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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먹튀 ‘의사 교수’의 완전한 승리?

등록 2012-11-30 06:30 수정 2020-05-02 19:27

‘누군가’ 수십 년간 국민의 세금을 빼돌렸다. 정부가 뒤늦게 발견해 돌려달라고 했다. 오랜 관행이라며 그는 반발해 소송을 냈다. 4년 만에 법원이 불법이라고 결론 냈다. 하지만 정부는 관련 법을 개정해 그의 불법행위가 합법이 되게 해줬다. 다만 과거 불법으로 빼돌린 세금의 일부는 토해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그는 이마저도 거부한다. 여기서 ‘누군가’는 성균관대 의대와 삼성서울병원 등 사립대학 7곳과 대형 병원 14곳이다.
대학, 협력병원 의사 인건비 수백억원 부담

교육과학기술부와 감사원은 사립대와 대형 병원이 불법 파견에 대해 최소한의 책임을 져야 한다며 국고보조금 환수를 요구한다. 하지만 사립대 등은 이마저도 거부한다. 서울 강남구 일원동의 삼성서울병원 전경. 한겨레 정용일 기자

교육과학기술부와 감사원은 사립대와 대형 병원이 불법 파견에 대해 최소한의 책임을 져야 한다며 국고보조금 환수를 요구한다. 하지만 사립대 등은 이마저도 거부한다. 서울 강남구 일원동의 삼성서울병원 전경. 한겨레 정용일 기자

2007년 8월 교육인적자원부(현 교육과학기술부)는 대전 을지대에 회계감사를 나갔다가 불법을 찾아냈다. 을지대가 협력병원인 을지병원 의사들에게 ‘교수’(교원)라는 지위를 맘대로 부여한다는 사실이다. 당시 고등교육법과 사립학교법 등을 보면, 교원은 학생을 교육·지도하고 학문 연구만 전담하며 영리 업무에 종사할 수 없다고 돼 있었다. 예외적으로 대학이 운영하는 부속병원에서 학생의 임상교육을 맡는 것만 가능했다. 다시 말해 부속병원이 아닌 협력병원에는 교원을 파견하는 게 불법이었다. 협력병원은 대학과 위탁 협약을 맺어 학생의 실습교육을 맡고 있지만 대학과는 별개의 의료법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협력병원 의사의 주 업무는 환자의 외래 진료라서 고등교육법이 규정한 교원이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을지대는 교원 100여 명을 임용해 을지병원에 파견했다. 이들의 근무처는 을지병원인데도 기본급·연구비 등 보수의 50%를 대학이 냈다. 2004년 3월∼2007년 8월 을지대 교비회계에서 의사 보수로 152억5천만원이 지급됐다. 물론 학생이 낸 등록금으로 충당했다. 국민의 세금도 유입됐다. 사립학교교직원연금법을 보면, 국가는 사립대학 교원에게 사학연금과 퇴직수당, 국민건강보험료의 일부를 지원하도록 돼 있다. 을지대 교원이라는 이유로 을지병원 의사들에게 국가가 3년간 지급한 금액이 4억6천만원으로 집계됐다.

을지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2011년 12월 감사원이 조사해보니 의료시장에서 ‘빅5’라 불리는 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가천의대 길병원, CHA 의과대 강남차병원, 관동대 의대 제일병원, 한림대 의대 강동성심병원 등이 ‘공범자’로 밝혀졌다. 불법적으로 교원 지위를 누린 의사는 1818명에 이르렀다. 이들에게도 2011년 6월 말까지 사학연금 196억9800만원, 퇴직수당 303억6200만원, 국민건강보험료 107억200만원 등 607억6200만원의 국가보조금이 유입됐다. 감사원은 “더구나 일부 대학에서는 협력병원 의사들의 인건비 등도 교비로 지급해 그만큼 손실을 초래했다”고 밝혔다. 대학 2곳이 2007∼2010년 4년간 인건비 등으로 협력병원 의사에게 건넨 금액은 426억원. 하지만 의사 94%는 주 5일 40시간 이상을 병원에서 일했다.

교과부와 감사원의 지적에 사립대와 대형 병원은 발끈했다. “협력병원을 돈과 연결짓는 편협한 사고방식이다. 열악한 보험재정에도 의료계가 높은 진료 수준을 유지하며 경쟁력을 갖춘 것은 사립대와 협력병원의 영향이다. 무분별하게 교수를 채용하는 영리집단으로 보는 게 불쾌하다.” 한 대형 병원 ‘교수’의 항변이다.

불법을 합법화하는 놀라운 선택지

처음으로 교과부 감사를 받은 을지대는 행정소송을 냈다. 하지만 서울행정법원은 2008년 11월 교과부의 손을 들어줬다. “협력병원 소속 의사들이 의대 학생들에 대한 임상교육의 일부를 담당했다고 하더라도 주된 업무는 병원의 외래환자 진료였다. 따라서 이들이 교육·지도와 학문 연구를 전담하는 교원의 실질 지위를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 협력병원에서 보수를 받은 행위도 사립학교법이 금지한 영리행위다.” 고등법원과 대법원도 2009년 10월과 2011년 10월 잇따라 같은 판단을 내렸다.

불법행위를 바로잡을 해결책은 두 가지였다. 첫째, 협력병원을 부속병원으로 전환하는 방법이다. 그러면 파견된 의사들은 자연스레 부속병원 소속이 된다. 실제로 교과부의 감사 처분을 받았던 순천향대병원은 2008년 대형 병원으로 있던 천안순천향병원과 구미순천향병원을 부속병원으로 전환했다. 걸림돌은 대학의 재정 부담이 크다는 점이다. 협력병원에서 부속병원으로 바뀌면 대학이 운영 주체로 나서야 하는 까닭이다. 당시 순천향대는 협력병원에서 일하던 교원 190명을 퇴직 처리했다가 재고용하느라 퇴직금으로 수백억원을 지급해야 했다.

둘째는 사립대가 협력병원 의사들을 전임교원이 아니라 겸임교원으로 채용하는 방법이다. 겸임교원이란 협력병원이 채용한 의사를 대학이 요청해 의학 교육을 맡기는 것이다. 법적 지위는 시간강사와 비슷하다. 이 방법도 역시 돈이 문제다. 예를 들어 전임교원은 특진의가 되지만 겸임교원은 안 된다. 특진의 자격요건이 대학병원 조교수 이상이기 때문이다. 특진의는 일반의보다 진료 비용이 20~100% 비싸다. 비급여 항목인 선택진료비를 받을 수 있어서다. 2011년 국립대학병원 진료비 수입(2조6500억원)을 분석해보면, 선택진료비는 7%가량인 1851억원이나 된다. 겸임교원이 되면 포기할 수밖에 없는 수입이다. 사학연금 등 국고보조금 혜택도 사라진다.

사립대와 대형 병원이 선택한 길은 무엇일까? 놀랍게도 불법을 합법화할 수 있는 새로운 선택지가 탄생했다. 교과부는 2010년 8월 사립 의대 교원이 협력병원에서 겸직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사립 의대 교원은 부속병원이 아닌 병원에 겸직 근무를 할 수 있는 근거가 없어 부속병원시설이 없거나 부족한 의과대학의 경우 근무지정·파견의사 등의 편법적인 방법으로 학생에 대한 임상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협력병원 겸직을 허용하고 그 기준과 절차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한다.”

“세계적 흐름” 삼성서울병원 주장과 일치

교과부의 태도가 돌변하자 비판이 쏟아졌다. 2011년 12월 감사원의 지적이다. “교과부는 사립대와의 소송에서 이기고도 법률을 개정하기로 했다. 법률이 개정되면 국가에서 협력병원 근무 의사의 사학연금 등을 부담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 그런데도 어떤 기준으로 어느 정도까지 교원으로 임용할 것인지 세부 기준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의 성명은 더욱 거침없다. “대법원 확정판결에도 상충될 뿐 아니라 대형 병원에 면죄부를 주는 일이다. 돈벌이에 혈안이 돼 있는 협력병원이 교육병원으로 역할을 수행을 하려면 부속병원으로 전환해야 한다.”

교과부는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사립대와 대형 병원의 위법을 봐주려고 내놓은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세계적 흐름과 국공립 의대와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한 결정이라고 했다. 지난 4월 협력병원 공청회에서 삼성서울병원이 내놓은 주장과 일치한다. “미국 하버드대 의대는 17개 대형 병원을 두고 있다. 학생 수는 1563명이지만 교원 수는 1만 명이 넘는다. 교육 대상도 의대생뿐만 아니라 대학원생, 인턴, 전공의, 동료 의사까지 다양하다. 국내에서만 대형 병원에 대해 부정적인 정서가 있는 것 같다.” 또 국공립 의대 교원은 서울대병원 설치법 등에 따라 학생의 임상교육 등을 위해 대학병원 의사를 겸직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논란 속에서도 국회는 지난해 12월30일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재석 의원 207명 가운데 찬성이 205명, 기권이 2명이었다. 시행일은 2012년 7월로 정해졌다.

지난 5월 교과부는 대형 병원 교원 겸직 허가 기준을 구체적으로 발표했다. 상한선은 임상교육이 필요한 학생 수에 따라 달라지도록 했다. 우선 의대 본과 4년, 의전원 4년, 일반대학원·특수대학원 (전체 교육 기간 중) 4분의 3을 임상교육이 필요한 기간으로 잡았다. 의대생은 학생 8명당 교수 1명, 의전원생은 학생 8명당 교수 2명, 일반대학원은 학생 6명당 교수 1.5명을 대형 병원 겸직교원으로 채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성균관대 등 7개 대학은 최대 2940명까지 대형 병원 겸직교원을 채용할 수 있다. 2011년 6월 현재(1818명)보다 더 많은 교원을 확보할 길이 열렸다. 그뿐 아니다. 보수도 사립대가 지급하도록 명시했다. 수당만 대형 병원이 낸다. 겸임교원 덕분에 많은 수익을 올렸더라도 대형 병원이 사립대와 나눌 의무도 없다. 권한만 있고 책임은 없는 셈이다.

탐욕은 끝이 없었다. 사립대와 대형 병원은 교과부의 최소한의 요구, 곧 과거 국가가 부담한 사학연금, 퇴직수당, 건강보험료를 돌려달라는 것조차 거부하고 있다. 국고보조금 환수 정책은, 개정된 사립학교법이 7월부터 시행됐지만 종전의 편법에 대해선 책임을 묻겠다는 교과부의 의지다. 감사원이 거듭 지적한 사항이기도 하다. 불법행위는 20년간 지속됐지만 사학연금법 등의 소멸시효가 3년이라 7개 사립대가 부담할 금액은 607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들은 이의신청서를 제출하며 반발한다.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한 교과부도 책임을 나눠져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반격 카드로 ‘소급효’를 제시했다. 대형 병원에 이미 파견된 사립대 교원은 겸직교원으로 허가받은 것으로 간주한다는 부칙 조항을 추가하자는 주장이다. 병원협회가 교과부에 낸 의견서는 이렇다. “소급효 규정을 두지 않는다면 법 개정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 법 개정 이전의 사안은 일괄적으로 협력병원 겸직을 인정하고 법 개정 이후에는 교과부의 기준을 따르는 게 마땅하다.”

교과부는 강경하다. 교과부 대학선진화과 관계자의 말이다. “감사원이 과거 협력병원의 전임교원은 임용 계약을 해지하라고 권고했지만 교과부는 겸임교원으로 전환하도록 허용했다. 교육 현장에서 혼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한 것이다. 하지만 국가부담금만큼은 반드시 받아낼 계획이다. 사립대에 연말까지 환수하라고 통보했다.” 이에 따르지 않으면 교과부 내 행정제재위를 통해 행정제재를 가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예컨대 입학 정원을 동결하거나 전체 정원의 5∼10%를 감축하는 방안이다.

20년간 지속됐지만 3년치만 부담하면 되는데…

사립대와 대형 병원도 마지막 카드를 만지작거린다. 소급효 부칙 조항을 넣은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발의해줄 국회의원을 구하는 일이다. 한 정당 관계자는 “사립대와 병원 쪽이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를 중심으로 여야 할 것 없이 만나고 있다”며 “대형 로펌이 만들어준 법률이라 의원이 동의하면 언제라도 제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결국 사립대와 대형 병원이 완승하는 것인가?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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