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저 마음에 안 들죠?”
정청래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에 대한 인상을 묻자, 당의 한 인사는 “가수 예원이 (촬영 중에) 선배 탤런트 이태임에게 했다는 이 말이 떠오른다”고 했다. 삐딱한 시선으로, 기분 나쁘게 말하는 태도가 정 최고위원의 이미지와 포개진다는 것이다.
최근 정 최고위원이 같은 당 주승용 최고위원에게 던진 ‘공갈 표현’은 당 안의 이런 인식을 더 굳혔다. 유머와 풍자적 표현을 넘어 ‘공격적 조어(말의 조합)’를 즐기는 ‘정청래의 튀는 화법’이 사고를 쳤다는 것이다. 경기도의 한 재선 의원은 “예견됐던 정청래의 ‘설화 시한폭탄’이 터졌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우리 당에 ‘싸가지 없는 정당’이란 이미지만 덧씌웠다”고 걱정했다.
‘공갈’ 표현이 과했다는 당 안팎의 평가 때문이겠지만, 선임 최고위원을 향한 그의 도발적 발언이 어떤 배경에서 나왔는지, 그 배경을 이해하며 대변해주는 의원조차 없었다. 이는 특정 정치세력의 ‘계파원’이 아닌 그의 정치적 위치와 무관하지 않다. 그는 이른바 친노무현계·친문재인계가 아니며, 친노와 대척점에 선 ‘비노’의 일원도 아니다.
1980년대 학생운동을 겪었지만, 정치권에 흔한 총학생회장 출신이 아닌 그는 ‘486 의원 그룹’에 묶이지 않는다. 스스로 486 의원 그룹과 엮이지 않으려고 “자발적 왕따”를 택했다고 말한 적도 있다. 최근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런 그를 “외로운 늑대”라고 칭했다.
그럼에도 그는 지난 2월 전당대회에서 2등 최고위원이 됐다. 현장 당원 투표에선 꼴찌를 했으나, 사전 국민 여론조사에서 1등을 해 종합 순위 2위가 됐다. 지역구(서울 마포을)를 거점으로 삼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기반으로 전국적 인지도를 높인 결과다. 그의 트위터 팔로어는 14만여 명이나 된다.
당 안팎의 눈치를 보지 않는 그의 현재적 위치를 살피려면, 당이 영입했거나 특정 정치인의 뒤를 따르다 정계에 들어온 대개의 486 의원들과 다른 그의 ‘개척형 정치 입문 과정’을 볼 필요가 있다.
건국대에 다니던 1989년 그는 “공안통치 배후인 미국의 내정간섭과 수입 개방 압력 중단”을 요구하며 주한 미국대사관저 점거농성을 했다. 미리 준비한 ‘포니엑셀’ 자동차를 담벽에 붙인 뒤 차 지붕을 밟고 대학생 6명이 3m 담장을 넘어 관저에 들어가 50여 분간 농성을 벌였다. 이후 그는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등으로 2년간 감옥에 갇혔다.
출소 뒤 그는 10년간 서울 마포에서 학원을 운영했다. 한때 교직원이 100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정치 공간에 나선 것은 2002년 대선 정국에서다. 대선 직전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 회원 등과 함께 인터넷 기반의 ‘정정당당’ 창당을 모색하다 무산되자, 노사모 일부 회원 등과 함께 언론·정치 개혁을 내세운 ‘국민의 힘’을 2003년 창립했다. 인터넷 중심의 시민정치운동 단체였다.
지지 후보 또는 낙선 후보를 걸러내는 ‘정치인 바로 알기 운동’, 친일 행위를 한 의 윤전기를 독립기념관에서 빼내는 운동 등을 전개했다. 첫째아들 이름을 ‘한백’(한라에서 백두까지)이라 지을 정도로 통일을 사명으로 여기는 그는 이른바 ‘조·중·동’( )이 남북 분단 고착화를 위한 갈등적 보도를 하고 여론시장을 독점한다며 언론개혁 운동도 펼쳤다. 현재 그가 보수언론과 인터뷰하지 않고, 이들 신문사의 종합편성채널(종편)을 ‘종일편파방송’이라 부르며 출연하지 않는 것도 ‘국민의 힘’ 활동의 연속선상에 있다.
일찌감치 맛본 인터넷 기반 정치의 힘그러던 그는 2004년 총선(서울 마포을)에 처음 도전했다. 당내 경선 후보 4명 중 최약체로 평가됐으나, 인터넷으로 모인 ‘국민의 힘’ 회원들의 자발적 선거운동으로 경선에서 이긴 뒤 총선까지 승리했다. 1980년대 총학생회장 출신의 한 의원은 정 최고위원에 대해 “486 정치인들과의 조직적 연대 위에서 정치의 꿈을 키운 게 아니다. 아마 그때(2003~2004년)부터 인터넷 기반의 정치를 인식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2006년부터 ‘정동영계의 돌격대’란 말을 들을 만큼 핵심 일원이 됐다. 2002년 대선에서 후보 교체론에 시달리던 노무현 후보를 지지한 정동영 의원을 보며 “(나중엔) 정동영을 돕겠다”던 생각을 실천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18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19대 총선에서 재기했지만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탈당-복당-탈당’을 반복하면서 그는 “오토매틱(자동) 무계파 의원이 됐다”고 말한다.
이후에 이어진 최고위원 출마는 그의 ‘홀로서기 출발’이었던 셈이다. 서울에 지역구를 둔 ㅇ 의원은 “최고위원 출마 당시, 자신의 주된 역할은 여당을 향한 공격수인 ‘당 대포’가 되는 것이고, ‘내가 친노도, 비노도 아니니 두 세력이 잘못하면 모두 비판하면서 두 세력의 조정자가 되겠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실제로 정 최고위원은 지난 2월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문재인 대표도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ㅇ 의원은 비노 핵심인 주 최고위원을 향한 정 최고위원의 ‘공갈 발언’도 그 연장선상에서 해석했다.
“이번 4월 재보선에서 경선으로 뽑은 후보의 경쟁력이 약했다고 지적하는데, 주승용 최고위원도 공천 원칙을 경선으로 정하는 데 동의했었다. 또한 주 최고위원은 ‘광주 서구을 선거’ 책임자이기도 했다. 정 최고위원의 눈에는 재보선에서 전패한 뒤 주 최고위원이 문재인 대표를 공격하며 공동책임론에서 빠져나가려는 게 얄밉게 보였던 것 같다. 그래서 한마디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최고위원직을 사퇴하겠다면서도 하지 않는 주 최고위원에게 ‘공갈치는 게 더 문제다’라고 한 것이다. 그러다 ‘공갈’이란 표현 때문에 역풍을 맞은 거다.”
흥미로운 것은 ‘비노’ 핵심들도 ‘공갈 발언 이슈’를 키우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 최고위원의 개인 성향에서 나온 돌출 발언 때문에 ‘친노-비노 세력전’의 본류가 흐려지는 것을 원치 않아서다.
그래서 정 최고위원에 대한 당 안의 지적은 “당내 세력이 없는 그가 생존 전략으로 트위터·페이스북 정치에 더 매몰됐고, SNS에서 습관화된 즉각적이고 자극적인 표현이 막말로 튀어나왔다”는 비판으로 귀결된다. 정 최고위원 쪽은 “SNS 활동이 (정 최고위원의 표현 구사에) 일부 영향을 줬을 수 있다”면서도, “온라인 소통의 중요성은 정 최고위원의 오래된 소신”이라고 말한다. 2002년 ‘정정당당’ 창당 모색, 2003년 인터넷 기반의 ‘국민의 힘’ 창립 등을 통해 온라인 여론 광장의 중요성과 그 공간에서 합의점을 찾는 집단지성의 위력을 일찌감치 체험해왔다는 것이다.
그는 ‘공갈 발언’이 있기 이틀 전인 5월6일 최고위원회의에서도 “SNS를 한글로 치면 ‘눈’이라는 글이 나온다. SNS는 시대를 보는 눈이고 창이다. 당의 비생산적 (계파) 논쟁을 멈추고 당의 미래를 개척하는 ‘SNS 스마트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며 시민들과의 ‘교감 확대’를 촉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선명한 야당성을 강조하는 그의 강경 화법은 열광과 비판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을 탄다. 가령 그는 조경태 전 최고위원이 당을 분열시키는 발언을 일삼는다며 “최저위원” “정신적 새누리당 당원”이라고 규정하거나,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과 관련해 “바뀐 애(박근혜 대통령을 지칭), 방 빼”라고 트위트를 날렸다. 야당의 무력함과 여권의 오만에 비판적인 이들은 그의 ‘짤막한 규정’에 열성적 지지자가 되지만, 당 안에선 여권을 공격하는 그의 발언이 조마조마하다는 반응도 많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문예반에서 활동한 그는 언어적 유희를 활용하는 스타일이다. 자신을 소개할 때 ‘삼더이즘(더 낮게, 더 겸손하게, 더 열심히)과 사쾌이즘(유쾌·상쾌·통쾌하게 정치하면 국민이 흔쾌히 받아들인다)의 창시자’라고 지칭하는 식이다. 그를 잘 아는 이상호 전 민주당 청년위원장은 “순발력과 단어 구사가 뛰어나다. 상황의 본질을 빨리 파악하고 그걸 규정하는 강점이 있다. 그러다보니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갖지 못하는 점도 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빨리 써먹으려는 욕구가 강해서다. 순발력이 장점이자 단점이다”고 말했다.
‘공갈 표현’으로 당에 내홍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넘어, 당 일각에서 ‘SNS에 의존한 정치가 막말을 낳았다’며 정 최고위원의 ‘SNS 교감 활동’ 전체를 부정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정치권과 시민의 거리를 좁히려는 노력까지 폄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정 최고위원은 국정원 대선 개입,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주민세·자동차세 인상 반대 의정활동 등을 하며 SNS로 관련 내용을 전파·공유해왔다. 정 최고위원의 지지자들은 현장에서 시민과 호흡하며 강한 야당을 대변해온 새정치연합의 ‘파워 SNS 정치인’이 공갈 발언을 계기로, ‘정치 지분’에 관심이 큰 당내 정치세력들의 위세에 눌리는 것 아니냐고 우려한다.
“정 최고위원은 약한 사람 대신 힘이 있는 대상을 공격하고, 코너에 몰린 사람을 위해 대신해 싸우는 특징이 있다. 정 최고위원이 이번 일을 좋은 공부의 기회로 삼아야겠지만, 너무 위축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상호 전 청년위원장은 말했다. 정 최고위원은 지난 4월18일 경찰의 차벽 안에서 고립된 세월호 유족들을 현장에서 지킨 유일한 국회의원이었다. 당시 그는 경찰의 물대포를 맞으면서도 집회 참가자와 경찰의 대치 상황을 푸는 중재를 이끌었다.
“정 최고위원이 ‘나는 중도·상류층을 확보할 자신이 없으니, 좌측 하단(강한 야당을 원하는 시민과 서민층)을 확보하도록 하겠다’고 하더라. 당은 충성적 지지층이 버텨줘야 하는데, 정 최고위원이 그 지지층을 모으는 역할을 했다”고 정봉주 전 의원은 말했다.
하지만 새정치연합 내부에선 “정 최고위원이 ‘난 정의로워서 과감히 비판한다’는 자기 확신이 지나치게 강해 걱정이다”라는 의견이 많다. 더구나 이제 그는 발언의 무게가 큰 최고위원 자리에 있다. “정 최고위원이 트위터에 올린 글에 대한 리트위트 숫자, 페이스북 ‘좋아요’ 숫자와 같은 반응성에 너무 민감하다보면 (일반) 여론의 흐름을 잘못 읽을 수도 있다”고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는 말했다. 새정치연합은 그에 대한 징계 절차에 빠르게 들어갔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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