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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작용 심각한데 없애자니 꺼림칙

기초의원·단체장 정당공천 폐지론 두고 학계·정치권 의견 팽팽… “중앙정치 예속 고리 끊어야 ” vs “폐지 땐 검증 안 된 후보 난립”
등록 2013-04-25 12:45 수정 2020-05-02 19:27

지방자치의 독립성이 우선인가, 정당의 책임정치 구현이 우선인가?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의 정당공천 폐지를 둘러싼 정치권과 학계의 논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지방자치 구현에 천착해야 할 단체장 및 의원들이 각 정당의 하부 조직이나 지역구 국회의원의 수족처럼 움직이는 등 현행 제도에서 적잖은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는 진단에는 대체로 이견이 없다. 하지만 대안은 엇갈린다. 공천을 폐지해야 한다는 쪽에선 그것만이 중앙정치에 예속된 지방자치의 구조를 끊어낼 수 있는 길이라고 여긴다. 반대편에선 후보자에 대한 최소한의 검증이 무력화되는 동시에 토호들이 중심이 된 지역의 기득권 구조가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를 앞세운다.
행정학계는 “폐지” , 정치학계는 “유지”
학계의 입장은 엇갈린다. 행정학계는 대체로 공천제도를 폐지하는 입장에, 정치학계는 현행 제도를 유지하자는 입장에 기울어져 있다. 정세욱 명지대 명예교수, 강형기 충북대 교수 등 학자 140명은 지난 4월2일 서울 동숭동 경실련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당공천이 시작된 이래 지방선거는 중앙정치의 정쟁 도구로 전락하고 정당공천을 둘러싼 비리와 줄세우기 등으로 지방정치의 예속화가 가속화됐다. 이제 지방의 정치 및 행정을 중앙의 정치로부터 자유롭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정당공천 폐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오철호 숭실대 교수(행정학부)도 “기존 제도가 후보들을 정당의 공천을 통해 일차로 거른다는 장점이 있지만 잘못된 공천에 대해 책임진다는 전제를 과연 정당이 지켜왔는가”라고 반문하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 정당공천을 폐지하는 데 따르는 부작용은 물론 있다. 지역 여건도 준비되지 않은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일단 공천 폐지를 시작하고, 문제점이 발생하면 개선해나가야 한다. 이러저러한 문제가 발생한다고 기존 제도로 되돌아가자는 것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정당의 이기적인 주장이다.”
반면 정치학자들은 정당공천 폐지가 불러올 새로운 문제점에 주목하는 경향이 짙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공천 폐지는 책임정치와 정당정치의 활성화에 역행한다. 안전장치를 만든 뒤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정당의 공천제도가 유지되는 게 바람직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결국 정당정치 책임성의 문제다. 정당의 공천 과정 없이 당선된 단체장이나 기초의원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유권자는 그 책임을 누구에게도 물을 수 없게 된다. 많은 후보들 가운데 좋은 후보를 걸러 국민 앞에 세우는 것이 정당의 기본적 기능이다. 그것을 없애면 최소한의 자격도 검증되지 않은 후보들이 난립할 수밖에 없고, 표가 분산돼 극히 미미한 표차로 당선되는 사례가 발생하게 된다. 대표성에 문제가 생긴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정당공천을 없애면 진보 쪽이든 보수 쪽이든 후보자가 당선되는 순간 지역의 강고한 기득권 구조에 편입되는 것을 제어할 방법이 없어진다.”
대선 때는 새누리·민주 모두 폐지 약속
물론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공천 폐지는 지난 대선에서 여야를 막론한 모두의 약속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해 11월6일 정치쇄신안을 발표하면서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의 정당공천은 폐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야권도 11월18일 문재인·안철수 당시 후보의 명의로 함께 발표한 ‘새정치 공동선언문’에서 “공천권은 국민에게 완전히 돌려드리겠다. 기초의회 의원의 정당공천제도는 폐지하겠다”고 공언했다.
4·24 재보선을 앞두고 먼저 움직인 건 새누리당이었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이행과 함께 실질적인 지방자치를 이룬다는 명분으로 지난 4월1일 “해당 지역의 사정에 따른 특별한 이견이 없는 한 무공천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별한 이견이 없는 한’이라는 단서를 두고 혼선이 벌어지자, 당의 공직자후보추천위원장을 겸한 서병수 사무총장은 같은 날 기자회견을 열고 “대선 공약의 충실한 이행과 정치 쇄신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한다는 차원에서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에 대한 무공천 방침을 재확인했다”고 못박았다.
서울 노원병에 출마한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지난 4월16일 “공천 폐지를 기본적으로 찬성하지만 찬반 양론이 있다. 결국 판단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현행 제도의 문제점이 있는 만큼 개선책을 마련하는 게 옳다”고 재차 폐지론에 힘을 실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기초의원의 정당공천을 폐지하더라도 인구가 100만 명을 넘는 경기도 수원이나 경남 창원과 같은 경우는 재검토를 해봐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민주통합당은 당 차원의 결론을 내지 못하고 우왕좌왕했고, 결국 현행대로 공천을 진행하기로 했다. 박용진 대변인은 “정당공천 폐지라는 공약을 실천할 수 있는 진정한 방안은 관련 법(공직선거법)을 개정하는 것이다. 법 개정이 이뤄지기 전에는 법의 취지에 따라 당이 기초의원까지 공천하는 것은 정당의 의무이고 당연한 결과”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번 재보선에선 민주당은 현행 제도대로 공천을 완료했다. 당의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5·4 전당대회 출마자들의 견해도 애매하긴 마찬가지다. 김한길 의원은 지난 4월8일 연 기자간담회에서 “당내에도 의견이 팽팽해 좀더 토론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도 고민하고 있다”는 모호한 답변만을 내놨다.
진보정당 “잘못은 정당이 저질러놓고”
진보정당들은 공천 폐지에 부정적이다. 통합진보당 홍성규 대변인은 “문제는 공천제도가 아니라 공천의 권한을 실질적으로 지역구 국회의원이 갖고 있는 비민주적 정당 그 자체다. 애꿎은 정당공천제를 탓할 일이 아니라 매달 당비를 내는 당원들이 직접 후보자를 선출하는 진성당원제를 도입하는 것이 진정한 정치 개혁이고 정당 개혁”이라고 주장했다. 진보신당 윤현식 정책위의장도 지난 4월2일 논평에서 “화살이 엉뚱한 곳을 겨누고 있다. 정당의 책임정치 현실화가 문제의 핵심”이라며 공천 폐지에 반대 의견을 밝혔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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