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은 ‘믿어달라’고 한다. 지금 저 안이 거의 교회예요.”
최근 언론에 많이 인용된 김광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발언이다. 지난 7월27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 중간에 나와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국정원이 도·감청 해킹 프로그램 구입·운영의 실무자였던 임아무개씨가 죽기 전 삭제한 기록을 복원했다면서, “민간인 사찰은 없었다”고 이른바 ‘셀프(self) 조사’ 결과를 정보위에 보고한 데 대한 반박이다. 이 발언은 ‘기독교를 모욕했다’는 일부 기독교단체의 반발을 불렀지만, 한편으론 국정원 통제에 대한 국회 정보위의 한계를 드러낸 말이기도 했다.
“지금 국회 정보위에선 국정원이 뭔가 보고해도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재검증할 방법이 없는 게 문제다.”
이름을 밝히기 꺼린 국회 정보위 실무 관계자 ㅇ씨의 설명이다.
“정부 기관에 대한 국회 감시는 자료 제출을 요구한 뒤 그 자료를 검토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국정원은 국가기밀이라며 그 자료를 주지 않는다. 국정원은 자기들이 준비한 내용을 비공개인 정보위 회의에 들고 와 설명한다. 사전에 검토할 자료조차 주지 않으니 이 보고의 진위를 검증할 수가 없다.”
해킹 프로그램을 활용한 국정원의 불법적 일탈과 ‘임씨 죽음’의 진상을 밝히려고 각종 자료를 요청했던 새정치연합도 ㅇ씨가 설명한 과정을 그대로 답습하며 벽에 부딪혔다. 국정원이 오히려 정보위를 ‘언론 플레이’ 창구로 활용한다는 지적도 많다.
국회 여러 상임위 가운데 하나인 정보위는 1994년 국회법 개정으로 신설됐다. 그 전까지는 국회 국방위에서 국방부에 더해 정보기관까지 통합 담당하다가 1994년부터 대통령 직속의 국정원(옛 국가안전기획부)을 강력히 감시하려는 목적으로 정보위가 따로 만들어졌다.
현재 여야 6명씩 12명의 의원으로 정보위가 구성된다. 이번 19대 국회에서 위원장은 새누리당이 전담해 맡고 있다. 정보위는 국정원 관련 법안 처리, 국정원 예·결산 심의, 국정원장 인사청문회, 국정감사·현안보고를 통한 국정원 감시 등의 활동을 한다.
하지만 정보위의 이런 권한은 국정원의 자료 제출 거부로 사실상 허울뿐일 때가 많다. 정보위를 거친 한 의원실 관계자는 “국방부와 통일부에서 공개된 대북 관련 자료마저 국정원에 확인을 요청하면 주지 않을 때도 있다”고 했다. 다른 정보위 소속 의원실 관계자는 최근 자료 제출 요구를 거부당한 다른 사례를 설명했다.
“법원이 변호사를 경력 판사로 채용하는 과정에서 국정원이 (신원 조사를 위해) 이들을 면접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최근 공개된 뒤, 국정원에 ‘언제부터 면접조사를 했는지’ 자료를 요청했다. 경력 판사 지원자와 만나 신원 조사를 언제 어떻게 했느냐를 묻는 자료 요구였다. 그런데 국정원은 ‘면접조사를 한 적이 없음’이라고 보내왔다. ‘면접’은 채용을 결정하는 행위를 뜻하는데, 국정원은 경력직 판사를 채용할 권한이 없는 기관이므로 자신들이 행한 것은 면접(조사)이 아니라는 식으로 설명하면서 (면접조사에 대한) 자료 제출을 거부하더라.”
국정원의 자료(혹은 정보) 공개에 대한 과민 반응을 엿보게 하는 사례도 있다. 이번 19대 국회에서 한 의원이 정보위 전체회의에 출석한 국정원 국장에게 그 이름을 물었지만, 이 국장은 비공개 회의였음에도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정치적 논란에 대한 적극적 방어가 필요하면 국정원이 자료를 들고 정보위원을 직접 찾아온다. 국정원이 20명을 동시에 도·감청할 수 있는 해킹 프로그램을 샀다는 최근 보도가 나온 뒤, 어느 국정원 관계자가 감청한 20개 ‘휴대전화 IP 주소’를 종이에 적어 정보위원 의원실을 방문했다. 그러나 의혹 규명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숫자로 된 IP 주소만 적어왔으니) 우리야 봐도 모른다. (국정원 직원도) 종이에 적힌 것만 보여준 뒤 곧바로 가져갔다”고 한 정보위원은 말했다.
스스로 필요할 때만 내놓는 정보들국정원장 등이 출석하는 정보위 전체회의는 비공개로 진행된다. 야당의 다른 전임 정보위원은 “어떤 사안에 대해 국정원이 ‘안다, 모른다’는 사실도 중요한 정보이기 때문에 회의를 비공개로 하는 것은 불가피한 면이 있다”고 했다. 회의 내용은 국회 정보위 여야 간사와 정보위원장이 협의한 뒤 언론에 공개할 수준을 정해 간사들이 설명한다.
하지만 비공개 회의와 간사 브리핑은 국정원이 자신의 입장을 강변하는 데 유용한 통로가 되기도 한다. 이번 ‘도·감청 해킹 의혹 사태’에서도 국정원은 정보위원들이 요청한 자료를 제대로 주지 않은 채 민간 사찰이 없었다는 주장을 반복했고, 이것이 언론에 주요하게 보도됐다. 국정원은 북한 고위급 인사의 숙청 등 북한과 관련된 민감한 정보를 정보위에 보고하고 이것이 언론에 알려지는 과정을 통해 일시적인 국면 전환 효과를 거둘 때도 있다.
정보위 비공개 회의에서 해명한 뒤에도 야당의 공세를 누그러뜨리지 못했을 경우, 국정원은 여당 정보위원들을 통해 대언론 추가 대응에 나서기도 한다. 정보위의 다른 인사는 “해킹 프로그램으로 북한의 무기 거래를 적발했다는 국정원의 최근 보고 내용이 여권에서 흘러나와 언론에 보도됐다. 국정원이 해킹 프로그램을 대북과 관련해 활용했다는 점을 부각시킬 순 있었을지 모르나 특정 정보(무기 거래)를 얻은 출처(해킹 프로그램)가 공개된 것이어서 이런 정보를 언론에 알린 것이 옳은지는 따져볼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정보위 여당 간사인 이철우 새누리당 의원은 국정원의 개별 보고를 받지 않으면 모를 국정원 임씨(자살)의 신상 정보 등을 기자들에게 설명하며 야당의 의혹 제기에 맞불을 놓기도 했다. 이 의원은 국정원 국장 출신이다.
국정원 예산에 대한 심의와 통제에 제약이 큰 것도 정보위의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국정원 예산은 ‘총액 규모’로 제출되는 본예산 외에, 기획재정부 예비비에 뒤섞여 숨어 있는 예산, 사용 내역을 추적할 수 없는 특수활동비로 크게 구성된다. 국정원이 정보위원들이 요구한 본예산의 세부 내역 자료를 부실하게 내놓기 때문에 꼼꼼한 예산 심의가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이런 자료도 의원을 지원하는 보좌진은 보지 못한 채 정보위원들만 열람하기 때문에 국정원 예산을 세심하게 심의하는 것이 어렵다.
국정원의 예산은 정보위 심의만 거치고, 다른 상임위 소관 예산처럼 국회 예결산특별위원회 추가 심사가 생략된다. 예산에 대한 회계감사도 다른 정부기관은 감사원이 진행하지만, 국정원은 자체 회계감사를 실시한다. 정보위 야당 간사인 신경민 새정치연합 의원은 “(해킹 프로그램 구입 비용 등으로 썼을 가능성이 있는) 정보기술향상 추진비 따위의 국정원 예산 항목 자료도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정보위원들이 보좌진의 조력을 받기 어려운 것도 정보위의 국정원 통제를 약화시키는 문제 중 하나다. 보좌진은 의원의 입법·정책 활동을 돕는 ‘두뇌’이지만 정보위 소속 보좌진은 회의 참석도, 정보위 회의록과 국정원 예산 열람도 할 수 없다. “(직업 유지가 불안정한) 보좌관에게 국정원 정보에 접근시켰다가 정보가 샐 수 있다”는 국정원의 우려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는 국방위 소속 보좌진이 회의에 참석하고, 비밀취급인가증을 받아 국방 관련 자료에 접근하는 것과도 대조적이다.
‘두뇌’ 없이 굴러가는 국회 정보위반면 한국이 정보기관 모델로 삼은 미국은 우리보다 정보기관에 대한 의회 통제 시스템이 잘 갖춰진 편이다. 17명으로 꾸려진 상원 정보특별위원회에선 30명의 전문위원 및 행정요원이 의원들을 지원한다. 하원의 정보특별위원회(20명)에서도 26명의 전문위원과 행정요원이 의원들을 보좌한다.
상·하원 정보위 전문위원들은 다수 여당이 전체의 3분의 2를, 야당이 3분의 1을 임명한다. 이들 전문위원은 정당의 당원이어서 상·하원 정보위원들을 소속 정당의 입장에서 지원할 수 있다. 한국보다 정보위원(국회의원)을 보좌하는 전문 인력이 두툼하단 뜻이다.
미국은 정부 예산의 편성권을 의회가 실질적으로 보유하고 있어서 정보기관에 대한 의회의 예산 통제력도 강하다. 대체로 정보기관이 요청한 예산을 반영해주지만 예산 심의 자체는 상세하게 진행된다. 1990년부터 미국 정보기관들은 비밀작전 내용을 ‘적절한 시기’에 의회 정보위에 통지하도록 규정이 강화됐다.
독일은 ‘의회통제위원회’가 정보기관을 감독하는데, 정보기관 직원이 상부에 진정을 냈다가 수용되지 않으면 의회통제위원회에 진정할 수 있도록 한 점이 눈에 띄는 대목이다.
한국 국회의 정보위원들이 보좌진의 적극적 조력을 받을 수 없는 등 국정원을 감독할 전문성이 떨어지는 점을 극복할 대안은 야권에서 여러 차례 제기돼왔다. 정보위 산하에 정보·회계 관련 민간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정보감독위원회’를 둬 지금보다 국정원을 전문적으로 감시하자는 의견이 그중 하나다.
국정원 법제관을 지낸 이석범 변호사는 “정보기관에 대한 국회의 민주적 통제와 정보위의 전문성 확보를 위해 민간인 등이 참여하는 정보감독위원회를 정보위 밑에 설치해 활동 권한을 주되 기밀을 누설하면 엄벌에 처하도록 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경민 의원은 “여야가 추천하는 정보위 전문위원을 추가로 둬 이들이 지속적으로 국정원을 모니터하고 정보위원을 지원할 수 있게 하는 것도 방안”이라고 했다.
효율적 통제 위해 ‘정보위원’ 두어야여당 쪽은 민간이 참여하는 정보감독위 설치나 국정원에 대한 의회 통제 강화에 난색을 표한다. 이철우 새누리당 의원은 “정보기관을 믿어야 한다. 숨어서 일하는데 어떻게 내용을 일일이 밝힐 수 있느냐. 밝히면 국가안보에 불안 요소가 되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정보기관을 믿어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회는 정보위를 설치한 목적을 ‘국가정보 업무에 대한 국회의 효율적인 통제와 국가기밀 보호의 상호조화’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도·감청 해킹 의혹 사태’에서 보듯 국가기밀 보호만큼이나 국정원에 대한 정보위의 효율적 통제가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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