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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코드를 푸는 몇가지 방법

기부란 비정치적 행위로 극적인 정치효과 낳은 안철수 원장…그의 책과 지인의 말을 통해 기부 맥락부터 대선 출마까지 안철수 코드를 독해하다
등록 2011-11-23 15:09 수정 2020-05-03 04:26
안철수 원장

안철수 원장

‘대인배 안철수’.

한때 노벨의학상을 꿈꾸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여러 차례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하면서 새로 얻은 별명이다. 안 원장은 지난 9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할 뜻을 내비쳤다가 통 크게 양보했고, 10월26일 당선된 박원순 서울시장이 선거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자 편지 한 통을 들고 찾아가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안철수는 변수가 아니라 상수”

안 원장은 그 뒤 “학교 일에 전념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언론과 대중의 관심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한동안 그렇게 시간이 흐를 줄 알았다. 그런데 안 원장은 11월14일 자신이 소유한 안철수연구소(안랩)의 지분 절반을 기부해 저소득층 청소년의 장학금 등을 위한 사회공헌사업에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번에는 안랩 직원들에게 보내는 전자우편 형식을 빌렸다. 기부 의사를 밝힐 당시의 주식 가치로 무려 1500억원에 달하는 액수였다. 그 흔한 기자회견 하나 없었다. 그럼에도 효과는 그 이상이었다. 다음날 주요 일간지의 1면은 안 원장이 장식했다. 몸담은 정당도 없고 정당을 만들겠다거나 정치의 전면에 나서겠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그는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수위를 다투고 있다. 이제는 대세론의 주인공이 바뀔 판이다.

전자우편 내용은 담백했다.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던 작은 결심 하나를 실천에 옮기려고 합니다.” 안 원장은 자신의 ‘작은 실천’이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더 많은 혜택을 받은 입장에서, 앞장서서 공동체를 위해 공헌하는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필요할 때”라는 생각에서 비롯됐고, “자신이 처한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해 기회를 보장받지 못하고 마음껏 재능을 키워가지 못하는 저소득층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일에 쓰이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다시 강조했다. “다른 목적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오래전부터 생각해온 것을 실천한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다음날 몰려든 기자들에게도 같은 말만 반복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은 다시 한번 충격에 빠졌다. 통 큰 규모에 놀라고 담백한 방식에 더 놀랐다. 정치권에서는 ‘중산층 붕괴’와 ‘젊은 세대들의 좌절’을 비롯해 국가와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한 대목을 놓고 ‘출사표’로 해석하는 기류가 강했다. 한 정치인은 “안철수는 이제 변수가 아니라 상수가 됐다”고 말했다. 내년 4월 총선과 대선을 향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여야가 ‘대선주자 안철수’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게 됐다는 얘기다.

야권 통합 운동을 벌이는 ‘혁신과통합’은 안 원장의 합류를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합리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를 포괄하는 ‘대(大)중도주의’ 정당을 구상 중인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도 안 원장을 거론한다. 한나라당, 그리고 친한나라당 성향의 보수 언론들은 안 원장을 향해 정치를 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누구와 할 건지 아니면 혼자 하겠다는 건지 정체를 밝히라고 독촉했다. 초조함이 묻어난다.

안철수 원장은 지난 2년 동안 ‘청춘콘서트’라는 이름으로 수천 명의 젊은이를 만났다. 안 원장이 자신의 멘토 가운데 한 명인 ‘시골의사’ 박경철 안동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과 함께 콘서트 형식의 강연을 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기자

안철수 원장은 지난 2년 동안 ‘청춘콘서트’라는 이름으로 수천 명의 젊은이를 만났다. 안 원장이 자신의 멘토 가운데 한 명인 ‘시골의사’ 박경철 안동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과 함께 콘서트 형식의 강연을 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기자

상황 때문에 오히려 늦어진 기부

‘오랜 구상’이라는 안 원장의 말과 본격적 정치 행보를 위한 ‘몸풀기’ 혹은 ‘몸집(재산) 줄이기’라는 해석 사이에는 간극이 크다. 안 원장은 현재 모든 언론 인터뷰에 응하고 있지 않다. 주변 인사들도 그의 깊은 속내까지는 알지 못할뿐더러 말을 아끼고 있다. 그렇다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안랩 직원들에게 보낸 안 원장의 전자우편에는 2001년 펴낸 라는 자신의 책에서 인용한 대목이 있다. “언젠가는 같이 없어질 동시대 사람들과 좀더 의미 있고 건강한 가치를 지켜가면서 살아가다가 ‘별 너머의 먼지’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그가 숨겨놓은 ‘코드’일지 모른다. ‘안철수’를 통해 ‘안철수’를 해석해달라는.
에 ‘월급 받는 날은 기분이 참 좋다’는 제목의 글이 실려 있다. “월급은 나의 생계 유지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그 돈이 있음으로 해서 집에 돌아갈 때 딸을 위해 학용품을 사거나 먹을거리를 사갈 수 있으며, 나와 가족의 미래도 준비할 수 있다. 그러니 월급날이 기쁠 수밖에 없다. 내가 가진 주식은 그 자산 가치를 재산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생계 문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는 10년 뒤 대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언젠가는 재산을 내놓을 수도 있다고 미리 정교하게 생각했을까? 그보다는 “자본의 논리에 이용당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에 안철수연구소를 주식회사보다는 비영리법인으로 추진하려던 1990년대 초반 구상의 연장선에서 보더라도, 처음부터 주식을 자신의 재산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보는 게 맞을 듯하다.
안 원장과 함께 사회공헌의 여러 가지 방식에 관해 고민해왔다는 한 인사의 말도 맥을 같이한다. 안 원장이 지난 9월까지 2년간 진행한 ‘청춘콘서트’를 마친 뒤 사회환원 캠페인을 벌일 계획이었는데 느닷없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변수 때문에 보류됐다는 것이다. 그는 “안 원장은 자신이 내뱉은 말을 실천하는 데 엄격한 사람이라 더 늦기 전에 실행에 옮기는 게 맞다고 판단한 듯싶다. 정치적 목적이 있었다면 더 결정적인 때 이런 카드를 내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내뱉은 말을 실천하는 데 엄격한 사람’이라는 대목은 에서도 확인된다. “나는 함부로 약속을 하지 못한다. 가령 어떤 사람에게 이렇게 해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더라도 그 확률이 90% 정도면 약속을 하지 않는 주의이다. 99% 정도 확신이 들어야 약속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기부’는 잠시 자신의 측근이나 친인척에게 재산 관리를 맡겨두는 식의 기부와는 격을 달리한다. 주변 인사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성실공익법인’처럼 사회적 기업에 황금주 등 경영권 보장 장치를 줄 경우 안 원장은 나머지 지분도 다 내놓을 수 있다고 한다.

안철수 재단에 모여들 친구들
보통 사람들에게 쉽지 않은 일을, 그는 어렵지 않게 하는 이유는 뭘까? 자신의 성공을 자신만의 것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의 후속편인 (2004)에는 이번 사회공헌 기부를 암시하는 대목이 나온다.
“대학을 다니면서 했던 고민은 전공이 적성에 맞고 안 맞고 그런 게 아니었다. 내가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살아가면서 혜택 받는 수많은 문명의 이기들은 선조들이 쌓아온 지식과 동시대의 땀 흘리며 일하는 무수한 사람들의 노력 속에서 일구어진 것이다. 사회를 살아가는 한 일원으로서 일방적으로 혜택을 받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서 받은 일부라도 돌려주고 싶었다.”
성공한 사람들은 대체로 그 성공이 남다른 자신의 능력에서 비롯됐고, 따라서 그 성공의 결과를 온전히 누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안 원장은 사회로부터 혜택을 받았으므로 공동체에 환원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의학박사에서 컴퓨터 전문가로, 경영인으로 변신해온 그가 어떤 형태로든 정치에 참여하게 된다면 흔히 ‘권력의지’라고 표현하는 개인적 욕망보다는 공동체를 위한 재능기부 형식의 사회공헌이라고, 그 스스로는 여길 가능성이 크다.

에서 그는 탄탄한 미래가 보장된 의학박사·의대교수를 포기하고 컴퓨터전문가·경영인을 선택하게 된 결정적 순간에 대해 이렇게 서술한다.
“전체가 잘될 수 있다면 나는 개인적인 이해타산과 상관없이 어떠한 선택도 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말로만 이야기하기보다는 실제로 행동으로 보여주고자 노력해왔다. 그러한 행동들 중에는 외부에서 보기에 놀라울 만큼 무모한 선택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선택들은 나 나름대로의 기준에서 우리 모두가 잘될 수 있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그런 마음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안 원장이 주식 기부 의사를 밝히며 보낸 전자우편은 “오늘 제 작은 생각이 마중물이 되어, 다행히 지금 저의 뜻을 같이해주기로 한 몇 명의 친구들처럼 많은 분들의 동참이 있었으면 한다. 뜻있는 다른 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기대한다”로 끝난다. 안철수의 친구들이 있으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친구가 되어달라고 손을 내밀고 있다. 그가 구체적인 구상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기부를 받아 사업을 진행하려면 어떤 형태로든 조직이 꾸려질 텐데 그 주변으로 안철수의 친구들과 지지자들이 모여들 가능성이 크다. 정치와 비정치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행보를 기존 정치문법으로 보면, 당장 정치에 뛰어들 경로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지지자들을 규합하고 지지 강도를 확인하는 최적의 방법으로 볼 수 있다. 기부라는 비정치적 행위로 가장 극적인 정치적 효과를 거두는 셈이다.
안 원장이 서울시장 출마를 고심하던 즈음, 그의 여러 멘토 가운데 한 명인 원로 정치인은 기존 정치문법에 따른 정석을 조언했다. 정치를 하려면, 대통령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우선 내년 4월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라고. 그때 안 원장은 ‘서울시장이나 대통령은 권한을 가지고 뭔가를 바꿀 수 있는데 의원은 뭘 할 수 있느냐’는 취지로 되물었다고 한다. 의학과 경영학을 배울 때, 심지어 바둑을 독학할 때도 교과서와 정석을 중시했는데 정치에서만은 그만의 새로운 정석과 경로를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치가 있으면 해보는 것이 특권”
젊은 세대들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멘토인 안 원장은 에서 진로를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빌려 이렇게 충고한다.
“세상에서 나 자신에 대해서 가장 모르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오히려 타인은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데 나 스스로는 편견과 자기애에 사로잡혀 제대로 들여다보는 것이 힘들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 순간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은 무척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누구나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 때는 나와 같은 갈등과 자기선입견을 가질 수 있다. 하고자 하는 마음은 자연스럽게 생성되었는데 자기 인식의 벽 때문에 자신감을 미리 꺾는 경우도 자주 본다.
그런 분들에게 감히 충고를 한다면, 자기 편견에 사로잡히지 말고 일단 시도를 해보라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시도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일단 시도한 것이라면 아주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열심히 하는 과정에서 실패를 할 수도 있고 성공을 할 수도 있는데, 그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가운데 자기를 제대로 알아가는 것이며, 이 자체만으로도 무척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선택과 시도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그것이 꼭 직업, 회사일과 관련된 선택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그 무엇이든 자기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는 판단이 들고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시도를 해보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특권이 아니겠는가.”
‘나와의 만남, 나의 발견’이라는 제목의 글 가운데 한 토막인데, 10년 전의 안철수가 현재의 안철수에게 하는 조언으로 봐도 손색이 없다. 어쩌면 이미 과거 자신의 조언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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