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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을 과잉 경호할 이유가 있나

전두환 전 대통령 경호 위해 허가된 경호동뿐 아니라 인근 땅 전체를 사용한 것으로 드러나… 추징금도 안 내는 독재자는 연간 8억5천만원 ‘종신 경호’ 받으며 화려한 말년 즐겨
등록 2012-02-08 07:39 수정 2020-05-02 19:26
지난 1월31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위치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집으로 가는 골목 입구에서 경찰이 폴리스라인을 치고 통행을 제한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지난 1월31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위치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집으로 가는 골목 입구에서 경찰이 폴리스라인을 치고 통행을 제한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5월도 아닌데 ‘전두환’이라는 이름이 자주 오르내린다. 지난 1월17일 신군부의 12·12 쿠데타에 맞서다 강제 예편당한 고 장태완 수도경비사령부 사령관의 부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장 사령관이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에게 반기를 들면서 비극의 가족사가 시작됐다. 장 사령관의 아버지는 스스로 곡기를 끊어 숨졌고, 2년 뒤 아들이 행방불명돼 숨진 채 발견됐다. 장 사령관은 2010년 폐암으로 사망했다.

1월25일에는 문화방송 이상호 기자가 전두환(81) 전 대통령 사저 근처에서 취재를 하다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체포됐다. 1월29일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전 전 대통령의 사저 경호용으로 경찰이 무상으로 쓰고 있는 서울시 건물에 대해 무상사용권 회수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일반인 접근 막으려 인근땅 사들여

만화가 강풀의 을 영화로 만든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 만화는 광주 민주화운동 때 희생된 시민군의 자식들이 26년이 흐른 뒤 모여서 철통 경호를 받으며 살고 있는 ‘최고책임자’의 암살을 모의한다는 내용이다. 이명박 정권 출범 첫해인 2008년 캐스팅까지 마무리된 상황에서 투자 문제로 제작이 무산돼 정치적 외압 논란이 불거졌다. 최근 제작사 청어람이 재추진에 나섰다. 만화는 ‘최고책임자’가 누구인지 명시하진 않았지만, 누구인지 다 알 수 있다. 만화 속 최고책임자나 전 전 대통령이나 철통 경호를 받고 있다.

문제의 경호동(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95-7번지)은 서울시가 2009년 작가들의 집필 공간으로 꾸민 연희문화창작촌 안에 있다. 전 전 대통령의 사저(연희동 95-4번지) 바로 옆이다. 높이 2m의 울타리로 창작촌과 격리돼 있다. 2009년 5월1일부터 올해 4월30일까지 경찰에 무상 사용이 허가됐다.

그러나 이는 서류상의 얘기일 뿐이다. 취재 결과, 이 경호동뿐 아니라 창작촌 땅 전체가 전두환 대통령 재임 시절부터 경호 목적으로 활용돼온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시 자료와 등기부등본 등을 보면, 창작촌 땅(연희동 203-1번지, 203-140번지)은 1986년 3월 서울시가 매입했다. 당시 김용래 서울시장은 전 전 대통령이 퇴임한 이후인 1988년 7월 이 사실을 공개하며, “연희동 일대 땅 3784평을 불가피하게 취득했다. 당시 대통령(전두환)의 사저 주변이기 때문에 신변안전 문제가 고려됐다”고 말했다. 퇴임 전에 사저 주변의 땅을 서울시 예산으로 매입해 경호 목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경호동 부지(327㎡)와 건물(285㎡)은 1987년 8월 총무처가 사들였고, 1989년 소유권이 서울시로 넘어갔다. 소유권 이전 경위는 명확하지 않다.

당시 창작촌 터에는 서울시 시사편찬위원회 등이 들어섰다. 일반인의 접근을 최소화하려는 방안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호동 건물은 매입 직후부터 청와대 경호처나 경찰청이 경호 목적으로 사용해왔다. 2003년 시사편찬위원회가 이전한 뒤 서울시는 시 소유 부지 전체를 매각하려 했다고 한다. 그러자 경찰청은 “(경호동으로 쓰고 있는) 95-7번지는 매각에서 제외해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매각은 좀처럼 이뤄지지 않았고, 이 터는 6년 가까이 방치됐다. 결국 서울시는 2008년 이곳을 연희문화창작촌으로 리모델링하기로 결정했고, 이 과정에서 이미 경찰이 경호동으로 써온 서울시 소유 건물에 대해 3년 시한의 무상임대 계약서를 쓴 것이다.

전직 대통령 중 경호비용·인력 최다

서울시는 정부가 경호동 부지와 건물을 매입하거나, 사용 비용을 내도록 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이 터의 공시지가는 6억7천만원, 건물가는 1714만원이고, 시세는 최고 14억원에 이른다. 지대가 높아 사저 경호에 필수적이라고 한다. 전 전 대통령 사저 경호 건물은 이곳 말고도 두 채 더 있는데, 모두 경찰청 소유다. 박원순 시장은 2월1일 인터뷰에서 “경호 필요성이 있다고 해도 경찰이 또 다른 방식으로 할 수 있지 않겠나. (무상 사용 기간이) 4월 말까지로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으니, 협의해서 (사용 허가 연장을) 안 하는 쪽으로 하면 미리 대안을 만들게 해드려야 하니까 빨리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시민 여론이나 시유 재산을 어떻게 쓰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를 종합해 결론을 내리겠다”고 말했다. 어떤 결론이 나든, 세금은 들어간다.

경찰이 경호를 맡고 있는 전직 대통령 3명(전두환·노태우·김영삼) 가운데 가장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사람이 전 전 대통령이다.

김재균 민주통합당 의원이 1월31일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전 전 대통령 경호·경비에 79명이 항시 투입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77명, 김 전 대통령은 60명이다. 구체적으로는 수행경호원이 10명으로, 노·김 전 대통령(9명)보다 1명 많다. 사저경비 초소도 6곳으로 다른 두 사람(5곳)보다 많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전·노 전 대통령 사저는 5기동단 57중대(63명)가, 김 전 대통령 사저는 38중대(46명)가 항시 대기하며 지키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의 경호 비용은 2006~2010년 5년 동안 연평균 액수가 8억5193만원에 달했다. 노 전 대통령은 7억1710억원이었다. 2011년의 경우 전 전 대통령 6억6773만원, 노 전 대통령 6억3494만원, 김 전 대통령 5억2187만원이었다.

문제는 이런 경호가 사실상 ‘종신 경호’라는 점이다. 법적 근거는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이다. 전 전 대통령은 1997년 4월17일 대법원에서 “반란 수괴, 반란 모의 참여, 반란 중요 임무 종사, 불법 진퇴, 지휘관 계엄지역 수소 이탈, 상관 살해, 상관 살해 미수, 초병 살해, 내란 수괴, 내란 모의 참여, 내란 중요 임무 종사, 내란 목적 살인, 뇌물” 범죄를 저질러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원이 선고됐으나, 1998년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요청으로 사면·복권됐다. 연금 등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받을 수 없지만, 경호·경비는 계속 유지됐다. 1995년 법 개정 때 ‘필요한 기간의 경호·경비’는 받을 수 있도록 예외 규정을 둔 탓이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송호창 변호사는 “필요한 기간의 경호·경비는 일상적, 무한정 하는 게 아니라, 예외적·제한적으로 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필요한 기간’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엄정한 법률적 판단도 없이 연 수억원에 달하는 과도한 경비를 지급하면서 법을 집행한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불합리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찰은 경찰관 직무직행법 2조 ‘요인 경호’ 조항도 전 전 대통령 경호의 근거로 들고 있다. 그러나 ‘요인’의 범위도 모호하다. 기간과 범위의 기준이 불명확한 상황에서 실제로는 임의대로 경호가 시행되고 있는 셈이다.

“추징금 납부에 16만 년 걸려”

‘예우’와 ‘요인 경호’를 이유로 경찰이 지켜주면서, 전 전 대통령 사저 주변은 일반인이 드나들기 어려운 곳이 된 지 오래다. 경찰은 1월31일 이상호 기자의 추가 취재가 예고되자 ‘수사 중. 출입 금지’라고 쓰인 노란색 폴리스라인까지 쳤다. 경찰청이 지난해 전직 대통령 사저 인근에서 해당 인물을 대상으로 실시한 시위 내역을 조사한 결과, 전 전 대통령은 1회, 노 전 대통령은 0회, 김 전 대통령은 8회로 나타났다. 전 전 대통령 사저 근처 시위는 대한민국

지난 1월1일 전두환 전 대통령과 부인 이순자씨가 전 전 대통령 모교인 대구공고 총동문회 회원들로부터 새해 인사를 받고 있다. 대구공고 총동문회 누리집 갈무리

지난 1월1일 전두환 전 대통령과 부인 이순자씨가 전 전 대통령 모교인 대구공고 총동문회 회원들로부터 새해 인사를 받고 있다. 대구공고 총동문회 누리집 갈무리

어버이연합 등이 “12·12와 5·18에 대해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하며 벌인 ‘우익 시위’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인공기를 불태우거나 사저 진입을 시도하는 등 물리적 시위가 여러 차례 벌어진 것과 견주면, 전 전 대통령 집 앞은 정말 조용하다.

법적 문제를 떠나, 전 전 대통령의 경호에 대해 많은 이들이 공분하는 데는 추징금에 대한 그의 뻔뻔한 태도와도 연관이 있다. 그는 “현금 재산은 예금 통장에 든 29만1천원이 전부”(2003년 4월 재산명시 재판에서)라며 안 내는 게 아니라 못 내는 거라는 태도를 보여왔지만, 수천억원대로 추정되는 ‘전두환 비자금’이 가족이나 지인 등 명의로 빼돌려졌다는 의혹은 여전하다.

전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은 1673억원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노 전 대통령은 추징금(2628억원)의 91.2%에 해당하는 2397억원을 납부했는데, 전 전 대통령은 2205억원 가운데 24.1%에 불과한 532억원만 냈다. 그가 기르던 진돗개까지 경매하는 등 강제로 징수한 게 대부분이었다. 전 전 대통령은 2010년 10월 강연비로 돈이 생겼다며 300만원의 ‘거액’을 자진 납부했다. 그러나 추징금 강제 회수를 피하려 자진 납부로 추징 시효를 연장하는 꼼수를 부렸다는 비판을 샀고, 그나마 ‘자금 출처’도 그의 모교인 대구공고 총동문회 사은의 밤 행사 때 받은 돈으로 드러났다. 김재균 의원은 “전 전 대통령이 이런 식으로 추징금을 납부하면 16만 년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며 “이런 분에게 수십억원에 달하는 초호화 경호비용을 혈세로 쏟아붓고 있다면 누가 납득하겠느냐”고 말했다.

전 전 대통령은 추징금 외에 지방세 3832만원도 체납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재산 경매 때 발생한 지방소득세 3017만원을 내지 않아 가산금이 계속 붙고 있다”고 말했다. 박원순 시장은 체납 세금에 대한 징수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말년이 행복한 독재자는 드문데, 전 전 대통령은 다른 것 같다. 추징금이나 세금을 낼 돈도 없는데, 화려한 생활을 즐기고 있다.

정치원로 대접 받으며 존재감 과시

전 전 대통령의 집(연희동 95-4번지)은 서울에 있는 전직 대통령 집 가운데 가장 크다. 대지 818.9㎡(248평)에 240.84㎡(73평) 규모의 단층주택이다. 노 전 대통령 집은 대지 436.4㎡(132평), 김영삼 전 대통령은 376.9㎡(114평), 김대중 전 대통령은 588.4㎡(178평)다. 압류되지 않은 건 소유자가 부인 이순자(73)씨로 돼 있기 때문이다. 등기부등본에는 소유자 이씨의 주소지가 서울 종로구 세종로1번지(청와대)로 나와 있다. 퇴임 직전 집을 대대적으로 개·보수하며 소유권보존 등기를 했는데, 당시 살고 있던 청와대 주소가 그대로 남아 있다. 전 전 대통령 소유여서 경매에 넘어갔던 별채(연희동 95-5번지)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처남 이창석씨가 낙찰받았기 때문이다. 2003년 경매 당시 이씨는 감정가(7억6449억원)보다 2배 이상 비싼 16억4800만원을 써냈다. 당시 이씨의 대리인은 “(전 전 대통령 부부가) 원래 살던 곳이니 계속 살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정치 원로’로 대접받고 있다. 사저 골목의 일반인 통제는 삼엄하지만, 보수 정치인들과 그의 지지자들은 분주히 그의 집 문턱을 드나들고 있다. 지난 1월1일 그의 모교인 대구공고 총동문회 회원 90여 명이 새해 인사를 했다. 한나라당에선 당 대표가 새로 뽑힐 때마다 지도부들이 줄지어 ‘예방’한다. 김형오·박희태 등 한나라당 출신 국회의장들도 신임 인사, 새해 인사 때 빼놓지 않고 들렀다. 정운찬·김황식 국무총리도 국정 운영에 대한 조언을 구한다며 연희동을 찾았다. 현직 대통령들도 그를 청와대에 초청하거나(김대중), 생일 축하 난을 보내는 등(노무현·이명박) 그를 예우했다.

전 전 대통령은 서해교전 희생자 합동 영결식(2002) 등 조문을 다니며 존재감을 과시하기도 한다. 자신이 탄압했거나 군부독재에 저항했던 인물들의 빈소도 찾는다. 자신과 닮았다는 이유로 핍박받은 코미디언 이주일씨의 빈소를 방문(2002년)해 화제가 되기도 했고, 고 최규하 대통령(2006년)과 김수환 추기경(2009년) 빈소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때는 전립선 수술을 이유로 조문하지 않았으나, 김대중 대통령은 서거 전 병문안을 했다.

대구에서 즐기는 화려한 휴가

그는 해마다 10월이면 대구에 내려가 ‘화려한 휴가’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공고 동문들이 2005년부터 열고 있는 ‘대한민국 제12대 대통령 전두환 각하배 골프대회’에 참가하는 등 10년 넘게 비슷한 일정으로 대구에 며칠씩 머무른다고 한다. 전 전 대통령이 팔순을 맞았던 지난해에는 대구공고 총동문회 체육대회에서 ‘전두환 대통령 각하 내외분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라는 펼침막을 들고 입장한 동문 후배들로부터 단체로 큰절을 받는 장면이 공개됐다. 2011년 8월에는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개막식에서 20석밖에 안 되는 로열석에 앉는 호사도 누렸다.

전 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새해 인사를 하러 와 건강 비결을 묻자 “밥을 잘 먹고 아침에 5시30분부터 아내와 같이 운동을 한다. 우리는 출근도 하지 않으니까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운동을 한다”고 말했다. 화려하고 행복해 보이는 일상이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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