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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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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구름은 폭우가 될 것인가

검찰의 이명박 정부 시절 비리 의혹 수사 “청와대 의지 실렸다고 봐야”…
현 정부 위기 시기, 죽은 또는 죽어가는 권력을 향해 칼을 겨누는
관습과도 같은 수사
등록 2015-03-28 16:18 수정 2020-05-03 04:27

‘구름’처럼 떠돌던 이야기들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검찰은 왜, 지금 이 순간에 바람이 되어 구름을 떠미는가.
이명박 전 대통령을 둘러싸고 몇 년째 지독한 냄새만 피웠던 각종 비리 의혹을 두고 하는 말이다. “부정비리 저지른 사람은 처벌받아야지.” 이 전 대통령은 짐짓 담담한 체했다. 최근 검찰이 자원외교와 포스코 비자금 등 이명박 정부 시절의 비리 의혹 수사에 속도를 내는 것에 보인 첫 반응이다.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주초에 다른 일로 뵈었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며 지난 3월18일 한 종합편성채널에서 전한 이야기다.

이런 수사는 결국 “되게 하는 것”

“구름 같은 이야기를 하고 그러느냐”(지난해 12월 “자원외교 국정조사에 증인으로 출석하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이 전 대통령의 답변)보다는 지상의 세계로 몇 계단 내려온 느낌이다. MB맨들은 불쾌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정권이 바뀌면 권력 부패를 잡아낸다? 무슨 계모임 계 타는 것도 아니고 실컷 모아놨다 한꺼번에 하느냐”(이재오 의원), “정말 새머리 같은 기획이다. 역대 정부가 레임덕 현상을 반전시켜보겠다는 의도로 3년차 접어들면서 기업 수사했지만 성공한 케이스가 하나도 없다”(정병국 의원).

2012년 12월 대선 직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청와대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검찰 수사를 통해, 과연 이명박 전 대통령을 법정으로 끌어내려는 걸까. 청와대사진기자단

2012년 12월 대선 직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청와대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검찰 수사를 통해, 과연 이명박 전 대통령을 법정으로 끌어내려는 걸까. 청와대사진기자단

분명 검찰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검찰은 지난 3월13일 베트남에서 100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포스코건설을, 이어 17일에는 포스코건설 협력업체 3곳을 잇따라 압수수색했다. 다음날인 18일에는 자원외교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일고 있는 경남기업과 한국석유공사를 동시에 압수수색했다.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은 2008년 이 전 대통령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우연찮게도 포스코는 이명박 정부 5년 내내 이상득 전 의원,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과 유착됐다는 입길에 올랐던 기업이다. 검찰이 이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손봤다.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자원외교나 포스코나 결국은 MB를 보고 수사한다고 봐야 한다. 방향이 같다. 이젠 ‘되겠냐’ 이런 문제를 떠나서 ‘되게 하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출신인 ㄱ변호사는 말했다. 검찰의 뒤에는 청와대가 있다. “검찰은 항상 정권 초반에는 적극 협조하고, 중반쯤 되면 정적을 제거하고, 정권 말기가 되면 권력에 항상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행태를 반복해왔다. 특히 이전 정권에 대한 수사는 청와대의 의지가 실려 있다고 봐야 한다.”(검찰 출신 ㄴ변호사)

실제로 검찰이 압수수색에 나서기 전날인 3월12일 이완구 국무총리는 “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하겠다”는 내용의 긴급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해외 자원개발 부실 투자, 대기업의 비자금 조성 등이 대표적인 부정부패로 꼽혔다. 박근혜 대통령도 3월17일 국무회의에서 “이번에야말로 비리의 뿌리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력과 검찰이 사실상 한 몸처럼 움직인 셈이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와 검찰의 노림수는 무엇일까? 전직 대통령과 그 측근 비리 수사는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을 단죄함으로써 군부정권과의 선긋기에 성공했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를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고자 했다. 과거와 현재의 수사는 무엇이 비슷하고, 무엇이 다를까.

꼬인 정국 풀 ‘한칼’, 부패와의 전쟁

첫째, 시기의 문제. 권력형 비리 사건, 특히 전직 대통령에 대한 공격은 주로 현 정부의 위기 상황에서 나타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한 지 100일도 안 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라는 들불에 휩싸였다. 이 전 대통령이 청와대 뒷산에 올라 시위대의 노래를 들었다며 대국민 사과를 한 지 한 달여 뒤인 2008년 7월 국세청은 태광실업에 대해 특별세무조사에 나섰다. 이어 검찰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정·관계 인사들에게 벌인 세무조사 무마 청탁 로비를 조사하겠다는 명목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주변을 탈탈 털었다. 정치검찰의 명백한 기획수사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집권 3년차에 접어들었다. 임기 5년의 반환점을 돌면, 국정 장악력은 급속히 떨어진다. 더구나 여당마저 청와대와 엇박자를 내고 있다. 박 대통령은 올해 초 30%대 아래로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위기를 경험했다. 또 실업률을 비롯한 체감 경제지표는 최악이다. ‘말발’도 잘 먹히지 않는다. 대통령이 지난 2월 직접 10대 그룹 회장단을 청와대로 불러 경제살리기에 동참해줄 것을 주문하고,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임금 인상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재계는 뜨뜻미지근한 분위기다. 답답한 정국을 헤쳐나갈 ‘한칼’이 필요했을 시점이다.

이때 등장하는 단골 메뉴가 부정부패와의 전쟁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집권 3년차에 접어들기 직전인 1999년 10월 대통령 직속자문기구인 반부패특별위원회를 세웠다. 검찰도 반부패특별수사본부를 신설하면서 정권의 요구에 부응했다. 박근혜 정부가 MB는 몰라도 재계를 압박한 건 분명하다. 신세계, 롯데, 동부, SK건설 등이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르내리면서 재계는 바짝 긴장했다.

둘째, 대상의 문제. 검찰이 비리 문제로 전직 대통령을 소환조사한 경우는 지금까지 총 2차례(5·18 특별법 제정으로 구속된 전두환 전 대통령과 외환위기 수사와 관련해 1998년 검찰의 서면조사에 응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제외)였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에 수천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1995년 11월 대검 중수부에서 소환조사를 받고 구속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9년 4월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해 대검에 소환됐다.

눈여겨볼 대목은 검찰이 ‘죽은 권력’을 상대로 싸웠다는 점이다. 보통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을 등지지는 않는다. 물론 불똥이 예상치 않게 튀기도 한다.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에서 촉발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수사가 그렇다. 검찰은 1993년 동화은행 수사를 하면서 ‘6공 비자금 계좌’를 발견했지만, 이후 1995년 박계동 의원이 국회에서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계좌 조회표를 들고 흔들 때까지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지 않았다. 청와대가 움직이라는 신호를 줄 때까지 기다렸던 셈이다.

아직 이명박 전 대통령을 ‘죽은 권력’이라고 보기엔 이르다. 수도권 지역의 ㄷ부장검사는 “정권 자체가 바뀌어서 수사하는 거면 몰라도, 이명박 정부 인사들과 박근혜 정부가 완전히 단절된 게 아니기 때문에 수사하기 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정권 초기엔 (MB 관련) 수사를 못했다”고 말했다. 특수부 검사 출신인 ㄱ변호사도 “포스코는 명백한 비리가 확인돼서 출발이 쉽겠지만 거기(MB)까지 가겠나 싶다. 이 전 대통령까지 닿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근혜 측근까지 수사망에 걸린다면?

그러나 검찰이 언제 누구를 정조준할지는 모를 일이다. 검찰은 정권 말기가 되면 ‘살아 있는 권력’도 겨눈다. 김영삼 정부 말기에는 한보그룹에 특혜대출을 해주도록 알선한 혐의로 아들인 김현철씨가 구속됐고, 김대중 정부 말기에도 아들인 김홍업·김홍걸씨가 잇따라 구속됐다.

“부패 척결은 검찰 본연의 사명이다. 검찰은 증거에 따라 ‘비리’를 수사할 뿐, 기업과 특정인을 대상으로 전방위적 수사를 하는 게 아니다.” 자원외교와 포스코 수사를 진두지휘하는 최윤수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가 지난 3월19일 저녁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다. 이것 역시 어디서 많이 듣던 ‘구름’ 같은 이야기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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