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직전인 지난 1월24일, 청와대는 에 출입기자 등록 취소를, 엔 기자실 출입정지 1개월을 결정해 해당 언론사에 통보했다. 이들 매체가 ‘엠바고’(보도유예 약속)를 깨고, 삼호주얼리호 피랍선원 구출 1차 작전 실패를 보도했다는 이유였다. 품위 손상에 따른 출입기자 등록 취소, 보도와 관련한 일시적 출입정지 등의 전례는 있지만, 보도를 이유로 청와대 기자 등록을 취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상 초유이자 최고의 ‘징벌’인 셈이다.
야당 때는 반대하던 ‘엠바고 파기 징계’
이를 전후해 국방부·국무총리실·외교통상부·법무부·통일부·문화체육관광부·방송통신위원회 등도 이들 매체에 대해 기자실 출입금지 또는 일시정지, 취재자료 제공금지 등을 결정했다. 모든 정부기관이 일시에 특정 언론사를 징계한 것 역시 사상 처음이다. 졸지에 3개 언론사는 권력을 감시할 더듬이를 잘렸다.
논란의 출발은 엠바고다. 엠바고는 스페인어 ‘embargar’에서 비롯했다. 자신의 영토에 정박 중인 상선의 출항을 금지하는 행위를 뜻한다. 언론계에서 엠바고는 주요 기관이 기자들에게 관련 내용을 설명한 뒤, 일정 시점까지 보도를 연기해줄 것을 요청하는 행위다. 해당 언론사가 이를 수용하면 엠바고가 성립된다.
엠바고가 관행으로 정착한 것은 1950년대다.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을 거치면서 작전 정보를 언론에 설명하되, 언론은 군사작전 실시 이후에 이를 보도하는 방식이 등장했다. 이재진 한양대 교수(신문방송학)는 미국 언론이 주도한 엠바고 문화에 대해 “언론의 과잉보도 경쟁으로 인한 ‘황색 저널리즘’의 병폐를 막으려 취재 관행을 재정립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한다.
2005년 7월, 월간 에 폴 오버버그 〈USA투데이〉 에디터의 인터뷰가 실렸다. 그는 “권력자들이 선호 언론사에 먼저 뉴스를 주는 특혜는 언론을 교묘하게 이용하려는 계략”이라며 “모든 언론에 평등하게 정보를 제공하는 엠바고는 민주적 방식”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기자들에게 엠바고는 권력-언론 유착을 막는 장치라는 뜻이다. 권력의 의도대로 언론 보도를 이끄는 이명박 정부의 엠바고 운용과 비교된다.
‘기자클럽’ 제도를 운영하는 일본에서는 엠바고에 대한 명문 규정을 갖고 있다. ‘어떤 보도협정도 개별 기자·언론의 자유로운 취재를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게 대원칙이다. 엠바고는 △피해자의 생명·안전에 대한 배려가 필요한 유괴사건 보도 △집단적 과열취재로 인해 부당한 인권·사생활 침해가 예상되는 경우에 한정해 설정할 수 있도록 정해두었다. 엠바고 파기에 따른 징계는 개별 기자클럽의 자체 협의로 결정한다. 언론인 징계를 권력자가 직접 해치우는 이명박 정부와 비교된다.
한국에서는 1960년대 박정희 정권 때부터 엠바고라는 용어를 썼다. 과거에는 취재원과 언론인 사이에 보도 시점의 양해를 구하는 ‘개별적 신사협정’이 있었는데, 박정희 정권은 정부 차원에서 미국식 엠바고 제도를 활용했다. “한국의 엠바고는 처음부터 언론통제의 주요 수단으로 도입됐다. 탄압의 인상을 최소화하면서도 교묘히 언론을 조정하는 방식이었다”고 이재진 교수는 평가한다.
이명박 정부는 이를 체계화했다. 2008년 5월, 청와대는 ‘청와대 출입기자 등록규정’을 개정하면서 ‘엠바고 파기에 따른 기자 징계’를 명문 규정으로 만들었다. “대변인은 기자실 운영위원회와 협의하여… 사전 보도 금지를 설정할 수 있고… 대변인은 (사전 보도 금지 등) 규정 위반·명백한 오보… 등의 경우 출입기자 등록 취소, 기자실 출입정지, 출입기자 교체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정해뒀다. 청와대가 등의 출입기자 등록을 취소한 것도 이 규정에 따른 것이다. 엠바고 파기에 따른 징계는 노무현 정부도 시도한 적이 있다. 2007년 ‘취재지원 기준안’을 만들면서 엠바고 파기 기자를 징계하는 조항을 집어넣었으나 언론통제라는 비판을 받아들여 문제의 조항을 철회했다. 당시 이를 비판했던 한나라당은 집권하자마자 이를 되살렸다.
보도유예에 동의하지도 않았는데…청와대가 기왕의 규정조차 준수한 것인지 논란도 있다. 피랍선원 구출작전은 청와대 출입기자단이 아니라 국방부 출입기자단의 엠바고 사안이었다. 3개 언론사 징계 요청에 대해 청와대와 총리실 기자단은 “국방부와 국방부 출입기자단 사이에 발생한 일을 (청와대 또는 총리실이) 징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청와대 등은 이런 기자단의 ‘자율적 결정’을 무시하고 징계를 결정했다.
3개 언론사가 엠바고를 파기한 것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1월18일 저녁, 청해부대의 1차 구출작전이 실패하자 가 자체 취재를 거쳐 1월20일 이를 보도했다. 뒤이어 등이 이를 토대로 추가 보도했고, 관련 사실은 주요 포털과 트위터 등에 급속히 퍼졌다. 엠바고 유지의 조건으로 상세한 브리핑을 약속했던 국방부는 일련의 보도가 나올 때까지 1차 작전 실패를 출입기자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더구나 문제가 된 3개 언론사는 엠바고 사실을 애초에 몰랐고, 관련 내용을 자체 취재했다. 국방부 기자단 간사를 맡고 있는 권혁철 정치부 기자는 “(엠바고를 지킨) 국방부 기자들의 판단이 정답이라고 볼 수는 없고, 더구나 등은 국방부 기자단 소속이 아니므로 기자단의 결정과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며 “당국의 강도 높은 보복은 블랙코미디”라고 지적했다.
김학수 서강대 교수(커뮤니케이션학)는 “엠바고의 목적은 (취재 시간을 확보해) 언론 보도를 심층적으로 유도하고 정확성을 향상시켜 언론 수용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데 있다”며 “정보 독점 또는 홍보 효과를 꾀하는 취재원의 의도와 (엠바고는) 전적으로 분리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엠바고 남발이 권력기관의 의도대로 획일적·무비판적 보도로 이어지는 일을 막아야 한다는 뜻이다.
우려는 이명박 정부 들어 현실이 됐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과 관련해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의 ‘대통령 쇠고기 발언 삭제 요청’을 폭로한 (2008년 5월), 이명박 대통령 간담회 발언을 보도한 등 4개 인터넷 언론사(2009년 11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점 연기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보도한 (2010년 6월) 등이 줄줄이 청와대 출입정지 징계를 받았다. 엠바고는 모든 기자가 동의해야 성립하는데, 이들 매체 모두 “엠바고를 요청받지도, 동의하지도 않았으니 엠바고 파기라는 징계 이유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항의했으나 소용없었다.
엠바고 관철할 때마다 공익 훼손기자들이 엠바고를 수용한 경우에도 문제는 발생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자력 발전사업 수주(2009년 12월) △리비아와의 외교 마찰(2010년 7월) △청와대 개각(2010년 8월) 등에 대해 청와대는 수시로 엠바고를 관철했다. 그때마다 탈이 생겼다. 총리 지명자와 장관 후보자의 문제가 뒤늦게 드러나 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했다. 원전 수주 결과, 오히려 국민 혈세가 낭비되게 생겼다는 사실도 뒤늦게 밝혀졌다. 이번에 문제가 된 피랍선원 구출작전이 타당했는지 면밀히 살펴볼 기회조차 엠바고 논란 속에 사라졌다. 공공의 이익을 훼손한 것은 엠바고 파기가 아니라 엠바고 자체였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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