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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만 교원’법 1년 유예

등록 2012-11-30 06:36 수정 2020-05-02 19:27

“강사법의 시행을 1년간 유예한다.”
국회는 11월22일 고등교육법 개정안(이른바 강사법)의 시행을 1년 연기했다. 대학 시간강사의 처우를 개선하고 고용을 안정화한다는 취지로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해 12월 입법을 이끌었지만 시간강사와 대학이 모두 반대한 탓이다. 시간강사는 부족하다고, 대학은 넘친다고 말이다.

2011년 11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시간강사들이 처우를 개선하고 고용을 안정화해달라며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한겨레 류우종 기자

2011년 11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시간강사들이 처우를 개선하고 고용을 안정화해달라며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한겨레 류우종 기자

대규모 해고 우려돼

2010년 고용 불안에 시달리던 시간강사들의 죽음이 잇따르자 정부가 강사법을 내놓았다. 핵심 내용은 ‘교원 외 교원’으로 분류해온 시간강사를 ‘강사’라고 이름 붙여 교원으로 인정한다는 거였다. 1977년 박정희 정부가 비판적인 젊은 교육자들이 대학에 발붙이는 걸 막으려고 빼앗았던 교원 자격을 34년 만에 돌려줬다는 의미가 있다. 또 강사의 임용 기간을 1년 이상으로 정해 학기당 계약으로 강사가 고용 불안정을 겪는 빈도를 줄였다. 4대 보험에도 가입되며 퇴직금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지난 4월 한국비정규교수노조가 시간강사 34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보니, 91.2%가 강사법에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 ‘무늬만 교원’이기 때문이다. 강사법을 보면, 강사는 교육공무원법·사립학교법·사립학교교직원연금법 등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돼 있다. 주당 6시간 이하로 강의하면 퇴직금을 받지 못하고 건강보험에 직장가입자로 가입할 수도 없다. 전업강사 박준형씨는 지난 8월 교과부 주최로 열린 강사법 관련 토론회에서 “시간강사의 법적 권리는 여전히 울타리 밖에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둘째, 대규모 해고가 우려된다. 정부는 대학이 주당 9시간 이상 강의하는 전업강사를 3명 채용하면 전임교수 1명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전업강사를 늘리려는 유인책이지만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전임교원 확보율을 높이려고 대학이 전업강사에게 강의를 몰아주면 비전업강사들은 거리로 내쫓길 수밖에 없다. 2011년 현재 시간강사는 7만8천 명이며, 이 중 전업강사는 4만600명 정도로 추정된다.

이유는 다르지만 대학도 반대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최근 대학 141개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해보니 84%(119개)가 강사법을 유보하거나 폐지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단계적으로 도입하자는 의견은 10%(14개)였고, 2013년에 전면 도입하자는 대학은 1곳뿐이었다. 대학이 내세운 첫째 반대 이유는 대학 수업의 질이 떨어진다는 거다. 한철희 숭실대 교무팀장은 “전임강사가 2∼3개 과목을 담당해야 하는데 안정적인 교육·연구 활동을 하는 전임교원과 달리 수업의 질이 유지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대학은 “수업 질 하락” 주장하며 반대
938호 줌인2

938호 줌인2

둘째, 대학의 재정 부담이 가중된다는 이유다. 반값 등록금 압박이 거센 상황에서 강사의 강사료를 올리고 4대 보험료와 퇴직금까지 지급하면 사립대학의 재정이 흔들린단다. 시간강사 강의료는 시간당 평균 4만7100원이며 강사에게 지급할 사립대의 4대 보험료와 퇴직금은 약 1240억원으로 추정된다.

양쪽의 반대가 거세자 유기홍 민주통합당 의원이 ‘타임아웃’을 제안했다. 시간강사와 대학이 한목소리로 동의했고 ‘강사법 1년 유예안’은 11월21~22일 국회 교육과학위원회를 거쳐 본회의에서 일사천리로 통과됐다. 전쟁은 이제부터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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