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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와 장소가 맞지 않는 멍게

서해에서 건진 천안함 타격 어뢰에서 동해에서만 사는 ‘붉은멍게’ 추정 물체 발견…

전문가 “크기론 11~12월 성장 상태”
등록 2011-03-30 16:57 수정 2020-05-03 04:26

이번엔 멍게다. 천안함을 침몰시킨 결정적 증거라는 어뢰추진체에서 동해에서만 난다는 ‘붉은멍게’(비단멍게)로 추정되는 물체가 발견됐다. 지난해 11월 추진체에서 발견된 가리비 논란에 이어 두 번째다. 물체의 존재는 지난 3월23일 신상철 전 천안함 민·군 합동조사단 민간조사위원이 입수한 사진을 공개하면서 드러났다. 물체는 한 블로거가 지난해 전쟁기념관에 전시됐던 어뢰추진체를 촬영한 사진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물체는 0.8mm 정도 크기로 동그란 형태의 붉은색 알갱이에 가느다란 섬유 가닥이 연결된 모양을 하고 있으며, 어뢰추진체 프로펠러에 붙어 있다.

탁한 서해에선 살기 힘들어

국방부는 “정체가 무엇인지는 조사해봐야 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대체로 이 물체를 붉은멍게로 추정했다. 이름을 밝히기 꺼린 국립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붉은멍게 같다”며 “0.8mm 크기로 크려면 1년 정도가 걸린다. 10월이나 11월에 산란해서 이듬해 12월에나 확인될 만한 크기”라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사진상으로 봤을 때 말라붙은 듯 보이지만 멍게인지 아닌지 정도는 확인할 수 있다”며 “말라붙어도 고유의 색깔이나 모양은 어느 정도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다른 연구원은 “(붉은멍게) 종묘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보면 멍게가 그런 식으로 자란다”며 “다만 사진 자료를 더 다양하게 접해야 확실히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붉은멍게를 양식하는 한 양식업자는 “뻗쳐나와 있는 섬유처럼 보이는 것은 섭이활동(먹이활동)을 하기 위한 기관으로 붉은멍게의 특징”이라며 “붉은멍게가 유생 상태로 헤엄쳐다니다가 고착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형태로 봤을 때는 11월 정도에 볼 수 있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24일 공개된, 동해에서만 양식되는 것으로 알려진 붉은멍게로 추정되는 물체가 어뢰추진체 프로펠러에 붙어 있다.

지난 3월24일 공개된, 동해에서만 양식되는 것으로 알려진 붉은멍게로 추정되는 물체가 어뢰추진체 프로펠러에 붙어 있다.

붉은멍게가 어뢰추진체와 만났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붉은멍게는 주로 일본 홋카이도, 미국 베링해, 알래스카반도, 캐나다 북부 연안, 한국 동해안에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탁한 물에서 살지 않는 붉은멍게의 특성상 서해안에서는 살 수 없다고 본다. 특히 1번 어뢰가 발견된 백령도 인근은 탁류가 급하게 흘러 붉은멍게가 발견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붉은멍게가 양식되는 강원도 인근 동해안과는 달리 서해에서는 붉은멍게 양식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도 의혹을 더한다. 바꿔 말하면, ‘1번 어뢰가 동해안에서 오지 않았느냐’는 질문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견도 존재한다. 한 국립대 교수는 “붉은멍게가 동해안에 사는 것은 맞지만 해수 이동에 따라 서해에서 발견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설령 붉은멍게가 서해안까지 이동했더라도, 멍게의 성장 속도를 봤을 때 어뢰 발견 시기와 맞지 않는다. 전문가들이 11월이나 12월에 발견될 만큼 성장한 상태라고 말한 것에 비춰보면, ‘3월에 쏘고 5월에 건진’ 어뢰와는 시기상으로 차이가 나는 것이다.

국방부, 유전자 분석 진행

국방부는 곧바로 물체의 정체를 규명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국방부 조사본부 관계자는 지난 3월24일 “이미 지난해 11월 가리비 조각이 어뢰에서 발견됐을 때 이 물체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며 “증거를 인멸했다는 논란이 나오면 곤란할 것 같아서 오늘까지 유지하고 있었고, 언론사 문의를 받고 조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조사본부 관계자는 “육안으로 판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여겨 조사본부 산하 과학수사연구소에서 유전자 분석을 진행 중이며, 감식이 끝나는 대로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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