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이주의 트윗, 유시민 정계은퇴

등록 2013-02-26 12:51 수정 2020-05-02 19:27

그대는 진정한 ‘자유인’

‘책임윤리’보다 ‘신념윤리’에 충실했던 전 보건복지부 장관
그래서 정치인보다는 ‘자유인’이 더 잘 어울리는 이의 사필귀정
950호 크로스트윗

950호 크로스트윗

신념이 자유의 언어라면, 책임은 공유의 언어다. 자유는 오롯이 나의 것이다. 나의 신념을 외부에 의해 간섭받지 않는다. 만약 외부의 간섭이 있다면, 그 간섭은 나의 사유를 거쳐 나의 윤리로 정립되면서 나의 신념으로 다시 변증한다. 반면 책임은 나만의 것이 될 수 없다. 책임은 관계 속에서 이뤄진 행동이나 관계를 규정짓는 권력의 작동으로 인해 파생된 어떤 결과를 짊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책임은 나와 너의 관계 위에 걸친 채 공유된다.

유시민이 정계 은퇴를 선언하며 쓴 표현은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떠난다”였다. 는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펴낸 책 이름이다. 베버는 책에서 정치인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신념윤리와 책임 윤리의 조화를 거론하며, 신념윤리보다 책임윤리를 더 중요한 덕목으로 꼽았다. 그러곤 “순수한 신념에서 나오는 행위의 결과가 나쁜 것이라면, 신념윤리가가 보기에 이것은 행위자의 책임이 아니라 세상의 책임이며, 타인들의 어리석음의 책임”이라고 설명했다. 책임윤리가는 “인간의 선의와 완전성을 전제할 어떠한 권리도 자신에게는 없다”고 생각하기에, 자신의 행동 결과를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씌울 수 없다”고 믿는다.

유시민은 2006년 2월부터 1년4개월 동안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재직하며, 보편적 복지 확대보다는 “국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 해 대내적으로는 대한민국이 경쟁력 있는 국민을 제대로 길러내는 사회투자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동체 구성원으 로서 응당 누려야 할 권리로서의 복지가 아니라, 투자 가치가 있는 이들에게만 시혜적 복지를 제공해 국가 경쟁력 강화의 도구로 삼자는 뜻이었다. 시민사회의 반대를 무릅 쓰고 의료법 개정을 추진해, 의료 상업화와 영리화의 길을 터주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의료 민영화는, 참여정부의 정책 경로를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장관직을 내려놓은 직후 쓴 에서 진보 진영에 “당신들은 보건복지 지출을 확대하자고만 하는 데, 미디어와 정치권의 압도적 지원을 받는 보수파가 펼치는 ‘작은정부론’과 ‘세금폭탄론’의 장벽을 넘어설 방법이 무엇인가”라고 되물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대통령이 마음먹어도 안되는 일이 아주 많은 민주공화국”이기에 대통령이나 장관보다 국민이 스스로 개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화한 양극화의 결과로 복지가 시대의 화두가 되었지만, 그는 단 한번도 자신의 시대착오적 정책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세상의 책임과 타인들의 어리석음의 책임”을 묻는다는 신념윤리 개념만 충실히 따랐다.

그러기에 유시민은 시민들과 ‘책임’이라는 언어를 공유해야 하는 정치인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진정한 ‘자유인’일지 모른다. 트위터로 정계 은퇴를 선언한지 겨우 이틀 만에 그의 책이 발간됐다는 뉴스를 들으며 떠올린 생각은 그런 것들이었다.

이재훈 기자

이제 정치인은 유시민의 ‘전직’이 되었다. 엇갈리는 평가를 남기고 떠난 유시민 전 장관이자 국회의원. 저술 노동자로 돌아간 그의 미래는 어떨까. 한겨레 강창광 기자

이제 정치인은 유시민의 ‘전직’이 되었다. 엇갈리는 평가를 남기고 떠난 유시민 전 장관이자 국회의원. 저술 노동자로 돌아간 그의 미래는 어떨까. 한겨레 강창광 기자

다시 정치를 시작해야 할 그대에게

동향 선배지만 점점 멀어지던 그와의 정치적 거리
직업정치 끝났지만, 아래로부터 진보정치 재구성 함께하기를

950호 크로스트윗

950호 크로스트윗

내가 대구의 한 중학교에서 껄렁한 선배들과 함께 나팔을 불어젖힐 때, 그는 같은 재단의 당시만 해도 별로 이름 없던 고등학교의 우등생이었다. 그러고는 서울 관악구의 그 대학에 떡하니 붙더라. 내가 상고를 졸업하고 은행에서 끙끙 돈자루를 실어 올리던 1980년 5월, 그는 이미 그 유명한 서울역 회군 지도파로 나서고 있었다. 그때부터 그는 쭉 한국의 정치운동 무대 가운데에 있었다. 노무현 정권 출범 전후로 말 그대로 방방 뜨기도 했다. 어떻든 대구에서 출세한 드문 진보정치인으로서, 그는 꽤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활약했다.

아니, 나와 그의 정치적 거리는 점점 더 벌어졌다. 심지어 적대적인 지점까지. 그런 그가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떠난다”고 한다. 솔직히 말해, 별다른 충격이나 감상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어쩌라고? 대체 뭔 일이라는 건가? 노무현 정부 5년을 포함한 지난 10년 동안의 제도정치권 생활을 끝낸다는 게 뭐 그리 대수? 진보정의당 안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혹 이것도 이른바 대선 뒤 집단 멘붕의 징후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내게는 그저 그런 대수롭지 않은 이벤트처럼 보인다.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떠나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했어야 할 당연할 결정. 그런 자유로운 개인적 선택에 앞서, 결코 자유롭지 못 한 집단적 책임이 남는다. 현실의 (진보)정치에 대한 회피할 수 없는 책임. 만약 그가 노무현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치열하게 반성하고 나섰더라면, 나는 그래도 그를 새롭게 봐줬을 것이다. 아직도 이 땅의 진보좌파 정치를 말아먹는 치기와 들뜸, 기회주의와 작당의 문화를 특유의 통렬한 조롱과 인정사정없는 비판으로 씹고 나갔다면, 나는 그를 이렇게 인정했을 게다. 진짜 저 선배 경상도 또라이 맞네.

그러면서도 그의 퇴거를 이렇게 읽어보고 싶다. 진보적 영웅들이 군웅할거하던 화려한 정치 극무대의 또 다른 막내림. 프로페셔널화한 직업 (진보)정치꾼 시대의 몰락을 알리는 또 한 번의 신호. 이런 측면에서 그의 은퇴를 사건적으로도 볼 수가 있다.

민주화 투쟁에서 시작해 마침내 정치권력의 변환을 가져왔고 그 치명적 한계로 바로 지금의 장기 집권을 가능케 한, 짧은 역사적 시간을 정리하고 미래를 준비할 정치적 숙제가 남는다. 진보좌파 정치를 일상적 실천을 통해, 천천히 끈질기게 만들어가야 할 일. 신자유주의 자본국가가 포섭한 ‘직업으로서의 정치’ 경계를 넘어, 진보좌파의 정치를 다시 바닥부터 구상해야 하는 현실. 그 냉정한 정치적 현실과 진지한 정치적 책무로부터 아무도 자유롭지 않다.

만약 유시민의 선택이 일희일비의 권력 정치를 접고 겸손하고 차분하게, 아래로부터 ‘정치적인 것’을 구성하기 위해 함께하려는 결기에서 비롯됐다면, 그와 나는 이제 비로소 한통속이다. 모든 것은 이후 그가 보일 행동에서 확인될 일. 두류산 앞 그 빈난한 보수적 삶들로부터도 “쟈들 생각은 몰라도, 인간은 괜찮데!”라는 마음의 도장을 얻을 수 있는, 진정성의 진보정치 사회로 귀향할 것을 바람.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