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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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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병과 옛 관군, 힘 합칠 것”

이정희·심상정·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단 인터뷰… “총선, 선거연대로 정당득표 15%와 교섭단체 20석 넘어설 것”
등록 2011-12-15 02:04 수정 2020-05-02 19:26
지난 12월9일 국회 본관 통합진보당 대표실에서 유시민·이정희·심상정(왼쪽부터) 공동대표를 만났다. 이들은 내년 총선에서 원내교섭단체(20석) 구성을 넘어서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통합진보당은 이 목표를 이뤄낼 수 있을까.

지난 12월9일 국회 본관 통합진보당 대표실에서 유시민·이정희·심상정(왼쪽부터) 공동대표를 만났다. 이들은 내년 총선에서 원내교섭단체(20석) 구성을 넘어서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통합진보당은 이 목표를 이뤄낼 수 있을까.

통합진보당 이정희·유시민·심상정 공동대표와 만난 12월9일, 서울 여의도에는 전운이 감돌았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쇄신과 통합, 원내 전략 등을 둘러싼 거센 내홍에 휩쓸린 까닭이다. 공교롭게도 이날 쇄신 압박을 견디지 못한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와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각각 사퇴 뜻을 밝혔다. 이날 통합진보당 첫 대표단 회의는 문밖에까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유시민 대표는 “다른 정당들은 모두 난리 아니냐”고 말했다.

유 대표는 그러면서 통합진보당의 출범을 ‘과거 관군(官軍)과 의병의 의기투합’이라고 규정했다. 아직은 서로 어색하기도 하다. 유 대표는 “십수 년 동안 의병만 해온 분들과, 과거 관군이었기 때문에 밀려났어도 의식은 여전히 관군인 사람들, 그것이 가장 큰 문화적 차이”라고 말했다. ‘폐족’의 위기를 가까스로 넘긴 이들은 이미 누더기가 되어버린 관복 대신 의병의 백의(白衣)를 주워들었다. ‘진보정치의 의병들’은 황량한 들판에서 벗어나려 했다. 서로 원군이 필요했다.

8개월여 동안 지난한 논의가 이어졌고, 몇 차례 좌절도 겪었다. 끝내 함께하지 못한 사람들을 보내야 했다. 그렇게 출범한 통합진보당이다. 이정희 대표는 “이제 ‘관’을 더 민주적인 것, 국민과 가까운 것으로 변화시키려 한다”고 했다. 심상정 대표는 “통합진보당의 출현은 진보정치의 새로운 실험이고, 대안 수권세력으로 가려는 성찰 속에서 나온 선택”이라고 했다.

이정희, “볼 수 없던 지지율 나오기 시작”

통합진보당은 원내교섭단체(20석)를 총선 목표로 제시했는데, 구체적으로 밝혀달라.

유시민(이하 유) 목표는 어지간한 풍파에도 무너지지 않는 안정적인 원내교섭단체다. 17대 국회 때 조승수 민주노동당 의원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당선이 무효됐다. 돌발변수나 공격에 무너지지 않아야 한다. 의석수는 다다익선이다. 비례대표 목표는 두 자리다.

심상정(이하 심) 정당득표 15%, 원내교섭단체 구성이 최소 목표다.

각 대표의 총선 전망도 관심사다. 이 대표가 출마하려는 서울 관악을 지역은 민주당 현역이 있다. 유 대표는 지역구로 나서나.

17대 총선 때 경기 고양 덕양갑에서 낙선해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의원’이라고 불렸다. 진보정당 수도권 돌파의 사명을 갖고 앞장서겠다. 지난번에는 민주당이 단일화해주지 않아서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반드시 야권 연대를 통해 야권 전체의 승리에 기여하겠다.

이정희(이하 이) 민주당 세가 현실적으로 강하다. 야권 단일화를 한다고 해도 과연 승복하겠나 의문을 제기하는 분도 있다. 그러나 후보 단일화를 하면 승복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거다. 누가 양보하느냐는 문제가 아니라, 누가 국민의 신뢰와 기대를 얻느냐는 냉엄한 평가 과정이라고 본다.

당의 상황이나 정치 동향을 고려해서 당이 명하는 바에 따르겠다. 지역구로 나가면 한나라당의 센 사람과 붙어야 할 거고, 비례대표 후보로 나가려면 당선이 쉽지 않은 순번을 받아야 한다.

선거 연대가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보는가. 민주당 내 거부 반응도 적지 않고, 민주당이 ‘혁신과통합’과 합치는 과정에서 오히려 진보정당에 양보할 여지가 줄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연대 방식을 이야기하긴 아직 이르다. 우리는 다른 갈 길이 있기 때문에 서로 갈 길을 가며 연대하자고 정리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 우리가 생각하는 연대가 현실화되려면 진보 진영의 힘이 커져야 한다고 봤다. 그래서 통합진보당을 만드는 데 주력한 거다. 실제로 여론조사에 지금까지 볼 수 없던 지지율이 나오기 시작했다.

항상 큰 정당이 양보하는 게 맞느냐는 의견도 있는데.

지금까지 큰 정당이 양보한 적 있는가. 경선에서 진 사례는 있어도. 오히려 작은 정당이 양보한 사례는 엄청나게 많다. 아, 전남 순천에서 (민주당이) 양보한 적 있구나.

유시민, “통합 과정에서 감동 많이 느껴”

한나라당을 심판하려고 연대하는 거다. 단일화하지 않아도 이길 수 있으면 선의의 경쟁을 하면 된다. 그걸 양보라고 보느냐, 아니면 국민의 새로운 열망에 부응하려는 혁신으로 보느냐의 차이가 크다. 자기가 가진 재산만 염두에 두고, 그 재산이 어떻게 올바른 방향으로 쓰여야 하느냐는 국민의 시선은 외면한 채 그걸 양보라고 생각하는 순간 단일화는 어려움을 겪을 거다. 우리 힘과 능력만큼 국민이 바라는 대로 단일화의 모든 중층적 방법을 동원해 야권 연대에 임할 거다.

민주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무효화 투쟁, 국회 등원 결정 등 주요 현안에 대해 태도가 오락가락한 경우가 많은데, 선거 연대가 잘 추진될 수 있겠는가.

그런 식이면 실제 총선에서 야권 연대가 어려울 수 있다.

민주당의 ‘쌩얼’이 무엇인지 진짜 헷갈린다. 민주당은 야권 연대에 대한 태도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통합 과정에서는 감동을 주지 못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왜 그렇다고 보는가.

일단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렸다. 때를 맞추지 못해 함께할 수 있는 분들이 기대를 접는 과정이 있었다. 둘째는 밖에서 보면 작은 차이에 시선이 집중되기 때문에 차이가 크게 보였다. 그러나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게 이제는 바뀌고 있지 않나.

나는 감동을 많이 느꼈다. 8개월 전만 해도 한 당을 하리라고 누가 상상했는가. 이렇게 장시간에 걸쳐 여러 번 좌절을 겪으면서도 집요하게 노력하고 토론해서 정당이 통합한 예가 없다. 당의 주권자인 당원들이 의사표시를 해서 통합한 예가 없다. 다른 정당들은 정치인들이 위에서 결정하고 동원해서 했다. 물론 통합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앞으로 어떻게 혁신해서 국민 마음에 다가가느냐가 통합진보당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서로 다른 경험과 배경을 가진 세력들이 합쳐서 진보정치의 제2기를 열어가는 시기다. 통합 과정에서 진보정치에 대한 고뇌와 성찰의 과정이 동반됐다. 미숙한 점도 있었지만 어쨌든 통합을 이뤄냈다는 것 자체가 감동이다. 다만, 어떤 모습으로 국민에게 다가갈 것인지가 더 큰 책임으로 남아 있다.

새로운 모습을 어떻게 보여주겠다는 것인가.

정당은 당원들이 이끌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주체가 혁신돼야 한다. 즉, 젊은 피가 필요하다. 여기 앉아 있는 칙칙한 사람이 말만 한다고 안 달라진다.



“우리가 생각하는 연대가 현실화되려면 진보 진영의 힘이 커져야 한다고 봤다. 그래서 통합진보당을 만드는 데 주력한 거다. 실제로 여론조사에 지금까지 볼 수 없던 지지율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정희

심상정, “정치적 힘 만드는 전략 절대적”

통합이 어렵게 이뤄졌고, ‘진보 신입생’ 처지라서 이 대목은 조심스럽게 얘기하겠다. 국민참여당이 진보 통합에 참여하기로 결심한 이유다. 진보정당에 대해 국민이 인정하는 대목이 있다. 사익 추구 집단이 아니라는 것,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을 위해서는 탄압에 굴하지 않는다는 것, 하는 말이 근본적으로 볼 때 옳은 것 같다는 거다. 그런데 왜 지지를 안 할까? 옳은 것 같긴 한데 너무 과격하거나 자기주장만 하는 것 같아 부담을 느낀다. 존경스럽긴 한데, 가까이하기엔 부담스럽다고 한다. 그리고 힘이 없는 것 같아서, 밀어줘봐야 별 소용이 없다고 망설이는 것이다. 이런 문턱만 넘어가면 잘될 듯한데, 이걸 못 넘는 게 안타까웠다. 앞으로 정책과 노선, 당의 문화, 인물과 세력 등 세 가지 면에서 통합진보당 출범을 계기로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변화의 의지와 방향을 얘기했는데, 아직 잘 보이진 않는다.

아니다. 이미 많이 변했다. 이정희, 심상정, 유시민, 노회찬, 강기갑 등이 함께 서 있지 않나. 예전에는 없던 그림이다. 이것만 해도 훌륭하다. 다른 어떤 당의 수뇌부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다른 세력들이 합쳐서 진보정치의 제2기를 열어가는 시기다. 통합 과정에서 진보정치에 대한 고뇌와 성찰의 과정이 동반됐다. 미숙한 점도 있었지만 어쨌든 통합을 이뤄냈다는 것 자체가 감동이다.”
심상정
국민에게는 기존에 있던 그림에 유시민 대표만 참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측면도 있는데.

그건 굉장히 본질적인 변화다. 통합 과정에서 논쟁이 된 게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와 함께할 것이냐는 문제 아니었나. 민주노동당에 있던 분들과 노무현 정부에 참여한 분들 가운데, 이루고 싶은 사회는 비슷한데 작은 차이들 때문에 갈가리 갈라졌던 경험이 있다. 그것을 치유하며 단단한 진보 개혁의 힘을 모으는 데 집중했던 거다.

2002년 노풍이 일어날 때 최초의 동력이 됐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결합해 있다. 과거 민주노동당이 갖고 있던 사회적 기반 위에 자각한 시민들의 네트워크가 결합된다는 뜻이다. 이것이 온라인이나 뉴미디어 공간에서 발휘하는 힘도 있다. 그것들이 융합해서 새로운 것을 내놓고 소통을 시작하면 한국 정치의 구조적 변화를 만들어가는 첫 번째 동력이 될 거다.

통합진보당으로의 결집이 단순히 양적 확대 문제는 아니다. 서로 다른 정치적 배경을 가진 세력이 합쳐진 것으로, 연합 정당인 셈이다. 진보가 이념적 순수성을 고집하며 독자성을 지킬 것이냐, 아니면 진보의 비전과 집권 가능성을 열기 위해 진보를 중심으로 하되 다원적 틀을 수용할 것인가. 이런 고뇌 속에서 지금은 정치적 힘을 만드는 전략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결단을 한 거다.




“여러 번 좌절을 겪으면서도 집요하게 노력하고 토론해서 정당이 통합한 예가 없다. 당의 주권자인 당원들이 의사표시를 해서 통합한 예가 없다. 다른 정당들은 정치인들이 위에서 결정하고 동원해서 했다. ”
유시민
명망가보다 묻혀 있는 젊은 인재 찾을 것 비례대표 후보는 어떻게 구성하나.

그 답은 나와 있다. ‘더 젊은 이정희’를 청년 대표로 영입하고, 환경 분야의 이정희를 찾으면 된다. 이정희 대표가 18대 총선에서 비례대표가 될 때만 해도 그가 누군지 잘 모르지 않았나. 과거 열린우리당에서 비례대표 후보 공천을 지켜봤는데, 무척 절망적이었다. 고관대작 지낸 분들, 언론사에서 높은 자리를 한 분들을 모셔다가 상위 순번에 배치해 배지를 달아주더라. 정당이 이미 높은 자리를 지낸 사람들을 국회에 취직시켜주는 곳인가? 저명한 분을 모셔와 당을 저명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직 저명하지 않지만 국민과 국가를 위해 큰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당선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진보정당에 좋은 인재가 묻혀 있었다. 그런 분들이 올라온다고 보면 된다.

‘한지붕 세가족’ 체제가 잘 굴러갈지 걱정하는 시선이 있다. 안정적 리더십을 구현하기 어렵고, 노동·경제 정책 등에서 충돌할 우려도 있다.

누구도 이렇게 모이는 것이 가능하리라고 보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까지 왔지 않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신뢰관계가 형성됐다고 생각한다.

원래 공동대표제를 좋아하지 않는다. 진보정당에서 책임지기 어려운 구조일 수 있다. 그런데 총선은 서로 의존해야 하는 시기다. 총선을 잘 치러내는 데 현재의 리더십에는 문제가 없다. 총선이 끝나면 민주노동당계, 국민참여당계, 통합연대계 등의 구분이 옅어질 거다.

글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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