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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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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회씨 딸 대학 보내기’에 국정이 개입한 꼴”

지난 4월 대정부 질문에서 승마계 개입 의혹 제기한 안민석 새정치연합 의원…

“서미경 문화체육비서관 경질과 김승연 회장 석연치 않은 집행도 다시 살펴야”
등록 2014-12-16 07:47 수정 2020-05-02 19:27
안민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 4월8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정윤회씨 딸(승마 선수)에 대한 특혜와 청와대 인사 개입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용 선임기자

안민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 4월8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정윤회씨 딸(승마 선수)에 대한 특혜와 청와대 인사 개입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용 선임기자

시간이 흐르면서 진실의 퍼즐 조각이 하나둘 맞춰지고 있다.

안민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 4월 대정부 질문에서 ‘정윤회씨가 연루된 승마계 문제와 이와 관련된 청와대의 부당한 인사 개입 의혹’을 제기했을 때만 해도 언론이 별로 주목하지 않았다. 8개월이 지나 그의 폭로가 사실과 가까웠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정씨의 딸이 지난해 4월 국내 승마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한 뒤 승마 심판들에 대한 이례적인 경찰 조사, 승마계를 감사하라는 청와대의 지시, 정씨 쪽 문제까지 포함해 승마계 전반 상황을 보고한 문화체육관광부 국·과장 경질, 이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8월 유진룡 당시 문체부 장관을 불러 수첩을 꺼내 해당 문체부 국·과장을 거론하며 “(그 사람들)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며 사실상 교체를 지시했다는 내용이 에 보도되면서다. 유 전 장관도 보도 내용이 사실에 부합한다고 와의 인터뷰에서 밝혔으나, 청와대는 “문체부 국·과장 인사는 장관의 고유 권한”이라며 관련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지난 12월10일 저녁, 자신의 지역구인 경기도 오산에서 기자와 만난 안 의원은 “간단히 말해 이 사건은 ‘정윤회씨 딸 대학 보내기 프로젝트’를 위해 비선 라인이 국정에 개입한 꼴”이라고 정리했다. 특기생으로 대학에 보내려면 국가대표가 되고 국제대회 금메달을 따는 게 유리한데, 정씨의 딸이 지난해 4월 국내대회 우승을 못하자 승마계 일부 인사를 찍어내기 위한 ‘살생부 작업’을 시도하다 문체부 공무원까지 교체되는 사태로 흘러왔다는 주장이다. 정씨의 딸은 이후 국가대표가 됐고, 최근 이화여대 개교 이래 처음으로 승마 특기생으로 입학했다.

가족 뒤를 캘 수도 있어 다시 점검해봐 -1년 전 아는 신부님이 제보를 해줬다고 들었다.

=신부님이 정윤회, (그의 전처인) 최순실, 승마 선수인 딸, 승마 심판진에 대한 경찰 조사, 문체부 국장 경질 등의 얘기를 전했다. 순간 뒤통수가 띵했다. 2013년 8월29일 서미경 청와대 문화체육비서관, 9월2일 문체부 체육국장·과장 등 3명의 경질이 연이어 일어났을 때 ‘이게 뭐지?’ 하고 넘어갔는데, 신부님의 얘기를 듣고 뭔가 연결이 되더라. 또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2013년 7월)에서 갑자기 ‘체육 개혁’이란 어색한 말을 내놓았을 때, 체육 개혁 화두를 대통령에게 줄 만한 새누리당 의원에게 (그런 의견을 전했느냐고) 물어보니 ‘난 아니다. 나도 그게 누군지 궁금하다’고 하더라. 승마만 감사를 하면 이상하니 체육계 비리 전체 근절에 나선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대통령을 움직인 사람이) 정윤회 쪽? ‘그게 말이 돼?’란 생각도 했다.

-그런데 공개적으로 의혹을 제기했는데.

=(제보를 받은 뒤) 경찰 조사를 받은 승마계 관계자 등을 접촉하면서 이번 일에 ‘청와대가 관련됐다’는 얘기를 듣게 됐다. 정씨 가족을 오래 알고 지낸 승마인을 만나 정씨 부부, 이들과 박 대통령과의 관계도 들었다. 이번 건은 권력과 싸우는 것이라 나와 내 가족의 뒤를 캘 수도 있어 대정부 질문을 하기 전에 문제될 것은 없는지 다시 점검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의 반응을 보고 (의혹을) 더 확신하게 됐다.

-확신?

=김종 문체부 2차관이 두 차례나 나서서 (나의 주장을) 강하게 반박했다. 사인(개인)에 불과한 여학생(정씨 딸)에 얽힌 문제에 정부가 나서서 과도하게 해명하는 것이 난센스라고 봤다. ‘저 사람(2차관)이 왜 저러지?’란 생각이 들더라. (내가 속한 국회 상임위에서) 현재 여성가족부 장관이 된 김희정 새누리당 의원이 나서서 “우수한 성적을 거둬온 승마 유망주(정씨의 딸)를 죽이려 한다”고 강하게 말하더라. 설사 나의 발언(의혹 제기)이 부적절했어도 여당 의원 한 명 정도가 문제제기를 하면 될 텐데, 당시 해당 상임위 소속 여당 의원들이 대거 발언했다. 여당 의원들이 사전 협의를 하지 않았나 싶다.

여당 의원들, 사전 협의 하지 않았을까-박 대통령이 직접 문체부 국·과장을 거론하며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고 말한 건 어떻게 보나.

=누군가에게 (문체부 국·과장 얘기를) 들은 거겠지. 박 대통령이 정씨 부부의 딸을 예뻐했다는 얘기도 있다.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는 말이 사실이라면) 박 대통령이 (정씨 부부의 딸을 아끼는) 부모의 심정으로 말했을 수 있다. 국가대표가 돼 좋은 대학에 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씨 부부의 딸은 박 대통령과 가까웠던 최태민(정씨 전처인 최순실의 부친)씨의 외손녀 아닌가?

-여권에서도 “쿠데타처럼 문체부 절반을 장악했다”고 비판하는 김종 차관이 이른바 ‘청와대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이재만 총무비서관)과 한양대 동문이라 매우 가깝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 김 차관은 부인하지만.

=김 차관은 한양대 교수 시절 정치·미디어 쪽과의 교류에 능하다는 평가가 있었다. 난 그의 그런 능력과 개인 인맥을 동원한 순수 개인기로 차관이 됐다고 평가하는 쪽이다. 학계와 체육계에선 종로 갑부였던 김 차관의 부친이 김기춘 비서실장의 (정치적) 후원자라고 알려져 있다. 문제는 (체육 개혁을 시도하다 문체부 국·과장 등이 경질된 뒤 부임한) 김 차관이 체대 교수 시절에도 체육 개혁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단 점이다. 그의 전공(스포츠경영)은, 예를 들어 프로 구단을 어떻게 운영할지 등에 더 가깝다. 엘리트 선수 중심의 스포츠를 개혁하고, 이를 위해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를 통합해 근본적인 체육 시스템을 개혁하는 데엔 관심이 없던 사람이다.

-풀어야 할 다른 의혹으로는 뭐가 있을까.

=문체부 국·과장 경질 직전에 이뤄진 서미경 문화체육비서관 경질 문제다. 당시 경질 사유가 잘 설명되지 않았다. 아마 서 비서관도 (승마계와 관련해 정씨 쪽도 문제가 있다는) 문체부 국·과장과 같은 논리에 섰던 게 아닌가 싶다. 또 대법원이 지난해 9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 대해 (징역 3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서울고법으로 사건을 돌려보낸 뒤, 올해 2월 서울고법이 김 회장을 집행유예로 가석방한 것도 다른 재벌 회장의 구속과 견줘 의외다. 김 회장과 정윤회씨 사이엔 정씨의 측근인 승마계 박아무개가 있다. 김 회장의 석연치 않은 집행유예가 비선 라인(정윤회)에 의한 것인지도 밝혀져야 한다.

김진선 전 조직위원장의 갑작스런 사퇴는

김 회장의 아들과 정씨의 딸은 지난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승마 마장마술 단체전에 함께 출전해 금메달을 땄다. 안 의원은 김 회장과 정씨 쪽이 승마를 고리로 연결되어 있는 지점을 눈여겨보고 있다. 안 의원은 지난 8월 김진선 전 평창올림픽 조직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 배경에 청와대의 내부 알력이 작용한 게 아닌지도 들여다보고 있다. 김 전 위원장이 ‘김기춘 실장 교체설’이 흘러다니던 올해 어느 시점에 박 대통령을 만난 이후 평창올림픽 조직위 감사와 김 위원장의 사퇴가 이어졌다는 풍문 때문이다. 안 의원은 “신부님의 제보로 비선 라인의 국정 개입 의혹이 일부 세상 밖으로 드러났지만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많을지 걱정된다”고 했다.

오산=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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