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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와 민주당, 두 개의 데자뷔

등록 2013-02-15 13:13 수정 2020-05-02 19:27

2013년 야권에는 두 개의 데자뷔가 있다. 민주통합당을 보면 2008년 총선 패배 뒤 지리멸렬에 빠지며 ‘10% 정당’이란 오명을 얻었던 장면이 떠오른다. 지난해 대선 이후 미국에 머물고 있는 안철수 전 후보를 두고 불거지는 신당 창당설, 민주당 입당론 등은 그가 대선에 출마하기 전 논란과 비슷하다. 이전과 달라진 건, 거듭되는 패배 탓에 야권이 처한 상황이 그 어느 때보다 ‘깜깜’하다는 것이다. 변화 없는 반복에서는 희망도, 미래도 찾을 수 없다. 2013년, 야권은 변화의 가능성이라도 보여줄 수 있을까?

야권의 정치 지형에서 가장 큰 관심거리는 안철수 전 후보의 신당 창당 여부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의원의 ‘복귀’ 시점, 박원순 서울시장의 2014년 지방선거 성적도 빼놓을 수 없다(왼쪽부터). 한겨레 신소영 기자, 이정우 기자, 김봉규 기자

야권의 정치 지형에서 가장 큰 관심거리는 안철수 전 후보의 신당 창당 여부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의원의 ‘복귀’ 시점, 박원순 서울시장의 2014년 지방선거 성적도 빼놓을 수 없다(왼쪽부터). 한겨레 신소영 기자, 이정우 기자, 김봉규 기자

안철수 신당|신당 앞서 ‘정책연구소’

안 전 후보는 대선 출마 회견에서 “정치인으로 거듭나기로 한 이상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열심히 이 분야에서 일하겠다”고 말했다. 후보 사퇴 회견에서는 “어떤 가시밭길이라고 해도 온몸을 던져 계속 그 길을 가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대선 당일 미국으로 떠나 체류 중이다.

그의 정치 재개 시점과 방식을 두고 정치권 안팎에서 여러 말들이 나오는 건 그의 이런 ‘의지’ 때문이기도 하다. 가장 관심을 끄는 건 신당 창당설이다. 올해 4월과 10월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안 전 후보 본인과 조광희 비서실장, 금태섭 상황실장, 강인철 법률지원단장 등 캠프 핵심 인사들이 출마하고, 내년 6월 지방선거에 즈음해 ‘안철수 신당’을 만든다는 얘기다. 현재 호남 지역의 반민주당 정서를 고려할 때 안철수 신당이 호남과 수도권에서 돌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안철수 캠프 정치혁신포럼에서 활동했던 정연정 배재대 교수는 1월28일 CBS 라디오에서 “안철수 신당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지난 대선 말미에 (캠프) 관계자들 내부에서 이미 나왔던 얘기고, 지금도 몇몇 분들을 통해 상당히 필요성이 공유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당 창당은 정치인 안철수의 ‘정공법’일 수 있다. 정당을 통해 선거에서 성과를 내야 대중에게 정치 리더로서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한마디로 ‘현실정치’에 뛰어들어야 제대로 된 정치인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얘기다. 대선에서 안 전 후보는 정치에 대한 아마추어리즘을 드러내며 혹독한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신당 창당은 앞으로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 민주당 혁신에 대한 평가 등 현실정치 상황에 직접적으로 연계될 수밖에 없다. 창당 여부와 시기, 함께할 세력 등이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 있는 이유다.

신당 창당에 앞서, 정치·정책연구소 설립을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이런 맥락 때문으로 보인다. 새로운 정치와 실현 가능한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싱크탱크를 구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철수 캠프에서 일했던 한 핵심 관계자는 “안 전 후보가 처음 미국에 갔을 때는 마음이 좀 급했던 것 같다. 정치를 계속하겠다고 했고, 주변에서 신당 창당을 거론하는 것도 압박이 되지 않겠느냐. 그러나 오히려 안 전 후보는 ‘안철수 현상’이라는 근본적인 고민으로 돌아간 것 같다. 안철수 현상에 담긴 열망을 정치로 현실화시키려는 틀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정당이든 뭐든 당장은 쉽지 않기 때문에 연구소를 통해 안철수 현상에 대한 대안 마련을 시작하겠다는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 전 후보의 앞날을 다시 가늠해볼 수 있는 계기는 그가 귀국 시점에서 대선 결과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놓느냐다. 스스로 야권 후보로 자리매김했던 안 전 후보는 아직까지 야권의 대선 패배 원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지 않았다.

지리멸렬 민주당|‘딴살림’에 대한 공포심

문희상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취임 뒤 여러 인터뷰와 간담회에서 “문전옥답이 벼랑 끝 텃밭보다 낫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민주당은 60년 전통이라는 ‘문패’가 있는데, 안 전 후보가 이런 문전옥답을 소출이 적다고 외면하고 벼랑 끝에서 새로운 밭을 개간하는 것은 더 힘든 일이라는 게 요지다. 문비대위원장의 옥답론은 “숲이 우거져야 나비가 날아온다”는 민주당 선(先) 자강론이다. 그러나 그가 안 전 후보를 향해 “대선 패배에 대한 공동 책임을 져야 한다. 네 탓, 내 탓 하며 딴살림을 차리면 지지해준 사람들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며 입당을 거듭 권유하는 데서는 ‘딴살림’ 상황에 대한 공포심 마저 묻어난다. 당 비대위원장의 이런 발언은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비판을 사고 있다. 최근 나온 민주정책연구원의 ‘안철수 현상의 이해와 민주당의 대응 방향’ 보고서는 “안 전 후보의 입당이나 신당 같은 이야기가 민주당에서 반복돼 나오는 것은 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환멸을 더 크게 하는 역기능을 초래한다”고 지적한다. ‘남한테 의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무능한 민주당’ ‘안철수에게 빌붙어서 살아남으려는 사람들’로 치부되는 현실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안철수 현상과 안철수 세력에 대해서는 민주당의 사활을 걸고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하지만, 안철수 개인에 대해서는 ‘존중하되 맡겨두기’라는 전술적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민주당의 ‘자강’은 가능할까? 민주당의 상황은 2008년 총선 직후와 비슷하다. 당시 민주당은 대선 참패의 여파로 총선에서 거푸 패했고, 당을 묶어세울 리더십이 부재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2008년 4월 총선 직후 민주당 지지율은 13.6%를 기록했고, 연말에는 한 자릿수 추락 위기까지 맞았다. 2010년 6월 지방선거 전까지 10%대를 벗어난 때가 드물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잇달아 패한 뒤 민주당 지지율은 20%대로 내려앉았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민주당의 가장 큰 위기는 혁신을 이끌 인물군이나 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류와 비주류가 교체된다고 해서 대중에게 민주당이 변했다는 인식을 주지 못한다. 2008년 이후의 상황에 다시 직면했다. 민주당에는 쉬운 길과 어려운 길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쉬운 길은 ‘견제 야당’의 길이다. 정부와 여당의 잘못을 심판하는 도구 정당 노릇이다. 이명박 정권의 셀 수 없는 잘못은 민주당이 쉬운 길을 가는 ‘핑계’를 제공했다. 어려운 길은 ‘견제 야당’의 역할과 함께 수권정당의 모습을 보여주는 길이다. 민주당은 2008년 총선 때부터 ‘정권 심판’ ‘반이명박’ ‘반이명박근혜’라는 구호에 매달렸을 뿐, 유권자에게 수권정당으로 인식될 수 있는 능력과 신뢰를 보여주지 못했다. 윤희웅 실장은 “민주당은 그동안 쉬운 길만 가면서 자체 역량을 키우지 못했고, 그것이 지난해 총선·대선의 실패를 가져왔다. 더구나 앞으로 박근혜 당선인이 통합적인 국정 운영을 한다면 야당으로서 쉬운 길을 가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2월1일 충남 보령 한화리조트에서 열린 민주통합당 ‘혁신과 통합을 위한 워크숍’에서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이 두 손으로 얼굴을 비비고 있다. 친노·주류와 비노·비주류의 책임 공방은 여전했다. 한겨레 이정우 기자

2월1일 충남 보령 한화리조트에서 열린 민주통합당 ‘혁신과 통합을 위한 워크숍’에서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이 두 손으로 얼굴을 비비고 있다. 친노·주류와 비노·비주류의 책임 공방은 여전했다. 한겨레 이정우 기자

민주당 계파 갈등|방향 착오 중도 노선

그러나 민주당 내부의 계파 갈등은 갈수록 가관이다. 차기 지도부의 임기를 놓고 벌이는 힘겨루기가 대표적이다. 대선 책임론에 직면한 친노·주류는 새 지도부의 임기를 잔여 임기인 내년 1월까지로 한정하자고 주장하고, 비주류는 2년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사실상 2014년 지방선거 공천권을 둘러싼 대립이다. 그동안 당권 경쟁에서는 이기고, 새누리당과의 선거에서는 번번이 졌던 친노·주류 세력은 대선 책임론을 회피하려하고, 비노·비주류 세력은 선거 패배 때마다 불거졌던 소모적인 정체성 논란에 불을 지피고 있다. 김성곤·김영환·김동철 등 비주류 의원들이 외치는 ‘우클릭’ ‘중도강화론’ 등이 그것이다. 민주당이 불신을 받는 이유는 진보냐 중도냐의 문제가 아니라, 일관성 없이 선거 때마다 정체성이 오락가락하기 때문이다. 2008년 총선 이후 무기력한 민주당이 채택한 것도 중도 노선이었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교수는 1월28일 홍종학 민주당 의원 주최 토론회에서 “진보노선은 유사 이래 가장 유리한 상황으로, 지금은 진보 노선의 위기라기보다 정치의 실패다. 정책 노선을 진보에서 중도로 수정해야 한다는 중도론은 방향 착오”라고 지적했다. 윤여준 전 장관은 1월29일 민주당 탈계파 의원 모임인 ‘주춧돌’ 토론회에서 “솔직히 말씀드리면 민주당이 전당대회에서 어떤 새로운 지도 체제를 형성한다고 해도, 계파정치를 타파하고 기득권을 내려놓는다고 해도, 국민이 감동이나 기대를 하겠는가. 그것만 갖고 민주당이 신뢰를 회복하겠는가.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만약 국민이 민주당의 변화된 모습을 흡족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또 다시 제3의 대안을 찾으려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과 박원순|의지와 기회 사이

제3의 대안으로 가능성이 거론되는 이는 안 전 후보다. 이와 별개로 앞으로 야권의 정치 일정에서 ‘역할론’에 관심이 쏠리는 이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문재인 의원이다. 문 의원은 대선 패배 이후 ‘트위터 정치’에 대한 논란이 일자 공개 발언을 삼간 채 국회 회기 중에는 서울에서, 회기가 아닐 때는 지역구인 부산 사상구에서 지내고 있다. 비주류 일각에서는 문 의원의 의원직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당내에는 문 의원이 내년 지방선거 때 ‘복귀’할 수 있을 거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문 의원이 지금은 성찰과 반성의 기간을 가질 때지만, 내년 지방선거 때쯤 (그에게) 지원 유세를 해달라고 하지 않겠는가. 자신의 의지와 객관적 접점이 생기는 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 때 문 후보와 안 전 후보 사이에서 마음고생을 했던 박원순 서울시장의 앞날도 관심사다. 박 시장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기회가 되면 재선에 도전하겠다”며 의지를 밝힌 바 있다. 민주당 당적이 그의 재선 도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는 현재로선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고 서울시정을 책임지고 있는 그가 민주당의 혁신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박 시장은 1월28일 평화방송 라디오 인터뷰에서 “국민들의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들이 있기 때문에 정당들을 중심으로 좋은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정치보다는 서울시장에 몰두하겠다. 보궐선거로 당선됐기 때문에 임기동안 시정에 올인하겠다”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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