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자신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이 주최한 국정원 개혁 방안 토론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경호기자 jijae@hani.co.kr
안철수 무소속 의원에게 사람들은 묻는다. ‘당신의 정치는 무엇이 새롭소?’ 사람들은 또 묻는다. ‘그다음엔 무엇을 할 것이오?’ ‘새정치’를 내건 이상, 뭔가를 할 때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도 두 질문은 끊이지 않을 게 분명하다.
요즘은 특히 더하다. 8월11일 안 의원의 싱크탱크 ‘정책 네트워크 내일’의 이사장이었던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취임 석 달 만에 직을 물리겠다는 뜻을 밝혔다. 안 의원은 “학자적 양심을 갖고 하시는 말씀들도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주위에서 해석을 하다보니 많이 힘드셨던 걸로 들었다”며 최 교수를 감쌌다. 반면 최 교수는 부쩍 언론과의 접촉을 늘리더니 “권한 없이 책임만 져야 하는 상황이 됐다. 실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며 불만을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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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교수와의 결별은 안 의원에게 큰 타격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독자적인 제3세력’을 목표로 내걸었으니 지금부터 사람들을 있는 대로 끌어모아야 할 상황이다. 그런데 도리어 ‘십고초려’해서 모셨다는 상징적 인물이 빠져나갔다. 오는 10월엔 재보선이, 내년 6월엔 지방선거가 예정돼 있다. 정치세력화에 있어 선거에 후보를 내서 당선시키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안 의원에게는 또다시 질문이 날아들었다. ‘최장집 이후’는 무엇(또는 누구)인가? 그래서 무엇이 새로운가?
최근 안 의원은 원혜영·조경태·최재천 의원 등 민주당 의원들을 포함해 여러 인사들을 두루 만나고 다닌다고 한다. 같은 부산고 출신의 새누리당 의원들과도 만날 계획이다. 19대 국회에서 부산고 출신은 안 의원과 김정훈·나성린·정의화 의원 등 4명이다. 안 의원 쪽에선 “원래 사람 만나고 다니는 게 정치인의 일 아니냐”고만 한다. 안 의원은 6월 중순 기자들에게 “지금은 인재 영입 목적이라기보다 많은 분들 만나뵙고 이야기 나누고 그런 상황이다. 특별히 목적 갖고 만나고 그러지는 않고 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누구를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보는 시선이 고울 리 없다. 이른바 ‘인재 영입’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다. 여의도 정가에선 ‘안 의원 쪽이 누구를 만났다더라’ ‘어느 지역의 출마 의사를 물어봤다더라’는 소문이 떠돈다. 한 언론은 내년 지방선거 예상 대진표를 만들어 아예 ‘안철수 진영’의 후보를 새겨넣기도 했다.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10월 재보선이나, 열 달이 남은 지방선거 일정을 감안하면, 때이른 법석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선거에 임박해서 인물을 구하는 것은 위험이 많다. 미리 일정 정도의 풀을 만들어놓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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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1일 안 의원의 싱크탱크 ‘정책 네트워크 내일’의 이사장이었던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취임 석 달 만에 직을 물리겠다는 뜻을 밝혔다.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안 의원 쪽은 인재 영입을 위해 국민운동본부 성격의 단체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정치권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면서, ‘정당 색채’를 최대한 제거한 대중적 참여형 조직을 구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안 의원 쪽은 영입을 목적으로 한 각계각층 인사들과의 만남에 대해서도 시인하는 분위기다. 안 의원 쪽의 한 인사는 “선거에는 대체로 적극적으로 임할 것이다. 의미 있는 지역에는 후보를 낼 것이고, 사람들을 찾는 중”이라고 말했다. 다른 인사는 “영입 과정을 오픈(공개)하기는 힘들다. 노출되자마자 사방팔방에서 공격을 받을 게 뻔하다”고 말했다.
‘국민운동본부’가 발족해서 정치세력화 기능을 전담하게 된다면, ‘정책 네트워크 내일’은 본연의 구실인 정책 분야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 효과도 거두게 된다. ‘내일’은 탄생 때부터 정책연구소를 표방했고 정책 기능을 맡았음에도, 외부에서는 정치기구로 여겨왔다. 이 때문에 어느 쪽의 기능도 제대로 수행하기 힘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으로 성공적으로 기능 분화가 이뤄진다면, 안 의원은 두 단체를 정치와 정책의 양 날개로 삼을 수 있게 된다. 최근 최장집 교수의 후임 이사장으로 안철수 대선캠프 후원회장이던 소설가 조정래씨가 거론되는 것도 같은 이치로 보인다. ‘정치적’이란 오해의 소지를 최대한 제거해 상징적 인물을 앉히고, 본연의 구실에 충실하도록 한다는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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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안 의원이 조직하게 될 정치·정책 결사체의 지향점이다. 어떤 가치와 철학을 내걸고, 사람들을 모을 것이냐의 질문이다.
최장집 교수의 후임 이사장으로 안철수 대선캠프 후원회장이던 소설가 조정래씨가 거론되고 있다. 작가 조정래씨가 20일 오후 자신의 소설 <태백산맥> 무대인 전남 보성군 벌교읍 ‘현 부자네 집’ 마당에서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주최 문학기행 참가자들에게 소설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8월20일 ‘정책 네트워크 내일’과 안철수 의원실은 차명거래 방지 및 자금세탁 근절 방안에 대한 토론회를 국회에서 공동 개최했다. 이날 행사장에는 송호창 의원과 최상용 전 주일대사(안 의원의 후원회장) 등 안 의원 쪽 인사들 외에, 민병두 민주당 의원,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참석했다. 눈에 띈 것은 김희철·조배숙 전 의원이다. 두 사람은 민주당 의원이었지만, 지난해 19대 총선 때 공천을 받지 못하고 이에 불복해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안철수 의원실 관계자는 “두 사람은 행사 때마다 온다”고 말했다.
안 의원이 목표로 삼은 ‘독자적 제3세력’에 닥칠 수 있는 딜레마가 여기에 있다. ‘비새누리 비민주’를 목표로 하면 기존 정치권에 염증을 느낀 지지층이 몰려들 듯하지만, 정작 후보감으로는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에서 ‘선택받지 못한’ 인물들이 몰려들 수 있다는 점이다. 인재 영입을 준비하는 쪽에서도 기존 정당 출신 인사를 배제하진 않으려 한다. 한 관계자는 “공천을 못 받았다고 해서 모두 무능한 것은 아니다. 능력은 있지만 기회가 가지 않았거나, 당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못 받은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양비론 딜레마’를 극복하려면 지향하는 가치와 철학을 우선 제시해야 한다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없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다. 가치와 철학이 하늘에서 뚝 떨어질 리 없다. 안철수 의원실에 지난해 대선 때 냈던 정책공약집 이 쌓여 있고,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최근에 다시 좀 들여다보고 있다. 그때 얘기했던 것과 지금 우리가 하려는 걸 비교해보려 한다”고 한다. 그러나 비교에서 그칠 게 아니라 다시 만들어야 할 상황이다. 지난 대선 때 안철수 후보 공약 작성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당시 공약집은 안철수가 대선 후보로 불려나오는 상황에서 요구된 것들을 모두 모아놓은 것이다. 그렇게 보면, 전체를 꿰는 이념이나 철학은 없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월 초 안 의원 또한 대선 당시 공약에 대해, “대선 때는 급하게 준비해서 이것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검증이 부족했다. 차근차근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서 세미나에서 밝히겠다”고 말했다. 여기서의 성공 여부가 곧 안 의원의 공력과 향후 가능성을 가늠할 중요한 잣대가 될 전망이다.
여전히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1위
야권에서 안철수 의원은 꾸준히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신당 창당시 지지율은 20%대 중반으로 새누리당에 이어 2위다. 안 의원의 ‘세력화’에는 가장 굳건한 자산이다. 흔히 정당의 목표는 집권이라고 하듯, 안 의원의 제3세력도 집권을 목표로 할 것이다. ‘무엇이 새롭냐’ ‘그다음은 뭐냐’는 질문은 대중적 관심의 다른 표현이다. 오히려 두 질문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를 주목하는 이유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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