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실망하고 있다면, 특히 국회의원에 대한 불신이 크다면 무엇 때문일까?
정치의 문제를 하나씩 적은 카드들이 놓여 있고 그중 2~3개를 고르라고 한다면, 당신은 어떤 카드를 선택할까?
“흑백논리, 비전문성, 가진 자들의 국회의원, 지역주의, 진영 논리, 소통 부족, 근시안적 정책, 특권의식, 부정부패, 폐쇄적 정당, 대표성 문제, 의정활동 부실, 국민을 대표하지 못하는 선거제도, 공인의식 부족, 당론정치, 비생활정치….”
지난 11월7일 서울에서 열린 토론 캠페인 ‘누가 좋은 국회의원인가: 시민 100인이 함께하는 노란테이블 시즌2’에 참가한 이들은 그 카드들 중에서 ‘소통 부족과 지역주의’를 한국 정치와 국회의원의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이어 ‘가진 자들의 국회의원, 계파정치, 흑백논리, 비전문성, 진영논리’도 상위 7위 안에 들었다. 한 참가자는 “정치가 사람(시민)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고 했고, 다른 참가자는 “시민의 의견이 정치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 토론을 기획한 이관후 희망제작소 연구조정위원(정치학 박사)은 “한국의 정당(정치)은 지역적 균열과 갈등을 재생산하는 데 그치고 있으며, 그런 악순환 구조에서 기득권을 누린다. 정치인들이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 권력투쟁에 주목하게 되면 시민과 소통이 부족해지는데 이번 토론에서 그 부분이 지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후원하고 희망제작소(소장 이원재)가 주최한 이번 토론 캠페인은 한국 정치의 한계를 짚어내는 것에 머물지 않고 시민이 직접 좋은 정치인의 기준을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마련됐다. 정치 불신을 넘어 시민의 집단토론을 통해 모아진 좋은 정치인의 조건을 정치권에 요구하는 것까지 나아가자는 것이다. “정치가 아름답기도 하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 종종 생겼으면 좋겠다”는 한 30대 참가자의 바람은 이번 토론 캠페인이 기대하는 지점을 표현한 것이다.
행사 당일 비가 오고 쌀쌀했지만 토론회엔 시민 68명이 참가했다. “국회의원이 꿈”이라는 16살 중학생부터 60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20대가 25명으로 가장 많았다. 대구, 전남 여수에서 온 참가자도 있었다.
참가자들은 노란 천이 덮인 12개의 원형 탁자에 나눠 앉았다. 12개 조에 1명씩 배치된 진행자와 함께 참가자들은 ‘자신의 투표 참가 이야기를 포함한 자기소개, 국회의원의 문제점 발견하기, 모의 투표하기, 좋은 정치가 무엇인지 논의하고 상상하기’의 토론 과정을 거쳤다.
참가자들의 흥미를 끈 것 중 하나가 가상의 후보 공보물을 통한 ‘모의 투표’였다. 경제민주화와 민생 안정 등을 내건 1번 후보(1959년생·남성), 지역 예산 확보와 지역 개발 공약을 내세운 현역 4선 의원 경력의 2번 후보(1949년생·남성), 사회적기업·협동조합·마을기업·소상공인 지원 등을 강조한 3번 후보(1977년생·여성), 훈남형의 검사 출신 무소속 후보(1974년생·남성)의 가상 공보물(사진 참조)을 참가자들에게 나눠주었다. 정당과 단체 이름 등은 가상으로 지었다.
공약 내용, 후보의 연령·성별·경력, 얼굴 이미지 등이 투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점검하는 시간이었다. 모의 투표에선 3번 여성 후보가 가장 많은 표(26표)를 얻었다. 50~60대 남성에 집중된 국회의원 구성 비율의 편중에서 벗어나 다양한 정치 주체의 진출을 바라는 참가자들의 의견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모의 투표에선 30대 여성이 당선</font></font>참가자들은 모의 투표를 토대로 ‘좋은 국회의원’의 조건에 대한 의견을 모아갔다. 참가자들은 좋은 정치인의 조건이 하나씩 적힌 카드 중에서 고르거나, 자기 의견을 추가로 내기도 했다. 카드에 적힌 조건은 이런 것들이다.
‘진정성, 정당과의 일체감, 성별, 소통 능력, 다양성, 화합, 지역구 발전, 정치 신인, 실천력, 정치 소신, 경력, 전문성, 도덕성, 갈등 조정 능력, 중립성, 지역 출신(동향), 대표성, 당선 가능성, 창의성, 중립성, 국가 발전….’
조별로 좋은 정치인의 기준을 5개씩 꼽았고, 가장 많이 선정된 것이 ‘다양성’이었다. 이어 ‘진정성, 정당과의 일체감, 성별(의 균형), 정치 소신, 국가 발전, 상생’의 순으로 상위에 올랐다.
다양성은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정치에 제대로 투영되지 않는다는 참가자들의 진단에서 나왔다. 시민이 뽑은 대표를 통해 정치를 작동시키는 대의 민주주의를 택하고 있음에도, 정치 영역에서 소외받는 목소리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가 각자의 진영 논리를 앞세워 사회적 갈등을 부추길 뿐 이를 해결하지 않은 채 방치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고 참가자들은 보았다.
10대 고등학생 참가자는 “다양한 사람들이 국회에 있어야 다양한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 목소리를 내기 힘든 사람들을 대신해 (정치 영역에서) 다양한 의견을 펼쳐줘야 한다”고 말했다. 진정성을 좋은 정치인의 조건으로 꼽은 20대 여성 참가자는 “의원의 기득권을 내려놓는다면 국민을 위한 진정성이 발휘될 수 있다. 의원들이 진정성을 갖는다면 자신의 권익에 집중하지 않고 국민과 소통할 수 있다”고 했다.
12개 조는 이런 조건에 부합한 가상 후보의 이력 등을 만들어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12개 조 가운데 11개 조가 30~40대 여성을 후보로 내세웠다. 정치 주체의 다양성을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성별 불균형 해소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다양한 정당과 정치 주체 등장 요구 뚜렷 </font></font>이관후 연구조정위원은 “시민들은 다양한 사회적 갈등을 반영할 수 있는 정당의 출현, 더 다양한 정치적 주체의 등장, 특히 성별에서의 다양성을 요구했다. 한국에서 정치적 대표의 다양성 확보를 위해 정당법과 선거법 개정이라는 구조적 변화의 요구도 드러난 것으로 해석된다”고 했다. 그는 “(1개 지역구에서 1명의 승자가 배출되는) 소선거구제 단순다수대표제를 기본으로 하면서 (의원 300명 중) 54개 의석(18%)에 불과한 비례대표 의석수로 구성된 현행 정치 구조에서는 제3정당이나 다양한 정치적 주체가 의회에 진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희망제작소는 토론 참여자 중 일부를 추려 심층 토론을 더 진행한 뒤 시민이 꼽은 좋은 정치인의 기준과 조건을 정리해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정치권에 제시할 예정이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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