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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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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때 독일 체류…요샌 면벽하고 산다”

박근혜 ‘막후 실세’ 지목받아온 정윤회씨, 서울 근교 공원서 <한겨레21> 기자와 30분간 단독 대화
등록 2013-07-30 15:06 수정 2020-05-03 04:27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비서실장’이라는 의혹을 받아온 정윤회씨(왼쪽)와 부인 최순실씨가 2013년 7월19일 경기도 과천 경마공원에 앉아 있다. 정씨는 박 대통령의 ‘퍼스트 레이디’ 시절을 보좌했던 최태민 목사의 사위다. 한겨레 박종식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비서실장’이라는 의혹을 받아온 정윤회씨(왼쪽)와 부인 최순실씨가 2013년 7월19일 경기도 과천 경마공원에 앉아 있다. 정씨는 박 대통령의 ‘퍼스트 레이디’ 시절을 보좌했던 최태민 목사의 사위다. 한겨레 박종식

서울 근교의 한 공원에서 정윤회(58)씨를 만났다. 인터넷 검색창에 그의 이름을 입력 하면 나오는 흑백 증명사진과는 꽤 다른 모 습이었다. 십수 년은 되었을 사진 속 그는 체 구가 꽤 클 것 같은 인상이다. 중학생 시절 역도를 했고, 1980년대 초 항공사 보안승무 원으로 일했다는 전력까지 듣고 보니 더욱 그랬다. 그러나 7월20일 직접 만난 그는 호 리호리한 몸매였다. 과거 사진만 갖고 그를 찾아나섰던 많은 기자들이, 혹시 그를 만나 고도 알아보지 못한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 각이 들었다.

그러나 과거 그를 직접 만난 적이 있다는 많은 사람들의 증언처럼, 그는 차분하고 신 사다웠다. 예고 없이 불쑥 나타난 기자의 질 문에도 답변을 피하진 않았다. 그동안 자신 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이런저런 “카더라 통 신” “터무니없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가족 을 염려해 자신의 거취가 공개되는 데 대한 부담을 토로하며 그는 “이제 그만하자”는 말 을 거듭했다. 대화는 30분가량 이어졌다.

<font color="#008ABD">“대통령 당선? 목적 달성하니 허무하더라” </font>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당신은 가장 기뻐 할 사람 중 한 명일 것 같았다. 그런데 결국 안 나 타났다.

“기분이 이랬죠. 결과가 좋으니까, 내가 피 해 본 것, 내가 괴로웠던 것들은 어느 정도 수긍이 됐다.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가 목적을 달성하면 허무하잖아. 내가 당한 게 생각나고, 그러니까 힘들지. 또 더 조심하는 삶을 살아야 하니까.”

정윤회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정계 입문 시기에 ‘비서실장’이란 호칭을 달고 보필했던 인물이다. 정씨의 장인 최태민(1912~94)씨는 1970년대 박 대통령의 퍼스트레이디 시절부터, 부인 최순실(57)씨는 육영재단 이사장 시절부터 인연을 맺었다. 아버지와 딸 내외는 각종 전횡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정씨는 이를 “피해 본 것” “당한 것”이라고 묘사했다.

“(박 대통령이) 처음 정치 시작하실 때 내가 가서 도와드리다보니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내 얘기가 나오는 거고, 또 내가 누구라는 걸 아니까 정치적으로 이용할 사람들은 이용하는 거고, 그런 거지, 몰라요? 내가 무슨 부정부패를 했어, 잘못을 했어? 다만 그거 갖고 얘기를 하는 것뿐이에요. 그래서 뭇매만 맞고 지금은 이렇게 됐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이나 지난해 대선 때도 관여했다는 의혹이 나와 기자들이 찾아다녔다.

“내가 완전히 그만둔 지 7~8년 됐다. 나를 만나고 싶다는 기자들은 주변에서 하는 얘기가 사실인지 확인하겠다는 건데, 지난해나 2007년 같은 경우엔 전국적으로 그랬다고 하더라. 그러니 내가 뭐 다닐 수가 있어야지. 어디 가서 마음 편히 앉아서 차도 못 마신다.”

2007년 경선 때는 이른바 ‘강남팀’이란 조직을 이끈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건 ‘카더라’ 통신 아닌가. 다 거짓말이다. 홍윤식씨 문제 생겼을 때도, 나는 홍윤식씨 얼굴도 못 봤어.” (당시 박근혜 캠프의 홍윤식 전문가네트워크 위원장과 정씨가 밀접한 관계라는 의혹을 이명박 캠프가 제기했다. 그러나 홍씨는 2012년 7월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정윤회를 만나본 적도 없고 얼굴도 모른다”고 했다.)

<font color="#008ABD">“박 대통령에게선 연락 올 일 없다”</font>지난해 대선에는 관여하지 않았나.

“나는 전혀 모른다. 독일에 나가 있었다. 독일은 내가 자주 왔다갔다 한다. 옛날에 무역을 그쪽하고 했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 쪽과는 연락하지 않나.

“일을 관둔 이후로는 일절 안 한다.”

의원실 보좌진 출신 비서관들도 연락을 안 해오나.

“그 친구들도 연락 안 해. 나랑 연락한다 어쩐다 얘기 나오면 그런 게 다 대통령한테 부담이 되니까. 서로가 조심하고, 연락도 안 하고, 만나지도 않고.”

이춘상 보좌관 상가에는 갔었나.

“안 갔어. 못 갔어. 내가 갈 수가 있나. 내가 가면 또 말 나올까봐, 거기도 못 갔어.”

박 대통령이 직접 연락해오지는 않나.

“연락 올 일이 없어. 얼마나 바쁘시겠어. 지금은 더 그렇고. 참외밭에서 신발끈 고쳐매지 말라는 옛말이 틀린 게 아니다. 그런 거에 한번 당하면 노이로제 걸린다. 심적으로 부담이 가고. 나는 아예 사람을 안 만나. 항상 나 혼자 있어. 애하고 같이 있거나. 초야에 묻혀 사는 것도 아니고, 면벽하고 살고 있어. 말 나올까봐. 안 한 것도 했다고 그러니까. 이제 그만합시다, 조용히 사니까.”

1998년 대구 달성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이후 박 대통령의 국회의원 기간에 주요 보좌진은 바뀐 바 없다. 대선 직전 교통사고로 숨진 이춘상 전 보좌관을 제외하면, 이재만 대통령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은 고스란히 청와대로 자리를 옮겼다. 박 대통령의 국회 활동 초기 정씨가 비서실장이었음을 감안하면, 정씨와 이들의 깊은 인연은 짐작할 수 있다. 혹자는 보좌진 4인방을 구성한 게 정씨라고도 한다. 이들은 ‘4대천왕’이라는 비아냥 섞인 별명 속에서 ‘문고리 권력’ ‘환관 권력’이란 비판을 받아왔다. 정씨가 이들로부터 별도의 보고를 받으며 계속 박 대통령의 행보에 개입한다는 의혹도 제기돼왔다.

정윤회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18년의 칩거’를 깨고 정치권에 돌아온 1998년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 때부터 박 대통령을 도운 인물이다. 그는 “(박 대통령 보좌를) 완전히 그만둔 지 7~8년 됐다”고 말했다.한겨레 강창광

정윤회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18년의 칩거’를 깨고 정치권에 돌아온 1998년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 때부터 박 대통령을 도운 인물이다. 그는 “(박 대통령 보좌를) 완전히 그만둔 지 7~8년 됐다”고 말했다.한겨레 강창광

<font color="#008ABD">“내가 성범죄, 사기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font>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나름으로 ‘피해자 진술’인데 주어가 특정되지 않는다. ‘피해자’ 정씨에게 피해를 안긴 주체가 없다. 정치권에선 최근까지도 ‘정윤회’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친박 내부에선 친박끼리 ‘내가 모르는 보고서가 박 대통령에게 올라간다’며 정윤회씨를 거론했다. 반대 진영에선 박 대통령이나 친박의 결정이 이상하다 싶을 때 그를 의심했다. 최근엔 인수위 인선 잡음으로 각종 비판이 일던 그 시기에도 그랬다.

최근까지도 정치권에선 당신 이름이 등장했다.

“일단은 뭔가 핑계가 필요하고, 누구한테 미뤄야 하고. 난 너무너무 그런 걸 많이 당했어, 터무니없는 것들. 북한 얘기도 그렇다. (2002년 박 대통령의 방북 때) 나는 안 갔다. 내가 거길 왜 가요. 내가 모시고 있었을 때지만, EU상공회의소 이사들만 가는 건데, 내가 갈 이유가 없지. 그것도 내가 갔다 어쨌다 하는 게 다 ‘카더라’야. 그뿐 아니라 (내가 가서) 김정일 국방위원장한테 20억인가, 30억(을 받아왔다고)? 뭐 그런 얘기까지 나와갖고… 허허.”

원망스러운가.

“원망스럽고 자시고 할 게 있나. 어차피 내가 일한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내가 무슨 성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절도나 사기나 크게 잘못을 저지른 일도 없고…. 당해본 사 람 아니면 이해를 못해. 나는 친척들하고도 얼굴 볼 수가 없어. 친구들도 다 끊기고. 내 나이가 60이라고. 내 인생의 황금기 같은 시 간을 그렇게 보냈어. 이제 60이면 편하게 살 아야지.”

<font color="#008ABD">“최태민 의혹? 정권이 몇 번 바뀌었는데…” </font>장인 최태민씨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그건 2007년에 재판이 있었다. 김해호 사건이라고, 그건 법적으로 해서 이겼다. 그 때 처음으로 우리가 변호사 사서 했다. 또 이 번에 나온 에 최필립(전 정수장학회 이사장)씨가 인터뷰한 게 있다. 그 양반이 (사정을) 잘 안다. 청와대에 있을 때 비서관 으로 있으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담당했거 든. ‘김재규가 만들어서 날조한 거다’는 건데, 지금 와서 그럼 뭐하겠어.”

최태민씨나 당신이 박 대통령의 숨은 재산관리인 이라는 의혹이 있고, 부인 최순실씨 (수백억원대) 재산 형성 과정에도 박 대통령의 영향력이 미쳤 다는 의혹이 있다.

“정권이 몇 번 바뀌었나? 세무조사를 몇 번 했겠나? 정권이 바뀔 때 넋 놓고 있었던 것 아니지 않나. 항상 정권 바뀔 때 얘기가 나왔다. 문제가 있으면 불거졌겠지.”

이 부분에서 정씨는 강경했다. 한나라당 당원이던 김해호씨는 2007년 박근혜 당시 경선 후보와 관련된 허위 사실 유포 혐의 등 으로 구속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년, 2심에 선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2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발표 내용 중 잡지 등에 이미 보도된 것이 대부분이고 미약하나마 근거를 가지고 의혹을 제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김씨는 경선 도중 기자회견을 열어 박 대통령과 최태민씨의 관계 등에 대한 의 혹을 제기했던 인물이다. 최태민씨 논란과 관련해, 최필립 전 이사장은 8월호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최태민에 대해 세상에 나돌던 소문은 사 실이 아니야. 괜찮은 사람이었어. 권력자들 이 나쁘게 왜곡한 거야. 당시 아무도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비행을 대통령에게 보고하 지 못했는데, 오직 큰영애(박근혜)만 했어. 누가 그런 자료를 줬겠어? 최태민이지. 그는 당사자 앞에서도 할 말은 다 하는 사람이었 어. 그러니까 화가 난 김재규가 뒷조사를 하 라고 지시했는데, 나오는 게 없으니까 만들 어서 집어넣었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최태 민을 나쁘게 본 것도 잘못된 중정 기록을 보 고 그런 거야.”

지금은 무슨 일을 하나.

“놀아요. 다른 거 일절 안 하고. (뭔가) 하 긴 해야 하는데, 또 뭐 하면 정권 업고 뭘 한 다고 할 테니. 안 움직여도 말이 많은데, 움 직이면 더하겠지. 우리나라에 눈이 몇 개 있 나. 내가 뭔가 하거나 관여했다고 하면, 눈이 한두 개겠나.”

평창에서 말 목장을 운영할 예정이란 보도가 있 었다.

“내가 동물을 좋아한다. 은퇴해가지고 시 골 가서 소나 키우고 말이나 키우고 살려고 준비한 건데, 말 나오고 언론 나오고 이러니 까 거기도 못 가지. 그만합시다.”

<font color="#008ABD">정윤회는 ‘마녀사냥’ 희생자인가</font>

중세 유럽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으레 ‘마녀의 짓’이라고 단정짓고 마 녀사냥에 나섰다. ‘마녀’로 지목되면 모든 책 임을 지고 응징을 받아야 했다. 역병이 창궐 하고 종교개혁이 싹을 틔우던 중세의 혼돈 과 변화 속에서 불안감을 떨치기 위한 희생 양이 창조된 것이다. 정윤회씨도 마녀로 찍 혔던 걸까?

박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한 뒤부터는 다소 바뀐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제는 대통령의 결 정에 대해 비판을 제기하면서 ‘정윤회 보고서’ 등을 거론하는 일은 드물다. 어찌됐건 대통 령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다.

앞으로 연락할 방법을 묻자, 그는 웃으며 “가끔 봅시다”라고만 했다. 정식 인터뷰는 고 사했다. “이러다 한겨레하고 친해지겠네. 한 겨레에 입사를 하든지 해야겠어.” 와 의 연이은 취재에 대한 그의 너스레였다. (*앞서 는 지난 19일 정윤회씨를 약 10분간 따로 만나 나눈 이야 기를 7월22일치에 소개했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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