 이 수치는 지난해 4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미발표 보고서 ‘서비스업 개혁에 따른 경제적 파급효과’에서 서비스업 법제를 개혁할 경우, 관련 취업자 수가 15만 명(독일)에서 최대 69만 명(미국)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내용에 근거하고 있다.

청년 일자리 최대 69만 개 창출? 노!

하지만 이 보고서에는 “현재 추진 중인 서비스업 개혁이 이러한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며, 우리 서비스업이 미국, 독일, 네덜란드 등 선진국 수준에 근접할 정도로 발전할 경우의 기대효과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쓰여 있다. 69만 개의 일자리 창출은 검증되지 않은 일방적 주장인 셈이다.

오는 3월 시행되는 관광진흥법으로 일자리가 1만5천여 개가 생길 것이란 담화 내용도 비슷한 문제점이 여러 차례 드러난 대목이다. 당정은 이전부터 관광진흥법으로 1만9700여 개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이 가운데 1만4천여 개가 건설 쪽에서 한시적으로 생기는 일용직 일자리에 불과한 것으로 지적돼왔다.

이외에도 “국내외 여러 기관들이 비슷하게 올해 한국의 성장률은 3~3.2%로 전망하고 있다”는 것도 ‘희망사항’이다. 국내에서 올해 성장률을 3%대로 전망한 것은 기획재정부(3.1%), KDI(3%), 한국은행(3%), 한국금융연구원(3%) 등 사실상 국책기관들뿐이다. LG·현대·한국경제연구원 등은 나란히 2.5~2.8% 성장을 전망했다. 국외에서는 OECD와 IMF가 각각 3.1%, 3.2% 성장을 전망했지만, 1월10일 국제금융센터 자료를 보면, 골드만삭스, 시티그룹, 도이체방크 등 국제적 투자은행(IB) 6곳의 경제성장률 전망치 평균은 2.6%에 불과했다.

기자회견 뒤 일문일답에서도 대통령의 오류는 이어졌다. 박 대통령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와 관련된 질문에서 “피해자들이 공통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세 가지”라며 “첫째는 이것이 일본군이 관여했다는 것, 이걸 확실하게 밝혀달라. 그리고 일본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사죄가 있어야 된다, 그리고 일본 정부의 돈으로 정부가 피해 보상을 해야 된다는 것, 그 3가지로 요약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이번 합의는 이 세 가지를 충실하게 반영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오히려 같은 위안부 문제로 피해받은 다른 동남아 나라들이 한국 수준으로 풀어달라고 일본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2014년 6월2일 ‘제12차 아시아연대회의 일본 정부에 대한 제언’ 등에서 일관되게 일본 정부와 군의 책임 인정, 일본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직접 사죄하고 배상할 것, 일본 교과서에 ‘일본군의 성노예’ 사실 기술, 피해자들을 위한 추모 사업 조처 등을 요구해왔다. 박 대통령의 인식과는 차이가 있다.

대통령 담화 뒤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는 페이스북에 “(대통령이) 너무나 잘못 알고 계십니다. 이미 고노 담화에서 일본군의 관여는 인정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피해자들이 고노 담화를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은 애매모호한 관여 인정이었습니다. 문제는 일본 정부, 국가의 범죄입니다. 거꾸로 이해하고 계십니다”라고 꼬집었다. 게다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와 군이 개입한 성노예는 명백한 전쟁범죄인 만큼, 위안부 피해 ‘배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줄곧 강조해왔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담화에서 이를 합법적인 피해에 대한 ‘보상’이라고 말하는 안이한 인식을 드러냈다.

‘위안부’ 할머니 요구에 충실한 합의? 노!

하일라이트는 따로 있었다. 박 대통령은 일문일답 도중 “또 답을 안 한 게 있나요? 아까 질문을 한꺼번에 여러 개를 하셔가지고. 제가 머리가 좋으니까 그래도 이렇게 기억을 하지, 머리 나쁘면 이거 다 기억을 못해요”라고 말했다. 긴장될 수밖에 없는 대통령 기자회견장에서 재치를 발휘한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담화가 시작된 1월13일 오전 10시30분 이전에 ‘대통령 담화 질의 순서 및 질문 내용’을 담은 ‘대국민 담화 대본’이 인터넷을 떠돌았다. 기자들과 청와대가 사전에 질문을 약속했다는 말도 돌았다. 그리고 대본 내용은 마치 ‘데자뷔’처럼 대통령 담화 생방송을 통해 생중계됐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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