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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란 무엇인가

등록 2011-11-09 16:45 수정 2020-05-03 04:26

국가는 기업보다 민주적이다. 보통선거권을 보장하는 현대 국가의 작동 원리는 ‘1인 1표’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나 노숙자나 ‘한 표’의 권리만을 지닌다. 반면에 주식회사의 의사결정 원리는 ‘1주 1표’다. 이건희 회장과 소액주주의 권리를 합법적으로 차별한다. 똑같은 다수결이지만 ‘1인 1표’가 현대 민주주의의 기반이라면, ‘1주 1표’는 강자의 지배 수단이다. 그러므로 기업이 국가를 압도하는 체제는 독재자나 군부가 국가를 쥐락펴락하는 체제만큼이나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 금융자본 중심의 미국식 신자유주의에 포박된 21세기, 뉴욕을 비롯한 세계 도처에서 “우리가 99%다”라는 외침이 힘을 얻는 근본엔 ‘1인 1표’를 무력화한 ‘1주 1표’의 전횡에 대한 분노가 자리하고 있다.
현실은 원리·원칙보다 훨씬 복잡하고 누추하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세계시민 가운데 자신이 속한 국가의 정부가 충분히 민주적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얼마나 있겠나. 그럼에도 원리는 중요하다. 그 원리마저 훼손된다면, 돈 없고 힘없는 이들과 장애인·동성애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 기댈 언덕이 어디 있겠는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문제적인 건 이런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할 위험 때문이다. 투자자, 곧 특정 기업이 FTA 위반을 이유로 상대국 정부를 제소할 수 있도록 한 ‘투자자-국가 소송제’(ISD)가 대표적이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조차 야당 시절인 2007년 “한국의 사법 주권을 미국에 바치는 것”이라며 반대한 바 있다. 멕시코·아르헨티나 등 미국과 FTA·투자협정을 맺은 각국의 공공정책은 ISD를 앞세운 미국 대자본의 공격에 무시로 무력화된다. 재래시장과 소상인, 중소기업을 보호하려는 ‘SSM법’(유통산업발전법)과 ‘상생법’(대·중소기업 상생 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등에 대해 외교통상부가 FTA에 상충한다고 반대하는 것도 ISD의 ‘위력’을 의식한 탓이다. 문제는 정부의 이런 태도가 위헌적이라는 사실이다. “국가는…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헌법 119조 2항), “국가는 농업 및 어업을 보호·육성하기 위하여 농어촌 종합개발과 그 지원 등 필요한 계획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헌법 123조 1항), “국가는 중소기업을 보호·육성하여야 한다”(헌법 123조 3항). 요컨대 경제 민주화와 농업·중소기업 보호는 대한민국 공무원들이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될 헌법적 책무다. 정부와 한나라당 등이 ‘시장 개방과 탈규제의 소비자 후생’ ‘국제 표준’ 따위를 내세워 한-미 FTA를 밀어붙이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헌법을 넘어설 수 없다. 특정 국가의 주권은 원칙적으로 인도적 재앙 등 특수한 경우에 한해 국제법에 따라 ‘세계정부’의 위상을 부여받은 유엔의 개입으로만 제한될 수 있다. FTA를 이유로 한 주권 제약은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니다.
FTA 찬반 논란을 ‘개방 vs 쇄국’의 이분법 구도로 몰아가는 것도 진실과 무관한 선동에 가깝다. FTA는 본질적으로 보호무역주의다. FTA는 협정 당사자 간에만 최혜국대우를 보장하고 다른 이의 시장 접근권은 차별한다. ‘1국 1표’의 원리에 기반을 둔 세계무역기구(WTO)가 추진해온 도하개발의제(DDA) 등 다자무역체제 구축 노력이 각국의 이해 상충으로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대기업들이 각국 정부를 앞세워 시장을 선점하려는 수단이 바로 FTA다. FTA는 국제무역 표준이 아닐뿐더러 철저하게 약육강식의 원리가 지배한다. 자동차 산업을 위해 농업 등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한국 정부의 주장은 난감하다. 강자를 우대하려 약자 보호 의무를 포기하는 정부의 FTA 정책은 국가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엔헌장과 국제 인권법과 대한민국 헌법은 정몽구 현대차 회장, 300일 넘게 부산 앞바다 하늘에 외로이 떠 있는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지리산 중황마을의 촌로, 서울 서대문 영천시장의 채소장수 할머니를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할 국가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국가가 이런 책무를 외면하려 한다면, 민주주의가 설 땅은 어디인가. ‘국가란 나에게 무엇인가?’라는 시민들의 정당한 문제제기를 외면할 권리가 국가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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