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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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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통합되지 못한 통합진보당

전략 지역구 후보 경선에 당 지도부 중재안 거부 당해…당원 숫자 우세한 민주노동당 출신의 패권주의라는 비판에 당비 대납 의혹도 일어
등록 2012-02-09 10:22 수정 2020-05-03 04:26

‘아사리판’이다. 4월 총선 후보를 결정하는 당내 경선을 앞두고 내홍이 벌어진 통합진보당 말이다. 옛 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과 통합연대(진보신당 탈당파)라는, 각각 색이 다르고 ‘오랜 원한’도 있는 세 집단이 모인 당이기에 처음부터 ‘화학적 결합’이 순조롭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그렇다.
공동대표 가운데 한 사람인 유시민 대표는 지난 1월26일 밤부터 2월2일까지 당 회의에 불참하는 등 일주일 넘게 당무를 거부했다. “통합과 총선 승리를 저해하는 여러 일들이 당 안팎에서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예방하거나 바로잡을 수단이 없는 현실 앞에서 너무나 심각한 무력감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것이 유 대표의 설명이다. 행동에 나선 건 유 대표뿐이지만, 이런 상황 인식은 이정희·심상정 대표도 다르지 않다.

거부의 논리, 진성당원제
유 대표는 ‘수틀리면 판 엎는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이번 당무 거부 사태를 두고도 “당 대표로서 무책임한 태도”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유 대표도 이를 모르거나 예상 못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그는 2월1일 당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우리 당은 무정부 상태에 있다. 지도부가 권한으로 상황을 통제하지도 못하며 자발적 협력을 토대로 당을 운영하지도 못하는 상태”라고 리더십 자체를 발휘할 수 없는 구조를 지적했다. 대체 무엇이 유 대표를 또 한 번 입방아에 오르게 한 것일까?
두드러지는 앞뒤 사정은 이렇다. 통합진보당의 경선 규칙은 당원 투표와 일반 여론조사 결과를 50%씩 합산하되, 일부 전략지역에선 공동대표단이 후보 또는 경선 방식 조정안을 내고, 각 후보들은 이를 존중한다는 것이다. 지역구 180여 곳에 후보를 낼 예정인 통합진보당에서 2명 이상의 예비후보가 맞붙어 경선을 치르는 곳은 30여 곳이다. 공동대표단은 이 가운데 옛 민주노동당 출신 당원이 국민참여당이나 통합연대 출신 당원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곳 등 10여 곳에 조정안을 제시했다. 당원 투표 반영 비중을 각 지역 상황에 맞게 줄이는 안이었다. 이는 특정 계파 출신 당원이 지나치게 많으면 일반적인 유권자의 뜻과 거리가 먼 후보가 선출될 수 있고, 이후 야권 연대나 총선에서도 통합진보당에 불리한 결과를 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서울 성북갑·을, 구로갑, 울산동 지역의 민주노동당 출신 예비후보들이 이 중재안을 거부해 사달이 났다. 아무리 당 대표단이라도 ‘진성당원제’(당원이 당비 납부 의무와 함께 선거 출마자를 직접 선출할 권리를 갖는 제도) 원칙을 침해할 수 없다는 것이 거부의 기본적인 논리였다. 진성당원제는 통합진보당의 세 계파가 모두 합치기 전부터 당의 핵심적 운영 원리로 채택한 것이지만, 민주노동당 출신 당원이 다수인 지금은 후보를 선출하는 데 이들에게 유리하게 작동할 수밖에 없다. 이를 고려해 대표단이 중재안을 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만약 이들이 끝까지 대표단의 권고를 수용하지 않으면 당원투표로만 후보를 정해야 하므로 이들은 경선에선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일러스트 조승연

일러스트 조승연

일방적인 경선 연기, 선거 재공고

경선을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관리할 책임이 있는 백현종 통합진보당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의 독선도 문제를 일으켰다. 유시민 대표가 2월1일 당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어처구니없는 혼돈을 일으켰던 1월30일 밤의 사건”이라고 언급한 일이 대표적이다. 1월30일은 경기 구리와 하남 지역구 총선 후보 경선을 시작하기로 한 날이었다. 그런데 이날 새벽 당 중앙선관위는 당원투표의 ‘무효표’와 여론조사의 ‘모르겠다’를 합산하는 것이 당규와 충돌한다며 ‘기권’란이 있는 투표용지를 제작해야 한다는 이유로 경선을 일주일 연기해버렸다. 큰 혼란과 반발이 빚어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두 지역은 일반인도 투표에 참여하는 국민참여경선을 치르기로 한 곳이다. 그런데 당원 수에선 민주노동당 출신 예비후보가 앞서지만, 일반인 선거인단에선 통합연대 출신 예비후보가 더 유리할 것이라 예상됐다. 이 때문에 민주노동당 출신인 백현종 위원장이 ‘꼼수’를 부린 것이라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울산 남갑 지역에선 당 중앙선관위의 일방적인 ‘선거 재공고’가 벌어졌다. 이 지역은 통합연대 출신인 조승수 의원과 민주노동당 출신인 이경훈 예비후보가 맞붙는 곳이다. 이 지역에서 투표권을 가진 기존 당원은 258명이었는데, 경선이 결정된 지 2주 만에 543명이 추가로 입당했다. 조승수 의원 쪽의 문제제기로 이들 가운데 60%에 이르는 310명이 당비 대납 등 부정 입당을 했거나 서류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아 투표권을 갖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조 의원 쪽은 나머지 추가 입당자 가운데서도 투표권이 없는 이가 다수일 뿐 아니라, 이 일 자체를 이경훈 예비후보 쪽이 경선에 이기려고 벌인 것이라고 의심한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선관위의 선거 재공고는 ‘기획입당자’들이 투표권을 인정받도록 할 시간을 벌려는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런 여러 논란 때문에 결국 통합진보당은 2월3일 중앙운영위원회를 열어 백현종 당 중앙선관위원장을 김승교 위원장(민주노동당 출신)으로 교체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남아 있다. 유 대표는 ‘1월30일 밤의 사건’과 관련해 “벌써 일주일 전부터 그와 유사한 혼란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징후를 알고 미리 막아보려고 애썼지만, 이런 우려를 전달조차 할 수 없었다. 대표단의 어떤 결정도 누군가 당원의 권리, 예비후보의 권리, 또는 자기가 가진 당헌·당규상의 권한을 침해한다고 느끼는 경우에는 제대로 집행되지 않는다”고 썼다. 이와 관련해 통합진보당의 한 인사는 “(민주노동당 출신인) 장원섭 사무총장이 사실 가장 큰 문제다. 대표단의 지시 사항이 아래로 안 내려가고, 아래의 보고 사항이 대표단에 올라가지 않는다. 장 사무총장이 자기 입맛에 맞는 것만 아래위로 전달하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인사도 “대표단이 합의해 장 사무총장에게 지시한 사항조차 집행이 안 된다. 이정희 대표야 이전부터 함께 일해온 사람이 많으니 덜하겠지만, 그런 기반이 없는 유 대표는 아무것도 보고받을 수 없고, 아무것도 전달할 수 없으니 (창당한 뒤) 두 달 동안 얼마나 답답했겠느냐”고 했다.

민노당 분당 갈등과 유사

이런 상황 탓에 유 대표의 ‘파업’은 국민참여당 출신과 민주노동당 출신의 ‘계파 갈등’이 아니라, 다수파인 옛 민주노동당 당권파의 패권주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실 진성당원제를 빌미로 일반 국민의 여론을 등한시한다든가, 당비 대납을 통한 집단 입당으로 당내 선거에서 이기려 한다든가, 또는 핵심 당직자가 특정 정파에 편파적인 태도를 보인다든가 하는 문제는 옛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거듭된 것이다. 잊을 만하면 불거지곤 했던 다수파의 횡포는 패권주의 논란을 낳았고, 결국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갈라서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 됐다. 이런 문제가 순식간에 해결될 리 없는데도 올해 총선·대선을 앞두고 있다는 이유로 급하게 통합한 결과가 유 대표의 당무 거부로 나타났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럴 줄 모르고 시작했느냐”는 자조 또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통합진보당 관계자는 “당권파는 이 문제들이 왜 문제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패권주의는) 예상됐던 일이지만, 총선은 넘길 줄 알았는데 너무 빨리 불거진 것 같다”고 했다. 통합진보당은 아직 통합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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