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동, 세금 3억3천만원 가로챘다

제940호
2012.12.10
등록 : 2012-12-10 18:34 수정 : 2012-12-10 20:41
전두환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장세동(76)씨가 5공화국 안기부장 재직 때 저질렀던 ‘수지 김(본명 김옥분)씨 간첩 조작 사건’과 관련해 유족들의 손해배상 구상금 중 3억3천만원을 현재까지 미납한 사실이 <한겨레21>의 취재로 확인됐다. 대법원은 국가가 수지 김씨 유족에게 손해배상금을 국가 예산으로 먼저 지급하되 책임자인 장씨가 손해배상금에 해당하는 구상금을 내야 한다고 2008년 판결했다. 구상금을 미납한 장씨는 국민 세금 3억3천만원을 가로챈 셈이다. 장씨는 2002년 대선 출마 당시 38억1046만원의 재산 신고를 했으므로, 법무부와 국가정보원이 구상금을 받아내는 노력을 게을리했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2003년 국가 잘못 인정, 1심 확정한 사건

장세동 전 안기부장이 수지 김 조작간첩 사건의 조사를 받으려고 2001년 서울중앙지검에 들어서고 있다. 윤운식 기자
1987년 수지 김씨의 남편 윤태식씨가 홍콩에서 아내를 살해한 뒤 처벌이 두려워 월북을 기도하다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에 체포됐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민주화를 바라는 국민의 저항에 직면해 있었다. ‘북풍’거리가 절실했다. 당시 안기부장이 장세동씨다. 아내를 살해한 남편은 북한의 납치 기도를 이겨낸 반공투사로 미화됐다. 피해자 수지 김씨 유족은 졸지에 간첩의 가족으로 몰려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해졌다. 물질적 궁핍과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 반면 윤씨는 정·관계 인맥을 빌려 성공한 벤처기업인으로 변신했다. 2001년 10월 살인과 사기 혐의로 기소됐다.

2002년 대선을 거쳐 노무현 정부가 들어섰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등을 통해 독재정권의 잘못된 역사를 규명하는 노력이 이어졌다. 서울지법은 2003년 8월 수지 김씨 여동생 등 유족 10명이 국가와 윤태식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대한민국과 윤태식씨 등이 모두 42억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당시 강금실 법무부 장관은 국가권력의 잘못을 인정하는 취지에서 항소포기를 지시해 1심이 확정됐다. 전두환의 나라가 저지른 잘못을 노무현의 나라가 국가의 이름으로 배상한 것이다. 유족이 받은 배상금은 세금이었다.

일단 세금으로 정의를 세웠으니, 실질적 책임자가 돈을 낼 차례였다. 구상금이란 일종의 빚과 같다. 법무부는 장세동씨 등을 상대로 구상금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장씨가 구상금을 내라고 판결했다. 판결은 2008년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장씨가 내야할 구상금 총액은 14억5천만원이었다. 장씨는 2001년 “피해자 유가족이 겪은 그동안의 고통에 대해 깊이 사죄드리며, 너무도 마음 아프고 무슨 말씀으로도 위로를 드릴 수가 없다”며 “하루속히 슬픔이 치유되기를 기원 드린다”고 말한 적이 있다.

장씨가 실제로 죄책감을 느낀 것 같지는 않다. 법원의 배상 판결이 나오자마자 장씨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행정 경험을 통해 조만간 국가가 자신에게 구상금 청구소송을 낼 것임을 예측했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 참여했던 법조인 등 5공화국에 머리를 빌려준 엘리트 법기술자들이 주변에 많았다. 본인 명의의 재산을 감추는 것이 급선무임을 깨달았다. 배상 판결 한 달 뒤 장씨는 2003년 당시 기준시가 7억여원짜리 서울 서초동 빌라를 팔아버렸다. 국가의 법 집행을 회피하려는 행동이었다. 검찰이 강제집행면탈 혐의로 수사하겠다는 제스처를 취하고 언론이 이를 보도했다. 당시 <한겨레> 보도를 보면, 장씨는 그제야 빌라 매각 대금이 담긴 통장 등 9억여원 규모의 재산 목록을 국정원에 제출했다. 국정원은 이 재산을 가압류했다.

 


전 전 대통령, ‘휴가 보상’ 18억 등 30억 하사

<한겨레21>이 법무부를 취재한 결과, 장씨는 손해배상금 원금과 이자 등 구상원리금 14억5천만원 가운데 지금까지 모두 11억2천만원을 납부해, 3억3천만원을 미납한 사실이 확인됐다. 집행 실무를 담당하는 국가정보원은 12월5일 <한겨레21>에 “법무부와 협의를 통해 지금까지 장씨 재산에 대해서 재산 가압류 등 보전처분 및 강제집행을 실시했다”며 “향후 (구상금을 받아낼) 예정 사항은 법무부와 회의를 거쳐야 하므로 국정원이 답변할 사항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법률상 국가와 관련한 소송은 법무부가 대표자이며 국정원은 구상금 집행기관이므로 두 기관 모두 장씨의 재산을 조사할 책임을 나눠 갖고 있다.

장씨가 재산이 없는 가난한 노인이라면 구상금을 납부하지 않은 행위를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다. 정황상 그렇지 않다. 장씨는 여전히 구상금 미납액을 훌쩍 넘는 거액의 재산을 갖고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근거가 있다. 첫째, 장씨는 2002년 대선 출마 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38억1046만원의 재산 신고를 했다. 2000~2002년 3년간 세금을 9931만원 냈다고 신고했다. 2002년 ‘38억1046만원’이던 재산이 갑자기 2008년 이후 ‘11억2천만원’으로 줄어든 것이다. 검찰과 국정원은 확 줄어든 재산의 실체를 더 이상 규명하지 않았다. 둘째, 장씨가 전두환 전 대통령한테서 받은 하사금만 30억원이다. 1996년 1월14일치 <경향신문> 1면에 실린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 수사보도를 보면, 전씨는 일해재단 비리로 복역하고 1990년 출소한 장씨에게 18억원을 주는 등 여러 차례에 걸쳐 비자금에서 모두 30억원을 장씨에게 하사금으로 줬다. 1997년 <한겨레> 보도를 보면, 검찰은 과세 시효가 지난 탓에 장씨가 받은 하사금을 추징하지 못했다. 전씨는 비자금 가운데 23억원을 딸 효선씨에게 용돈으로 주기도 했다. 하사금만 30억원이므로 장씨가 2002년 선관위에 신고한 재산도 축소했을 가능성이 있다. 아내와 1972년생, 1974년생인 두 아들이 모두 살아 있어 이론적으론 명의신탁으로 재산을 감추는 것이 가능하다. 2002년 대선 때 알려진 전화번호로 접촉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거주하던 서초동 빌라는 헐리고 새로운 빌라가 들어섰다. 찾아가봤으나 장씨는 더 이상 거주하고 있지 않았다.

장씨는 육사 16기로 5공화국 때 대통령 경호실장과 안기부장 등을 지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5공화국을 끝까지 옹호해 ‘영원한 경호실장’ ‘의리의 돌쇠’ 등으로 불린다. 장씨는 ‘5공 비리’(1989년), ‘신민당 창당 방해’(1993년), ‘12·12 내란 사건’(1996년) 등으로 여러 차례 구속됐다. 두 번째 옥살이를 끝내고 전 전 대통령을 찾아가 “휴가 잘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한 일화가 전해진다.

 

요즘도 전두환과 행보 같이해

요즘도 전두환 전 대통령과 행보를 같이한다. 지난 6월 전 전 대통령이 육사에서 열린 ‘육사발전기금 200억원 달성’ 기념행사에 참석했을 때 장씨도 함께했다. ‘장씨가 육사발전기금을 냈느냐’는 <한겨레21>의 질의에 육사발전기금 쪽은 “2012년 9월 2만원, 10월 1만원, 11월 1만원 등 총 4만원의 발전기금을 출연했다”고 밝혔다. 검찰과 국정원은 집요하고 유능한 국가기관이다. 장씨의 구상금 미납 사건은 그 집요함과 유능함의 대상이 아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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