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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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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 친위대’ 정렬 완료!

청와대 비서실장에 이병기 국가정보원장 임명… 정치권 안팎에서 국민 기대와 동떨어진 인선으로
3년차 국정 동력 오히려 하락 가속도 붙을 것이라는 전망 나와
등록 2015-03-03 05:45 수정 2020-05-02 19:27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월17일 소폭 개각에 이어 2월27일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후임으로 이병기 국가정보원장을 임명하면서 집권 3년차 국정 운영을 위한 인적 개편을 마무리했다. 이번 개편을 통해 총리를 포함한 내각의 3분의 1이 ‘친박 국회의원’으로 꾸려지고 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한 정무특보들도 강성 친박으로 구성되는 등 명실공히 ‘친박 친위대’가 완성됐다. 집권 2년 동안 제대로 이뤄내지 못한 여러 국정 과제를 집권 3년차부터 강하게 추진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의지가 확고히 드러나는 인사다. 그러나 정치권 안팎에서는 박 대통령의 이러한 인적 개편이 잘못된 방향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개각과 청와대의 인적 쇄신을 통해 그동안의 폐쇄적인 국정운영 스타일을 바꿔주기를 원했던 국민의 기대와는 동떨어진 방향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번 개편이 집권 2년차에 이례적으로 추락하던 국정 동력을 끌어올리는 효과를 내기보다는 오히려 내리막길에 가속도를 붙이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여당서도 정치적 부담감 우려

특히 2월27일 청와대가 신임 비서실장으로 현직 국가정보원장이던 이병기 실장을 임명한 것에 대해서는 여당 안에서도 정치적 부담을 우려한 목소리가 나왔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이 비서실장이) 소통은 상당히 잘하실 걸로 기대한다”면서도 “국정원장을 한 지 얼마 안 되는 분이 가서 그 부분은 조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이 비서실장에게 국정원 개혁이라는 임무를 부여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 개혁을 채 마치지도 못한 상태에서 임명 7개월 만에 다시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앉히는 ‘돌려막기식 인사’를 한 것에 대한 우회적인 비판이다. 새누리당의 한 수도권 의원도 “국민이 원한 건 쇄신이었다. 이 점에서 이병기 비서실장은 국민적 눈높이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지난 2월24일 국가정보원장이던 이병기 신임 청와대 비서실장이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하기 위해 회의실로 향하고 있다. 이번 청와대 개편으로 이 비서실장은 국정원장직에서 7개월 만에 물러나게 됐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지난 2월24일 국가정보원장이던 이병기 신임 청와대 비서실장이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하기 위해 회의실로 향하고 있다. 이번 청와대 개편으로 이 비서실장은 국정원장직에서 7개월 만에 물러나게 됐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현직 국정원장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은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국정원장을 했던 사람을 어떻게 비서실장을 시키나? 그동안 이병기 국정원장이 국내 정치에 전혀 관여하지 않겠다고 해왔는데 (청와대 비서실장에 임명되면서) 그가 실제 국정원에 가서 정치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줬는지 의심스러워질 수밖에 없게 됐다”고 비판했다.

야당의 반발도 거세다. 국내외의 온갖 정보를 틀어쥐고 있던 국가 최고 정보기관의 수장이 청와대 비서실장이 되면서 이를 야당 공격에 악용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김영록 새정치민주연합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소통과 국민 통합에 매진해야 할 비서실장에 현직 국정원장을 임명해서 정보정치, 공안정치의 망령이 되살아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비판했다.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도 트위터를 통해 “박 대통령이 장고 끝에 악수를 뒀다. 대통령이 구중심처에서 벗어나 민심의 대로로 나오라는 것이 국민의 뜻인데, 음지에서 일해온 국정원장을 들인 것은 마이웨이 선언”이라고 밝혔다. “(이 비서실장이) 국민들과 청와대 사이에 소통의 길을 열어갈 것”이라는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의 발표가 무색해지는 반응이다.

청와대 정무특보에 현직 여당 의원들이 임명된 것에도 거부감이 적지 않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현직 국회의원이 정무특보가 되는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제가 청와대에 가서 대통령한테 건의드린 부분은 반영이 안 됐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냈던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도 “현직 의원을 특보로 임명한 것은 권력분립 원칙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민심과 소통할 의지는 있는 건가?

특히 김재원·윤상현 새누리당 의원 등 그동안 박 대통령의 의중을 대변해오던 친박 핵심들이 정무특보가 된 것은 청와대와 국회의 ‘소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그동안 친박 돌격대식으로 정말 ‘박심’만을 추종했던 여당의 대표적인 친박 인사들을 왜 정무특보로 임명했는지 모르겠다. 특보 제도의 도입 취지가 무엇이고 그들에게 어떤 역할을 기대하는지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특보들의 면면이 국민과의 소통이나 민심과의 가교 역할, 합리적인 정무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인물들은 아닌 것 같다”고 혹평했다.

무엇보다 이번 인적 개편은 기존 국정운영 스타일을 바꾸지 않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가 확인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이번 청와대 인사뿐 아니라 지난 2월17일 박 대통령이 홍용표 통일부 장관 후보자,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 등 친박 인사들을 내정한 것도 ‘친박 내각 체제’를 통해 내각을 확실히 장악하겠다는 의도였다. 더구나 이들이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면 국무총리를 포함한 18명의 내각 구성원 가운데 3분의 1이 현역 의원으로 채워지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지는데, 이렇게 장관을 비롯해 정무특보 등 현역 의원들이 대거 행정부에 관여하게 되면 입법부가 행정부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는 등 삼권분립의 원칙에 어긋나는 문제가 발생한다. 또한 장관으로 임명된 현역 의원들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장관직을 대거 사퇴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연속성이 끊어진 ‘한시 내각’이 될 가능성도 높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이 이렇게 무리한 개각을 강행한 것은 집권 3년차의 국정 승부수를 ‘변화’가 아닌 ‘친위대를 통한 국정 기조 유지’에 걸었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17일 개각에서 내각이 친박 친위 체제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고 이를 알고 있으면서 청와대 인사에서 친박을 내세운 것은 소통을 중시하기보다는 친정 체제를 통해 강하게 밀어붙이겠다는 의도”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이러한 신념은 약이 될까, 독이 될까. 전문가들은 대체로 박근혜 정부의 집권 3년차를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봤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국민이 비서실장 인사에 주목했던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에 변화가 있을 것인가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는데, 그런 점에서는 특별히 변화의 사인을 읽을 수가 없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스타일에서 크게 바뀌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정권의 성공을 위해서는 당과 협력을 유지할 필요가 있고 그러려면 박근혜 대통령이 바뀌어야 하는데 지금까지의 사인으로 봤을 때는 별로 바뀔 것 같지 않다”고 분석했다. 이준한 교수도 “현직 국정원장을 비서실장으로 끌어왔을 정도라면 그만큼 비서실장을 맡겠다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고 그만큼 인재풀이 적다는 것이며 이는 정국 변화를 도모했던 것이 허사로 끝났다는 의미다. 경제전문가도 아니고 정보통이 왔으니 경제 살리기도 못하고 국민 대통합도 어렵고 무슨 콘셉트인지 가슴을 울리는 감동을 주기는커녕 머리로도 이해가 잘 안 된다”고 말했다.

“감동은커녕 머리로도 이해 안 되는”

정권의 추락을 더 이상 막을 수 없다는 비관론도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 3년차 전망은 대단히 비관적이다. 소폭 개각과 이번 청와대 인사는 추락하는 대통령에게 날개가 되기엔 역부족이었다. 박 대통령은 계속 내리막길을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반전을 시도했다면 이런 인사보다는 더 과감하고 적극적인 탕평 인사를 선택했어야 한다. 결국 지금은 내리막길에 브레이크가 없는 상황이 아닌가.” 유창선 정치평론가의 말이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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