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김근태의 또다른 싸움

군사독재에 맞서다 고문에 몸 망가진 ‘양심수’ 출신 원칙주의자, 파킨슨 병과 싸우다 뇌정맥혈전증까지 찾아와… 딸 결혼식 앞두고 투병 공개
등록 2011-12-15 05:48 수정 2020-05-02 19:26

그해 딸이 3살이었다.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사진)은 1985년의 어느 기간 딸을 보지 못했다. 당시 그는 전두환 군사정권과 투쟁하던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초대 의장이었다. 38살의 청년 운동가는 1985년 9월4일 경찰에 끌려갔다. 영장 제시도, 영장실질심사도 없던 시절이었다. 23일 동안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에 불법 감금돼 10차례의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받았다. 경찰 고문기술자가 “네 장례식이다”라고 말했고, 전기고문을 할 때 온몸을 벗긴 채 머리와 가슴, 사타구니에 전기가 잘 통하게 물을 뿌렸다. 딸이 5살이 되던 1987년 6월 민주주의가 회복되었다. 김근태 상임고문은 보건복지부 장관(2004년)이 되었고, 여당의 당의장(2006년) 자리에도 올랐다. 그러나 다친 몸은 쉬 낫지 않았다. 말과 거동이 어눌해지는 파킨슨병을 앓았다.

줄곧 원칙주의 고수해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은 2008년 총선에서 초선의 한나라당 신지호 의원에게 패했다. 김 고문은 최근까지도 2012년 총선에 나갈 뜻을 품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이정우 기자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은 2008년 총선에서 초선의 한나라당 신지호 의원에게 패했다. 김 고문은 최근까지도 2012년 총선에 나갈 뜻을 품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이정우 기자

김근태 상임고문이 지난 11월29일 뇌정맥혈전증으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치료 중이라고 한반도재단이 12월8일 밝혔다. 김 고문이 이사장으로 있는 한반도재단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어 “김 고문은 수년간 파킨슨병 진단을 받아 투병해왔다”며 “담당 의료진은 김 고문이 현재 빠르게 회복 중이며 예후가 좋다는 소견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한반도재단의 설명을 종합하면, 김 고문은 11월25일 자기공명영상촬영(MRI)을 했다. 뇌정맥에서 혈전이 발견됐다. ‘혈전’이란 혈관 속에서 피가 굳어서 만들어진 덩어리다. 혈전용해제로 덩어리를 녹여 없애는 치료가 필요했다. 11월29일 입원해 치료를 받던 김 고문의 몸은 약물치료를 견디지 못하고 2~3시간 동안 의식과 멀어졌다. 그러나 이날 오후 다시 의식을 회복했으며 몸 상태가 호전될 것이라고 재단 쪽은 설명했다.

지금은 목사가 된 당시 고문기술자 이근안 경감은 김근태 상임고문의 몸은 망가뜨렸지만 정신은 건드리지 못했다. 김근태 고문은 줄곧 원칙주의자의 길을 걸어왔다. 유력한 정치인이던 2002년 개혁과 보수 양 진영에 모두 퍼진 불법 선거자금 관행을 고백해 유죄판결(선고유예)을 받았다. 2004년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을 막으려고 투쟁했다. 참여정부 말기엔 노 전 대통령에게 부동산 정책,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에 관해 쓴소리를 했다.

올해 64살이 된 고참 민주주의자는 최근까지 세상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2008년 총선 때 자신을 버리고 뉴라이트인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을 택한 서울 도봉갑 유권자의 민심을 돌리려 발로 뛰었다. “2008년의 촛불국민들은 2009년엔 조문 행렬을 이었고 지금은 희망버스를 타야 한다. …운 좋게 내년 2012년에 두 번의 기회가 있다. 최선을 다해 참여하자. 오로지 참여하는 사람들만이 권력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권력이 세상의 방향을 정할 것이다.” 10월18일 게시된 이 글을 마지막으로 그는 책상에 앉지 못하고 있다.

시간은 힘이 세다. 고문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정형근 전 한나라당 의원은 최근 뉴라이트전국연합 의장이 되었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이름을 딴 ‘각하배 골프대회’는 올해도 대구에서 열렸다.

딸 병민씨 결혼식의 빈자리

그리고 김근태 고문의 딸은 서른이 되었다. 딸은 12월10일 아버지의 자리를 비운 채 결혼식을 올렸다. 딸은 아버지가 다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날까지 신혼여행을 미뤘다. 인간 김근태의 쾌유와 정치인 김근태의 재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으리라고, 딸 병민씨는 생각하고 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